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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신세계로부터 : 씨앗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1.17 14:35
최근연재일 :
2022.05.13 05:56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15,818
추천수 :
419
글자수 :
582,282

작성
22.04.09 13:10
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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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Ep.17 무안혈맹(2)

DUMMY

박지은의 얘기대로라면 저 갇혀 있는 남자는 당장 죽이기에는 아쉬운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거나, 무안혈맹의 결성 단계에서 반대를 했던 지도자급의 인물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지은의 그를 향한 시선과 태도를 미루어 보았을 때, 그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 칙칙한 곳을 더 구경하실 건가요? 그만 나가죠?”

“엥? 여기 밝고 따뜻한 데다가 심지어 쾌적하기까지 한데요?”


케이디가 복도에 놓여있는 푹신하고 커다란 소파에서 일어나기 싫다는 의사를 완곡하게 표현하자, 박지은은 다음 할 말을 떠올리려는 듯 잠시 버벅거렸다.


“다들 일어나. 주민들이 일하는 곳도 보러 가자고. 시간이 많지 않아.”


유현의 얘기에 세 사람은 모두 소파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시간..이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유현의 얘기에 박지은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무안에서 계속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아.. 그럼 언제쯤 떠나실 예정이신가요?”

“인터넷을 사용한 뒤에 바로 떠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군요..”


유현은 질문을 하는 박지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의 입술 끝이 뭔가를 얘기할지 말 지 망설이는 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일행들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까지도 그녀의 표정은 계속해서 그런 상태였다. 유현은 그녀에게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기다렸다.


사람이 품고 있는 속마음을 끌어낸다는 것. 특히, 그것을 억지로 끌어내는 여러 방법을 유현은 잘 알고 있었다. 서울의 야차 유현은 지난 4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얻지 못하는 종류의 얘기들이 있었다. 바로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둔, 가장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은 보통, 가해지는 고통을 참아내고 또 참아내다가 최후의 순간에 뱉어낸다. 그녀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 지는 모르지만, 유현은 지금 당장은 박지은을 고문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움찔거리는 입술을 보니,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준다면 스스로 입을 열 것 같았다.


그렇기에 유현이 박지은에게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갖도록 만들어주려 하던 그때, 불행히도 건물 밖에서 소란스럽게 유현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서. 대. 문! 이야~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벌렁거리고 막! 피가 끓어 부러!”


일행들은 다짜고짜 인사도 없이 날아온 시정잡배 같은 목소리에, 그 자리에 멈춰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무리들을 천천히 살폈다. 오직 박지은만이 그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할 뿐이었다.


“오셨습니까. 부맹주님.”


박지은의 인사를 대충 받아넘긴 부맹주라 불린 남자는,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눈치로 유현의 일행들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네 사람이 미동도 없이 자리에 가만히 서있자, 남자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커험.. 나는 임지환이라고. 무안혈맹의 부맹주를 맡고 있네.”

“서대문 연합의 유현.”


유현이 고개도 숙이지 않고 뻣뻣한 말투로 가만히 선 채로 얘기하자, 부맹주의 일행 쪽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맹주의 허여멀건 얼굴이 목부위부터 분홍빛이 돌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들어 알겠지만, 난 맹주의 동생이네.”

“...?”

“아하하! 몰랐던 눈치로군! 그럴 수도 있지. 그래. 내가 바로 맹주의 동생이자, 부맹주를 맡고 있는 임지환일세.”

“그래서?”

“...”


“...”


“풉.”


둘 사이로 잠시 흐르던 정적은, 결국 참지 못한 윤필이 낸 입방귀 소리가 깨 버렸다. 그리고 김해리도 어쩔 수 없음을 인정했는지 윤필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려치지 않았다.


부맹주의 목덜미에 물들어 있던 분홍빛은 어느샌가 이마 끝까지 범람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표정을 애써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시 오만한 표정을 얼굴에 띄운 뒤, 부들거리는 입술을 열었다.


“살검이라..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뻣뻣한 태도까지 장착하신 건가?”

“실력..? 내 태도를 문제 삼고 싶다면, 당신 태도부터 생각해 보지 그래.”

“...!!”

“저런 건방진..!”

“부맹주님! 제가 저놈을 당장!”


무리를 뚫고 앞으로 튀어나오려는 깡마른 남자를 부맹주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깡마른 남자의 손은 어느샌가 회칼만 한 얇은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부맹주의 입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이마에는 핏줄이 툭툭 불거져 올라오는 것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 듯했다.


“그래.. 내 태도라.. 아하하! 그런데 원래 태도란, 상대하는 자에 따라서 다르게 나와야 맞는 것 아니겠나? 자네는 사회생활을 조금 더 배워야 쓰겠군. 특히 이 마나시대라는 새로운 세상에서의 사회생활을 말이야.”

“가르쳐 보든가.”


둘 사이로 날카로운 말들이 계속해서 오가자, 가운데서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던 박지은이 결국 다급한 얼굴로 유현을 바라봤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부맹주라고요. 대충 숙이고 지나가야 다치지 않으실 거예요.”

“걱정 마세요. 많이 다치지 않게 조절할 테니.”

“네..?”


박지은이 유현이 한 말의 뜻을 다시금 곱씹는 사이, 유현은 그녀의 곁을 스쳐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기.. 김 군아!”


부맹주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유현의 모습에 누군가를 호명한 뒤, 무리 사이로 쏙 들어갔다.


그러자, 무리 사이 어딘가에 존재감 없이 묻혀 있던 남자가 천천히 유현의 앞으로 나와 섰다.


남자는 일본식 복식과 손에 들린 일본도. 심지어 머리 스타일까지, 마치 자신이 일본 사무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리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김 군이라 하오. 살검.. 아니, 야차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

“부디 한 수 가르쳐 주시길..”


유현은 무리 사이로 숨어, 눈만 내밀어 두 사람을 바라보는 부맹주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눈앞의 남자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남자의 신형이 흐릿하더니 벼락같이 튀어나오며 검을 뽑아 들었다.


무념영류

1보

발도


챙!


그의 검을 받아내며 유현은 부맹주의 건방진 자신감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남자의 실력은 정말 수준급이었다.


게다가 실전에서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일본의 검류. 남자는 제대로 검을 수련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남자는 빠르고 잰 발걸음으로 최대한 유현의 가까이에 붙어, 검을 들지 않은 나머지 한쪽 손을 검과 엑스 자로 교차해가며 독특한 검술을 구사했다.


그때, 여유 있는 움직임으로 남자의 검을 받아내던 유현의 검, 광휘에 마나가 휘돌기 시작했다.


호해검

제 이식

내려 베기


순간적으로 남자의 시야에서 사라진 유현이 남자와의 거리를 벌리며, 엄청난 속도로 검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흑색의 검 광휘가 만드는 검은 잔상이 마치 원판처럼 남자의 머리 위로 아른거렸다.


쾅!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라고 하기엔 귀를 울릴 정도의 굉음이 공터를 울렸다.


가까스로 검을 들어 올려 유현의 공격을 막아낸 남자. 남자의 검을 바라보는 유현의 눈빛이 살짝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희미하긴 했지만, 남자의 검에서 뿌연 안개 같은 마나가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검을 몇 번 나누는 동안, 누구보다도 놀라고 있는 사람은 무리 속에 숨어버린 부맹주였다.


‘미친.. 저 자식도 마나웨폰을 쓰잖아!?’


두 사람의 전투가 계속될수록 부맹주 임지환의 마음 또한 타 들어가고 있었다.


‘제발.. 김 군아!’


하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임지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검을 휘두르는 유현의 모습과는 다르게, 정수리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땀으로 온몸이 젖어가고 있는 김 군의 모습. 그렇게 고전하는 김 군의 모습을 임지환은 본 적이 없었다.


챙강!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마나가 고갈된 김 군의 검이, 몰아치는 광휘의 힘을 받아내지 못하고 부러져버리고 나서야, 전투는 끝이 나버렸다.


“하.. 한 수 잘 배웠소.”


남자는 고개를 숙여 유현에게 정수리를 보여 예를 차렸다.


퍼억.


그런 그의 정수리로 광휘의 검은 잔상이 순식간에 떨어졌고, 남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해 무너져 내렸다.


“어우.. 저렇게까지?”


그 모습에 오히려 윤필이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김해리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의 바른 척해도, 저런 모자란 사람 밑에 있는 사람인데 현이 오빠가 곱게 보겠어요?”


유현은 바로 부맹주가 숨어든 무리들에게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그런 유현의 모습에 부맹주를 막아 서고 있던 부하들이 홍해처럼 갈라져, 결국 부맹주는 유현의 시선에 정면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아.. 하하! 살검의 명성은 역시 거짓이 아니었군요! 너무 잘 봤습니다! 큰 공부가 되었어요!”


유현은 대답 없이 가만히 눈썹을 찌푸린 채, 부맹주를 바라봤다.


“너. 이볼버가 아니군?”

“...!!”


유현의 얘기에 뒤에서 구경하던 세 사람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고, 심지어 혈맹의 사람 중에도 놀라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부맹주라.. 정말 멋진 조직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게 해주는군.”

“하하.. 그..”


유현은 입을 열어 뭐라도 지껄이려는 부맹주를 향해 손바닥을 들어, 입을 닫게 만들었다.


“이제 부맹주가 사회생활을 할 차례인 것 같은데? 네가 농지까지 우리를 직접 안내해 주면 좋겠군.”

“그럼요!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어서 차를 준비해라!”


유현의 말에 와들와들 떨며 눈치를 살피던 임지환은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며 맞장구를 쳤다.


*


“죄.. 죄송합니다 제가 운전을 너무 오랜만에 해서..”


직접 운전을 하고 있는 부맹주 임지환과, 서대문 연합의 네 사람, 그리고 박지은까지 총 여섯 명이 탄 SUV가 농지를 향해 달렸다.


“이 새끼들 차도 있었으면서, 이 넓은 데를 걸어 다니게 만들었었네?”


윤필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운전석을 향해 얘기했다.


“그런데 이 새끼는 굳이 뭐 하러 데려가?”


윤필이 운전석 시트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의아한 말투로 묻자 유현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 농지를 곳곳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혈맹의 이볼버들이 농지에서 어느 쪽을 바라보고 섰는지 제대로 보려면, 이놈들 차로 이놈이랑 같이 가는 게 좋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농민들을 지키는 입장이라면, 농지 바깥쪽을 경계하고 서 있을 거고, 농민들을 부리는 입장이라면, 일하고 있는 농민들을 감시하고 서 있을 테니까.”

“아..”


유현은 그렇게 얘기하며, 살짝 넋을 놓은 표정으로 유현의 일행들을 바라보고 있는 박지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그전에 지은 씨 얘기부터 들어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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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Ep.18 태백산의 마녀(3) 22.04.15 58 2 12쪽
84 Ep.18 태백산의 마녀(2) 22.04.14 72 3 13쪽
83 Ep.18 태백산의 마녀(1) 22.04.13 64 3 11쪽
82 Ep.17 무안혈맹(4) 22.04.12 64 3 11쪽
81 Ep.17 무안혈맹(3) 22.04.11 62 3 12쪽
» Ep.17 무안혈맹(2) 22.04.09 64 2 11쪽
79 Ep.17 무안혈맹(1) 22.04.08 75 3 12쪽
78 Ep.16 전운(7) 22.04.07 6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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