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45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23 23:55
조회
35
추천
1
글자
12쪽

46화

DUMMY

은은한 음악 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로렌시아는 따사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속삭였다.


“어떠신가요. 친목회라고 해서 너무 부담가지지 마셔요. 그저 이야기 꽃을 피우고, 마음이 맞는다면 친우도 되기도 하는 교류의 장이에요. 부디 티타니아양에게 뜻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로렌시아에게 가입 의사를 전달하고, 때마침 친목회가 있어 초대를 받은 차였다.


그녀는 나를 바로 옆자리에 앉혔다. 덕분에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중이었다. 로렌시아에게 회원들은 소개받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 이사벨라양. 오늘하고 오신 브로치가 너무 예쁘시네요.”


이사벨라는 다름 아닌 벨라였다. ‘왜 거기 서 있냐’며 시비를 걸던 같은 반 여학생이었다. 알고 보니 그 무리가 모두 로살리아 회였다.


“못 보던 디자인의 브로치네요. 어디서 구매하신 건가요?”

“아, 이번에 아버님께서 저를 위해······”


앞머리를 시원하게 깐 여학생의 이름은 소피아였고, 조용히 옆에 있던 갈색 머리는 엠마였다.


로살리아 회에는 중앙과 서부 쪽의 귀족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 같다.


나는 서로 금칠해주기 바쁜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가만히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데, 문득 내 이름이 불린다.


“근데, 티타니아 영애는 말이 없으시네요?”


목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자, 벨라가 아니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소피아가 왜 그러냐는 듯 팔꿈치로 치며 눈치를 준다.


벨라는 아랑곳 않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로렌시아가 곧장 중재하며 나섰다.


“티타니아 양은 친목회 참여가 처음이라. 아무래도 낯을 가리시나 봐요. 다들 따뜻한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벨라가 대답했다.


“어머, 물론이죠. 로렌시아님. 그저 저는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었답니다.”


나는 검지를 세워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목표물이었던 이리나는 로렌시아 뒤에서 서 있었다. 마치 호위기사처럼 딱딱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리나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그런데, 저분께서는 왜 저기에 계시나요?”


이리나는 무슨 속셈이냐며 눈에 힘을 주며 날 뚫어져라본다. 로렌시아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었다.


“맞아요. 이리나. 편안하게 있어도 된다고 했는데······.”

“아니에요. 전 이게 편해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글쎄요. 보는 사람이 불편한 것 같은데요?”


이리나는 주먹을 쥐고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들 앉으라고 권하자 결국, 자포자기하며 이리나가 자리에 앉았다.


이리나는 팔짱을 끼고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대화에 끼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나는 드디어 벨라를 보며 대꾸했다.


“보다시피.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벨라는 뭐 씹은 얼굴을 하더니 표정 관리를 했다.


“아,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네. 다들 그런 줄 몰랐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러자 주변에 있던 영애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무마한다.


"오호호."

“아하하, 정말 재미있으시네요.”


순간 대화가 멈추며 정적이 감돌았다.


별안간 벨라가 목을 가다듬었다. 주변 영애들이 그녀를 주목한다.


“근데, 솔직히.”


이사벨라는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이쪽을 본다. 나 역시 덩달아 벨라를 마주 봤다.


“로살리아 회에 동부 귀족이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벨라는 당당하게 대놓고 말했다.


“심지어 동부 공작가의 후계자가 말이에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전 잘 모르겠네요?”

“······.”


벨라를 말리는 귀족은 없었다. 다들 내심 궁금하게 여겼던 것 같다. 심지어 로렌시아까지 은근히 답변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음, 제가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그게 뭔가 문제가 되는 건가요?”


이사벨라는 헛웃음 지었다.


“그걸 정말로 모르는 건가요?”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로렌시아가 난처한 듯 눈썹을 살포시 찡그렸다.


“티타니아양에게 사교회 가입을 제안한 건 저에요.”

“······네. 그러니 저희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거에요. 그런데 솔직히 전 진의가 의심스럽네요. 티타니아 영애. 솔직하게 대답해주시는 게 어때요? 아니면. 제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멋대로 생각을 하겠다라.


어째 나를 첩자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사실 오해할 살만한 상황이긴 했다.


로렌시아가 데리고 왔다고 한들, 동부 사람을 어떻게 쉽게 믿겠을까.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지만.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질 것 같다.


로렌시아가 원하는 바를 아는 체하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게 거짓말이 되고, 반대로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스탠스를 밀고 나가면 의심을 풀지 못하겠지.


어느 쪽이든 좋은 답은 아니었으나 고른다면 후자가 낫겠지.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제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말해주시겠어요?”


그러자 긴가민가한 측과 여전히 의심을 품는 측이 나뉘었다.


목소리를 죽이며 수군거린다.


“진심일까요?”

“······망나니라더니 진짠가 봐요. 저 방금 소름 돋았어요.”

“설마 그걸 모르겠어요.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거지.”


이사벨라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네, 그러시군요. 무슨 뜻인지 잘 알았어요.”


이사벨라는 명백한 의심파인 모양이다.


나는 모르쇠를 시전하며 해맑게 웃었다.


“제 뜻이 잘 전달된 것 같아 다행이네요.”


벨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뚝심 있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 * *


친목회가 끝난 후 로렌시아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티타니아 양. 오늘 친목회는 어떠셨나요?”


나는 넌더리가 난다는 시늉을 하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대체, 다들 저한테 왜 그러는 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괜히 가입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로렌시아는 놀란 듯 작게 입을 벌렸다.


“어머······.”


눈썹을 추욱 늘어트리며 로렌시아가 말했다.


“티타니아 양. 그렇지만 영애는······. 중요한 자리에 있는 귀족이잖아요.”


나는 약간 귀찮다는 투로 대꾸했다.


“네에.”


로렌시아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정치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부러 먼 산을 쳐다보았다. 관심 없는 티를 팍팍 내자 로렌시아 당혹스러운 듯 말이 없었다.


이내 간곡한 어조로 로렌시아가 재차 말했다.


“······제가 차근히 알려드릴게요. 네? 우리 그렇게 해봐요.”


로렌시아를 보면서 괜스레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솔직히 뭔 이야기를 하나 궁금하긴 했어요.”


조금 관심이 있는 것처럼 운을 띄우자, 로렌시아의 표정이 환해졌다. 손끝을 가볍게 맞붙이며 부드럽게 웃는다.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시간이 나면 저와 함께 종종 대화를 나눠요. 점심시간에 잠깐씩 어떠실까요?”


로렌시아는 크게 의심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니 직접 나서서 가르쳐주기까지 하겠다고 하는 거겠지.


나는 난색을 표하며 질린다는 시늉을 했다.


“설마, 매일요? 그건 좀······.”


내 반응에 로렌시아가 얼른 정정했다.


“매일은 아니여도 괜찮아요. 영애께서 시간이 나실 때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늘 점심시간 이후에는 온실 정원에서 티타임을 가진답니다.”

“뭐······. 그 정도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로렌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해드리는 거로 괜찮으실까요?”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네. 그럼 전 이만.”


황녀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서자, 이리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쿵쿵거리며 뒤따라 나왔다.


나는 모른 척하며 계속 걸었다.


“야!”


한 번쯤 무시해볼까 했지만, 이미 잔뜩 열 받은 듯해서 굳이 더 화를 돋우지는 않기로 했다.


뒤돌아보자 이리나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뭔데?”

“너 진짜······.”


이리나는 말문이 막힌 듯이 입을 다물었다. 성나서 달려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나 보다.


허술한 이리나를 보자니 놀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쏫는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왜 말을 못 하겠어?”


지난번 기억이 떠오르는지 이리나가 분개해했다. 가뜩이나 머리도 눈도 빨간데,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익! 너 진짜!”

“뭐, 왜? 어쩌라고.”


이리나는 입으로 바람을 훅 불었다. 붉은 앞머리가 허공으로 솟았다가 가라앉는다.


“너, 황녀님한테 예의 갖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는 너는?”


이리나는 씩씩거리면서 제 할 말만 했다.


“너. 그냥 사교회 그만둬! 황녀님께 수고만 끼치게 하지 말라고! 너 같은 게 있어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되니까!”


옆에서 넙죽 제안 안 받냐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나가란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이리나는 움찔하더니 기죽지 않고 노려본다.


나는 이리나가 잊고 있는 듯해서 직접 짚어주었다.


“그걸 결정하는 건 황녀님이시겠지. 네가 아니라.”


울컥한 듯 입술을 깨문다.


나는 이리나에게 가깝게 몸을 붙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부담스러운 듯 이리나가 고개를 모로 돌렸다.


어쩌다 보니 귀에다가 속닥거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말이야.”


이리나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긴장이라도 되는지 주먹을 꽉 쥔다.


나는 그런 이리나를 농락하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너. 나 싫어하지?”


어처구니없는 지 굳어 있던 얼굴에 쩌적 금이 갔다.


“뭐?······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 반응이 웃겨서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놀림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리나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악! 너 진짜 짜증나!”


나는 한참이나 더 웃다가 이리나에게서 떨어졌다. 여전히 웃음기가 배인 채로 물었다.


“근데 말이야. 그게 왜 당연한 거야?”


떫은 표정을 지으며 이리니가 말했다.


“그야······넌 동부 사람이잖아. 난 서부 사람이고.”

“이유가 그게 다야?”


이리나는 황당해하며 고개를 삐뚜름하게 들었다.


“넌, 대체 무슨 소리가 듣고 싶은 건데?”

“이상하잖아.”


저건 또 무슨 헛소리냐는 반응이었다.


“언제는, 황녀님의 제안 고맙게 받으라며? 근데 갑자기 왜 말이 바뀌는데.”


내 태도는 그대로였다. 그러니 달라진 건 이리나의 마음이겠지.


이리나가 멈칫했다. 붉은 눈동자를 가만히 굴리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그거야. 네가 너무······.”

“너무, 뭐?”


조용해지더니 안색이 어두워진다. 이리나는 무언가 이유가 떠오른 듯 했다.


그녀는 딱딱한 얼굴로 똑바로 나를 응시한다.


“그걸 네가 알아서 어쩔 건데? 알 거 없잖아.”


순순히 대답해주지 않은 걸 보니. 내가 이리나의 무언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대체 어떤 부분이 이리나의 반감을 산 것일까.


로렌시아에게 했던 태도도 저번과 크게 다를 게 없었으니, 그건 아닐 테고.


나는 적당히 찔러봤다.


“내가 부러워? 아니면 무슨 질투라도 하는 거야?”


이리나는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트리며 낮게 말했다.


“알 것 없다고 했잖아.”


더 자극해봐야 좋은 꼴을 못 보겠는걸. 나는 이쯤에서 한보 물러나기로 했다.


“오해하지마. 나는 그냥 너랑 잘 지내보고 싶은 것 뿐이니까.”


이리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


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나 보다. 어차피 로렌시아를 만날 때마다 보게 될 터니, 다음을 기약하면 그뿐이다.


나는 뒤돌아 걸었다. 이리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언뜻 들려왔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2 52화 22.10.29 42 1 12쪽
51 51화 22.10.28 36 0 13쪽
50 50화 22.10.27 32 0 12쪽
49 49화 22.10.26 34 0 12쪽
48 48화 22.10.25 29 0 12쪽
47 47화 22.10.24 41 0 12쪽
» 46화 22.10.23 36 1 12쪽
45 45화 22.10.22 38 1 12쪽
44 44화 22.10.21 37 1 12쪽
43 43화 22.10.20 38 1 12쪽
42 42화 22.10.19 43 1 12쪽
41 41화 22.10.18 37 1 13쪽
40 40화 22.10.17 39 1 12쪽
39 39화 22.10.16 40 1 13쪽
38 38화 22.10.15 40 1 12쪽
37 37화 22.10.14 41 1 12쪽
36 36화 22.10.13 43 1 11쪽
35 35화 22.10.12 39 1 12쪽
34 34화 22.10.11 40 1 11쪽
33 33화 22.10.10 45 1 12쪽
32 32화 22.10.09 51 2 12쪽
31 31화 22.10.08 44 2 12쪽
30 30화 22.10.07 44 2 12쪽
29 29화 22.10.06 48 2 11쪽
28 28화 22.10.05 50 2 12쪽
27 27화 22.10.04 48 2 12쪽
26 26화 22.10.03 55 2 12쪽
25 25화 22.10.02 49 1 11쪽
24 24화 22.10.01 49 1 12쪽
23 23화 22.09.30 48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