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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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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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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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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5,051

작성
22.10.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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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1화

DUMMY

노엘의 편지를 읽고서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거점을 마련했다. 코트 웨일 거리 3-73이다.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 중이나 예상보다 세력이 깊다. 중요한 거점이라고 판단하는바 속행하겠다. 시일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일이 끝나는 대로 다시 보고하겠다.

 그리고 서한은 보고용으로 적절하지 않다. 서한은 확인하는 대로 소각해라. 신용할 수 없어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고안해보도록 하지.

────────────────


궁서체만큼이나 진지한 내용이었다.


‘대체 무슨 작전을 수행 중인 거냐. 노엘.’


거처를 마련하랬더니 거점을 마련 중인가 보다.


어이가 없다가 생각해볼수록 너무 웃겨서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서재로 향했다.


책상 서랍을 열어 만년필과 편지지를 꺼냈다.


고급스러운 검은 만년필.


왠지 노엘의 모습이 떠올라 웃으며 뚜껑을 열었다.


종이 위에 펜촉 그어지며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게 들렸다.


[노엘. 아직 어떠한 지시도 내린 바가 없는데, 대체 무슨 계획을 실행 중이란 말이지. 혼자 판단 내리지 말고 보고 후에 진행해주길 바란다.]


만년필 뚜껑을 닫고 잉크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봉투 위에 주소를 적었다.


잉크가 말랐나 검지로 살짝 눌러 확인한 나는 편지지를 두 번 접어서 봉투 안에 넣었다.


실링 왁스를 녹여 조금 식힌 후 인장을 콱 찍는다.


불현듯 공작가로 보낼 편지가 떠올랐다.


‘내일 공작가로 보낼 편지도 있었지.’


다시 실링을 녹이기 귀찮아서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뭔가 소각하기 아깝네.’


솔직히 별 내용도 없는데 왜 편지를 소각까지 해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도 요청이 있었으니 특별히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편지를 은쟁반에 담아 파이어 마법으로 소각했다.


‘이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


많이 성장했다며 뿌듯하게 웃었다.


편지는 잘 타올라 금방 재만 남는다.


'마리는 언제 오려나.'


편지를 보내 달라고 이야기를 해둬야 할 것 같은데 늦네.


나는 거실로 나가 테이블 위에 편지를 올려놓고 시계를 보았다.


마력 시계는 시와 분이 표시되어있다.


깜빡거리더니 1분이 지난다. 보고 있자니 하품이 절로 나왔다.


“졸리네······.”


소파에 앉아서 벌써 20분째.


눈을 끔뻑이자 재차 하품이 나온다.


때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으로 쳐다보는데 마리가 지친 낯빛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마리는 안으로 들어오다가 뒤늦게 날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다.


“어멋! 깜짝이야.”


놀라서 가슴에 손에 올리고 심호흡을 하는 마리의 모습.


“허억. 아가씨. 죄송해요.”


얼굴이 이제야 생기가 도는 것 같다.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었어?”


마리는 바닥에 깔린 카펫을 내려다보더니 한참을 뜸을 들였다.


“······아니에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작게 한숨까지 내쉰다. 그러더니 다시 눈을 올려 이쪽을 보는데 시선이 위치가 어딘가 이상하다.


얼굴보다 조금 밑인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마리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보자 푸른 펜던트가 보인다.


‘뭐야······. 왜. 펜던트를 보는 건데?’


마리의 시선이 여전히 팬던트에 고정되어있다.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펜던트를 괜스레 만지자 마리가 흠칫 놀라 시선을 떼어낸다.


어쩐지 싸늘한 예감이 든다.


티타니아는 펜던트를 잃어버렸다.


‘근데 그게 부주의로 잃어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 훔친 거라면?’


내 물건을 만져도 의심을 사지 않을 사람이 바로 앞에 있지 않은가.


‘설마 마리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마리를 향해 곧바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마리.”


이름을 부르자 나를 보던 마리가 손바닥을 보고 움찔한다.


“네, 네?”

“무슨 일인지 솔직하게 대답해봐.”


아니면 아닌 거고.


의심이 생겼으면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서로 좋잖아.


마리는 우물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그게 실은······.”


한숨을 내쉰 마리의 눈썹이 아래로 축 처진다.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지 고민하더니 마리가 입을 열었다.


“제 부모님을 찾았대요······.”


마리의 주황색 눈동자에 눈물이 아롱아롱 고였다.


그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며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보니.


마리는 고아였다.


주황색 머리와 주황색 눈동자. 그리고 주근깨까지.


‘서부사람’인 게 확실한 마리가 어째서 동부 르웰 가문의 메이드가 되었을까.


마리는 동부에 버려진 아이였다.


고아인 데다가 뚜렷한 서부의 특징까지. 동부 사람들이 마리를 어떻게 대했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공작 이를 안타깝게 여겨 마리를 메이드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애초에 마리의 부모가 동부까지 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건.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아이가 어떤 취급을 당할지 모르지도 않았을 텐데.


혹시 수소문해서 찾아올까 봐. 자식을 멀리 내다 버린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걸 믿어?”


내 눈빛을 보고 마리가 움찔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대요.”

“그게 대체 뭔데?”

“빚, 빚 때문에 제가 혹시 노예로 팔려갈까 봐 그런 거였대요.”


마리는 평소답지 않게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래서······그래서! 어쩔 수 없는 거였대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원망만 했는데······.”


다시금 울컥하는지 마리의 눈에서 눈물이 또다시 줄줄 흘렀다.


“빚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동부까지 오는데?”

“······그건. 무리해서······.”


마리는 말을 얼버무리며 바닥을 본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근데 너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데?”

“······우연히 저를 보게 된 귀족분한테 들어서 만나보고 싶다고······그래서 오늘 얼굴을 봤는데 정말 저랑 닮았어요. 제 부모님이 확실해요!”


마리는 입술을 앙다물며 울음을 참는다.


“동, 동생이 지금 너무 아픈데 빚 때문에 고쳐줄 수가 없대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는 지금 너무 믿고 싶은 나머지 이상하다는 걸 느껴도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얼핏 듣기만 해도 작위적인 냄새 풀풀 풍기는데 당사자라고 못 느꼈을까.


골머리가 아파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가씨의 아공간 팬던트 하나면 빚을 다 갚을 수 있다고······."


마리가 두 손을 모으며 간곡하게 청했다.


"제, 제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아요. 그치만······아가씨 제발! 부탁이에요. 제 가족을 제발 도와주세요."


결국, 마리는 울음을 엉엉 터트리며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한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의 울음이 사그라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말했다.


“마리······. 솔직히 나한테 널린 게 보석이잖아. 근데 아공간 아티팩트를 콕 집어서 가지고 오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마리는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아······. 그, 그건 아니었어요. 그냥 예를 들면서 말한 거였는데 제가 당황해서 깊게 생각을 못 했어요. 꼭 아티팩트가 아니어도······.”


나는 주저 앉아있는 마리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알겠어. 도와줄 테니까 그만하고 일어나.”

“아가씨이······.”


마리는 감격한 얼굴로 울먹거린다.


나는 마리 앞에 손을 내밀었다.


“일단 내놔.”

“네?”


마리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눈을 깜빡였다.


“통행증 있을 거 아냐?”

“어······. 그렇긴 한데······.”


갑자기 왜 통행증을 내놓으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갸웃거린다.


나는 마리가 깊은 생각을 하기 전에 얼른 밀어붙였다.


“왜? 도와주지 말까.”


그러자 마리가 화들짝 놀란다.


“아, 아니에요.”


마리는 뭔가 찜찜하다는 얼굴로 주머니에서 통행증을 꺼내줬다.


나는 파란 점이 찍혀 있는 나무패를 돌려보고 재빨리 아공간 안에 밀어 넣었다.


사라지는 통행증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마리가 뒤늦게 흠칫한다.


“아! 근데 그러면 다음에 어떻게 만나야······.”

“다음 약속이 언제지?”

“3일 뒤 저녁 시간에 서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알겠어. 내가 한 번 만나봐야겠다.”

“어어······.”

“일단 넌 가만히 있어.”


마리는 주황색 눈동자를 굴리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네에.”


날 못 믿는 눈치다만.


내가 잘 해결해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렴.


겸사겸사 통행증은 잘 써주마.


나는 마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며 환하게 웃었다.


어째. 마리가 더 불안해하는 눈치로 물었다.


“아가씨······. 저 믿어도 되는 거 맞죠?”

“그럼. 그럼. 아, 마리 거기 편지 좀 보내주라.”


마리에게 테이블 위를 가리키면서 방으로 향했다.


“앗, 네.”


나는 방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트왈렛 룸이 있긴 하지만 내 방 안에도 옷장이 있었다. 잠옷을 꺼내고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갈아입고 나왔다.


* *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목에 걸린 아티팩트를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직 잘 있구나.’


로렌스가 아공간 아티팩트를 만들어주면 꼭 소유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해야겠다.


샤워를 마치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마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먼지떨이로 선반 위 먼지를 털고 있었다.


어제저녁 일 때문에 걱정했는데 기분이 괜찮아 보였다.


아침 인사를 하자 마리가 돌아본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나는 마리의 퉁퉁 부은 눈가를 발견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마리는 민망해하며 물었다.


“티가 많이 나요?”

“조금 많이.”


큼큼 헛기침하더니 마리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 아가씨 이거······.”


나한테 주길래 뭔가 싶어서 자세히 봤다.


분홍색 천으로 겉을 감싸고 리본은 단 물건이 보였다.


‘이거 선물인가?’


수줍은 목소리로 마리가 말했다.


“한번 풀어보세요. 사실 잘 만들진 못했는데······.”


마리에게 선물을 다 받을 줄이야. 감격스럽다.


설레는 기분으로 포장을 풀었다.


포장 안에는 작은 튤립 자수가 들어간 하얀 손수건이 들어있었다.


“이거 저번에······.”


어쩐지 보자마자 감추며 속상해하더니.


나는 손수건을 천천히 보았다


모서리마다 작은 튤립과 함께 골드 프레임을 들어가 있다.


하단에 푸른색으로 쓰인 이름의 약자까지. 정성이 들어간 손수건의 자수를 매만졌다.


마리는 양 볼을 감싸 얼굴을 식히면서 말했다.


“별로 안 이쁜 거 같아서 드릴까 말까 하다가······그래도 그냥 서랍에 넣어두기는 아쉬운 거 같아서······그래서······.”

“아냐. 정말 잘 만들었는걸?”


튤립이 되게 작긴 하지만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거기다가 골드 프레임이 들어가니까 고급스러운 느낌도 난다.


“정말요?”


마리가 뿌듯하게 웃었다.


“난 이렇게 아기자기한 게 귀엽더라.”

“헤헤.”


마리는 칭찬이 낯간지러운 듯 양갈래로 땋은 머리끝을 잡고 쭉쭉 늘렸다.


손수건을 잘 접어 치마 주머니에 챙겨 넣자 마리가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본다.


“잘 쓸게. 고마워.”

“별말씀을요.”


마음에 안 든다고 그랬으면 속상해서 울지 않았을까.


왠지 아랫입술을 쭉 내민 마리의 모습이 떠오른 나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아 꾹 참았다.


문득 시계를 확인해보니 벌써 시간 많이 흘렀다.


“그럼 다녀올게.”

“앗, 아가씨 식사는 하고 가셔야죠.”

“식사하고 가면 늦을 것 같은데?”


뒤늦게 마리도 시간을 확인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 그러면 이거라도 드시고 가세요.”


잘 구운 빵이 담긴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빵을 입에 물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마리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가씨!”


이건 좀 품위가 없나.


나는 마리가 잔소리할세라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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