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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43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13 23:55
조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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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36화

DUMMY

아카데미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화 소리가 내 귀에 닿는다.


“와. 쟤 맞지?”

“마음에 안 든다고 교수를 엄청나게 팼다더라. 교수가 저항하려다가 조금 부딪쳤는데 고소한 거래.”

“진짜?”


금발 머리와 적발이 섞인 학생들.


동서부 귀족이 사이 좋게 지낼 것 같진 않고 중앙과 서부로 이뤄진 그룹인 듯 하다.


얼굴들이 낯설지 않은 걸 보니 클래스메이트였다.


“······들렸나?”

“야, 야 가자.”


근래 들어 굉장히 귀가 밝아졌다.


지나오면서 벌써 비슷한 소문을 여러 차례 들은 참이었다.


온갖 추측. 일부가 왜곡된 소문. 심지어는 아예 골격이 달라진 소문들까지 퍼지는 중이었다.


이게 바로 망나니의 업보인 것인가.


정작 내가 기여한 바가 없는지라 몹시 억울하다. 다가가기만 하면 무슨 맹수라도 본 것처럼 도망가버려서 정정할 방법도 없다.


기어코 학생들의 뒤꽁무니를 쫓아서 일방적으로 해명을 쏟아내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그런고로 나는 반쯤 놓아버렸다.


이렇게 떠들든 저렇게 떠들든.


재판을 목격한 귀족들이 많으니 머지않아 사실을 알게 될 터였다.


무시하며 복도를 걸었다.


레오나드가 마나 생태학이 괴랄하다는 걸 눈치채기 전에 액기스를 뽑아 먹을 작정이었다만.


상황이 안 맞아서 미루다 보니 계획이 이뤄질 가능성이 영 소원해져 버렸다.


의욕이 파스스 식는 기분이었다.


기운 없이 강의실로 들어섰다. 학생들의 눈동자가 맹렬하게 꽂혀 든다.


무슨 하루아침 사이에 인기인이라도 된 것 같다.


자리로 향하며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배치로 앉아있는 인물들이 보인다.


눈으로 인사를 하는 레오나드와 딴짓 중인 토레스. 책상 위에 양팔을 올리고서 목을 길게 빼고 있던 레베카가 반갑게 외쳤다.


“티아. 엄청 대단한 귀족이었구나!”


레베카는 눈을 빛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럴 것 같긴 했어. 돈도 많아 보이고! 거기다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평범하진 않다 싶었어.”


대충 고개를 까닥였다.


레베카는 눈을 감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음 그렇구나.”


혼자서 뭔가를 납득하고 있는 레베카.


굳이 알고 싶지 않아서 묵묵히 레베카의 옆자리에 앉았다.


대각선에 앉아있던 토레스가 고개를 휙 돌리더니 불쑥 끼어든다.


“난 북부 귀족인 줄. 이름을 들으니까 떠오르긴 했는데 생각했던 이미지랑 달라서 매치를 못 했다니깐? 당연히 금발인 줄 알았지.”


하기야. 대귀족이 혼혈인 경우는 흔하지 않다.


레오나드도 이쪽으로 몸을 틀었다.


“어? 무슨 이야기야.”


금시초문인 레오나드의 반응에 토레스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뭐야. 아직 소문 못 들은 거야? 쟤가 걔잖아. 동부의 개망나니.”


바로 앞에 그 당사자가 있는데 그건 좀 너무하지 않냐.


듣는 개망나니가 기분이 나쁘다.


내 존재를 잊은 것 같은 토레스에게 환기를 시켜주기로 했다. 웃으며 검지로 날 가리킨다.


“나 여기 있는데?”


토레스는 멈칫하더니 어깨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상당히 얄밉다.


“미안해. 때리진 않을 거지?”

“그러게. 지금 마음이 달라질 것 같네?”


괜스레 소매의 단추를 풀어 접어 올리자 토레스가 깜짝 놀란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자비로운 티타니아님! 제발 살려주세요.”


뭔가 못생긴 포유류 동물을 닮았다. 웃겨서 웃음이 픽 난다.


"앞으로 주의를 해줬으면 좋겠어."


토레스는 머리를 빠르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이번엔 미어캣인가.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레오나드.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더니 토레스에게 작게 물었다.


“······망나니?”


거기서부터 막힌 거였냐.


아무리 레오나드가 시골 귀족이라지만 평민들도 아는 걸 백작 가문의 자제가 모른단 말인가.


'정말로 모르는 건지 정보를 수집하려고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레오나드의 진의가 의심스러웠으나 레베카와 토레스는 표면 그대로 덥석 믿는 눈치였다.


토레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레오나드. 너 진짜 서부사람 맞아?”


올리브그린 색 눈동자는 내게로 토레스에게로. 마지막으로 레베카의 얼굴까지 차례로 훑었다.


레오나드가 난처한 듯 웃었다.


“다른 귀족이랑 교류를 거의 안 하는 집안이라 소문을 잘 몰라.”


토레스는 영혼 없는 눈빛을 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한 거 같은데?”


호응해달라는 듯이 레베카와 나를 본다. 그러나 레베카는 레오나드를 편들었다.


“야아! 모를 수도 있지.”


금방 토레스가 물러난다.


“그렇게 반응하면 내가 뭐가 되냐······. 나도 뭐라고 하는 건 아니었거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레오나드의 어깨를 턱턱 두드렸다.


“이 형님만 믿어라.”


믿음직스럽게 윙크를 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손에 힘이 들어간 게 묘하게 레오나드를 무시하는 느낌인데. 원래 토레스가 저런 성격이었나?


나중에 레오나드가 빡쳐서 엿 먹이면 어쩌려고 저런단 말인지.


레오나드는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토레스는 만족스러워하며 레오나드의 목덜미에 팔을 둘렀다.


“레오나드. 너 아직 사교회 가입 안 했지?”

“응?”


레오나드는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얼굴이었다. 토레스는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럴 줄 알았지. 형님이 이번에 파비아노 사교회에 가입했걸랑.”

“그래? 축하해.”

“너 혹시 체스 할 줄 아냐? 거기 체스만 할 줄 알면 들어가는 게 어렵지 않더라니깐?”


나는 문득 원작이 떠올랐다. 사교회 가입조건이 까다로워서 결국 가입을 포기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저긴 왜 안 들어갔나 모르겠다.


“파비아노에 속해 있는 귀족이랑 체스 대결을 해서 10판 중에서 딱 3판만 이기면 돼.”


호기심이 들어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거 조건이 어려워 보이는데? 다들 잘할 거 같아.”


토레스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초심자들한테는 어렵긴 하지. 나야 뭐 어릴 때부터 계속했거든.”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격이었다.


아마 레오나드한테는 재롱을 부리는 걸 보는 느낌이 아닐까.


부자연스러운 구석 없이 레오나드가 감탄했다.


“대단하네. 난 안될 것 같아.”

“그래? 아쉽네. 체스만 할 줄 알면 개꿀인데.”


토레스는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을 끝으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자신감에 찬 토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이 가르쳐줄까?”


눈앞에서 흑역사를 쓰고 있는 걸 관람 중인 것 같아서 계속 듣고 있기가 괴롭다.


먼 산을 바라보는데 마침 헨리가 강의실에 들어오는 중이었다.


당당한 걸음으로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헨리는 따라갈 수 없는 패션 감각을 선보인다.


어째 지난번보다 더 심각하다.


왁스를 잔뜩 바른 머리는 한층 더 심각해져 있고. 거기에 체크 무늬를 도배한 강력한 조합을 자랑했다.


체크 무늬에 환장한 사람처럼 신발까지 깔맞춤.


더 어이가 없는 건 체크 무늬가 다 다르다. 보고 있자니 혼란스러워진다.


넥타이가 목을 바짝 졸라맨 걸 발견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핫, 다들 오랜만이죠? 여러분들이 손꼽아 기다렸을 마나 생태학 수업 날이 왔습니다!”


농담 삼아 던진 말인지 진심으로 말한 건지 모르겠다만. 공연히 참혹한 기분이 들어 이마를 감쌌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강의실이 고요해진다.


그런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헨리는 자신감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


“흠! 다들 과제는 잘 해오셨나요? 저는 여러분들이 어떻게 과제를 해왔을까 궁금해서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지지 뭡니까.”


나는 차마 눈을 뜨고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일단 저번 주까지 제가 명단을 받았습니다만. 생각보다 제출해주신 분들이 적더군요. 그래서 남은 분들은 제가 임의로 결정했습니다.”


슬그머니 눈을 떴다.


헨리는 벽면에 띄운 영상에 조별과 챕터를 적힌 종이를 비추고 있었다.


4챕터에 잘 적혀있는 이름을 발견하고 씁쓸해져서 레오나드의 뒷통수를 지긋히 노려봐줬다.


여전히 감이 좋은 레오나드는 뒷통수를 감쌌다. 나는 4챕터 명을 속으로 읽었다.


‘자연계의 현상을 주도하는 마력의 영향.’


얼핏 봐도 간단해 보이진 않는 챕터 명이라 절로 미간이 찡그려진다.


“네? 말씀하세요.”


누군가 손이라도 들어 올린 모양이었다.


“······교수님. 근데 과제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헨리는 입술을 모으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프리드리히가 말하기를 벽난로에 스프 데워먹기라고 했습니다. 이미 있는 불에다가 스프를 데우는 건 굉장히 간단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벽난로의 불이 꺼지지 않게 유지하기는······.”


한참이나 설명을 한다.


갑자기 화제가 튀더니 이번엔 프리드리히라는 인물에 대해 늘어놓는다.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부터 시작해서 평가와 생애까지 막힘 없이 이어진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까?”


질문한 학생은 타격감이 상당했는지 넋이 나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에. 이······이해했어요.”

“음. 좋습니다. 다른 속담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시간관계상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리니 다시 나서는 학생이 없다.


마치 고구마만 연속으로 먹은 것처럼 속이 갑갑하다. 나는 헨리의 독무대를 저지하고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망나니란 교권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자가 아니겠는가.


“교수님.”


학생들의 불안한 눈빛이 느껴진다.


“네. 질문하세요.”

“솔직히 말씀드려 너무 과합니다.”


헨리는 말문이 막힌 듯 머뭇거렸다.


“음······어······. 그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과해요. 조별과제는 한 번이니 그렇다고 쳐도 수업마다 제출해야 하는 데다가 너무 분량이 많아요. 저희가 무슨 마나 생태학 학위를 딸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 상식선을 배우는 게 아닌가요?”


정면으로 대놓고 줄줄이 말하자 헨리가 당황한다.


“그, 그렇습니까? 하지만······.”


재빨리 헨리의 말을 가로챘다.


“저희가 이 수업만 듣진 않잖아요.”

“······.”

“게다가 계속 수업 외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데 집중이 하나도 안 되고요. 그리고 이것까진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구두는 대체 어디서 구매하신 건가요?”


나는 교수가 신고 있는 체크 무늬 구두를 못마땅하게 보았다.


헨리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손수건을 꺼내 땀을 훔친다.


“아, 구두 말씀이신가요? 이건 저희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구두인데······.”


아. 이거 탈룰라였나.


나는 급박하게 방향을 선회했다.


“무척 예쁘네요. 근데 그 셔츠는!”

“아, 감사합니다. 이건 저희 할머니께서 사주셨습니다.”

“할머님께서 센스가 있으시네요.”


설마 저거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이 닿은 거냐며. 더 지적하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나는 결국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큼, 아무튼. 지금 수업은 너무 잔가지가 많아요. 괜히 농부들이 가지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영양분이 제대로 갈 수 있게 해주세요. 교수님.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겠죠?”


헨리식 화법으로 되돌려주자 교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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