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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32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12 23:55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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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35화

DUMMY

어깨까지 닿는 자줏빛 머리카락은 발을 내디딜 때마다 힘차게 흔들렸다.


그런 로사의 뒤로 나탈리와 로브를 입은 두 명이 쫓아오고 있었다.


로사의 올라간 눈꼬리는 평소보다 더 날카로웠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곧장 조반니의 반대쪽 뺨을 갈긴다.


“악!”


찰진 소리가 울리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조반니.


로사는 눈에 잔뜩 힘을 주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녹빛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뺨을 타고 턱으로 그리고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눈물샘은 고장 난 것처럼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냈다.


나탈리는 씁쓸한 얼굴로 다가와 로사의 어깨를 감쌌고 그녀에게 기대 고개를 묻는다.


억누른 울음소리가 서럽기 그지없었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던 조반니는 돌연 악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어째서 내가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한단 말이냐!”


고개를 마구 내젓는다.


그때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인영 중 하나가 로브를 뒤로 넘겨 얼굴을 드러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 흉터가 남은 얼굴.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로도 줄곧 착취를 당해온 여자였다.


그녀는 독기 서린 눈빛으로 조반니의 뺨을 때렸다. 얼마나 울분에 차 있는지 두 손으로 번갈아 가면서 계속해서 뺨을 내려쳤다.


“그걸 정말로 모른단 말이야? 난! 난 너 때문에!”


조반니의 고개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뒤늦게 팔을 버둥거리며 외쳤다.


“그, 그만, 그만둬!”


그녀는 이를 갈면서 가차 없는 손속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러자 기사들이 조반니와 함께 뒤로 물러난다.


“거기까지만 하십시오. 이 자는 앞으로 폐하의 명을 받들어야 합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뺨을 내려치던 행동을 멈췄다.


조반니의 부풀어 오른 얼굴은 마치 붕어처럼 보였다. 기절한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


그녀는 숨을 가다듬으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네. 그래야죠. 저자는 평생을 광산 노예로 썩어야 하는데 여기서 죽으면 큰일이죠.”


나는 유일하게 아직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히스에게 조반니를 눈짓해 보였다.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상황이 진정되자 기사들은 정신을 잃은 조반니를 질질 끌고 밖으로 연행해 나갔다.


한차례 정적이 감돌고 베네딕트 교수는 히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구나.”


히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베네딕트는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분명 넌 내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지. 이름이 히스였던 것 같은데?”


히스는 뜸을 들이더니 고개만 끄덕였다.


“혹시 정원의 향기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나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 같은 베네딕트를 아니꼽게 봤다.


피땀을 흘려 수확할 일만 남은 농부에게 농작물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쪽은 구상 중인 계획도 있단 말이다. 절대로 양보해줄 수 없지.


“거기는 귀족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귀족이 아니에요. 그러니 말을 물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베네딕트가 히스를 더 꼬드기려고 들까 봐 얼른 나섰다.


“교수님.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이만 가주시죠?”


베네딕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꿋꿋하게 말했다.


“······귀족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까 한 번 고려해보렴.”


끈질긴 베네딕트를 흘겨보는데 교수는 금방 발을 내빼며 인사를 했다.


“그럼 공녀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뒤돌아 빠져나가는 베네딕트를 보다가 문득 황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는 재상과 함께 재판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직접 황제가 나선 이유는 추측해볼 수 있는 가닥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백날 추측해봤자 판단 재료가 적은지라 명확한 답을 내릴 방법이 없다. 어쨌거나 잘 풀리긴 했으므로 나는 금방 생각을 털어냈다.


눈물을 닦아내고 한층 진정된 모습의 로사가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공녀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다소 떨떠름한 눈으로 로사를 보았다.


틱틱거리던 인물이 갑자기 예를 차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뭐라고 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말했다.


“결국. 연구는 돌려주지 못했네요.”


작정하고 빚을 잔뜩 달아둘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되었지 뭐야.


로사는 후련한 얼굴로 웃었다.


“조반니에게 비참한 최후에 만족해요. 그리고 앞으로 미래가 생겼으니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요. 빚은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니까.”

“그건 저도 바라던 바랍니다.”


호호 웃는 로사를 보자니 소름이 돋을 것 같아 덧붙였다.


“그냥 평소처럼 하시죠. 어차피 아카데미는 신분에 고하가 없잖아요?”

“······여기는 밖인데요?”


듣고 보니 그랬다.


밖이니 존댓말이 맞는 것인가 고심에 빠졌다.


문득 히스가 로브를 벗어 팔에 걸치는 모습을 발견했다.


교복을 입은 히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조끼도 없이 와이셔츠만 걸쳤는데 단추를 두어 개 풀고 있었다.


빗장뼈가 드러나 시원스럽게 보였다.


느슨한 듯 자유분방해 보이는 모습의 히스는 의외로 담백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어색한 듯 말미에 존댓말을 붙이는데 묘하게 공감이 가서 웃음을 터트렸다.


히스는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덩달아 나탈리도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티타니아.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꼭 갚을게.”


물론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조반니를 대신해 자리를 채울 새로운 교사를 동부 사람으로 밀어 넣을 작정이었다.


동아리 인물들을 포섭하여 전부 동부로 끌어들인다.


제법 괜찮은 생각이 아닌가.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로사가 끼어들었다.


“나탈리! 공녀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앗. 그래도 공녀님이 괜찮다고 하셨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넌 또 그걸 그대도 듣니?”


로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탈리를 혼냈다.


제일 비쭉거리던 로사가 저러니까 적응이 안 된다.


“그냥 다들 편한 대로 말하죠? 나도 편하게 말할 테니까.”

“그래도 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는 듯 물어보는 히스를 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어느 정도 상황이 일단락된 것 같다.


“그럼. 이제 다들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거죠?”

“공녀님.”


아참. 그리고 보니 이쪽도 있었지.


고개를 향해보니 짧은 머리의 여자가 보였다.


어느덧 가까이선 그녀가 정중히 머리를 조아렸다.


“공녀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귀족들이라면 다 똑같은 족속들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공녀님을 뵙고서 제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글쎄다.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만.


결연한 눈빛으로 여자가 말했다.


“저는 알리샤라고 합니다. 제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세요. 허락해주신다면 수족이 되어 공녀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이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몇 년 안 된 그녀의 성과가 조반니에게 보탬이 될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할까.


히스가 상식선을 벗어나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바람에 가려져 버렸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은 재능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네요.”


알리샤의 검은 눈동자에 감격이 깃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공작가에 미리 서신을 보내둘 테니 동부로 가세요.”


양손을 꼭 쥐고서 알리샤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나저나 얼굴에 난 흉터를 보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조반니의 손속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흉터도 치료해주라고 해야겠다.


“저는 오후에 수업이 있어서요. 이만 들어가 봐야겠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알리샤를 제외하고 나머지 동아리 부원과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아카데미로 향하는 마차 안.


노곤했던 모양인지 로사와 나탈리는 사이좋게 부둥켜안은 채 잠들었다.


히스는 창가 틀에 턱을 괴고서 밖을 바라봤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그의 앞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희미하게 머금고 있는 미소.


“생각보다 담담해보이네요.”


그렇게 묻자 히스는 회색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본다.


“연구를 되찾지 못해서 억울하다든지 조반니를 보내버려서 후련하다든지 뭔가 그런 게 없어서.”


다들 조반니에게 분노를 뿜어내고 있는 와중에 혼자서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던가.


나는 그의 초연한 태도에 호기심이 샘솟았다.


히스는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응. 잘 모르겠어.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니 그게 사람이 가능한 일일까.


마치 무언가를 도려낸 것 같았다.


히스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 * *


사치스럽게 꾸며진 황제의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인물이 들어온다.


황제는 품위 없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여태 가만히 서 있는 퀘이드를 보며 황제가 권했다.


“자네도 앉게.”

“송구합니다. 폐하. 저는 일이 밀려 있어서 업무로 돌아가 봐야 할 듯합니다.”


귀염성 없이 딱딱한 퀘이드의 태도에 황제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런가. 자네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거늘.”

“그러셨습니까.”


양팔을 벌려 소파를 감싸고 편하게 고개를 기댄 황제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가 화통한 웃음소리를 냈다.


“으하하!”


방 안이 진동하는 듯한 커다란 웃음소리에 퀘이드는 덩달아 미소를 입에 걸었다.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퀘이드가 말했다.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시는군요.”


황제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달며 턱을 감쌌다.


“재미있지 않나?”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티타니아 르웰.”


퀘이드는 곱슬머리를 빙빙 꼬며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그런가요.”


황제는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며 눈을 빛냈다.


“여전하더군. 10년 전이었나. 그녀를 만나 본 적이 있었다. 고작 6살쯤 되었을까.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자네는 모를 거야.”

“호오······.”


퀘이드는 감탄사를 뱉고는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며 잠자코 입을 닫았다.


“공작의 핏줄이니 남다른 구석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더 걸출한 인물이더군.”


6살쯤 되는 아이를 보고 걸출한 인물이라고 느꼈다니.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에 퀘이드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점이 말입니까?”


황제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자네는 그녀를 만나본 소감이 어땠나?”

“음. 그러네요.”


퀘이드는 검지로 머리카락을 한참이나 괴롭히고서야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는 정상이다?······워낙 소문이 안 좋아서 우려스러웠는데 그 정도는 아니구나 하고 안심했습니다.”

“소문을 맹신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만······.”


퀘이드는 머리를 털더니 뒤이어 말했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조금 전에 지나쳐 가며 인사를 했더니 제게 고개를 숙이더군요. 아마 영애는 제가 누군지 몰랐을 텐데······상당히 의외였습니다.”


예상보다 시시한 감상이라며 황제는 숨을 내뱉었다.


함께 이 기분을 공유하고 싶었으나 마땅히 그럴 사람이 없어 유감스럽다고 황제는 생각했다.


“기대되는구나.”


황제는 뒷말을 삼켰다.


“그렇습니까.”


무심한 퀘이드의 반응에 황제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 히스라는 아이도 대단하더구나.”

“저도 놀랐습니다만. 근데 그게 사실일까요? 워낙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 심판의 천칭을 사용하지 않아도 됐던 겁니까?”


심판의 천칭은 진의를 가려주는 신물.


황제는 의외로 티타니아라는 인물을 제법 신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가져온 자료가 사실일 거라 판단했다.


그러니 굳이 천칭을 사용하여 서로 손해를 볼 필요는 없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니.”


퀘이드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하지만 조금 아쉽네요. 사실이라면 황실 연금술사로 데려오고 싶은 인재였는데 말이죠.”

“글쎄. 영애가 쉽게 놓아주진 않을 듯싶던데?”

“그렇습니까······.”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하는 퀘이드를 보며 황제는 답답함을 느꼈다.


“됐다. 일이나 하러 가라. 짐도 공작을 만나러 가봐야겠으니.”


소파에서 일어나는 황제를 보며 퀘이드가 씁쓸한 표정을 했다.


“저를 붙잡으신 건 폐하신데 말이죠.”


고개를 가로젓는 퀘이드를 못마땅하게 본 황제는 대꾸 없이 걸음을 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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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22.10.15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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