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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51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16 23:55
조회
40
추천
1
글자
13쪽

39화

DUMMY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응시했다. 레오나드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걱정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 괜히 기운 빼지 말자.’


눈을 감자 금방 수마가 덮쳐온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창문이 흔들거리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밖에 바람이 많이 부나봐.'


다시 몸을 돌리며 긴장을 풀어내는데 창문 쪽에서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몸이 경직되며 순식간에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온다.


시커먼 인영이 창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심장이 시끄럽게 쿵광거렸다.


어둠에 적응된 시야는 어렵지 않게 인영을 인식해냈다.


검은 머리카락에 무감정한 눈빛.


노엘이었다.


정체를 깨닫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본다더니 아예 직접 방문을 했나 보다.


여전히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상체를 일으켰다. 탁자 위에 올려둔 안경 아티팩트를 착용했다.


창틀에서 조용히 뛰어내린 노엘은 친절하게도 창문을 다시 닫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여전해보였다.


“······보안이 너무 허술하군.”


노엘에게서 못마땅한 기색이 느껴졌다.


분명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근데 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눈썹을 모았다.


노엘은 무감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보다. 너는 바보인 건가?”


뜬금없는 소리에 눈만 깜빡이자 노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정체를 알아 달라고 하소연이라도 하는 건가. 왜 인장을 그대로 찍는 거지.”


나는 억울함을 담아 노엘의 눈을 흘겨봤다.


확실히 내가 가진 인장은 티타니아 르웰의 공식 인장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어떤 비밀스러운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


‘그냥 용병패 받아서 아카데미 편입시험 칠 때까지는 자유롭게 지내도 된다고 하지 않았어?’


하기야. 노엘을 영입했을 때 흑막 흉내를 냈으니.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꾸미고 있는 줄 아는 거겠지.


그러니까 혼자서 웬 거점을 구하고 있다고 그러지 않던가.


노엘의 눈에는 부주의해 보일만도 했다. 생각하니 또 웃겨서 피식 웃었다.


“그렇네. 다음부터는 주의할게.”


노엘은 무성의하게 무언가를 휙 던졌고 침대 한구석으로 날아간다.


푹신한 이불이 움푹 파이고 그 사이로 검은색 상자가 박힌다.


“가져라.”


겉보기에는 표정 변화가 일절 없는데 이상하게 툴툴거리면서 쑥스러워하는 캐릭터가 떠올라 헛웃음을 지었다.


상자를 챙기면서 노엘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혹시 화났어?”

“······화?”


노엘은 고민하는 듯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그런 거 아니다.”


나는 노엘의 밍밍한 반응을 개의치 않으며 상자 뚜껑을 열었다.


길쭉한 물체를 꺼내 들자 매끈한 감촉이 느껴진다.


아래로는 둥근 도장이. 위로는 물방울 형태의 손잡이가 달린 인장이었다.


밑면이 잘 보이지 않아 손끝으로 문양을 더듬었다.


약간 특이한 왕관 형태 같기도 하고. 모양을 추측하는데 몰입해 있는데 노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몰래 편지를 쓸 일이 있으면 그걸 쓰도록 해라.”


내가 준 돈으로 사긴 했겠지만.


“뭐. 고마워.”


다시 상자에 고이 챙겨 넣고 침대 맡 탁자에 올려놓았다.


팔짱을 끼고서 노엘을 바라봤다.


“마침 잘 왔네. 안 그래도 궁금했거든. 그래서. 대체 뭘 하는 거야. 노엘?”


노엘은 시선이 탁자에 꽂힌 채로 말했다.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그래······. 그 거점이 뭔데?”


노엘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대꾸한다.


“그건 나중에 알려주지.”


그러면 지금 저 인장만 전해주려고 왔단 말인가.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노엘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중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멈춘다.


노엘이 옷장에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옷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는다.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옷장으로 들어가는 건데.’


사고가 마비된 기분이라 얼어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인기척을 느끼고 숨은 듯하다.


뒤늦게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황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안으로 들어온 마리는 조용히 날 확인하더니 말했다.


“아직 깨어계셨네요······. 잠깐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노엘이 신경 쓰여 공연히 옷장을 바라보았다.


“큽. 미안. 마리. 내일 아침에 하면 안 될까?”


마리는 주황색 눈동자를 굴리더니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속상한 듯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안녕히 주무셔요······.”


축 처진 마리의 어깨를 보니 다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인데 참지 못하고 웃어버리면 그게 더 문제였다.


잠시 뒤 옷장 문이 스르륵 열리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 노엘.


나는 다시금 위기를 느끼며 입을 막았다.


“크흡. 쿨럭쿨럭.”


억지로 웃음을 참자 기침이 터져 나온다.


“······.”


옷장에서 빠져나온 노엘이 못마땅한 눈초리로 내려다본다.


얼굴에 열이 올라서 손부채질을 했다.


이상하게 웃음벨이다.


‘아. 이거 왜 이렇게 웃기지.’


사정을 모르는 노엘은 한껏 진지하게 혼자 첩보 영화를 찍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참아냈다.


어쩐지 뾰로통한 얼굴로 노엘이 말했다.


“······멀지 않았다. 조만간 소식을 알려주지. 너도 분명 만족스러워 할 거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 다시 창문을 열고 나간다.


폭소가 나올 것 같아서 꾸역꾸역 참느라 제대로 추궁도 못했다.


‘뭐. 혼자서 기껏해봐야 무슨 일을 벌였겠어.’


나는 혼자서 피식거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 * *


아침 해가 눈부신 듯 미간을 좁힌 마리는 눈그늘이 깊게 내려와 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


대답 대신에 퀭한 얼굴로 마리가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아. 아가씨. 오늘 식사를 가지러 다녀왔는데, 이런 걸 나눠주고 있더라고요. 이거 괜찮은 걸까요?”


돌돌 말린 종이 뭉치 같은 것을 내게 건네준다.


무려 헤드라인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신문이었다.


“······.”


재판 당시의 사진이 흑백으로 실려있다. 떨떠름하게 기사를 읽었다.


──────────────────

『르웰 가문 후계자의 화려한 데뷔!』


사교계에서 연일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던 르웰 가문의 티타니아(16세)는 아카데미 입학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교수를 고소해 수도를 뜨겁게 달궜다. 유례없이 빠르게 잡힌 재판 일자에 귀족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르웰 공작 측에서 압박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재판이 진행되었다.


당일 재판장에는 수도의 귀족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이날 르웰 공작을 비롯해 황제 폐하께서 모습을 드러내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재판을 주관하는······(중략)······로스칼리온 황제는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조반니 마틴 자작은 귀족 폭행죄로 신분이 노예로 강등되고 마광석 노역 판결을 받았다. 이는 그녀가 직접 요청한······(중략)······대귀족의 행패가 아니냐는 반응이 뒤따랐다.


그녀는 현재 로스텔리아 아카데미 1학년 A반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예상은 얼추 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여론이 좋지 않다.


거기다가 조반니가 연구 탈취를 했다는 증언은 진위를 가리지 않아 논란거리로 남았다. 심지어 어느 반에 재학 중인지까지 신상이 털린 상태.


아카데미에서 티타니아 르웰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 지경이다.


심지어 이 신문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나는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대체 신문은 왜 나눠줘?”


마리는 움찔하더니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그 신문 동아리에서 홍보 차 나눠주는 것 같았어요.”

“동아리에 항의를 해야겠네.”


또 다른 기사가 있을까 훑어보는데 마리가 화제를 돌린다.


“아가씨. 식사하셔요! 오늘 오전 수업이라고 하셨잖아요.”


결국, 나는 신문을 다시 돌돌 말아 아공간에 챙겨 넣었다.


재료가 듬뿍 들어간 스튜와 빵. 그리고 메인으로 닭요리가 보였다.


식욕이 없어 스튜만 떠먹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눈치를 계속 살피고 있던 마리가 말했다.


“혹시 아가씨. 그게 잊어버리셨을까 봐······. 그게 오늘······.”


두루뭉술한 말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의미를 눈치챘다.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럴 리가.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마리가 눈물을 쏟은 사건 이래로 3일째니. 오늘이 바로 약속 당일이다.


여전히 안색이 어두운 마리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아가씨. 그런데요······.”

“뭔데?”

“······그게.”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폭력은 안 돼요!”

“······.”


설마 그게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그러고 있었단 말인가.


황당하기도 하고 소심한 게 마리답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알겠어.”


흔쾌히 대답해주자 마리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그럼. 다녀올게.”


마리는 근심이 가신 듯 밝게 웃었다.


“네. 조심해서 다녀오셔요!”


짧게 인사를 나누고 기숙사를 나섰다.


* * *


오전에는 마법 이론 강의. 오후에는 마나 응용 강의가 연달아 있었다.


나는 녹색 빛 건물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여기는 주로 마법과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건물이었다.


떨리는 기분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흔히 마법사들이 쓰고 나오는 고깔모자를 착용한 학생들이 복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발견했다.


교복 위에 감청색 로브를 둘러쓰고 있는데 뭔가 있어 보인다.


‘나중에 사야겠다.’


위시리스트에 추가해두며 발걸음을 옮겼다.


강의실에 도착해서 둘러보자 익숙한 얼굴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고깔모자를 착용하고 있는 학생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어쩐지 강의실을 잘못 들어온 기분이라 머쓱하다. 괜스레 나처럼 교복만 입은 학생을 보고 내적 친밀감을 쌓는 중이었다.


뒷자석에 자리를 잡고 크로스백에서 노트와 깃털 펜을 꺼냈다.


벽면이 붙은 시계가 딱 9시가 되는 순간.


교수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작은 체구에 웨이브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금발 교수였다.


책을 꼭 끌어 앉은 모습으로 교단 앞에 섰다. 교수의 키가 작아서 정수리와 이마만 보인다.


굉장히 불편해보이는데 교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법 기초이론 강의를 맡은 소니아라고 합니다. 강의는 하르모네님의 저서 인『기초이론마학』를 교재로 진행할 생각이에요. 다음 수업까지 준비해오세요.”


발꿈치라도 들어 올린 듯 키가 조금 높아진 교수가 눈만 내놓고 학생들을 바라본다.


“오늘은 그래서 출석만 부르고 앞으로 강의에 관해서 설명해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할게요.”


고개라도 숙인 것인지 교수의 모습이 교탁 뒤로 가려진다.


“이름을 부르면 대답해주세요. 니콜라.”


완전히 가려진 채로 이름을 호명한다. 교탁이 수업하는 느낌이라 어쩐지 호러스럽다.


마침내 이름을 모두 부른 교수가 말했다.


“성적이 아마 제일 궁금하실 것 같은데. 출석이 20프로. 중간, 기말이 각각 40프로 들어가요.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과제 점수가 없는 걸 보니 흡족하다.


반론이 없자 교수가 말했다.


“그럼. 그런 걸로 알고 계시면 될 거같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그러자 학생들이 힘차게 외쳤다.


“네!”

“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봐요.”


하필 연달아 같은 건물에서 수업이 있어서 시간이 붕 뜬다. 학생들은 들뜬 듯 필기구를 챙기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텅 빈 강의실 안에서 홀로 남아 아공간에서 신문을 꺼내 들었다.


헤드라인을 다시 읽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구석에 조그맣게 나 있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파멜라 지방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


어디선가 들어본 지명인데······.


‘아. 여기가 처음이었지. 아마?’


제국에서 처음으로 전염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 파멜라였다.


전염병의 초기 증상은 몸에 열이 오르고 무기력해지는 것이었다.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서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이 무기력 증상은 평범하지 않다.


파멜라 지방의 평민들은 일을 내팽개치고 온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극에 달해서는 생존 본능에 거스르며 식사를 거부해 아사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신문에서는 아직 파멜라에서 게으름병이 돌고 있다는 뜬소문을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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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22.10.15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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