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신세계로부터 : 씨앗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1.17 14:35
최근연재일 :
2022.05.13 05:56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15,824
추천수 :
419
글자수 :
582,282

작성
22.04.30 05:19
조회
49
추천
1
글자
11쪽

Ep.20 자격(3)

DUMMY

케이디는 울진회의 무사들에게 광장에 한가득 쌓여있는 식량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무슨..?”

“거부했어. 여기 사람들이. 이딴 거 필요 없대.”


무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거부라니요?”


광장에 모여있는 사람들 중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자들은 오직 울진회의 무사들뿐이었다. 김해리를 비롯한 세 사람도, 심지어 울진회에서 잡일을 하는 백 씨 마저도 울진 지역민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바로 이해했는데, 이들만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져가라고! 필요 없으니까!”


그때, 걸걸한 목소리가 광장 한복판에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여인의 뒤로는 건장한 청년들이 얼토당토않는 무기를 든 채 긴장한 얼굴로 서있었다.


“아이씨.. 저 여자가 정말..”


무사들은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불만스러운 얼굴로 구시렁거리기 시작했지만, 서대문 연합의 세 사람이 바로 근처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이런 거 가져다 놓는다고 우리가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먹을 것 같았어? 우린 우리 나름 잘 버티며 살고 있고, 저 사람들 없어지면 너희 잡놈들이 또 얼마나 털어갈지 눈에 훤히 보이는데! 그러니까 괜히 너네나 우리나 피곤한 일 만들지 말고 퍼뜩 가져가!”


무사들에게 으름장을 늘어놓은 여인은 이번엔 서대문 연합의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신들도 마찬가지야. 계속 여기 머물면서 우릴 지켜줄 게 아니면, 얼른 일 마무리하고 떠나! 괜히 귀찮은 일 벌이지 말고.”


여인의 얘기에 김해리는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인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그래. 알아들었으면 얼른들 가라고! 원래 약탈 조직이라는 것들은 죄다 기생충 같은 놈들이지만, 이 울진의 약탈 조직 놈들은 그 기생충 중에서도 급이 떨어지는 지질한 놈들이야. 어디 다른 지역 같았으면 찍소리도 못 낼 놈들이 모여서 일진 놀이하는 놈들이지. 이 놈들은 우릴 팰 수는 있어도, 죽이지는 못해. 왜? 어디 다른 데 가서 일 할 노예들을 잡아올 능력도 안되거든.”


여인의 얘기에 울진회의 무사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는 코로 거친 숨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인은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말을 붙였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가라고!”


여인은 그 말을 끝으로 뒤로 돌아왔던 곳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윤필은 두 사람을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아직 가만히 서있는 무사들을 향해 외쳤다.


“어이 찌질이들? 뭐해? 얼른 도로 싣고 돌아가!”


울진회의 무사들이 식량들을 다시 싣기 시작하기도 전에, 시장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지역민들은 무사들이 곁에서 무슨 일을 하든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세 사람은 입장이 애매해진 정호상을 데리고 시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대로 정호상이 김성주의 저택으로 돌아가면, 분명 좋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한 사실이었다.


“방금 그 여자분은 누구예요?”

“여기 시장 상인회장님이라고 들었어요. 아주 여장부 같은 분이죠?”


김해리가 묻자 정호상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 가득할 줄 알았던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이따금씩 입꼬리를 올리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처럼 웃기까지 했다.


“괜찮아요?”


김해리가 그런 정호상에게 물었다.


“아.. 뭐.. 이제야 괜찮은 것 같아요.”

“이제야..요?”

“네. 내가 왜 피아노를 시작했는지. 음악을 하면서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했었는지.. 팬데믹 이후로 워낙 혼란스러운 세상이었잖아요. 핑계 같지만.. 그걸 잠시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정호상의 대답에 케이디가 방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호상 씨는 조금 위험하긴 하겠다. 그쵸?”

“네..?”

“아까 그 상인회장이 그랬잖아요. 울진회가 지역민들을 죽이지 않는 이유가 일할 사람들이 부족해서라고.”

“아..”


케이디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우리 호상 씨는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지역민들하고도 친하지도 않고. 딱 죽어도 되는 포지션인 것 같은데?”


퍼억!


“끄억!”


케이디는 김해리의 팔꿈치가 옆구리에 꽂히고 나서야 정호상을 놀리는 것을 멈추고, 옆구리에 치료 마법을 뿌렸다.


하지만 정호상은 여전히 편안한 표정이었다.


“예술 하는 사람이라 뭔가 여유가 있네? 케이디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닌데 말이야.”


윤필이 그런 정호상을 보며 넌지시 툭 던지듯 말했다. 그때, 김해리가 윤필을 바라보자 윤필이 반사적으로 옆구리를 가렸다.


“뭐? 왜?”

“그런 의미에서 말이에요.”

“응..?”

“오빠가 다녀올 데가 있어요.”

“어디를? 나 혼자 어딜 가라는 얘기야? 이제 우리도 여길 떠야지.”


반자련이 적극적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지금, 부산 회담은 언제든 당겨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아직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한 씨앗이 세 개나 있었다.


“이러다가 현이가 먼저 부산에 도착하게 생겼어.”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


김해리는 두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며 얘기를 이어갔다.


“현이 오빠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고요.”

“...”


그 얘기에, 두 사람도 김해리의 입에서 흘러나올 아이디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중력은 단순히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랍니다. 중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느껴야 해요.”

“누님. 저는 이미 잔뜩 느끼고 있어요. 시간은 매초 이렇게 흐르고, 우리는 이 드넓은 세상에 먼지 같은 존재로 살고 있다는걸요.”


윤필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은혜로운 대지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맞아요. 하지만 이걸 보세요 윤필.”


은혜로운 대지는 윤필의 눈앞에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그러자 그 손가락 끝에서부터 순간적으로 엄청난 마나의 파동이 퍼져 나왔다.


“어어?”


순식간에 윤필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은혜로운 대지의 손가락을 향해 서서히 빨려 들어가듯 움직였다. 그리고 윤필이 충분히 가까이 왔을 때, 은혜로운 대지는 손가락을 윤필에게 천천히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윤필은 다시 손가락으로부터 점차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허..? 밀려나..?’


“이 모든 것이 질량이 만들어내는 길. 중력이라고 부르는 힘이랍니다.”


*


태백산에서 보냈던 귀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윤필은 숲 가운데로 서서히 내려앉았다. 비행 마법이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정숙한 착지였다.


윤필은 심호흡을 한 뒤, 숲으로의 한 걸음을 마저 내디뎠다. 마치 어떤 경계를 넘어 들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지팡이를 쥔 손에 서서히 마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변의 마나에 대한 통제력을 서서히 넓혀가기 시작하자, 그의 감각에 무언가 찌릿하고 걸렸다.


‘왔군.’


휘이이잉. 콰악!


여인은 다소 거칠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녀가 일으킨 바람이 콧구멍을 간질이자, 라일락 향기가 살짝 느껴졌다.


“착지 보소? 아직 깨달음이 조금 부족하시네?”

“뭐 하러 다시 돌아왔지? 왜 혼자인 거고?”


심윤혜는 윤필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해리가 나 혼자만 보냈어. 혼자 가는 게 제일 빠르니까.”

“...”


얼른 본론이나 얘기하라는 다소 싸가지 없는 표정임에도, 윤필은 잠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이건 우리 제안인데.. 누님께 잘 말씀드려봐.”


그렇게 윤필의 설명이 시작됐고, 새침한 표정으로 모든 설명을 들은 심윤혜가 꽃잎처럼 분홍빛으로 빛나는 입술을 열었다.


“그건 유현 씨 생각인가?”

“오?! 아니야 현이는 지금 서울에 가 있어.”

“서울?”

“어.. 조금 급한 일 때문에.”


심윤혜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몸을 뒤로 돌렸다.


“어디 가?”


그러자 놀란 윤필이 그녀의 등 뒤에 대고 다급하게 물었다.


“판단은 내가 하지 않아. 존재께 여쭤보고 다시 오겠다. 여기서 기다리든가 따라오든가.”

“따.. 따라갈게 그럼.”

“그러든지.”


심윤혜는 빠르게 가속하기 시작해, 숲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후우.. 쌀쌀맞아도 예쁘냐.”


다시 몸을 허공에 띄운 윤필도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천천히 가속하기 시작했다.


*


“윤필 님이 돌아오시면, 사자님들은 이제 부산으로 가시는 건가요?”


정호상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김해리와 케이디를 보며 물었다.


“네. 중간에 또 들를 곳들이 있지만요. 목적지는 부산이에요.”


이에 정호상은 활짝 웃는 얼굴로 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에? 저희가 호상 씨한테 뭘 했다고요..”

“케이디 님 말씀대로 사자님들 덕분에 제 삶이 조금이나마 더 연장될 수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아..하하..”

“으휴..”


김해리는 재밌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디를 향해 눈을 흘겼다.


“걱정 말아요 호상 씨. 윤필 오빠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해도, 호상 씨가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아하하.. 빈말이어도 참.. 감사한 얘기네요.”


정호상은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당장 죽어도 될 것 같다고.


“그럼.. 호상 씨 연주 좀 더 들려주세요.”

“그럴까요? 그런데 피아노를 또 빌려 써도 되려나..”

“무조건 될 거예요. 얼른 가요!”


피아노가 놓인 창고로 향하는 정호상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그렇게 창고에 조금씩 가까워지자, 경쾌한 피아노 연주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창고 앞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저마다의 얼굴로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미 연주자가 있었네요?”


김해리가 까치발을 들어 창고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악기상 주인 딸이에요.”

“소리가 참 좋네요.”


정호상은 아이의 연주에 감탄하며, 눈을 감고 소리에 조금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 김해리의 뒤로 차가운 바람이 휘익 하고 불어왔다.


“응?”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도착한 윤필이 지팡이를 들고 서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김해리가 묻자 윤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어. 잘 다녀왔어.”

“아! 어떻게 됐냐고요.”

“뭘 어떻게 돼. 오케이 하셨지. 윤혜가 준비해서 곧 내려올 거야.”

“와! 정말 잘 됐다! 꺄아! 오빠 수고했어요.”

“그래애 인마.”


큰 소리로 기뻐하던 김해리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정호상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어..?”

“왜 그래?”


갑작스럽게 굳어진 김해리의 표정을 본 윤필이 미간 사이를 좁히며 물었다.


“어..?”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해리가 윤필과 케이디를 보며 망연자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없어요.. 씨앗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세계로부터 : 씨앗전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다시 업로드가 시작됩니다. 22.06.10 23 0 -
공지 공지. 이번 주 휴재 관련 22.05.20 17 0 -
공지 연재주기 변경 공지입니다. 22.05.10 16 0 -
104 Ep.21 빛나는 바다(3) 22.05.13 31 1 12쪽
103 Ep.21 빛나는 바다(2) 22.05.10 33 1 14쪽
102 Ep.21 빛나는 바다(1) 22.05.07 31 1 12쪽
101 Ep.20 자격(7) 22.05.06 36 1 12쪽
100 Ep.20 자격(6) 22.05.04 43 2 12쪽
99 Ep.20 자격(5) 22.05.03 37 1 11쪽
98 Ep.20 자격(4) 22.05.01 50 2 12쪽
» Ep.20 자격(3) 22.04.30 50 1 11쪽
96 Ep.20 자격(2) 22.04.29 52 3 12쪽
95 Ep.20 자격(1) 22.04.28 47 3 15쪽
94 Ep.19 인간의 영역(7) 22.04.27 56 3 12쪽
93 Ep.19 인간의 영역(6) 22.04.25 58 3 12쪽
92 Ep.19 인간의 영역(5) 22.04.23 52 2 11쪽
91 Ep.19 인간의 영역(4) 22.04.22 52 2 12쪽
90 Ep.19 인간의 영역(3) 22.04.21 52 3 13쪽
89 Ep.19 인간의 영역(2) 22.04.20 48 2 14쪽
88 Ep.19 인간의 영역(1) 22.04.19 56 3 12쪽
87 Ep.18 태백산의 마녀(5) 22.04.18 63 3 12쪽
86 Ep.18 태백산의 마녀(4) 22.04.16 52 2 13쪽
85 Ep.18 태백산의 마녀(3) 22.04.15 58 2 12쪽
84 Ep.18 태백산의 마녀(2) 22.04.14 73 3 13쪽
83 Ep.18 태백산의 마녀(1) 22.04.13 64 3 11쪽
82 Ep.17 무안혈맹(4) 22.04.12 64 3 11쪽
81 Ep.17 무안혈맹(3) 22.04.11 62 3 12쪽
80 Ep.17 무안혈맹(2) 22.04.09 64 2 11쪽
79 Ep.17 무안혈맹(1) 22.04.08 75 3 12쪽
78 Ep.16 전운(7) 22.04.07 66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