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49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14 23:55
조회
41
추천
1
글자
12쪽

37화

DUMMY

헨리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다.


‘갑자기 여기서 운다고?’


헨리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도트무늬 손수건이 눈물로 젖는다.


“으흑흑.”


헨리는 손수건에 코를 흥하고 풀었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


나는 도통 헨리의 감성을 따라갈 수 없었다.


눈 밑이 붉어진 채로 미소를 보이더니 말했다.


“티타니아 양이었죠? 고맙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미처 생각 못 했네요. 저희 할아버지께서 그러셨죠. 참된 농부란 잡초를 과감하게 뽑을 줄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 운을 떼기 시작한 헨리는 머뭇거리더니 덧붙여 말했다.


“최대한 여러분에게 좋은 거름이 되고 싶어 많은 것들을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너무 과했던 모양입니다······.”


헨리는 코를 킁 들이마시면서 손수건을 차곡히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내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조별 과제는 일단 그대로 진행하고 과제 분량은 조금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이번 주는 과제를 따로 내드리지 않겠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잘 풀린 듯했다.


헨리는 잠깐 세수를 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레베카가 손바닥을 입가에 세우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헨리 교수님 신발 말이야.”

“······.”

“나는 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헨리 교수님이 패션 감각이 있으셨나 봐. 사실 나는 그런 쪽으로 관심이 없어서 몰랐어! 보다 보니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저런 신발 하나 살까.”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그거 아니야. 레베카.


처참한 심정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여튼! 티아. 말 잘했어. 다음 주 과제가 없어서 너무 좋다!”

“그러게······."


기력 없이 대꾸를 했다.


문득 아직 레베카에게 같이 파티를 짜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렸다.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아. 레베카 너 중급검술 듣는다며?”


레베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도 중급검술 수업 듣거든. 헤럴드한테 들었어. 몸이 안 좋아서 같이 안 왔다고 했더니 엄청나게 걱정하던데?”

“걔가? 그럴 애가 아닌데.”


믿기지 않는 걸 넘어서 미간을 찡그리는 반응이었다.


완전히 넋 나간 헤럴드의 반응과 레베카의 의아한 얼굴이 교차하면서 웃음이 나온다.


“아무튼, 그래서. 거기서 친해진 친구랑 같이 파티 짜기로 했는데 레베카도 같이하지 않을래?”

“진짜? 너무 좋아.”


덥석 수락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


셔츠 앞섬이 축축하게 젖은 헨리가 강의실에 나타났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리포트는 나중에 나가실 때 내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오늘은 2챕터에······.”


헨리는 누가 봐도 직접 준비해온 공들인 자료를 화면에 띄운다.


‘왠지 짠하네.’


지적을 받은 뒤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였다. 중간중간 다른 화제로 넘어가려다가 멈칫한다.


“음, 그래서······.”


그래도 저번보다는 한결 듣기가 수월했다.


앞부분에서 시간이 지체되었던 터라 수업은 정각에 끝났다.


레베카와 아침에 급하게 만나서 해치운 과제를 제출하자, 헨리는 경직된 채 입꼬리만 들어서 웃었다.


“고생하셨어요.”


어색해하는 헨리에게 고개를 까딱이고 강의실을 나왔다.


뒤따라 나온 레베카가 옆으로 파고들더니 팔짱을 꼈다.


“좋아! 드디어 해방이다. 티아는 이제 뭐 할 거야?”

“난 오늘 들릴 때가 있어.”

“오늘도 바쁘구나. 같이 단련하러 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레베카와 함께 훈련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만. 아쉽게도 오늘은 예정이 있었다.


주말에 카페에서 만났던 여학생.


미셸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이미 마리를 통해 쪽지를 보내둔 참이었다.


레베카와 스몰토크를 나누며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한 여학생이 앞으로 끼어든다.


물음표를 띄우면서 여학생을 바라봤다.


머리를 하나로 단정하게 묶은 금발 여학생이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티타니아 영애. 갑자기 길을 막아서 죄송해요. 영애와 꼭 대화하고 싶어서 무례를 범했네요.”


무례라는 걸 알면서도 말을 걸 정도면 이유가 있겠거니.


가만히 여학생을 응시했다.


미소를 지으며 여학생이 말했다.


"티타니아 영애께서 아직 사교회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베르세르크 사교회를 고려해보시면 어떠신가요. 저희는 영애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분명 3대 사교회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글쎄요. 제안 감사합니다. 고민해볼게요.”

“네. 모쪼록 영애께서 긍정적인 답변을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볼일이 끝난 여학생은 깔끔하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떴다.


“티아. 저기 가입할 거야?”


레베카의 목소리에 돌아보자 와락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저 여자애. 여긴 보지도 않더라. 되게 그렇네······.”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듣고 보니 그랬다.


여학생은 계속 나만 보고 있었으니. 레베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셈이다.


대놓고 무시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


굳이 레베카에게 속일 이유도 없었기에 담담히 대답했다.


“애초에 난 사교회에 들어갈 마음이 없어서 말이야.”

“헉. 아예 안 들어간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레베카가 재차 물었다.


“근데 티아는 대귀족인데 안 들어가도 돼?”

“응. 아마도.”


충격받은 얼굴을 하더니 뒤늦게 웃음을 깔깔 터트린다.


“근데 나도 사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 그냥 하하 호호하면서 티타임이나 한다던 걸. 내가 북부 사람이라서 그런가. 솔직히 그동안 단련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조금 다른 의미였지만.


“그러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모르겠어.”


레베카는 공감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맞아. 역시 티아랑 나는 잘 맞는다니까!”


기분이 좋아진 레베카가 배시시 웃었다.


* * *


복도에 똑같이 생긴 문이 주르륵 줄지어 있었다. 옆으로 쓰여있는 방 넘버.


‘3017호’라고 적힌 글자를 확인하고 방문을 두드렸다.


곧바로 문이 열린다. 고개를 내민 것은 고동 머리 여학생. 미셸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다.


“안녕. 들어가도 되지?”


그러자 미셸은 문을 활짝 열고 호다닥 옆으로 물러섰다.


“아, 안녕하세요! 당연하죠. 들어오세요!”


문을 닫고서 로브 모자를 뒤로 넘겼다.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다. 미셸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제법 시간이 흘러서 어떨까 했는데.


아직 매료안의 효과가 떨어지지 않았나 보다.


평민 여자 기숙사라 별 기대가 없는데 의외로 1인실에다가 방도 넓고 소파도 있다.


미셸은 소파를 양손으로 손짓했다.


“앗, 여기 앉으세요.”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미셸은 차와 과자를 내오더니 맞은 편에 자리했다.


상기된 뺨에 손바닥을 대며 미셸이 말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아카데미 학생분이셨군요······.”


미셸이 실없이 히죽히죽 웃더니 표정 관리를 한다.


“혹시 절 잊으신 건 아닐까······마음을 졸였지 뭐에요. 그래서 수소문을 하려고 했는데······저를 이렇게 만나러 와주시다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경영학과라고 했던가?”

“기억하고 계셨군요! 맞아요. 부모님께서 조그마한 상단을 운영하고 있어서 저도······근데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의외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단이라······.”


생각에 빠져있는데 미셸이 급급하게 덧붙인다.


“앗! 사실 조그마한 상단은 아니에요. 고야라는 상단인데 혹시 들어본 적 있으실까요?”


마치 내게 어필을 하는 듯한 모양새였는데 애석하게도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미셸이 눈을 크게 떴다.


“고야 상단이 중앙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민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상단이에요.”


차라리 상단에서 경험을 쌓는 게 낫지 않나 싶어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그러면 굳이 아카데미에 다닐 필요가 있어?”


미셸은 고동색 눈동자를 빛냈다.


“졸업하면 작위를 얻을 수 있는걸요. 그리고 이건 대외비지만······.”


가까이 와보라는 듯 손짓한다. 둘 밖에 없는 데 뭐 하는 건가 싶다만. 흔쾌히 귀를 대주었다.


“고야 상단은 아직 연줄이 없어서 귀족분들에게 납품하지 못하고 있어서요.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귀족분들과도 커넥션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랍니다.”


아무렴. 당사자가 나보다 더 생각을 많이 했겠지.


평민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어렵다더니. 인재는 인재인지 제법 야무지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음을 걸쳤다.


“마침 잘 되었는걸. 미셸. 혹시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


미셸은 화들짝 놀라더니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오른다.


“그, 그 말씀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나는 찜찜한 눈으로 미셸을 보다가 말했다.


“안 그래도 상단이 필요했거든.”


미셸은 약간 실망한 듯 숨을 내쉬었다.


“저, 저는 너무 좋은데 부모님께서 허락하실지······모르겠어요.”


실제로 내가 바라는 것은 고야 상단에서 원하는 바와는 거리가 있다.


고야 상단은 귀족들에게 물품은 유통하고 싶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내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단이다.


“르웰 공작가라고 들어본 적 있어?”


미셸은 어리둥절하며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빛이었다.


“실은 내가 거기 후계자거든.”

“네에?”


미셸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의심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르웰 공작가의 후계자는 은발에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모습은 너무 눈에 띄잖아?”


직접 크로스백에서 안경 아티팩트를 꺼내 보여주자 미셸이 놀라워 한다.


“······소문은 무성하더니. 다 거짓말이었나 봐요. 르웰 공작가 후계자분께서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셨을 줄이야.”


그래도 믿지 않으면 은발로 되돌린 모습이라도 보여주려고 했더니 순순히 믿는 눈치였다.


“뭐. 소문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그리고 난 굳이 고야 상단이 아니어도 상관없거든. 어차피 돈은 많으니까 상단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 그저 믿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한 거지.”


미셸은 환하게 웃었다.


“제가 공녀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정말 기쁜 일이네요!”


아직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매료안을 믿을 수는 없는 노릇.


조금 더 확실한 게 필요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미셸. 난. 사람을 잘 안 믿어.”


가만히 바라보자 미셸은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켰다.


“맹약을 받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까?”


그러자 미셸은 뺨을 붉히며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좋아요. 공녀님께서 저를 신용해주신다면 얼마든지······.”


매료안의 위력이 상당히 강한 것 같다.


얼마나 내게 홀려 있는 건지.


그동안 계획했던 일을 관두고 쉽사리 몸을 내맡긴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게 해줄게.’


허락이 떨어졌으니 곧바로 미셸에게 배신하지 않을 것을 맹약으로 걸었다.


“좋아. 그럼 내 계획을 말해줄게.”


미셸은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보았다.


“일단 상단을 꾸리도록 해. 고야 상단을 꼬시든지 새로운 상단을 만들든지 방법은 상관없어. 다만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

“네. 알겠어요!”


미셸은 두 주먹을 꼭 쥐고서 결의에 찬 눈빛으로 끄덕였다.


“준비가 끝나면 식량을 계속 사들일 것.”

“식량을 말인가요?”

“그래. 단.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금씩 사들이도록 해. 할 수 있겠어?”


괜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할 생각은 없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공작 가문이 전쟁을 꾸미는 것처럼 보여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어째서 식량을 사들이시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앞으로 많이 필요하게 될 것 같거든.”


미셸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대기근이라도 오는 걸까요?”


얼추 맞게 짚었다.


이미 맹약을 했으니 사실대로 말해줘도 상관없겠지만. 그렇다고 괜히 멸망을 입에 올려 불안감을 부추길 이유는 없었다.


나는 어물쩍 얼버무렸다.


“지켜보면 알게 될 거야.”


미셸에게 재차 입단속을 시키고 일어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2 52화 22.10.29 42 1 12쪽
51 51화 22.10.28 36 0 13쪽
50 50화 22.10.27 32 0 12쪽
49 49화 22.10.26 34 0 12쪽
48 48화 22.10.25 29 0 12쪽
47 47화 22.10.24 41 0 12쪽
46 46화 22.10.23 36 1 12쪽
45 45화 22.10.22 38 1 12쪽
44 44화 22.10.21 37 1 12쪽
43 43화 22.10.20 38 1 12쪽
42 42화 22.10.19 43 1 12쪽
41 41화 22.10.18 37 1 13쪽
40 40화 22.10.17 39 1 12쪽
39 39화 22.10.16 40 1 13쪽
38 38화 22.10.15 40 1 12쪽
» 37화 22.10.14 42 1 12쪽
36 36화 22.10.13 43 1 11쪽
35 35화 22.10.12 39 1 12쪽
34 34화 22.10.11 40 1 11쪽
33 33화 22.10.10 45 1 12쪽
32 32화 22.10.09 51 2 12쪽
31 31화 22.10.08 45 2 12쪽
30 30화 22.10.07 45 2 12쪽
29 29화 22.10.06 48 2 11쪽
28 28화 22.10.05 50 2 12쪽
27 27화 22.10.04 49 2 12쪽
26 26화 22.10.03 55 2 12쪽
25 25화 22.10.02 49 1 11쪽
24 24화 22.10.01 49 1 12쪽
23 23화 22.09.30 48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