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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신세계로부터 : 씨앗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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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1.17 14:35
최근연재일 :
2022.05.13 05:56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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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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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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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18 태백산의 마녀(5)

DUMMY

파아아악! 콰악!


김해리의 화살이 멧돼지의 목을 단숨에 꿰뚫었다. 그러자 심윤혜가 단숨에 날아가, 쓰러진 멧돼지의 곁으로 이동했다.


멧돼지를 유심히 살핀 심윤혜는 김해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졌어.”

“하하하. 물론 전기 마법도 훌륭하지만, 내 화살은 이 녀석들이 기척도 못 알아챌 정도로 멀리서 날아간다고.”


숨이 끊어진 멧돼지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와중에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죽음. 그 죽음은 뛰어난 사냥꾼이 사냥감에게 줄 수 있는 존중이자, 마지막 선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멧돼지가 이렇게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것의 숨을 끊은 것이 화살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심윤혜는 단 나흘간에 김해리에게 일어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아니. 네 화살은 더욱 강해졌어. 확실히 첫날과는 달라.”


심윤혜의 말에 김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존재께서 가르쳐 주신 마나의 활용법은 정말 새로운 영역이야.”


유현의 일행들이 태백에 머문 나흘이라는 시간 동안, 세 사람은 각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딱히 그러자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현이 은혜로운 대지. 그녀의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잠에 들지도 않은 채 많은 대화와 감정을 나누는 듯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밖으로 나와 태백산을 산책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은혜로운 대지는 나머지 일행들 세 사람에게 각각, 무언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한 것은 김해리였다. 은혜로운 대지는 그들에게, 인류가 아직 개척하지 못한 마나 활용의 영역에 대한 내용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 시대에 사용되었던 태고부터 내려온 깨우침이었다.


“아직 네 몸에 완전히 체득된 것은 아냐. 유현 씨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하나의 벽을 깨야만 해.”

“초월의식이라는 것 말이지?”

“유현 씨 표현에 의하면 그런 것이지. 유현 씨와 같은 길을 간다면 모르겠지만, 네가 만약 너만의 길을 간다면, 초월의식이라는 용어에 얽매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큰 틀에서 유현 씨의 경험들을 활용해 봐.”

“알았어. 그런데 너는 무사도 아니면서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김해리가 묻자, 심윤혜는 무심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김해리를 바라봤다.


“이승민이 단장들에게 해줬던 얘기야.”

“아.. 하아...”


뾰로통한 표정이 된 김해리를 보며 심윤혜의 얼굴에 웃는 듯 아닌 듯 미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구나.”

“그렇지.. 그 자식이 죽게 만든.. 그 자식 여동생이랑 꽤 친했거든.”

“그래.. 모두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은혜로운 대지 님처럼 얘기하는구나.”

“아.. 그랬니?”


두 사람이 다정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산을 내려가자, 언덕 위에서 윤필과 케이디가 내려와, 멧돼지를 긴 나무막대에 묶어 앞뒤로 나눠 들었다.


“두 사람 꽤 친해졌네요. 딱 대학에 다니며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나이인데..”

“그래. 얼마나 죽이 잘 맞으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뒤치다꺼리를 넘기면서 산을 내려가냐?”

“멧돼지는 해리가 잡았으니까 우리가 이 정도는 해야죠.”

“이런 짐승 정도는 나도 잡을 수 있어 인마.”

“고통 없이 잡는 게 좋다잖아요.”

“원래 삶은 다 고통이야. 인마. 짐승이든 인간이든.”

“이야! 곧 현자가 되시겠네요.”

“비꼬냐?”


케이디는 대꾸 없이 희미하게 웃으며 산길을 앞장서서 내려갔다.


“이 새끼 비꽜네. 먼저 힌트를 풀었다고 아주 건방져?”

“에휴 건방이라뇨. 그리고 윤필 씨도 어렴풋이 감을 잡았잖아요. 이제 곧 흙 양탄자 없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거겠죠?”

“몰라 이 새끼야.”


*


“감을 잡은 것 같군요. 유현.”

“네. 이제야 간신히요.”

“굉장히 빠른 것이랍니다 유현. 우리 일족의 아이들은 날 때부터 이 문양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완전히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유현은 그 반점을 가진 지 고작 몇 주도 되지 않았죠.”

“당신이 도와주셨으니까요.”

“우리 일족의 아이들도 어미의 도움을 받는답니다. 이 문양은 유전물질에 새겨 놓은 우리 일족의 비전. 모양은 같지 않지만, 유현의 목 부위에 피어난 반점 역시 같은 것이죠. 유현의 재능은 특별해요.”


민망한 칭찬 세례에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은혜로운 대지. 그녀는 모든 것을 알 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있는 자. 그녀의 말은 자연의 원리에 가까웠으며, 그녀가 뱉는 말은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유현의 목에 생겨난 반점은 유현과 세상을 잇는 열려 있는 창과 같은 것. 그것은 창이기에 유현의 체내에 쌓이는 마나를 가둬 두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유현은 이해했다. 자신의 마나에 대한 통제력이 강력해질수록, 이 빛나는 마나의 창이 이전과는 반대로 작용하게 될 것임을.


아직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지만, 일단은 체내의 마나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완전히 붙들어 두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체외, 즉 우주의 마나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단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면, 유현은 인간의 영역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게 될 것이라 은혜로운 대지는 말했다.


“유현. 당신은 파괴자들로부터 이 별을 지켜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정말 끔찍한 부담감이군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벌써 책임감을 느끼고 있군요.”

“설마요.”

“유현. 당신은 이미 나와 함께할 의지를 가졌습니다.”

“제 속마음 좀 그만 읽으시죠.”


유현이 가늘게 뜬 눈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인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런 유현을 바라봤다.


“당신의 마음을 나에게 감출 수 있을 때면, 그때는 우리가 진짜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마음을 감추는데.. 진짜 마음을 나눌 수 있다고요?”

“네.”


유현은 그녀의 얘기를 언젠가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마음에 새겼다.


“이제.. 떠나셔야 할 시간이군요.”

“네.”

“친구분들을 데려오도록 하죠.”


그렇게 얘기하며, 은혜로운 대지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로부터 시작한 마나의 파동이 퍼져 나갔고, 얼마 있지 않아 방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데려왔습니다. 존재시여.”


심윤혜의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유현의 일행 세 사람이 방 안으로 쭈뼛쭈뼛 들어왔다. 이곳 태백에 온 이후로, 세 사람이 이 방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해리. 이리 가까이 오세요.”


그녀는 가장 먼저 김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김해리는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은혜로운 대지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당신의 활. 한 번 보여주시겠어요?”

“예..? 여기.. 한데 왜..?”


활을 내미는 김해리는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활을 그녀에게 맡겼다.


그리고 은혜로운 대지의 손에 활이 닿자, 김해리의 활이 그녀의 손안에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눈이 부신 호박색의 빛. 그 빛은 둘로 나뉘어, 살별에서 무언가를 분리해 내기 시작했다.


살별에서 분리된 금속은 아름다운 단검의 모양으로 점차 바뀌어 갔고, 살별은 점점 더 얇고 날렵한 모양의 활로 바뀌어 갔다.


그 과정이 끝나자, 은혜로운 대지는 활과 단검을 다시 김해리에게 전달했다.


“인간 대장장이 치고는 정말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아무래도 이 순수한 흡광석을 다루는 데는 역부족이었나 보군요.”


김해리는 손에 받아 든 활별을 보며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활은 이전보다 더 얇게, 그리고 더 유려한 곡선이 여러 번 겹쳐져, 그녀가 흡광석이라 부른 순수한 외계의 금속만으로 충분한 탄성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재설계 되었다.


“아아.. 은혜로운 대지 님.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 단검도요!”


입꼬리가 귀에 걸릴 만큼 올라간 김해리가 활과 단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은혜로운 대지의 품에 아이처럼 안겼다.


은혜로운 대지는 김해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감싸 안으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케이디.”


은혜로운 대지는 다음으로 케이디의 이름을 불렀다. 케이디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녀 앞에 섰다. 그녀는 케이디의 두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미소를 띠었다.


“당신은 이해력이 뛰어난 총명한 자. 그리고 당신이 가진 능력은 태고의 세상에서부터 선택받은 일부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능력입니다.”

“예.. 예.”

“당신이 가진 본능을 마음껏 발산하세요. 당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저 새낀 이미 지 꼴리는 대로 하고 있는데..”


퍼억.


“끄윽.”


김해리의 팔꿈치로 옆구리를 가격당한 윤필은 꿍얼거리던 입을 다물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혜로운 대지와 눈을 마주쳤다.


“윤필. 이리 오세요.”


자기 차례임을 직감한 윤필이 심호흡을 한 뒤 은혜로운 대지 앞에 섰다.


“윤혜. 너도 이리 오렴.”


은혜로운 대지는 문 근처에서 이들을 바라보던 심윤혜도 곁으로 불렀다.


두 사람이 모두 가까이 오자, 그녀는 뒤로 가녀린 손을 뻗었다. 그러자, 거치대에 얌전히 놓여있던 검은 지팡이가 허공으로 떠올라 그녀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지팡이는 김해리의 활. 살별 때와 마찬가지로 밝은 빛에 휩싸이더니, 두 빛으로 나누어졌다. 하지만 한 쪽에는 호박색의 찬란한 빛이 더 따뜻하게 빛났고, 한쪽은 그보다 옅은 빛이 감싸고돌았다.


“흡광석은 둘로 나누어 두 개의 작은 지팡이로 만들지만, 세계석은 하나뿐이니 원래 맡고 있었던 윤혜에게 돌려주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며 그녀가 윤필을 지그시 바라보자, 윤필은 황망한 얼굴로 두 손을 합장한 채 허리를 숙였다.


“누님! 진짜 그것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과분합니다!”

“누님이라니.. 미쳤나 봐요.”


케이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은혜로운 대지가 세계석이라 부른 마나애플은 심윤혜의 팔 길이만 한 지팡이 위에 달렸다. 윤필의 지팡이는 밋밋했지만, 날렵하고 미세한 곡률을 가진 지팡이가 되어 윤필의 눈앞에 가만히 떠다녔다. 두 지팡이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지만, 그 끝에 세계석의 유무에만 차이가 생긴 것이다.


지팡이를 손에 쥔 윤필은 바로 지팡이를 하얀 볼로 가져가 사랑스럽게 비벼댔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성장하고, 또 경험하십시오. 우리가 걸었던 길을 따라, 더 빠르게 나아 가시길. 그리고 유현..”


마지막으로 그녀는 유현의 이름을 불렀다.


사라락.


유현의 앞으로 부드럽게 날아 이동한 그녀가 유현의 앞머리를 넘겨,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내가 그대의 뜻과 함께 하겠어요. 나와 함께 잿빛 하늘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유현의 이마에 입을 맞춘 은혜로운 대지와 유현의 몸에서 호박색 빛이 밝게 빛났다.


*


“유현. 잿빛 하늘이 뭐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팡이를 흔들며 산을 내려가던 윤필이 유현에게 물었다.


“가면서 천천히 얘기해 줄게.”


유현의 대답에 윤필은 생글생글한 미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검도 누님께 날카롭게 벼려 달라고 하지 그랬냐?”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괜찮아.”

“그건 또 뭔 소리래..?”


알쏭달쏭한 유현의 대답에도 윤필은 여전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팡이를 흔들었다.


심윤혜가 앞장서서 안내한 지름길을 따라 걷자, 놀랍게도 태백의 영역은 금세 끝이 났고, 일행들은 목적지인 울진에 금세 다다를 수 있었다.


“윤혜야. 또 보자.”


심윤혜와 포옹을 나눈 김해리가 일행들에게 마지막으로 합류했고, 서대문의 사자들은 마침내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부산이 위치한 경상도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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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Ep.19 인간의 영역(3) 22.04.21 52 3 13쪽
89 Ep.19 인간의 영역(2) 22.04.20 48 2 14쪽
88 Ep.19 인간의 영역(1) 22.04.19 55 3 12쪽
» Ep.18 태백산의 마녀(5) 22.04.18 63 3 12쪽
86 Ep.18 태백산의 마녀(4) 22.04.16 52 2 13쪽
85 Ep.18 태백산의 마녀(3) 22.04.15 58 2 12쪽
84 Ep.18 태백산의 마녀(2) 22.04.14 72 3 13쪽
83 Ep.18 태백산의 마녀(1) 22.04.13 64 3 11쪽
82 Ep.17 무안혈맹(4) 22.04.12 63 3 11쪽
81 Ep.17 무안혈맹(3) 22.04.11 61 3 12쪽
80 Ep.17 무안혈맹(2) 22.04.09 63 2 11쪽
79 Ep.17 무안혈맹(1) 22.04.08 74 3 12쪽
78 Ep.16 전운(7) 22.04.07 6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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