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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신세계로부터 : 씨앗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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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1.17 14:35
최근연재일 :
2022.05.13 05:56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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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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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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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19 인간의 영역(1)

DUMMY

“잿빛 하늘..”


파란 하늘을 떠다니는, 마치 거대한 성 같은 하얀 뭉게구름을 보며 김해리가 중얼거렸다.


“그 태고의 영웅은 어떻게 됐을까요?”

“누님도 지상의 모든 것이 먼지로 변하기 전에, 땅속 깊은 곳으로 도망치셨으니.. 잘 모르시겠지.”


윤필이 대답하며 비틀거리는 케이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케이디는 유현의 얘기를 모두 듣고 난 후로 줄곧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곧 멸망한다고 하잖아요..”

“왜 이래 이 새끼 이거..”


윤필이 그런 케이디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케이디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윤필 씨! 얼른 중력 마법 좀 마스터해 보세요. 나 좀 미국으로 데려다주라고요!”

“정신 차려. 그 옛날에는 혜성이 지나가고 수천 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라잖아 인마.”

“당장 내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요? 아니.. 수천 년이 지난 뒤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요!”

“그걸 왜 네가 걱정해 인마. 어차피 넌 죽고 없을 텐데. 후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당장 내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나는 와이프도 다시 못 보고..”

“아 그만해 이 새끼야! 재수 없는 소리하고 있어 진짜.”


퍼억!


김해리는 팔꿈치에 얻어맞고 꿍얼거리고 있는 윤필을 향해 눈을 흘겼다.


“케이디 오빠 말이 맞아요. 그들이 언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와이프랑 생이별 중인 케이디 오빠 마음도 조금 이해해 주라고요!”

“참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윤필은 장난치듯 돌리던 지팡이를 하늘 위로 살짝 던졌다.


지팡이는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얼마간 위로 올라갔다가 정점에 다다른 뒤 허공에 정지했다.


지팡이는 윤필의 손짓에 따라 천천히 다시 내려왔고, 다시 오른손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지팡이의 움직임에 일행들 역시 놀라며 윤필을 쳐다봤다.


“뭐.. 이 정도면 미국까지는 아니더라도 공항까지는 데려다줄 수 있겠는데?”


그렇게 얘기하며 윤필은 케이디의 어깨를 툭툭 털 듯 두들겼다. 울상이었던 케이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


태백산 아래, 남쪽으로 향하는 일행들이 첫 번째로 만난 도시 울진. 바다에 인접한 작은 도시 울진은 하나의 조직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도시가 아니었다.


“이 조그마한 도시에 조직만 네 개라고?”


윤필이 의아한 얼굴로 김해리에게 묻자 김해리는 지도를 펼쳐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자. 여기 보면 동쪽 바닷가로 물길이 두 개가 흘러 나가요. 북서쪽에서 온 물줄기와 남서쪽에서 흘러온 물줄기. 이 두 물줄기 때문에 울진은 자연스럽게 세 지역으로 나뉘죠. 가장 북쪽의 지역은 사실상 죽변항에 이르는 넓은 영역이기 때문에 두 조직이 나누어 관리하고 있고, 중간 지역과 남쪽 지역을 각각 한 조직씩 차지하고 있는 거죠.”

“태백산 바로 근처라고 외부 침략이 없나 보네! 그러니까 이렇게 태평하게 지들끼리 땅따먹기나 하고 있는 거야.”


실제로 태백산 방향에서 내려온 네 사람이 울진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들어올 수 있었기에 일견 맞는 추측일 수도 있었지만, 김해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백산 방향으로만 아무런 경계도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아예 경계라는 것 자체가 없는 지역이에요. 이 네 조직은 서로 견제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예요.”

“여기 사람들.. 아주 태평하네?”


*


고급스러운 식탁과 각종 화려한 식기들, 그리고 그 위에 차려진 기름진 해산물들과 윤기가 흐르는 쌀밥.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르는 음식들이 차려지고 있는 응접실에, 고상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클래식한 피아노 소리까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희고 긴 손가락을 가진 사내가 삐끗하여 음을 틀리자, 식사를 하던 가족들이 흘끗 사내를 바라봤다.


당황한 사내는 다시 매끄럽게 연주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가 다시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내는 깨끗하게 닦아 광이 나는 피아노에 비친 가족들을 바라보다가, 연주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빠 저 형 방금 틀렸어요.”

“그래. 아빠도 들었단다.”

“아빠가 우리나라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틀렸어요.”

“그래. 이 아빠도 들었단다.

“혼내 주실 거예요?”

“흐음.. 아들이 원하면 그렇게 하마.”

“히히. 됐어요.”

“그래. 우리 아들 착하구나. 그렇게 가끔 아량을 베풀면 아랫것들을 더 다루기 쉽단다.”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의 우승자인 자신을 두고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니, 쉼 없이 건반을 누르고 있던 정호상은 팔과 어깨 위로 솟아오르는 소름을 느꼈다.


‘하아.. 예술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약탈 조직에 노예로 팔려, 산간 지역을 개간하고 다니던 몇 주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나은 삶이긴 했다. 하지만 몸만 덜 힘들 뿐 비참한 처지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호상은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울진을 지배하는 네 조직이 모여, 정기 회의를 하는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주크박스 취급하는 저 울진회의 회장도 다른 조직의 장들 앞에서는 자신을 대단한 아티스트처럼 치켜세우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그날 하루만큼은 선망의 시선을 받던 아티스트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후우.. 집중하자. 또 손가락을 삐끗했다가는 저 예술에 무지한 멍청이들에게 거지 같은 소리나 듣게 될 거야..’


그때, 응접실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저벅!


수저를 내려놓고 인상을 한껏 찡그린 울진회의 회장 김성주는, 식사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려오는 복도로 몸을 돌리고 있다가, 부하가 나타나자마자 소리를 빼액 질렀다.


“뭐야!”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급한 사안이라.”

“급할 게 뭐가 있어 대체!”

“그게.. 진짜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뭐가 나타났길래 밥 처먹고 있는...”

“서대문 연합 말입니다.”

“뭐라고?”


쿵.


놀란 김성주가 벌떡 일어나자, 고급스러운 나무 장식이 새겨진 의자가 뒤로 넘어져 큰 소리를 냈다.


“서대문 연합의 사자들이 진짜로 저희 지역 시장에 나타났습니다!”


소식을 전한 부하가 얘기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쓰러진 의자를 일으키자, 김성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응접실을 떠나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당장 친위대를 대기시켜라! 다른 놈들 귀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모셔와야 돼!”

“이미 대기시켰습니다.”

“잘했다.”


빠른 속도로 화려한 건물을 빠져나가는 김성주의 뒤로 그의 직속 호위부대인 킴 친위대가 신속하게 따라붙었다.


*


“하암.. 태평한 동네라 그런지, 뭔가 반응이 느리네.”


윤필이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하품을 여기저기로 발사했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시장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즐겁긴 했지만, 오래 즐기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았다. 고작 20분도 걸리지 않아서 시장 구석구석을 모두 돌아본 일행은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같은 자리를 맴돌며 배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골목 한쪽 가장자리부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시장 안을 돌아다니던 모든 이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화려한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등장했다. 울진회의 회장 김성주였다.


그리고 남자의 뒤로 따라온, 무사와 마법사의 행색을 한 이볼버들. 그들 열두 명은 날카로운 눈빛을 부라리며 구경꾼들을 거칠게 뒤로 물러나게 했다.


“어이! 뒤로 물러나라!”

“뒤로 가!”


울진회의 회장 김성주는 네 사람의 앞으로 미끄러지듯 달려와, 대뜸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서대문 연합의 사자들이시지요? 저는 이곳 울진 남부를 책임지고 있는 울진회의 회장 김성주라고 합니다.”

“...”


아무런 대답 없는 네 사람을 향해 김성주는 흉터가 돋보이는 얼굴에 싱긋 미소를 띠었다.


“하하하. 제 인사가 너무 갑작스러웠지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귀한 손님이 우리 지역을 방문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능청스러운 얼굴과 계산된 듯한 몸짓. 한눈에 봐도 김성주는 닳고 닳은 장사꾼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마치 호객행위를 하는 것처럼 유현의 일행에게 손짓을 하며 자신 쪽으로 이끌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시장 반대쪽에서 또다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비켜라!”


이들을 구경하던 시장 사람들을 물리며 나타난 자는 중년의 여자였다.


“김 회장. 중요한 손님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섭섭하네? 연락도 없이 혼자만 모시려고 하다니? 사자님들! 저는 울진 서부의 연지일파의 수장 박현서라고 합니다.”


박현서는 서대문 연합의 사자들을 향해 멀리서 우아한 몸짓으로 인사를 했다. 김성주는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예의 그 미소를 장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이고 제가 자리를 깔끔하게 마련한 다음에 연락드리려고 했지요 박 회장님!”

“오호호. 그랬어? 우리 김 회장.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역시 준비성이 남다르네? 그러면 내가 이렇게 바로 왔으니까 김 회장 수고도 덜고 좋지?”

“예 그럼요!”


‘늙은 여우 같은 년. 이럴 때만 잽싸게 움직이지 망할..’


김성주가 속으로 욕을 삼키는 사이, 유현과 세 사람은 이들의 대화를 통해 대충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네 개 조직의 힘이 비등비등한가 본데? 서로 크게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견제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이야.”


윤필의 얘기에 케이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정말 태백산의 영향이 묘한 지역을 만들었네요. 그런데..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일단 이동하는 게 어때요?”


몰려드는 양 조직원들의 등쌀에 밀려 시장 한쪽 구석으로 구겨지듯 몰린 일반 주민들을 보며, 케이디가 유현에게 말했다. 이에 유현이 먼저 도착한 김성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아!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기다리던 유현의 목소리를 듣게 된 김성주는 활짝 핀 얼굴로 네 사람을 이끌고 시장을 빠져나갔고, 그들의 뒤를 울진 남부의 연지일파의 회장 박현서가 빠르게 뒤따랐다.


“아.. 저기.. 제가 급하게 달려오느라 차량을 준비를 못 했는데..”

“상관없다. 시간 없으니 전속력으로 안내해라.”

“아 예!”


‘그런데.. 어린놈의 새끼가 말끝이 뭐 이리 짧아? 살검이 이놈인 것 같은데.. 어디 대단하다는 실력이 사실인지 구경이나 해보지.”


“그럼.. 달리겠습니다! 친위대! 빠르게 달린다!”

“존명!”


네 사람을 양쪽에서 호위하듯 감싸고 걷던 킴 친위대는 회장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땅을 세게 박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자 이들이 차고 나간 땅이 움푹 파이며 요란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이 정도는 가볍게 따라오겠지?’


가장 선두에서 달리고 있던 김성주는 페이스를 조절하며, 옆으로 따라붙고 있는 친위대장에게 뒤를 살펴보라며 눈치를 줬다.


“어..? 회장님 사자 님들이 안 보입니다.”

“뭐라고?”


친위대장의 얘기에 빠르게 뒤를 돌아본 김성주는 지척 거리에서 따라붙고 있는 연지일파의 조직원들 밖에 보이지 않자, 당황한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전속력으로 달린 것도 아닌데, 이것도 못 쫓아..”


그때, 뒤이어 멈출 줄 알았던 연지일파의 조직원들이 김성주와 그의 친위대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뭐.. 뭐야?”


스쳐 지나가며 확인한 연지일파의 회장 박현서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김성주의 시선이 지나쳐간 그들을 따라 이동했을 때, 김성주의 표정 역시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거.. 지금 날고 있는 거야?”


서대문 연합의 사자들 네 사람은 마치 중력을 거스른 것처럼, 파란 가을 하늘 위에서 바람을 가르며 새처럼 날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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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Ep.19 인간의 영역(2) 22.04.20 48 2 14쪽
» Ep.19 인간의 영역(1) 22.04.19 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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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Ep.18 태백산의 마녀(4) 22.04.16 52 2 13쪽
85 Ep.18 태백산의 마녀(3) 22.04.15 58 2 12쪽
84 Ep.18 태백산의 마녀(2) 22.04.14 73 3 13쪽
83 Ep.18 태백산의 마녀(1) 22.04.13 64 3 11쪽
82 Ep.17 무안혈맹(4) 22.04.12 64 3 11쪽
81 Ep.17 무안혈맹(3) 22.04.11 62 3 12쪽
80 Ep.17 무안혈맹(2) 22.04.09 64 2 11쪽
79 Ep.17 무안혈맹(1) 22.04.08 75 3 12쪽
78 Ep.16 전운(7) 22.04.07 6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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