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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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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56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19 23:55
조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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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2화

DUMMY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은 머리카락이 옅게 흔들렸다.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면서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엘은 앞을 막아서는 자들을 거리낌 없이 베어내고 시뻘겋게 물든 바닥을 무신경하게 밟았다.


지부장은 밖에서 느껴지는 소란을 느꼈다.


처음에는 누군가 발을 잘 못 들인 모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무언가가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뚝 끊겼다.


지부장은 괜스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가 이렇게 조용해?”


마치 개미 한 마리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지부장은 불안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찔렀다.


지부장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부하들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아직 누군가 있어······!’


지부장은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채 숨을 죽였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귀를 때렸다.


‘도, 도망쳐야 해.’


굳어버린 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근데. 언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거지?’


지부장은 소스라치게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 어떻게······.”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느긋하게 옮겼다.


지부장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결국, 지척까지 다가온 남자가 가만히 지부장을 내려다봤다.


“여기가 마지막인가.”


그가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지부장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노엘을 몸을 낮춰 지부장과 시선을 맞췄다.


지부장은 허겁지겁 엉덩이를 뒤로 빼며 물러나려 했지만, 남자에게 팔목이 붙잡힌다.


허망하게 붙잡혀 버린 지부장이 경기를 일으켰다.


“히익!”


남자는 담담하게 그의 소매를 걷어 올려 손목을 확인했다. 안쪽에 그려진 도마뱀 문장을 확인하고 검지로 톡톡 가리켰다.


“신세를 졌거든.”


지부장은 그의 말을 이해하는 시간이 걸렸다. 문득 사내의 얼굴에 시선이 닿자 멍해져서 입이 벌어졌다.


사내의 얼굴을 보고서야 맥락을 깨달았다.


‘설마 노예로 잡혔던 건가······.’


공포로 굳어버린 뇌가 뒤늦게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지부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일갈했다.


“복수하겠다고 이렇게 날뛰었단 말인가······!”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간 대답이 없었다.


“복수?”


지부장은 긴장감에 거친 숨을 내뱉었다.


“아니. 거점으로 쓸모가 있겠더군. 단지 그뿐이야.”


당연히 수긍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지부장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말문이 막힌 듯 동공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지부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난 노예 상단에 가담을 안 했네. 정말이야.”


노엘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렇군.”


남자에게서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변명을 해도 자신을 살려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부장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사내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했다.


“······주, 죽일 거면 제발 한 번에 끝내주게.”

“아니.”


단호한 거절에 지부장이 눈물을 왈칵 터트렸다.


“으흐흑흡.”


죽을 때가 되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더니 정말이었다. 눈앞에 주마등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일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었어. 대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지? ······자식이라도 하나 낳았으면 좋았을 것을.’


등신같이 이 나이 되도록 연애도 제대로 못 해봤다니 억울함이 밀려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왜지? 죽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지부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거점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껍데기만 있으면 의미가 없지 않나.”


지부장은 다급하게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예, 예! 맞습니다!”

“명은 절대적으로 지킬 것. 허락이 없는 한 무엇도 발설하지 않는다. 벗어나고자 마음먹는 순간 죽는다. 동의하나?”


터무니없는 조건에 지부장의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자신은 대체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가. 대체 사내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부장은 사내의 기분에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하며 물었다.


“저······. 그러면 앞으로 저는 어떤 일을 하면 되는 겁니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지부장은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압도되어 손끝을 잘게 떨었다. 사내의 눈동자는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그 시각 노엘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제국이 평화롭다고 했으니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제국의 혼란일 터.’


무엇을 꾸미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노예는 필요 없으니 정보 상단을 꾸릴까······.”


노엘은 문득 지난 밤 그녀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장을 가져다줬는데 그다지 마음이 드는 눈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를 보고 이상하게 웃었지. 왜 그렇게 웃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번 선물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노엘은 사감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 * *


우당탕 소리를 내며 단발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주말 아침부터 이르게 공방으로 찾아왔더니 부스스한 머리칼의 로렌스가 반겨주었다.


“하하, 후원자님 시간이 참 칼 같으시네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로렌스를 바라봤다.


설마 아직 안 된 거 아니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 로렌스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매만지더니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공방에서만 할 수 있는 공정이 있어서 말입니다······. 제가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짜게 식은 눈빛을 보내자, 로렌스는 뻔뻔한 낯짝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하핫, 마무리만 하면 됩니다.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그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트여있는 공간. 탁자와 등받이가 없는 스톨 의자.


지난번에 이야기 나눴던 곳이었다.


“그럼 잠시만 앉아 계세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로렌스는 다급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를 들으며 탁자에 지루하게 턱을 괴었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상념들이 떠올랐다.


‘일단은 로렌시아와 접촉해볼까.’


사교회에 가입할 예정은 없었다만. 이리나에게 접근하려면 그게 제일 편한 방법이겠지.


발을 담가봤다가 별 의미가 없겠다 싶으면 빼면 그만. 굳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이유는 없다.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지.


‘사교회 가입이라······.’


앞으로 귀찮아질 일들을 떠올리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상념에 빠져 있는데 로렌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 한숨이세요?”


로렌스가 빠른 건가, 시간이 많이 흐른 건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로렌스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로렌스에게 굳이 자세한 사정을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니 적당히 대꾸했다.


“할 일이 많거든요.”


그러자 로렌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그거 저랑 비슷하신데요?”


그거야 그랬다. 나보다 로렌스가 더 할 일이 더 많겠지.


대량 주문에다가 아공간 아티팩트 제작까지 맡았으니 안 바쁘면 그게 이상하다.


안 그래도 몰골이 정상은 아니었다.


느글한 미소는 여전했으나 눈밑이 침침한 게 과로를 한 모양새였다.


로렌스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도 후원자님. 아무리 많은 일도 마음먹고 하나씩 해보면 언젠가 끝이 나더군요.”


석연치 않아 찜찜하게 그를 봤다.


사실 일이 많다기보다는 귀찮을 뿐이었으니 로렌스의 말이 내게 울림을 주진 못했다.


오히려 그답지 않은 진지한 위로를 들으니 혓바늘이 돋는 것 같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도 개의치 않는 눈치다.


로렌스는 검은 상자를 탁자에 올려두더니 뿌듯한 얼굴로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보다. 이걸 보시지요. 장담한 건데 기분이 훨씬 좋아질걸요?”


나는 상자에 고이 담긴 은색 팔찌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이거 로렌스가 레오나드한테 만들어줬던 아공간 아티팩트랑 비슷한데?’


상자에 담긴 팔찌를 꺼내 자세히 봤다.


원작에서 나왔던 건 조금 더 투박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이건 얇은 은팔찌에 섬세하게 세공이 들어가 우아한 느낌이 들었다.


로렌스는 깍지를 끼고서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자. 아공간 아티팩트하면 중요한 게 뭐겠습니까?”

“글쎄요······. 넓은 공간?”


‘음음’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히죽 웃는다.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보안입니다.”


로렌스가 묘하게 얄미웠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사용자가 원하지 않으면 결코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으며 심지어 사용자가 죽어도 열 수가 없습니다.”


안 그래도 로렌스에게 부탁해서 보안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센스가 있다.


“오······.”


나도 모르게 감탄을 뱉자 로렌스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기다가 아공간 아티팩트의 기본을 지켜서 공간도 충분히 마련했습니다. 어지간하면 부족할 일이 없을 거예요. 무려 100평의 방이 15개나 준비되어있습니다.”


로렌스는 눈을 반짝이며 오버스럽게 말했다.


“원하는 물건을 떠올리면 꺼낼 수 있는 간편함! 혹시 어떤 물건을 넣었는지 잊어버리더라도 스캔 기능이 달려있어서 잊어버릴 염려도 없습니다!”


이거 역시 레오나드한테 만들어줬던 아공간 아티팩트랑 비슷하다.


벌써 이런 아티팩트를 만들다니 역시 수전노에게는 금력이 직빵이었다.


“괜찮네요.”


반응이 시원찮았는지, 로렌스는 주먹을 불끈 쥐며 억울해했다.


“이거 완전 걸작입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확실히 계속 사용하던 팬던트보다 좋다.


심지어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았는데 용케 해냈다.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줄 만했다.


자기 입으로 천재라는 소리만 안 하고 다녔으면 칭송해주고도 남았을 텐데 애석할 따름이었다.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렌스는 더 칭찬해보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무니 로렌스가 능청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후원자님께서는 참 부끄러움이 많으신가 봅니다. 전 얼마든지 칭찬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데 말이에요.”

“아, 네. 그러시군요.”


무미건조한 내 답변에 로렌스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후원자님 너무 매정하시네요. 오늘 드디어 정체를 밝히게 해주려고 했는데 실패였나요.”


나는 웃음을 삼키며 팔찌를 팔목에 끼웠다.


“뭐. 아티팩트는 마음에 들어요.”


금방 기가 살아나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다.


“그럼 이제 정체를 알려주시는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래도 뭐. 후원해줄 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네요.”


로렌스는 별 당연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거야.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몸이 천재 마공학자 로렌스인걸요.”


어쩜 저렇게 넉살 좋은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나는 문득 물었다.


“근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네. 물어보세요.”

“아카데미에서 몰래 나올 방법이 정말로 없었나요?”


로렌스의 실력으로 위조패를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난처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아뇨?”


뭔가 알고 있는 눈치다.


안경을 추켜올리자, 어떻게 보였던 건지 로렌스는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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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화 22.10.20 38 1 12쪽
» 42화 22.10.19 44 1 12쪽
41 41화 22.10.18 3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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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22.10.16 41 1 13쪽
38 38화 22.10.15 41 1 12쪽
37 37화 22.10.14 4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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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22.10.12 39 1 12쪽
34 34화 22.10.11 40 1 11쪽
33 33화 22.10.10 46 1 12쪽
32 32화 22.10.09 51 2 12쪽
31 31화 22.10.08 45 2 12쪽
30 30화 22.10.07 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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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22.10.05 5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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