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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53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09.30 23:55
조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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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23화

DUMMY

“이번 신입 부원은 하나에요.”


히스는 웃으며 정직하게 대답했다. 중년 교수는 히스의 목에 팔을 두른다. 하필이면 히스가 더 키가 커서 어깨가 위로 솟은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내 수제자 아니야?”


교수가 힘주어 팔을 당기자 저항 없이 히스의 허리가 굽혀진다. 앞으로 끌고 나오면서 교수가 손등으로 히스의 뺨을 툭툭 친다.


팔을 풀어낸 실눈 교수의 분위기가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서늘하게 얼굴을 굳힌다.


“근데 한 명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부장이 돼서 뭣 하고 있었어!”


명백히 힘이 실린 주먹으로 히스의 등을 퍽퍽 내려친다. 등짝을 처맞는 와중에도 웃는 낯의 히스를 보니 기가 다 질리는 기분이다.


대각선에 앉은 로사에게 무슨 상황이냐며 눈짓을 보내지만 굳은 얼굴로 도리질을 칠 뿐이었다.


히스는 덤덤한 미소를 지은 채로 교수를 본다.


“그러게요. 제가 너무 땡땡이를 쳤나 봐요.”


중년 교수는 맥이 빠진 듯 허허 웃다가 난데없이 나탈리를 매섭게 노려본다.


“넌 뭐 했어?”


갑자기 화살이 돌아오자 희게 질린 나탈리가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떨군다. 검지를 세워서 나탈리의 어깨를 푹푹 찌른다. 궁지에 몰린 쥐처럼 굳어버린 나탈리는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난다.


히스는 팔을 벌리며 끼어들더니 나탈리의 앞을 막아섰다.


“제 탓이에요.”


굳은 히스의 얼굴이 보인다. 부원 모집이니 수제자니 하는 걸 보니까 마녀의 항아리 지도 교수인 것 같다.


실눈 교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히스의 뺨을 올려붙인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소리가 살벌했다. 손이 얼얼했는지 탈탈 털더니 자신의 손을 감싸 쥔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 지 교수가 씩씩거렸다.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적막감이 감돈다.


히스는 얻어맞은 뺨에 손을 올리고서 방긋거리자 또다시 불을 지핀 듯 교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반대쪽 뺨을 날린다.


실눈 교수도 참 어지간했다. 신입 부원이 이렇게 떡하니 있는데 낯부끄럽지도 않나.


입맛이 완전히 떨어져 버려서 포크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교수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더니 나한테 불똥이 튄다.


“못 보던 얼굴인데. 신입 부원인가.”

“네. 그런데요?”


중년 남자는 가만히 숨만 색색 내쉬는 가 싶더니 갑자기 걸고넘어지며 면박을 준다.


“테이블에 누가 그렇게 소리를 내면서 포크를 내려놓나?”


주제 파악을 못 하니 없던 정나미도 떨어지게 생겼다. 본인은 테이블 위에 뱃살도 올려놓고 팔뚝도 벅벅 긁어놓고 누가 누구한테 식사 매너 운운이야.


“대답도 없고 영 예의가 없어. 예의가!”


고함을 지르더니 혀를 쯧쯧 찬다. 치료제고 뭐고 머리통을 갈겨주고 싶다. 좀이 쑤시지만 내가 나설 타이밍은 아니다.


“정원의 향기는 8명이나 들어갔다는데 대체 뭘 하는 거야? 다음 주까지 어떻게 해서든 부원 8명까지 채워와.”

“······.”


부원들이 대답이 없으니 교수는 갑자기 감자튀김이 담긴 바구니를 들더니 휙 던진다.


“왜 대답들이 없어!”


애꿎은 감자튀김이 허공으로 솟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구니는 구석에서 데구루루 굴렀다. 왜 맨날 다들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건지. 귀가 따갑다.


“알겠어요. 제가 책임지고 구해올게요.”


히스가 순순히 대답했다. 실눈 교수는 더 꼬투리 잡을 게 없나 물색하며 부원들을 낱낱히 훑는다.


입맛을 다시더니 갑자기 혼자 무슨 생각이 들었는 지 표정이 와락 찌그려진다.


“베네딕트 교수한테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인 줄 알아? 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으나 여기까지 굳이 쫓아와서 화풀이를 하러 온 건 확실해보인다.


“다음 주까지 못 구하기만 해봐. 가만 안 둬!”


부원들에게 손가락을 겨누며 어깃장을 놓더니 쿵쾅거리며 빠져나간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히스 괜찮아?”


침묵을 깨고 나탈리가 히스에게 다가갔다. 히스는 볼에 손등을 대며 열기를 식히는 중이었다.


바람 빠진 웃음소리 내며 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탈리는 한숨을 쉬고는 몸을 떨면서 팔뚝을 감싸 안았다. 실눈 교수 밑에서 학생들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미안 얘들아. 다 내 잘못이야.”


교수 뒤에 서 있던 노란 머리 남학생이 모두에게 머리를 숙인다.


“······로이 네 잘못이 아니야. 신경 쓰지마.”


남학생은 나탈리의 위로에도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히스가 남학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그제서야 고개를 든 노란 머리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소매로 눈가를 훔친다.


다소간 진정한 나탈리가 옆으로 와서 앉았다. 자세히 보니 여전히 손끝이 떨리고 있다. 나탈리는 혈색 없는 손바닥을 주무른다.


"미안해······놀랐지?"


본인이 더 놀란 것 같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염병 치료제를 만들고 벌어들인 돈으로 기부도 해서 칭송을 받던 자가 저런 인간일 줄이야.


실력과 인성은 별개라는 걸까. 아니면.


"근데 왜 다들 동아리에 남아 있는 거예요?"

"······."


나탈리는 대답 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를 바드득 갈던 로사는 신경이 곤두서서 날이 선 눈으로 노려본다.


"너 연금학도 맞아? 저 교수 영향력 있는 귀족이잖아. 말 한마디 하면 이쪽 업계에서 매장이야."


실력이 아니라 영향력이 문제인 모양이었다. 내가 봐도 실눈 교수는 자존심이 중요해 보였다.


근데 연구 실적이라는 게 매번 잘 나오는 게 아니잖아. 실눈 교수는 그럴 때마다 어쨌을까.


"혹시 저 교수가 연구 실적을 뺏어간다든지 안 그래요?"


간단히 유추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부원들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걸 보니 맞춘 모양이다.


로사는 얼굴을 구기더니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지른다.


"······그럼 어떡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뭘! 어쩌란 말인데!"


근데 누가 보면 내가 무슨 시비라도 건 줄 알겠어. 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실눈 교수 성격에 재능있는 동아리 학생들을 놓아줄 리가 없다.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른다. 그럼 도대체 누가 치료제를 만들었을까. 행방이 묘연해진다.


저들의 처지는 안타깝다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상황을 굳이 무너트릴 필요가 있을까. 교수를 쳐내봤자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뿐이다.


문득 트롤리의 딜레마라는 문제가 떠오른다.


트롤리는 선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다. 앞에는 다섯 명의 사람이 선로에 묶여 있다. 선로변환기를 당긴다면 다른 선로에 묶여 있는 한 명이 죽는다.


희생자를 적게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레버를 당길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나탈리가 로사에게 말했다.


"지금 너무 흥분했어. 신입 부원이 무슨 잘못이 있어?"

"······."


로사는 입을 꾹 다물더니 나를 흘겨보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무거운 공기를 환기한 나탈리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사실 아카데미에서는 연금술 동아리가 두 개가 있어."


나탈리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인다. 진지한 모습이라 분위기를 풀어볼 겸 농을 건넸다.


"마녀의 항아리랑 정원의 냄새 말이죠?"


나탈리가 작게 웃었다.


"맞아. 정원의 냄새는 귀족들만 들어갈 수 있어서 평민들은 다 마녀의 항아리로 가거든. 아마 너도 그건 알고 있겠지?"


나탈리는 내가 평민이라 여기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네딕트 교수를 의식해서 자꾸 저러는 거야. 그래서 아예 연금술의 길을 접은 친구들도 많고······. 티타니아 너도 잘 고민해보는 게 좋을 거야."


나탈리는 쓴웃음을 지었고 잠자코 있던 로사는 헛웃음을 터트린다.


"······고민하긴 뭘 고민해. 솔직히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애들은 다 정 때문이잖아? 어차피 졸업하면 뭐해."

"로사······."

"아카데미를 졸업해봤자 조반니 교수 밑으로 들어가서 성과만 다 뺏기다가 버려지든지. 평생 착취당할 걸?"

“······.”


로사의 말이 사실인지 나탈리는 대답을 삼켰다. 로사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너희들도 다 봤잖아. 졸업한 선배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래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 데려다 놓고 뭐 하는 짓이야."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나는 혼란스러울까 봐······.“


상황이 역전되어 나탈리를 탓하던 로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부원들을 바라본다.


"이제는 못 참겠어! 그냥 다 같이 관두면 안 돼?"


감정이 극에 달해 눈물로 호소하는 로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갈 것처럼 로사의 몸이 움찔거렸다.


나는 방법에 매몰되어 진짜 목표를 잃어버리진 않는다.


내 목표는 희생자를 줄이는 게 아니라 멸망을 막는 것. 그러니 주사위를 던져보기로 했다. 굴려서 주사위 눈이 뭐가 나올지는 미지수지만 이왕 던질 거면 화끈한 게 좋다.


주먹을 쥐고서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쳤다.


부원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보는 게 흡족스럽다.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해결해드릴까요?"


일제히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는 환각이 보일 지경이었다. 로사는 넋을 놓다가 금세 황당해하더니 눈꺼풀을 찡그렸다.


"······네가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의심스럽지만 절박해서 어쩔 수 없이 희망이 고개를 내밀고 실낱같이 작은 기대가 깨질까 두려워 예민하게 가시를 세운다.


"티타니아 르웰.“

"······!“

"그게 제 풀네임이랍니다?"


갈피를 잃고 떨리는 눈동자들.


부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아무리 평민이래도 르웰 가문의 이름 모르기가 쉽지 않은데 히스는 혼자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였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문득 입을 연다.


"르웰이면······동부의 우두머리 가문 아니야?“

“자, 잘못 들은 거 아냐? 왜 공녀가 우리 동아리에 들어와······.”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유리창이 깨지듯이 일변한다. 웅성웅성하며 장내가 시끄러워진다. 아까 체스 이야기를 하던 남학생은 무언가가 떠오른 듯 갑자기 크게 외친다.


“아! 잠깐만! 르웰 가문의 후계자는 아, 안경을 쓰고 있다고 그랬어!”


그제야 현실감이 드는지 입을 틀어막는 학생도 보인다. 정적을 비집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망나니라던······.”


아. 소문이 거기까지 난 건가. 더 말을 얹을까 얼른 말을 가로채기로 했다.


나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서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조반니라고 했나. 그런 귀족 하나를 교사직에서 해임하는 거야 편지 한 통이면 충분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는 둥 손짓했다. 실제로 가능한지는 나도 모른다. 일단 던지고 보는 거지.


“그, 그게 사실이야?”

“······진짜?”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얼떨떨한 표정의 나탈리와 로사가 물었다. 막 들어온 신입부원의 손길도 가릴 형편이 아닌 듯 벌써 기대감에 부푼 기색이다.


설마 그 정도로 무른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조금 실망이다.


“근데. 고작. 그걸로 만족하는 건 아니지? 기왕 하는 거 제대로 비참하게 바닥으로 처박아줘야지.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망치로 머리를 얹어 맞은 듯 충격받은 얼굴들이었다.


“안 그래요?”


로사는 입을 떡하니 벌리더니 소리 없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닦지도 않고 눈에 힘을 주고서 쳐다본다. 제대로 앞이 보일려나 모르겠다.


“나,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로사가 눈물을 흘리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 다행이네요. 마침 협조가 필요했는데.”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제게 빚을 졌다는 사실을.”


특별히 내 계획도 수정해줬는데 그저 호의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빚은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받아낼 속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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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22.10.16 41 1 13쪽
38 38화 22.10.15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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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22.10.12 39 1 12쪽
34 34화 22.10.11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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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22.10.08 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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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22.10.02 4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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