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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38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22 23:55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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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45화

DUMMY

연무장에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우리 자낙은 어디에 있으려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아씨. 뭐야. 저거 수업 나왔네?”


난데없이 머리채를 붙잡았던 은발이었다. 그 남학생 무리가 키득거리고 있었다.


얇은 입술을 가진 남학생이 입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럼 내기는 무효인 거지?”


은발이 얼굴을 팍 구겼다. 주머니에서 금색 동전 하나를 꺼내더니 그 남학생의 가슴팍에 던지듯 안겨준다.


“에이씨. 됐냐?”


은발은 불현듯 날 보더니 얄미운 웃음을 지었다. 껄렁거리며 앞으로 다가온다.


“야, 넌 수업에 왜 나왔냐?”


이걸 상대해줘야해. 말아야해.


수준 떨어지는 은발은 갑자기 훅 들어오더니 뭔가를 힐끔 확인했다.


머리를 잘랐는지 아닌지 검사라도 하는 모양새라 어이가 가출했다.


은발은 입을 벌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어이가 가출한 건 난데, 본인이 왜 어이없어하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충고를 해줘도 하여간. 난 이런 애들은 딱 질색이야. 검술 하는데 누구한테 예뻐 보일 일이라도 있냐? 범생이처럼 생긴 게. 뭐 볼 게 있다고. 어휴.”


상대하기 싫어서 입다물고 있었더니 점입가경이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지경에 슬슬 열 오른다.


'오늘 일진이 사납네.'


대뜸 벨라라는 얘한테 시비가 걸리지 않나. 앨론한테 잡히고. 이젠 별 같잖은 게 시비였다.


머리를 쓸어올리며 이성을 되찾기 위해 애를 썼다.


저 멀리서 우렁찬 레베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티아다!”


레베카는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하듯 반갑게 웃으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헤럴드는 자포자기한 듯 힘없이 뒤따라 걷는다. 아, 자낙도 같이 있었나보다.


그녀도 뒤늦게 뛰기 시작했다.


와인 컬러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자낙은 레베카를 따라잡더니 의아하게 물었다.


“근데 갑자기 왜 달리는 것이냐?”

“오홍? 자낙 너 빠르다.”


자극을 받은 듯 속도를 높이는 레베카.


자낙은 물음표를 띄우는 표정으로 속도를 한 단계 높혔다.


절로 흐뭇한 미소를 나왔다. 어쩜 저렇게 뛰는 모습도 귀엽담.


제일 먼저 당도한 레베카는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예에! 1등이다.”


반걸음 늦은 자낙은 분개해했다.


“반칙이다. 달리기 시합한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다!”

“엣헴.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자낙은 속상한 듯 손바닥으로 한쪽 눈가를 가렸다.


“크흑.”


축 처진 귀가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느긋하게 도착한 헤럴드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같이 손을 흔들어주는데, 레베카가 헤럴드를 도발했다.


“어이, 꼴등! 이제 오냐?”


헤럴드는 도발에 굴하지 않고 그저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어. 그래.”


레베카는 헤럴드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소리가 칠진 게 상당히 힘이 실린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헤럴드는 어깨를 움츠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파. 아프다고.”


사이 좋은 세 명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나까지 흐뭇해지는 기분이었다.


레베카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보는 방향을 쳐다보자 잊고 있던 은발이 보였다.


은발은 고개를 모로 틀고서 레베카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애써 모르는 척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


그러거나 말거나.


레베카는 은발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이네?”


머리를 보고 북부 사람일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설마 레베카와 아는 사이였을 줄이야. 은발은 발끝으로 땅을 파며 모르쇠를 시전했다.


“······.”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은발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같은 무리의 남학생이 팔을 툭툭 쳤다.


“뭐야, 아는 사이야?”


그제야 은발은 떫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어. 안녕. 헤럴드도 있네.”


헤럴드는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했다.


레베카의 검은 눈동자에 호기심이 담겼다.


“뭐야. 근데 티아랑 왜 같이 있어?”


은발은 움찔하더니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는 사이야?”


시원찮은 반응에 레베카가 내게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간단하게 레베카에게 상황을 전했다.


“글쎄. 머리가 길다니 뭐니 하면서 시비 걸던데?”


순간 벙벙해 하더니 레베카가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아하하!”


은발은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를 지른다.


“그냥 동향 사람 같아 보여서 충고해준 거야!”

“아, 진짜 웃긴다.”


얼마나 웃는지. 눈물까지 고였다. 레베카는 눈가를 검지로 쓸며 심호흡을 했다.


“아니, 근데, 마틴. 나, 이긴 적 없잖아. 나도 머리 긴데?”


역시 별것도 아닌 놈이었나보다.


레베카는 키득거리며 자신의 양 갈래머리를 발랄하게 들어 보였다. 나는 흥미진진하게 둘을 구경했다.


마틴은 수치심을 느낀 듯 얼굴이 한층 더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 발을 들더니 바닥을 쿵쿵 찧었다.


“······어쨌든! 방해되는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아카데미에서는 성 부르는 거 금지인 거 몰라?”

“아, 맞다. 맞다. 이름이 뭐더라?”


마틴은 소리를 꽥 지르며 욱했다.


“데이비드! 데이비드라고 몇 번 말해야 기억하는 거야! 됐다. 진짜 말을 말아야지.”


마틴은 상종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곤 도망치는 사람처럼 빠르게 자리를 떴다.


레베카는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마틴 무리가 중얼거리며 그를 뒤쫒았다.


“야, 쟤 왜 저래?”

“몰라. 난들 아냐.”


순식간에 레베카한테 당해서 뒤꽁무니를 빼는 꼴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나는 감탄하며 손뼉을 쳐줬다.


레베카는 뿌듯하게 검지로 코 밑을 슥 훔치고는 헤럴드를 보며 투덜거렸다.


“마틴. 아직도 버릇을 못 고쳤나 봐. 북부에서는 쥐죽은 듯 조용히 지내서 반성한 줄 알았더니. 난 무슨 골목대장인 줄 알았잖아. 자기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그런데?”

“성 부르는 거 금지랬잖아.”

“아차, 맞다.”


레베카는 입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찰싹 때렸다.


“아무튼. 티아! 전혀 신경 쓸 거 없어. 번지르르한 말만 하면 뭐해. 이기지도 못하면서 바보 같다니까. 그치. 자낙?”

“음?”


자낙이 호박색 눈동자를 끔벅였다.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머리가 길면 뭐가 어떻다는 거냐?”


레베카는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내 말이.”


금새 웃음을 그친 레베카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 교수님 왔나 보다. 가자!”


학생들이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곧장 레베카가 걸음을 옮겼다. 그때야 나는 레베카의 등 뒤에 매여있는 커다란 대검을 발견했다.


신기하게 바라보자, 헤럴드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대검은 처음 봐?”

“그건 아닌데. 대검을 쓰는 게 레베카인 점이 신기해.”


성인 남자도 들기 힘들어 보이는 대검을 매고서 그렇게 빨리 달렸단 말이지. 내심 놀라워하는데 헤럴드가 살짝 웃었다.


“아, 레베카. 북부에서는 유명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신선 해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금방 대열에 합류했다.


교수는 뒷짐을 진 채로 흐리멍덩하게 좌중을 둘러봤다. 흐린 눈동자에 불현 듯 빛이 돌아온다.


“못 보던 얼굴이 있네?”


레베카는 팔을 몸에 딱 붙이고서 크게 대답했다.


“넷! 저번 주에는 사정이 있어 불참했습니다!”


마치 군기가 바짝 든 신병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교수, 알렉스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빛냈다.


“보아하니 북부 사람 같은데 맞나?”

“옛! 맞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북부 사람 같습니다!”


알렉스는 미소를 띤 채로 짧게 깎은 은발을 쓱쓱 쓸었다.


“좋다. 넌 합격!”


어처구니가 없다.


같은 동향 사람이라고 봐주는 거야. 뭐야. 나도 은발이라 북부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나?


어쩐지 억울함이 밀려들어 왔다.


레베카는 뭐가 합격인지도 모르고 뿌듯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닷!”

“음. 좋군. 좋아.”


교수는 흡족해하더니 돌연 얼굴을 굳혔다.


뒷짐을 풀자 손에 든 출석부가 보인다. 그는 손바닥으로 출석부를 탕탕 내려쳤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항의가 들어왔더군.”


알렉스는 매서운 눈빛으로 좌중을 훑었다.


“교수가. 출석도 안 부르고 수업을 안 한다고 말이다.”


대체 누가 찌른 건진 모르겠지만 맞는 말 아닌가 싶다.


알렉스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문득 교수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가 떨어졌다.


“애송이들이 출석을 꼭 해야 한다고 항의하니 어쩔 수가 없군.”


출석부를 보며 건성으로 이름을 불렀다. 알렉스는 체크가 끝나고 출석부를 대충 바닥에 던졌다.


“제국 기본 검술을 모르는 애송이가 있나?”


학생들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없습니다!”


알렉스는 다시금 뒷짐을 지고 건조하게 말했다.


“다들 몸은 풀고 왔겠지? 첫 번째 형부터 시작한다. 하나!”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목검을 재빨리 꺼냈다.


주춤거리며 다른 학생들을 따라 움직였다. 밀러에게 배웠던 그 형태였다.


“하나도 맞지 않는다. 다시!”


알렉스는 구호를 외치며 뒷짐을 진 채로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학생들의 자세를 봐주는 듯했다. 내 앞으로 온 알렉스가 나를 가만히 지켜본다.


“하나!”


부담스러운 눈빛에 허공을 응시하며 자세를 취했다.


마지막 형태가 끝났다.


옆 눈으로 힐끗 보니, 알렉스는 턱수염을 쓸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에 신경이 쏠렸다.


“흐음······.”


교수는 팔짱을 끼며 작게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은데······.”


틈틈이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내심 뿌듯해하며 귀를 쫑긋 세우는데 할 말이 더 없는 모양.


알렉스는 앞으로 향했다. 다시 출석부를 집어 든다.


“짝을 지어줄 테니, 공격과 방어, 정해진 합을 서로 주고받는 시연 연습을 해봐라.”


뒤이어 교수가 이름을 호명했다.


“길버트랑 데이비드, 토머스와 그레이스······.”


호명 순서가 엉망진창이었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짝을 짓는 건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던 알렉스가 멈칫했다.


“음. 한 명이 남는군······.”


턱을 쓸며 고심한다. 날카로운 눈빛이 내게로 날아온다. 나는 괜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안경잡이. 너는 나와 함께 한다.”


참혹한 기분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지금 바닥 보는 애. 너 맞다.”


굳이 다시 말해주지 않아도 되었는데, 알렉스는 재차 짚었다.


‘알렉스.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오늘 어째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지?’


나는 바닥을 노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지금 한숨 쉬는 애. 너 맞다.”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서야 알렉스가 멈췄다. 교수는 뒤이어 이름을 호명했다.


“레베카랑 자낙.”


아. 이럴 수가. 자낙과 짝이라니.


레베카에게 한껏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레베카는 웃으며 윙크를 날렸다. 엄지를 치켜세운다.


위로를 해주는 건지 약을 올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알렉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각자 흩어져서 연습해라. 안경잡이는 이리로 오고.”


나는 기운이 쭉 빠져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알렉스는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응시하더니 말했다.


“너 근데 진짜로 검 배운 지 3주 됐어?”

“아뇨.”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알렉스를 보고 재빨리 덧붙였다.


“이제 4주 됐는데요.”


교수는 턱수염을 천천히 쓸면서 올곧게 시선을 고정했다.


“뭐.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어차피 거짓말 해봐야 금방 들통나. 몸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나는 멋대로 생각하라며 고개를 까닥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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