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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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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52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06 23:55
조회
48
추천
2
글자
11쪽

29화

DUMMY

'뭐 하는 미친놈이지.'


심술이 덕지덕지 묻은 은발 남학생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야, 누가 검술을 하는데 머리를 그렇게 길게 하고 다니냐. 그거 다 약점인 거 몰라?”


말없이 쳐다보자 은발은 비꼬는 말투로 시비를 건다.


“안 봐도 실력 빤하지. 질 떨어지네. 진짜.”


묶은 머리의 끝을 잡고서 장난을 치듯이 탈탈 흔드는데. 이거 기분이 상당히 더럽다.


나는 짜증스럽게 손을 쳐냈다.


“어이쿠. 무서워라~”


은발이 과장되게 겁먹은 척 뒤로 물러나자 일행들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일행들도 하나같이 비열하게 생겼다.


한가롭게 시비나 받아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자 조롱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저거 도망가네.”

“내일부터 수업 안 나온다는 거에 1골드 건다.”

“오, 그거 재미있겠네. 내기 콜?”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박장대소하고 난리가 났다.


상대해주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유치하다.


자낙의 오묘한 호박색 눈동자가 경계의 빛을 띄우고서 날 바라본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해둔 게 있지.'


나는 주머니에서 딸기 맛 사탕을 꺼냈다.


“이거 먹을래?”


자낙은 멈칫하더니 귀를 쫑긋 세웠다.


사탕을 뚫어져라 보는데 꼬리가 좌우로 움직인다.


덥석 사탕을 낚아채 간다.


첫 사냥을 성공한 새끼 늑대를 보는 어미의 마음이 이런 걸까.


'늘름하다. 우리 자낙!'


어쩐지 감동적이다.


자낙은 누가 말릴세라 포장을 재빨리 벗겨내고 입에 넣는다.


음미하는 듯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더니 자낙의 한쪽 볼이 볼록하게 튀어나온다.


그녀가 씨익 웃자 귀여운 송곳니 두 개가 드러난다.


“이렇게 맛있는 걸 양보해주다니 정말 착한 인간이로구나.”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어쩜 이렇게 쉬운 여자인지.'


너란 자낙 너무 귀엽다.


자낙의 말투에서 왕족의 위엄이 느껴진다. 아랫것을 대하는 게 익숙한 지배자의 말투였다.


늑대 수인족의 마지막 남은 왕족.


자낙.


그녀는 대대로 내려오는 아티팩트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가출했다.


갓 입학한 자낙은 세상 물정에 굉장히 어두웠다.


“흐음.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티타니아.”

“좋은 울림이구나. 본녀는 자낙이라 한다.”


자낙이 악수를 청해서 손을 맞잡았다. 손을 단단하게 잡고 금방 놓아준다.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검술 학도냐?”

“그건 아니야.”


자낙의 호박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놀랍도다. 검술학도가 아닌데 검술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이냐?”


그것도 몰랐다니 아무튼 귀엽도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자낙도 덩달아 고개를 주억거렸다.


“암. 배울 수 있다면 배우는 것이 옳다. 검술만큼 스릴 넘치고 짜릿한 건 없으니.”


자낙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리면서 웃었다.


활자로만 보았던 자낙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직접 보니 한 스무 배는 더 귀여운 것 같다.


입가의 근육이 느슨해지는 걸 느끼고 있는 찰나 소음이 멎었다.


연무장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 교수가 들어온다.


저벅저벅.


힘 있는 발걸음으로 나타난 교수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무뚝뚝한 인상의 교수는 연무장 중앙에 멈춘다.


학생들이 거리를 벌리고 정렬하기 시작했다. 나와 자낙도 대열에 맞춰서 섰다.


교수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중급 검술수업의 교관을 맞게 된 알렉스다.”


무슨 군대에 입대한 줄 알겠다.


‘교관이 아니라 교수겠지.’


폼을 어지간히도 잡는다. 다른 학생들의 마음도 비슷한지 어정쩡한 박수 소리가 났다.


교수는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호통쳤다.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나? 박수 따위는 집어치워라.”


알렉스는 뒷짐을 쥔 채로 말했다.


“안일한 생각으로 수업을 받을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나가라. 내 수업은 무른 교수들과는 다르다.”


말하는 것만 봐도 깐깐할 것 같은 냄새가 풀풀 풍겼다.


“나는 오로지 실력만 본다. 실력이 뛰어나다면 수업에 안 나와도 좋다. 중요한 것은 중간, 기말 평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둘 것.”


나는 꺼림직한 눈으로 교수를 봤다.


“못 보던 애송이들이 보이는군. 실력을 구경해 볼까.”


자낙은 호기롭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알렉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지원하는 건가?”

“그렇다.”


당당하게 자낙이 앞으로 걸어 나가자 알렉스의 입가가 올라간다.


“저기 목검이 있으니 챙겨라.”


자낙은 나무 상자에서 목검을 챙겨 들고 냉철한 눈빛으로 알렉스를 주시한다.


긴장감이 어리는 순간.


자낙은 도발적인 미소를 짓는다.


“선공은 양보해주마.”


알렉스는 가타부타하지 않고 신중하게 공격을 들어간다.


두 개의 목검이 교차된다.


“이 무게감. 나쁘지 않구나.”


자낙은 힘을 실더니 알렉스를 단번에 튕겨낸다.


“크윽.”


알렉스는 한참을 뒤로 밀려나다가 겨우 멈춘다.


“하지만. 아직 나를 만족시키기엔 부족하다. 좀 더 힘을 내보거라.”


다시 알렉스가 달려드는 양상으로 시작된 공방.


순식간에 수합이 오고 간다.


대치 끝에 알렉스가 먼저 물러서더니 말했다.


“어째서 먼저 공격하지 않는 거냐?”


교수의 말처럼 자낙은 방어만 했을 뿐.


압도적인 실력으로 알렉스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자낙의 포지션이 괜히 탱커인 게 아니다. 오로지 방어에만 능력이 몰려있는 지라 공격력은 형편이 없다.


자낙은 천연덕스럽게 블러핑을 친다.


“어디 한번 공격을 끌어내 보아라. 마음이 내키면 그리하마.”


실상을 모르는 교수는 분개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졌다.”


교수에게서 나온 패배 선언.


자낙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와.”

“내가 뭘 본 거지?”


학생들은 충격과 경외에 찬 눈으로 자낙을 우러러본다.


학생이 교수를 간단히 이겨버린 상황.


블러핑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자낙은 아마 진심일 거다.


순수한 캐릭터니.


사소한 오해로 적의 마음을 꺾어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게 자낙의 특기다.


‘역시 우리 자낙 멋있다! 최고다!’


야광봉을 흔들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최고의 공격은 방어라고 하지 않는가. 딱 그 말이 어울린다.


“합격이다. 너는 앞으로 수업에 나오지 않아도 좋다.”


알렉스는 묘하게 아까보다 더 험상궂어진 얼굴을 했다.


“다른 놈들도 실력을 봐야겠지.”


조금 전 민망한 상황을 겪었으니 만회하고 싶은 모양.


알렉스는 단단히 벼르는 눈으로 학생들을 본다.


내게로 시선이 닿아 무심코 움찔하자. 찰나를 놓치지 않고 알렉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나를 보며 턱으로 까닥거리는 알렉스.


“거기 너.”


못 알아들은 척 주변을 둘러보자 알렉스가 콕 찝는다.


“그래. 너 맞다. 안경 낀 놈. 알아들은 것 같으니. 앞으로 나와라.”


왜 주변에 안경 낀 놈이 나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가자 학생들의 눈동자가 따라붙는다.


자낙은 내게 응원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부담스럽다.


'첫날부터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알렉스는 훈련장에 있는 목검을 예고 없이 던졌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날아오는 목검을 무사히 받아냈다.


“검을 들어라.”


나는 알렉스의 말대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교수가 미간을 와락 구긴다.


“지금 장난하나. 왼손잡이의 장점이 많다 한들 만만하게 시도할 만한 게 아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들어라.”


이게 평소 하던 대로 든 건데요.


“저. 왼손잡이인데요.”


교수는 약간 당황한 듯 말이 없더니 손을 까닥였다.


“······먼저 공격해라.”


눈을 노리며 검을 세우며 찌르자.


교수는 재빠르게 틈으로 파고들어 어깨를 노린다.


‘역시 얕은수는 안 통하나.’


자세가 너무 나와버렸다.


뒤로 물러서며 황급히 검을 회수한다.


타앙―.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손목이 꺾인 자세에 인상을 찡그렸다.


거리를 벌리고 물러서자.


알렉스는 뒤쫓지 않고 검을 회수한다.


“기초가 형편없군. 더 검을 섞을 것도 없겠어.”


혹평을 날린 알렉스.


순식간에 깊게 들어오더니 목검의 하단을 쳐올린다.


무게감이 실린 공격에 손목이 찌릿하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 목검을 놓치자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알렉스는 떨어진 목검을 힐끔 보며 신랄하게 평가했다.


“신체능력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군. 기껏 오러를 쌓은 게 아깝게 되었어. 쯧.”


혀를 차며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낀다.


“애송이. 검을 배운지 얼마나 됐지?”


글쎄. 얼마나 되었더라.


나는 날짜를 꼽아보고는 대답했다.


“이제 3주쯤 됐는데요.”

“그래. 그만하면 재능이 없는······.”


멈칫하더니 딱딱하게 굳는다. 알렉스는 귀를 후비더니 재차 물었다.


“뭐라고? 3년이라고?”


생긴 건 젊어 보이는데 벌써 귀가 먹었는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아뇨. 3주요.”


다시 알렉스에게 정정해주며 대답했다.


알렉스는 어벙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긁적이면서 중얼거렸다.


“쟤, 뭐래냐.”


교수님 지금 무게감이 사라지고 있는데요.


“아 됐다. 됐어. 오늘은 자습.”


알렉스는 마치 연차가 오래된 체육 교사처럼 손을 흔들거렸다. 귀찮아하는 기색으로 뒤돌아 연무장을 휘적휘적 빠져나간다.


'무게감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거야?'


떠나는 교수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쫓았다.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와. 교수님이 저렇게 불쌍해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야.”


누군가 했더니 헤럴드였다.


“그래도 3주는 너무 간 거 아냐?”


대답을 고르고 있는데 자낙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음. 아직 3주밖에 안 되었다니 대단하구나. 정진하면 좋은 검사가 되겠어.”


자낙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해준다.


헤럴드는 해괴한 것을 보는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다.


“뭐야. 근데 둘은 어떻게 벌써 친해진 거야?”

“착한 인간이더군.”


자낙이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곱다고.


“좋은 친구 같더라고.”


자낙은 기쁜 티를 내며 볼을 붉힌다.


“음. 고맙구나.”


헤럴드는 망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뭔가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맞다. 너한테 물어볼 거 있었다. 레베카 걔도 중급검술 듣는데 혹시 못 봤어?”


헤럴드가 나한테 다가온 목적이 그거였나보다.


“레베카. 오늘 몸이 안 좋나 보더라.”


그러자 헤럴드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걔가? 웬일이지. 튼튼하기로 소문난 앤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헤 벌리더니 뒷머리를 거칠게 털었다. 헤럴드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진다.


혼돈에 빠져서 혼자 중얼거리는 헤럴드를 보며 생각했다.


‘저거 레베카한테 마음이 있는 거 아니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납득하고 있는데 옆에서 자낙이 물었다.


“레베카는 누구냐.”

“같은 반 친구야.”

“음. 그렇구나. 본녀는 아직 친구가 없느니라.”


솔직한 자낙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당당하게 친구가 없다고 선언하는 거 너무 귀여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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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22.10.16 41 1 13쪽
38 38화 22.10.15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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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22.10.11 40 1 11쪽
33 33화 22.10.10 45 1 12쪽
32 32화 22.10.09 51 2 12쪽
31 31화 22.10.08 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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