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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50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15 23:55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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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38화

DUMMY

테이블이 좁아서 바닥에다가 금화 상자를 꺼냈다.


식료품을 얼마나 구매할 수 있는 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자금으로 쓰도록 해.”


미셸은 대체 어디서 저게 나온 건가 신기해하더니 물었다.


“혹시 아공간 아티팩트인가요?”


나는 고개를 까닥이며 긍정했다.


‘이정도면 충분하려나.’


뭐.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전달해주면 되겠지.


“모자라면 나중에 더 챙겨줄게.”


미셸은 상자를 열었다.


금화가 가득 차 있는 걸 보고 입을 벌렸다. 밀가루가 대체 몇 자루냐며 손으로 꼽으며 중얼거린다.


“······이거 충분하고도 남겠는데요?”


나는 금화 상자를 보며 가늠해보다가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식량을 담을 수 있는 아공간도 구해볼 수 있으면 계속 구매해줘.”


지금 당장은 미셸에게 줄 아공간이 부족하다.


매물이 적어 금방 구하기가 어려웠다. 가능하면 최대한 많이 갖춰두면 좋으니 미셸에게도 직접 구해보라고 해두는 게 좋겠지.


미셸은 열정적인 눈빛으로 대답했다.


“네. 맡겨주세요.”


이제 할 이야기도 다 한 것 같고.


“그럼. 이만 가볼게.”


미셸의 눈동자가 크게 뜨이더니 눈썹을 아치형으로 만들었다. 아래로 쳐진 눈썹이 한껏 서운한 티가 났다.


“벌써 가시는 건가요. 차하고 쿠키도 준비해뒀는데······.”


어째 눈이 촉촉해진다. 금방이라도 울 태세였다.


아무리 나라도 헨리에 이어서 연달아 미셸까지 울리기는 그랬다.


“······그럼 차만 마시고 갈게.”

“헤헤. 좋아요.”


미셸은 이미 식어버린 차를 발견하고 다시 준비하겠노라고 챙겨갔다.


그녀를 기다리다가 문득 실험해보고 싶은 게 떠올랐다.


‘안경 아티팩트를 착용해도 계속 효과가 있을까?’


이미 정체도 밝혔겠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나는 다시 은발로 되돌리고 안경을 착용했다.


“아앗.”


뒤늦게 발견한 미셸은 아쉬운 듯이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어떻게 안경 하나로 미모가 이렇게까지 가려질 수가 있죠? 너무 가슴이 아파요.”


차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연신 내 얼굴을 살폈다.


“너무 안경이 큰 것 같은데······.”


슬퍼하는 미셸을 보고 있자니 공감이 가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예전과는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안경이 마냥 아쉽기만 했었는데. 막상 티타니아의 미모를 드러내자 사람들의 이목이 과하게 쏠려서 고역이었다.


미셸은 내가 웃는 걸 보더니 덩달아 미소를 한가득 머금었다.


“헤헤······.”


넋 나간 듯 웃는 미셸.


이미 매료안에 걸린 상태라 안경을 착용해도 크게 차이가 없나 보다.


‘그럼 아예 나라는 걸 몰라도 통하는 걸까?’


오히려 그렇게 되어버리면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가지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일단 매료안을 사용한 상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정체를 숨기고 있는 상태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첫째. 상대방은 내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닐까. 추론하는 경우.


둘째. 아예 보자마자 그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버리는 경우.


어찌 되었건 둘 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미셸이 준비해준 차와 쿠키는 제법 괜찮았다.


“잘 마셨어. 그럼. 이제 가볼게.”

“네? 벌써요.”


이정도 어울려줬으면 충분하겠지. 미셸을 떼어놓기 위해 적당히 둘러댔다.


“다른 볼일 있어서 가봐야 해.”


곧바로 로브를 푹 눌러쓰고 일어섰다.


“······그런가요.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아쉬워하는 미셸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 * *


미셸의 기숙사에서 거처로 향하는 길이라 다소 낯선 길목이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생각에 잠긴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게 남긴 했네.’


아직 레베카는 단련하는 중일까. 개인훈련실을 이용해본 것 같던데 거기 훈련을 하는 걸까.


레베카에게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다.


오늘따라 달빛이 밝았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방금 뭔가 적금발을 본 것 같은데.’


다시 골목 어귀를 뚫어져라 봤지만.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골목으로 다가가 기웃거려본다. 꺾어지는 구간에 다다라 고개를 슬쩍 내민다.


익숙한 적금발 뒤통수.


‘저거 레오나드 맞네.’


혹시 여기 레오나드 기숙사 건물인가.


호기심이 동해서 눈을 크게 키웠다.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예리한 레오나드의 감각을 떠올리면 주의하는 게 좋겠지.


나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레오나드를 관찰했다.


건물 뒤편으로 널찍한 공터. 뒤편으로 나무와 풀이 둘러 싸고 있었다.


레오나드는 뒤편으로 다가가더니 쭈구려 앉았다.


‘대체 뭐 하는 거지?’


다시 일어선 레오나드의 손에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뗄감을 구하러 온 건 아닐 테고 대체 왜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레오나드는 돌아서더니 다시 공터로 향했다.


달빛을 받아 레오나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빛났다. 평소와 다르게 표정 없어 묘하게 낯설다.


나뭇가지를 마치 검처럼 잡았다.


정갈한 자세로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더니 검술을 하듯이 내려 벤다.


‘······.’


아니. 진짜. 왜 이렇게 짠하냐.


목검을 살 돈이 없어서 저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더 그랬다.


사람이 언제 가장 배신감을 느끼는 줄 아는가.


상대를 생각하여 애정과 배려를 베풀었는데 상대는 그렇지 못할 경우다.


레오나드가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은 그만큼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사실은 싫었던 거지.’


재능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배우고 싶음에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


대체 무슨 연유로 레오나드가 자신의 재능을 숨기겠노라 결정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레오나드가 화목한 가정에서 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 않았나.


실제로 그의 가족들은 성격이 하나 같이 좋다. 그가 성장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미련스럽고 머저리 같을 수밖에.


고작 레오나드는 16살이었다. 심지어 2회차에도 20살을 넘기지 못한다.


물론. 여기서는 16살이면 성인이긴 하다만.


제 아무리 머리가 좋은 천재여도 미성숙한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레오나드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짜증스럽게 미간을 찡그렸다. 나뭇가지를 든 팔을 아래로 늘어트리고 다른 쪽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멍하니 하늘을 응시한다. 문득 레오나드의 시선이 내게로 꽂힌다.


그가 쥐고 있던 나뭇가지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레오나드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여상한 미소를 매달며 말을 걸어왔다.


“안녕? 여기서 보네.”


들켜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나는 레오나드에게 다가가 짧막한 인사를 건냈다.


“안녕.”


레오나드는 뒷짐을 지더니 말했다.


“오늘 참 달이 밝네.”


그가 바라보는 달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레오나드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졌다.


나는 아공간에서 목검이 담긴 자루를 꺼내 들었다.


바닥에 묵직한 소리가 내려 앉는다.


대뜸 목검을 두 자루를 꺼내 하나를 레오나드에게 던졌다. 당황한 얼굴로 레오나드가 목검을 받아냈다.


“어?”


어벙한 소리를 내는 레오나드.


다짜고짜 검으로 찌르고 들어가자 옆으로 두어 걸음 물러선다. 과연 반응 속도가 빨랐다.


“자, 잠깐만.”


내가 그를 기다려줄 리가 없다.


허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레오나드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무리 없이 막아낸다.


나는 전력으로 힘을 실고 있는 데 힘든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검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는 실력으로 레오나드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무작정 공격하자 요리조리 피하더니 아예 손에서 목검을 놓아버린다.


레오나드는 난처한 얼굴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내가 졌어.”


솔직히 분했다.


내가 더 실력이 있었더라면 레오나드도 실력을 꺼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게 화가 나서 레오나드를 노려봤다.


“거짓말.”


레오나드는 입을 다물더니 한참 뜸을 들였다.


“······내가 혹시 너한테 잘못한 게 있어?”

“아니.”


내 대답을 들은 레오나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갑자기 이게 무슨.”


헛웃음을 짓더니 레오나드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는 시비였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너 말이야.”


레오나드가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저번부터 느꼈는데 말이지. 뭘 그렇게 숨기는 거야?”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리둥절한 표정은 정말이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미 원작을 봐버린 내게는 통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레오나드에게 타격이 있으려나.


고심 끝에 말했다.


“너. 여태 한 번도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 나는 물론이고 토레스나 레베카도 말이야.”


레오나드는 알려주기 위해 언급한 일을 제외하고 타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다.


멈칫하더니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랬나?”

“솔직히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면 한 번이라도 부를 법한데 말이야.”


더해보라는 듯 레오나드가 입을 닫았다.


“방금도 그렇잖아. 날 이길 수 있으면서. 굳이 져줄 이유가 있어?”


레오나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우연이라고 해명해도 믿을 것 같지 않네.”

“솔직히 말해봐. 굳이 그렇게 숨기려 드는 이유가 뭔데. 애초에 진심이 있긴 해?”


가볍게 미소를 띠고 있던 레오나드의 입가가 일자로 굳었다.


레오나드가 입을 달싹였다.


“······어떻게 알았어?”


무표정한 레오나드의 낯빛에 나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날 내려다보더니 레오나드가 다시금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나름대로 자연스럽다고 자부했는데.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게 치명적이었나?”


레오나드는 잘 모르겠다는 듯 턱을 감쌌다.


“알려주지 않을래?”


대답하지 않자 레오나드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하게 긴장감이 돌아 주먹을 쥐었다.


“근데. 그거 알아?”


레오나드는 가볍게 웃더니 내게로 걸음을 옮겼다.


두 뼘 정도의 거리에 멈춰선다. 올리브그린 눈동자가 무심하게 내려다본다.


“너도. 되게 수상한 거.”


등골이 섬뜩하다.


지금껏 레오나드가 날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당황스러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 널 본 기억이 없거든. 근데 이상하지. 계속 시선이 따라붙더라고. 나한테 이성적인 호감이라도 있는 건가 넘겼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그치?”


대체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예전부터 인 것 같다.


“살기까진 아닌데. 그거랑 비슷한 눈빛.”


나는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내가 그랬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눈으로 잠자코 보더니 말했다.


“지적해줘서 고마워. 다음부터는 주의할게. 티타니아.”


유독 이름에 강세를 준 레오나드가 싱겁게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를 붙잡지 않고 그저 건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런 놈을 대체 어떻게 해야 동료로 영입할 수 있는 건지.


제일 어려운 인물일 거라고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이제야 현실로 와닿는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레오나드가 나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감각이 예리하다는 걸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 저렇게 세밀하게 눈치채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실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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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22.10.18 3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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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22.10.11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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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22.10.09 5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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