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이름을 갖다.(3)
두런두런 현무진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던 취웅이 각파 수장들 앞에 멈추어 서서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쓱! 훑어본다.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건가? 결정이 났으면 가서 심법을 가르치면 될 것을. 흠!”
각파의 수장들이 쭈뼛거리며 취웅과 현무진인의 눈을 피한다.
이때 현무진인이 아무런 말 없이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한 환자에게 다가가 환자를 깨워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는 일으켜 앉게 등을 받쳐준다.
현무진인의 갑작스런 모습에 무림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헛기침을 내뱉는다.
“쯧쯧쯧!”
이런 정파 무림인들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 싫었던 걸까? 마검이 혀를 차며 현무진인이 그랬듯 한 환자에게 다가간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다들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들이 맡은 환자를 향해 걸어간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환자에게 절대로 입을 열면 안 되고 움직여서도 안 된다는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곤 이내 환자의 등 뒤에 환자와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환자의 명문혈에 현무진인이 두 손을 얹는다.
“조금은 뜨겁다 느껴질 수도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마시길. 그럼 시작합니다.”
“네.”
현무진인의 손끝을 타고 기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환자의 몸이 순간 꿈틀거리다 움직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현무진인의 말이 스치자 어금니를 꽉! 깨문다.
“잘하고 계십니다. 이제 제가 심법의 구결을 알려드릴 테니, 속으로 한번 읊조려 보시지요.”
끄덕!
환자가 알았다는 듯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현무진인이 태극신공(太極神功)의 기초 입문단계의 구결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조금씩 기의 양을 늘려 이물질로 막혀 좁아 질대로 좁아진 환자의 혈을 뚫기 시작한다.
백회에서 시작해 중루, 단중, 회음, 미려, 협척, 다시 백회로 이어지는 소주천(小周天)을 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소주천은 내공을 운용하는 입문단계에 주로 취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혈도가 적은 만큼 일주하는 시간도 빠르고 주화입마의 가능성도 대주천(大周天)을 취하였을 때보다 매우 낮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와는 상반되게 내공이 단전에 모이는 효과는 미비하다.
하루 만에 환자들에게 심법을 모두 전수한 무림인들은 언제 음양의 조화가 깨질지 모르는 다른 일반 사람들에게도 인원을 나눠 심법을 전수하였다.
마검대의 공단주와 부단주 한청을 시켜 마교가 가르쳐야 할 사람들에게 모두 극 양의 무학인 자전마공(紫電魔功)을 가르치라 명한 마검은 아무 생각 없이 암동을 걷다가 양쪽 눈 모두를 천으로 가리고 누워있는 어린 남자아이가 보이자 호기심에 아이에게 걸음을 옮겼다.
“흠!”
자신이 왔음을 아이가 모르자 헛기침과 함께 아이를 발로 툭! 차서 깨우려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다 인상을 찡그린다.
저벅! 저벅!
현무진인이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사뿐히 걸어와 마검에게 고개를 숙인다.
“이 아이는 저와 인연이 있어, 제가 심법을 알려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흥! 알았다.”
짧은 말을 남기곤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마검이 걸음을 옮긴다.
마검이 멀어지자 현무진인이 미안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잠시 남자아이를 바라보다 잠을 자는 아이를 깨우기 뭐해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맡에 앉는다.
하지만 눈을 가려 청각이 예민해져 그런지 머리맡에서 들려온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남자아이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운다.
“누나! 누나야”
살짝 당황한 현무진인이 뭐라 말은 못 하고 헛기침을 내뱉는다.
“음! 음!”
“누구세요?”
“엊그제 취웅 선배와 함께 왔던 현무 할아버지란다.”
“아! 안녕하세요. 현무 할아버지.”
현무진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며 꾸벅 인사를 한다.
“그래 잘 있었느냐?”
“네. 근데 어쩐 일이세요. 취웅 할아버지는 같이 안 오셨나 보네요?”
“그래 취웅 선배는 지금 환자들 돌보시느라 바빠서 같이 오지 못했구나. 아!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너에게 한 가지 내공심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왔단다.”
“내공심법요? 그게 뭔데요?”
“음∼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어지럽고 쉬 몸이 지치고 피곤한 증상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란다. 아! 그리고 취웅 선배가 그러는데, 이걸 배우면 앞으로 키도 크고 남자답게 힘도 세질 수 있다고 하더구나. 어떻게 배워 보겠느냐?”
“에∼이 할아버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좋은 걸 왜 할아버지가 저한테 가르쳐주나요. 아무런 대가 없이. 안 그래요?”
“대가라···. 그래 대가는 이미 받은 것 같구나. 뭐 너야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네가 건강하게 살려면 이 심법이라는 것을 꼭 배워야 한단다. 하니 너무 의심하지 말고 이 할아비를 한번 믿어보지 않겠느냐?”
현무진인의 말에도 남자아이는 뭐라 대답을 못 하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코를 만지작거린다.
고민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현무진인은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옆에 앉아 아이가 답을 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저기 할아버지. 그럼 누나한테 먼저 물어보고 배워도 될까요?”
“그제 말한 이곳에 같이 오게 된 누나 말이더냐?”
“네. 이런 중요한 문제를 혼자 결정하면 아무래도 누나한테 혼날지도 몰라서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근데 누님은 어디에 있누?”
“지금쯤 주방에서 일하고 있지, 싶은데요.”
“그렇구나. 알았다 그럼 네 누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꾸나.”
“감사합니다.”
“그래 나도 고맙다.”
“네 뭐가요?”
“그런 게 있단다. 자 그럼 누나를 기다리는 동안 내 우선 너의 몸을 알아야 그에 맞는 심법을 알려줄 수 있을 터이니 잠시 손 좀 줘보겠느냐?”
“네 할아버지.”
아이가 손을 내밀자 현무진인이 태연혈(太淵穴)을 중지와 검지로 살며시 잡고는 자신의 기를 아이의 태연혈을 통해 쑥하고 집어넣고는 아이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아이의 몸은 취웅 선배에게 듣던 대로 여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발육은 늦고 뼈의 상태는 마치 육십 노인의 뼈인 듯 구멍이 숭숭 뚫려 약간의 충격만 주어도 부러질 것만 같은 아주 약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아이의 몸은 무공을 배우고 익히기에는 최악의 몸이었다.
여기저기 아이의 몸을 살피던 현무진인은 불현듯 취웅 선배에게 아이의 머리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자리하고 있다는 말을 기억하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호기심에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로 기를 인도하였다.
좁디좁은 아이의 목 뒤 아문혈(瘂門穴)에 현무진인의 기가 도착해 뇌 쪽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현무진인으로써는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저항감이 기를 타고 손끝에 전해졌다.
‘멈춰야 하나? 아니면···.’
잠시 고민은 하던 현무진인의 기가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했는지 조심스럽게 저항감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바로 이때 현무진인의 날카로운 오감에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고 이에 자칫 아이와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 서둘러 아이의 몸에서 기를 빼내곤 재미난 일을 망친 사람에게 투정을 부리듯 매서운 눈으로 인기척이 느껴진 곳을 노려본다.
미려는 식당 일을 마치고 남자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다가 누군가 남자아이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곤 습관적으로 걸음을 멈추곤 누군지 확인하려 눈에 힘을 준다.
하지만 심술이 잔뜩 묻어 있는 현무진인의 두 눈과 딱! 맞닥트리자 살수의 본능처럼 몸을 돌려 도망치려 하다가 멈칫 멈춰 선다.
‘도망갈까? 아니 늦었어. 하∼’
한숨을 내쉬곤 남자아이와 현무진인에게 저벅! 걸음을 옮긴다.
여자아이의 의아한 행동에 현무진인이 두 눈을 껌벅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허허 어찌 살수가 이곳에 왔을꼬. 참으로 기이한 일이구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남자아이 뒤로 현무진인이 두 손을 남자아이의 명문혈(命門穴)에 가볍게 대고 있고 이 모습을 미려가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시간이 흐르자 남자아이의 이마에 땀이 맺히고, 시간이 더해 갈수록 맺힌 땀은 남자아이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남자아이의 상의를 흥건하게 적신다.
그렇게 한시 진(2시간)이 지나자 남자아이의 등에서 손을 뗀 현무진인이 깊게 숨을 들이쉬며 감겨있던 두 눈을 뜨곤 마치 자신에게 할 말이 없냐는 눈빛으로 미려를 쳐다본다.
체념한 걸까? 미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인다.
남자아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를 하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현무진인과 미려 둘만이 앉아 있다.
“그러니까 자네가 이곳에 오게 된 목적은 금의위의 임호연 장군을 죽이기 위해서란 말인가?”
“네.”
“사주한 인물에 대해서는 모르고?”
“네. 전 단지 흑살에서 명을 받아 왔을 뿐, 사주한 인물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혼자 왔나?”
“네. 전 혼자 왔습니다. 하지만 흑살에서 누구를 더 보냈는지는 전 모릅니다. 단지 제 동생이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저와 비슷한 남자를 봤다는 것으로 봐서 저 말고 몇 명의 살수가 더 파견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입니다.”
“음 그렇군. 그래서 저번에 죽은 사람 중에 살수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던 거였군 그래. 알았네. 근데 계속 임무는 수행 중인 것인가?”
“아닙니다.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흑살은 한번 맡은 임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중단하는 건가?”
“모르시겠지만 제 동생이 이곳으로 올 때보았답니다. 우리가 떠난 후에 군인들이 폭약을 설치하는 모습을요.”
순간 현무진인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사라진다.
“음∼ 그런가. 하긴 그렇게 할 수도 있었겠군. 그들이라면. 근데 왜 자네는 그런 사실을 다른 이들한테 알리지 않은 것인가?”
“알아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요.”
“좋을 것이 없다. 맞는 말이군. 그래 그럼 다시 묻겠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저는 전에 살던 곳으로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임무를 고집할 만큼 바보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저에게는 동생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네의 말을 들어 보니 친동생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혹 물어봐도 되겠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제 마음이 이런지를요. 하여 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만히 현무진인이 미려의 눈을 바라다본다.
마치 진실을 알아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하지만 이내 피식! 미소를 머금으며
“그렇군! 알았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현무진인이 일어서자 미려도 따라 일어나 현무진인에게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뭐가 말인가?”
“저···. 그러니까 그게···.”
“살수 직 그만뒀다는 자네와 드잡이질이나 하는 그런 융통성 없는 늙은이는 아니니 감사할 필요 없네. 그리고 자네는 이제 보호자 아닌가. 힘들겠지만 동생 잘 보살피게, 그리고 무사히 같이 집으로 가세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뒤돌아 가려다 현무진인이 멈칫 걸음을 멈춰 세운다.
“아! 그리고 저 아이에게 내가 알려준 심법은 현문정종 내공심법이라 하네. 과거 전진교의 내공심법이었으나 어찌어찌하여 나에게 전해져 알려 준 것이니 그리 알게나. 그럼 가네.”
현무진인의 뒷모습을 보며 미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한증 밝아진 얼굴로 남자아이가 운기조식을 하는 곳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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