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 프롤로그
죽은 연인의 복수를 마친 그는, 스스로 경찰서로 걸어 들어와 자수했다.
자수한 남자의 이름은 유현. 27세. 누가 보더라도 엘리트라고 할 만한 민족대학교 로스쿨 학생.
거기에 더해진 독특한 이력. 바로 국가무형문화재 호해검의 유일한 전승자.
그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애매했다. 사람을 죽인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지만, 그 피해자들은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무고하지만은 않은 자들이었기에.
사람들은 올림픽 개막식에서 아름다운 검무를 추던 그가. 이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동정심과 걱정, 그리고 비난들. 연인을 잃고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이유가 없어진 그에겐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재판장에 선 그에게 판사는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후련하다 라는 말만 내뱉고 입을 다물었다.
판사는 아쉬운 탄식과 함께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확정했고, 사형제도가 폐지된 대한민국의 감옥에서 그는 남은 인생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가 수감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세상에 팬데믹이 찾아왔다.
세균성 전염병. 치사율 40%.
완전한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구치소에 갇혀 있는 범죄자들을 떠올릴 리는 만무했다.
재소자들의 운명은 둘 중 하나였다. 굶어 죽든지, 아니면 폐부를 찢을 듯이 고통스러운 이 전염병으로 먼저 죽든지.
하지만 그에게는 선택지가 하나 더 주어졌다.
그의 독방 문을 연 막내 교도관은, 이유를 묻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열린 문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독방 문을 나섰다. 그리고 다른 재소자들의 아우성을 흘리며 천천히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구치소 밖으로 발을 디뎠다.
그는 너무나도 조용해진 세상 속으로 마른 기침을 토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탈옥이었다.
-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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