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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신세계로부터 : 씨앗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1.17 14:35
최근연재일 :
2022.05.13 05:56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15,814
추천수 :
419
글자수 :
582,282

작성
22.04.2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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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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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19 인간의 영역(6)

DUMMY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날뛰기 시작한 코끼리들을 보며, 이승민은 자동적으로 이런 사태의 원인이 될 만한 요인을 찾아 고개를 요한하게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지능 높은 짐승들이 이럴 만한 이유는 단 하나.


‘회장..? 어디에 있는 거지?’


짐승들은 지정된 반자련 간부들의 말을 알아듣고 어느 정도는 따랐지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이 짐승들이 절대복종하는 존재는 회장.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렇기에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 코끼리들을 보며, 이승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회장부터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쪽 하늘을 가로질러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이승민은, 그것을 회장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것의 엄청난 속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온 신경과 털을 곤두서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


이승민에게 그런 감각을 느끼게 만든 존재는 회장을 제외하고는 태백산의 마녀가 유일했다.


“...”


하지만 묘했다. 머리로는 당연히 회장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묘한 위화감이 뒤통수 어딘가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승민은 곧 그 위화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행 마법이 아냐..?’


그가 알고 있는 회장의 비행 마법은 중력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비행하지 않았다. 밤하늘을 가르며 다가오는 그것은 마치..


‘그냥 도약한 것 같은..’


“...!!”


일반인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이볼버들의 시력. 이승민은 마나의 힘으로 향상된 그의 가시거리 안으로 들어온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데자뷔를 본 것처럼 온몸이 찌릿하며 무언가가 관통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정말 살아있었어..?’


이승민은 과거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정도로 위험한 순간을 넘겼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자신의 반격으로 목에 붉은 반점이 돋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그 야차.


그 야차가 죽지 않았다는 얘기를 회장이 꺼냈을 때도, 이승민은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살검이라고 불리는 자의 소문을 접했을 때도, 그가 야차 중 한 명이라는 추측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죽었어야 했다.


붉은 반점은 죽음의 표식이다. 이 자는 분명 죽었어야 했다. 자신이 여동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후우웅!!


엄청난 바람과 함께 남자는 이승민을 스치며 지나갔다. 남자는 스쳐 지나가는 그 찰나 동안, 이승민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잠시 응시했다가 이내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승민은 그 자리에 굳어,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콰쾅!


단 한 번의 검격은 엄청난 에너지의 파동과 함께, 짙은 먼지를 피워 올렸다.


그리고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한 먼지 구름 속에서, 남자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두개골이 함몰되어 처참한 몰골로 쓰러진 코끼리 위에 서서, 나머지 코끼리들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


콰쾅!


게릴라 구역을 빠져나오던 서대문 연합의 1, 2타격대는, 상인연합 방향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놀라, 달리던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먼저 갈게! 뒤따라와!”


고립된 이들을 돕기 위해 시청에서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권도일.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 나타난 코끼리들. 김정문과 안미연에게 모든 사정을 전해 들은 이현호는 마음이 급했다.


‘아무리 마나웨폰을 깨달았다고 해도 위험해..!’


사도단장 황학두를 비롯한 사도단 전원을 상대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마나웨폰의 벽을 넘어선 무사가 가지는 존재감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 전력을 가늠할 수 없는 동물들. 게다가 상대는 마나시대 이전에도 감히 맹수들조차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던 코끼리였다. 인간들은 강력한 짐승보다 물리적으로 약했고, 어쩌면 자연에 대한 이해도 마저 낮았을 지도 몰랐다.


휘익. 탁.


4층짜리 낮은 빌딩 옥상에 홀로 올라선 이현호의 시야에, 청상연의 입구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현호는 코끼리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검고 커다란 덩어리 위를, 마치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노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아..’


자신의 오랜 친구의 모습을 발견한 이현호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쓸어올리려다가, 오른팔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왼팔을 들어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뿌오오오!!


코끼리는 마치 비명소리같이 들리는 포효를 뱉었다. 동물의 표정은 인간만큼 역동적이진 않았지만, 마지막 코끼리는 분명 처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섬기는 주인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으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 뒷걸음질 치며 채찍 같은 코를 필사적으로 휘두를수록, 오히려 남자의 검에 두들겨 맞아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수많은 인간 이볼버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마나로 강화한 금강석 같은 외피. 종족의 자부심과도 같은 이 강력하고도 순수한 자연의 강화 마법은 지금 이 순간,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의 엄청난 고통을 받아들이는 통로일 뿐이었다.


그렇게 뒤로 또 뒤로, 하염없이 물러나던 코끼리의 뒷발이 청계천 난간에 걸려 멈춘 순간. 유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손에 쥔 검을 나풀거리며 하늘로 도약했다. 마지막 코끼리는 자신도 동료들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서, 커다랗고 까만 눈을 감았다.


본능적으로 휘두른 코는 마지막으로 유현을 향해 뻗어 나갔지만, 흉폭한 검격에 근육 째 찢겨 날아가 버렸고, 그 검격은 멈추지 않고 코끼리의 이마를 정확히 가격했다.


빠가각!


살로 덮인 생명체를 때리는 소리라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소리가 새벽의 청계천을 가득 채웠다.


쿵!


마지막 코끼리가 죽어 청계천으로 추락하자, 유현은 바로 뒤로 돌아 이승민을 향해 섰다. 그리고 흘끗하고 눈을 돌려 권도일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가공할 속도로 이승민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쐐애애액!


유현이 가르는 바람의 소리가 마치 앞이 뾰족한 물체가 날아가는 것처럼 날카롭게 공기를 진동시켰다.


쾅!


가까스로 검을 들어 유현의 검을 막아낸 이승민은 너무도 파괴적인 힘에, 손목이 수백 조각으로 부서지는 것 같았다.


‘크윽!!’


자신의 멸악검 역시, 야차의 흑색 검에 못지않은 고밀도의 마나가 둘러져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맞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상 이상의 고통이 뒷골을 때렸다.


당혹감과 고통이 정신없이 이승민의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춘천에서 이다솔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릴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무력감. 상대는 이미 무사로서 자신이 가늠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었다.


그렇게 이승민의 두 눈이 절망의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을 때, 유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의 단단한 손목을 따라 이어진 흑색 검신으로 뿌연 마나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무.. 무슨?!’


머릿속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당황스러웠지만, 이승민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무사로서의 새로운 경지. 이 남자는 자신을 제치고, 새로운 세상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자.


‘제기랄!’


이승민은 되는대로 모든 마나를 집중해 다가올 공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유현의 팔을 따라서 흑색 검신에 쌓여가던 고밀도의 마나는 점점 검신에 가라앉듯이 응축되면서, 은은한 빛을 더욱 강하게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유현의 검이 잔상을 남기며 일직선으로 그어졌다.


분명 모든 마나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그 동작을 놓치고 말았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대비한 자신의 노력을 비웃듯이, 유현의 검을 떠난 빛의 검날은 벌써 눈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미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상황.


“크으으아아아!!”


순간적으로 집중한 이승민의 거의 모든 마나가 멸악검으로 몰려들었다. 이승민 본인도 만들어낸 적 없었던 기형적일 정도로 거대한 마나웨폰이 멸악검의 검신을 타고 일렁였다.


콰르르릉! 파지지직!!


얇은 반월 형태를 띤, 유현이 쏘아낸 빛의 검날. 그 중앙으로 이승민의 마나웨폰이 부딪혀 들어갔다. 두 거대한 힘이 충돌하면서, 마치 벼락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 막을 수 있나?’


이승민은 빛의 검날과 멸악검을 처음 맞대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찰나, 빛의 검날의 양 극단이 이승민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감겨들어가기 시작했다.


“허업!!”


쾅!!


엄청난 에너지의 폭발이 주변의 공기에 커다란 진폭의 파동을 만들어내며, 퍼져나갔다.


털썩.


바닥으로 추락한 이승민은 옷이 넝마처럼 찢겨, 보도블록 위를 굴렀다. 쓰러진 그의 몸 밑으로 붉은 피가 모여 어딘가로 흐르기 시작했다.


유현은 미동 없는 이승민을 잠시 바라보다가, 뒤돌아서 권도일에게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괜찮아?”


유현의 목소리를 듣자, 권도일은 바닥에 누워 고통에 얼굴을 한껏 찡그리면서도 입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리뼈가 다 박살이 났는지, 몸이 안 일으켜진다 현아. 아하하.”

“...”

“끄아아아아악!!”


권도일의 다리를 살짝 눌러 본, 유현은 그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유현을 보며 권도일도 자신이 왔던 시청 방향으로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아 그래. 혜진이가 곧 올 때가 됐어. 아으윽.. 그건 그렇고 무슨 코끼리가.. 아휴.. 진짜 말도 안 되게 세던데?”


권도일은 주변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코끼리들과 유현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역시..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해졌구나 현아.”

“그래.”

“그래 인마. 그래야 내 스승님이지.”


권도일이 그렇게 해맑게 웃고 있을 때, 이현호를 시작으로 1, 2타격대와 순찰 3조의 멤버들도 게릴라 구역을 뚫고 나타났다.


아직 이들의 주변을 적지 않은 수의 반자련의 중대 병력들이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대문 연합원들은 마치 두 사람의 오랜만의 해후를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을 감쌌다.


“현아!”


다가오는 이현호의 허전한 오른쪽 소매를 눈치챈 유현의 눈가가 파르르하고 떨렸다.


“아하.. 이건 뭐.. 그렇게 됐다. 난 괜찮아.”

“...”


아랫입술이 붉어지도록 앙다문 유현은 이현호의 허전해진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슬픔을 억눌렀다.


도리어 이현호가 그런 유현의 슬픔을 위로하듯 괜찮다는 표정을 짓던 그때, 유현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호해검

제 영식

발검


벼락같이 뽑힌 유현의 검, 광휘와 함께 유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뒤를 돌아, 까만 새벽 밤을 가르며 나아갔다.


화르르륵!


어둡고 희미한 붉은빛으로 빛나는 검은 불꽃이 유현의 검 광휘에 찢기듯 흩어졌다.


“호오..? 제 마나가 흩어졌네요?”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있던 나무 가면을 쓴 사내가, 청상연 입구의 무너진 잔해 위로 서서히 내려앉으며 말했다. 나무 가면을 쓴 사내의 시선이 곧바로 청계천을 따라 누워있는 어두운 형체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예상 못 했는데요? 씨이발..?”


나무 가면으로 가려졌음에도, 유현은 사내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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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Ep.18 태백산의 마녀(3) 22.04.15 58 2 12쪽
84 Ep.18 태백산의 마녀(2) 22.04.14 72 3 13쪽
83 Ep.18 태백산의 마녀(1) 22.04.13 64 3 11쪽
82 Ep.17 무안혈맹(4) 22.04.12 63 3 11쪽
81 Ep.17 무안혈맹(3) 22.04.11 62 3 12쪽
80 Ep.17 무안혈맹(2) 22.04.09 63 2 11쪽
79 Ep.17 무안혈맹(1) 22.04.08 75 3 12쪽
78 Ep.16 전운(7) 22.04.07 6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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