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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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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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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1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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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3화

DUMMY

공작 측에서는 빠르게 대응했고 덕분에 이른 시일로 재판이 잡혔다.


여기까지 온 이상 조반니가 재판을 엎을 가능성은 제로. 그의 처우는 내 손아귀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재판이 시작하기 20분 전.


나는 제국대법원 대기실에 도착했다.


화려한 금색 기조로 꾸며진 대기실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방안에서 은은히 풍기는 향기는 마치 오래된 책냄새와 비슷했다.


넓직한 공간을 둘러보다가 갈색 가죽 소파로 가서 앉았다. 감상을 느낄 새도 없이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울린다.


똑똑―.


나는 심호흡을 하고 입실을 허 했다.


“들어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고풍스러운 안경에 달린 은사 줄이 인상적인 노인.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모습의 집사는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격조했습니다. 아가씨.”


집사의 인사는 군더더기가 없어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그야말로 집사의 표본 같은 모습.


공손해 보이나 틈이 없는 태도는 안심할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미 집사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얼굴을 보게 되니 긴장으로 손끝이 굳는 느낌이었다.


나는 얼른 본론을 꺼냈다.


“······그래. 부탁한 건 챙겨왔겠지?”

“예. 여기 있습니다.”


집사는 기품있는 품새로 자료를 건네주었다.


나는 오래 말 섞기가 부담스러웠던지라 자료를 받고서 곧바로 집사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고생했어. 나가봐.”

“곧 있으면 공작님께서도 오실 겁니다.”

“······.”


아니. 그 양반은 할 일이 그렇게 없나.


고작 뺨 좀 맞았다고 헐레벌떡 쫓아오는 공작이라니 얼마나 팔불출인 거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연달아 얼굴 보기 껄끄러운 사람 1위 2위를 보게 생겼다.


집사는 군말 없이 공손히 물러났다.


“그럼 저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집사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맘 편하게 소파에 몸을 묻었지만 소파가 딱딱해서 기대도 편하지 않았다.


결국 허리를 세워 바르게 앉았다.


주섬주섬 크로스백에서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로사에게 건네 받은 자료로 조반니가 그동안 착취해온 내용과 명단이 적혀있었다.


나는 공작가에서 조사한 내용과 대조해보다가 실소를 터트렸다.


"조반니 마틴. 진짜 어지간하네."


이건 뭐.


자기 지분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교수 직위도 조반니의 부친이 약초학 교수로 자리를 지키다가 연줄로 교수가 된 케이스였고.


자잘한 연구성과 두어 개를 빼고 전부 학생들의 성과를 탈취한 것이었다. 초반에는 변형을 하는 성의라도 있더니 나중에 가서는 아예 그대로 갖다가 썼다.


자료를 꼼꼼히 확인해봐도 조반니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적이 없다.


우습게도 조반니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약 3년 전.


히스의 연구를 갈취하면서부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인 히스가 조반니의 몸집을 불려주고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었다.


‘콩고물이 적었으면 조반니도 알아서 관뒀겠지.’


나는 빼곡이 적힌 히스의 이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얼마나 착취를 한 건지.


연구성과라는 게 이렇게 단기간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문외한인 내가 얼핏 봐도 연구의 수준이 높아 보인다.


‘괜히 수제자니 뭐니 한 게 아니었구나.’


히스의 비중이 70%는 거뜬히 넘어 보인다. 도저히 범인의 수준으로 볼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치료제를 만든 당사자가 히스가 아닐까.’


하는 짓이 영 한량 같기만 하더니 상당히 의외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난입해 들어왔다.


“티아!”


범인은 르웰 공작.


르웰 공작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처럼 아롱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연신 확인했다.


“아가. 괜찮은 거니?”


공작의 애정어린 눈빛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 괜찮아요.”


공작은 유심히 나를 보고서 덩달아 숨을 크게 내쉬며 안도하더니 눈에 쌍심지를 켰다. 청명한 하늘색 눈동자가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세상에 대체 어떤 놈이 감히 어딜 우리 딸을 건든단 말이냐!”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조반니 마틴이요.”


공작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분노를 토해냈다.


“조반니인지 뭔지 어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놈이 감히! 당장 사지를 찢어서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 놈! 천하의 못된 놈!”


공작의 분노가 어쩐지 웃음이 났다.


엄청 화난 얼굴로 저주를 퍼붓고 있는데 그런 것치고는 욕을 너무 못하는 거 아니며.


웃는 날 보더니 공작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지금 웃을 일이 아니다. 아빠는 지금 진지해.”


나는 결국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공작은 넋이 나간 얼굴로 날 보더니 한층 진정된 듯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기분이 괜찮아 보여서 같아 다행이구나.”

“아뇨. 좋진 않은데요.”


상당히 기분이 더럽다.


제 발로 자처해서 걸어 들어가긴 했다만. 뺨을 얹어 맞고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공작은 다시 호들갑스럽게 외쳤다.


“제이든! 그놈을 당장 끌고 와라! 내가 직접 그놈의 사지를!”


공작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자나 웃음이 나온다. 가만히 냅뒀다가는 무슨 일을 저질러도 저지를 것 같아서 얼른 공작의 말허리를 잘랐다.


“제 복수는 제가 직접 해야죠.”

“······그래. 그럼 아빠의 몫까지 열 배 아니. 백 배로 갚아주거라.”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까닥였고 공작은 내가 들고 있는 자료에 관심을 주며 힐끔거렸다.


“음? 근데 그건 공작가에서 보낸 자료가 아닌 듯싶은데······.”

“읽어 보실래요?”


자료를 내밀어주자 공작이 냉큼 받아들었다.


“그러마.”


눈으로 훑어 내리더니 공작의 냉한 눈매가 동그래졌다.


“이건······. 보통 놈이 아니구나.”

“네. 천하의 몹쓸 놈이죠.”


공작은 눈썹을 까닥거리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음. 그것도 그런데. 이 히스라는 아이 말이다. 정말 대단하구나. 어떻게 이 나이에······. 꼭 우리 동부로 영입시키고 싶은 인재구나.”


나는 문득 호기심에 물었다.


“그 자료가 조작이라고 생각하진 않으세요?”

“믿기 어려운 자료긴 하지. 한데 우리 딸이 굳이 자료를 조작할 이유가 없잖니.”

“아니면 제가 속아 넘어간 거라면요?”


공작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내 딸이 그만한 조사도 안 했을까 봐? 아빠는 누가 뭐래도 우리 티아를 믿는단다.”


특별히 내가 한 조사가 없어서 푹 찔리는 기분이라 나는 에두르며 말했다.


“뭐. 그거야 재판해 보면 알게 되겠죠.”


공작에게 자료를 다시 회수한 뒤 시간을 확인하고 일어섰다.


드디어 재판의 시간이다.


자료는 잘 챙겨서 옆구리에 끼웠다.


제국대법원 안으로 발을 들이자 웅성거리는 소음이 잦아든다. 뒤따라 들어온 공작은 금방 누군가에게 발걸음을 잡히고 말았다.


“공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는 방청석을 채우고 있는 머리의 수를 보고 놀랐다.


대체 다들 얼마나 소식이 빠른 건지 하루 만에 열린 재판의 방청석이 인산인해였다.


가운데에는 재판장의 자리가. 옆으로는 고소인 석과 피고인 석이 마주 보고 있다.


방청객은 2층과 뒤편에 좌석이 마련되어있었다.


고소인 석 앞에 걸음을 멈췄다.


방청석 쪽에 있는 로브를 입은 인영들을 확인하고 한숨을 돌렸다.


그들은 로브의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히스와 나탈리. 로사 그리고 이미 아카데미를 졸업한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조반니는 충격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너, 넌!”


나는 조반니에게 한껏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두 명의 하인은 커다란 황금빛 천징을 옮겨놓고 퇴장했다. 뒤이어 재판장과 신관이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선다.


하얀색의 신관복을 입은 신관이 『진리의 천칭』 앞에 서고 검은 복장을 한 재판장은 단상 위에 섰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의 재판장은 고요한 눈빛으로 선언한다.


“그럼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순간 뒤편에 문이 활짝 열리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쳐다보자 긴 망토를 늘어트린 황금빛 머리의 사내가 보였다.


‘······황제가 대체 여길 왜 오는데?’


제국의 황제 로스칼리온.


빛을 등지고 선 황제의 머리칼 위로 빛이 눈부시게 내려 앉았다. 심해를 닮은 푸른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앞을 응시한다.


그의 뒤로 행렬이 줄줄이 뒤따른다. 기사들과 메이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하나.


과연 황제라고 할까. 대동하는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많아 봐야 30대 초에서 중반 정도로 보일 정도로 황제는 실제 나이보다 휠씬 젊어 보였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귀족들이 하나 같이 머리를 조아린다.


나 역시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들 고개를 들게.”


명이 떨어지고 수초가 지난 후에야 귀족들이 허리를 세운다.


황제는 무척이나 여유로운 태도로 좌중을 둘러본다.


공작을 발견한 황제는 반갑게 눈을 빛냈고 공작은 무언가 캥기는 게 있는 얼굴로 눈길을 피한다.


“오호. 르웰 공작 참으로 오랜만에 뵙소?”

“······예. 폐하.”

“아무리 불러도 동부에서 무거운 걸음을 뗄 생각을 하지 않더니 이것 참 서운하구려.”

“송구합니다. 제 딸아이의 일인지라 발걸음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제와 공작은 짧은 환담을 나누었다.


재판장이 동공이 심히 떨리더니 얼른 단상 위에서 내려왔고 그 모습을 발견한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네. 오늘은 그저 재판을 보러 온 방청객일 뿐이니.”

“소신이 어찌 감히 폐하보다 위에 설 수 있단 말입니까. 말씀을 거둬주십시오.”


황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못 이기는 척 말했다.


“흐음.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짐이 재판을 주관하는 수밖에.”

“예. 폐하.”


재판장이 깊게 허리를 숙이고 황제는 직접 단위에 올라섰다.


갑작스러운 변수였다.


황제가 직접 등판하여 재판을 주관하겠다니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어 떨떠름하다.


기사들은 황제의 좌우로 갈라져 대열을 섰고 그 뒤로 메이드들이 길게 늘어선다.


황제의 뒤로 정체모를 남자가 섰다.


태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황제가 낮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럼 재판을 시작하겠네.”


황제는 무심한 눈길로 조반니를 한 번 보고는 내게로 눈동자를 고정했다.


나도 모르게 황제의 눈길을 외면하며 바닥을 노려봤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한 10년 만인가.”


지금 이거 나한테 말을 건 건가. 당황하며 입을 꾹 닫으며 고개를 들었다.


황제는 역시나 날 보고 있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울고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


“······예. 폐하.”

“짐이 기억나지 않는가 보군. 하긴 그때는 많이 어렸으니.”

“······.”


재판을 시작한다더니 왜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건단 말인가.


위가 쓰려왔지만 꿋꿋하게 표정 관리를 했다.


“마틴 자작이라고 했던가.”


조반니는 화들짝 놀라 흠칫하더니 곧바로 고개를 깊게 숙였다.


“예! 폐하!”

“참으로 간도 크구나. 르웰 공작이 무섭지 않던가?”


그러자 조반니는 입술을 아래로 늘어트리며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짓더니 비굴하게 말했다.


“정말로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폐하! 소신은 당연히 평민인 줄 알고······”


황제가 서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재판장. 저자가 벌써 자백을 했는데 굳이 재판이 필요한가?”


조반니는 재판장이 발언하기 전 재빨리 끼어들었다.


“소신은 정말로 억울합니다. 폐하! 안타깝게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소신은 아카데미의 교수로 재적 중이며 또한 학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인재입니다. 폐하께서 인재를 중하게 여기신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소신은 제국을 위해 헌신을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참으로 당돌하구나.”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황제가 뒤편에 선 남자에게 물었다.


“자네는 저자가 누군지 아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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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22.10.15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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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22.10.12 39 1 12쪽
34 34화 22.10.11 40 1 11쪽
» 33화 22.10.10 46 1 12쪽
32 32화 22.10.09 51 2 12쪽
31 31화 22.10.08 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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