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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39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10.11 23:55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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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34화

DUMMY

노란 기가 도는 구릿빛 피부의 사내는 황제의 질문에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꼬았다.


“분명 마틴 가는 연금술로 명맥을 이어오던 가문이었죠. 아마?”


비로소 나는 남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퀘이드 애쉴론.’


퀘이드는 생각에 잠길 때마다 머리카락을 꼬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황제를 뒤따라 자연스럽게 들어오길래 수석 시종쯤 되나 싶었더니 아니었다.


‘가뜩이나 바쁘신 양반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남부 출신의 귀족으로 제국의 재상이다.


이 재판이 대체 뭐라고 거물이 둘씩이나 왔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기가 질릴 지경이다.


퀘이드는 이어서 말했다.


“최근 학회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들었던 것 같네요. 연이어 굵직한 연구를 발표했다더군요.”


황제는 감탄사를 넣으며 눈을 빛냈다.


“호오.”


조반니는 긴장한 듯 주먹을 하얗게 쥐고 있었다.


나는 찝찝한 기분이었다.


무어라 콕 찝을 수는 없는데 묘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제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틴 자작은 제국에 헌신할 준비가 되었다고 했지. 어떻게 헌신을 할 생각이지?”


여차하면 조반니의 편을 들어줄 여지가 있는 것처럼 황제가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재판에 자신은 있었으나 황제가 대상이 되면 조금 말이 달라진다.


아무리 티타니아라도 황제가 손을 들어주겠노라 마음먹고 밀어붙이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물론 공작이 가만히 있진 않겠지만.


조반니는 침을 꿀꺽 삼키고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존경하는 황제 폐하! 소신은 앞으로 제국을 위해 연구하여 이바지를 할 것이며! 황제 폐하께 올곧게 충성하여 제국 신민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겠나이다!”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말과 흔들림 없는 강한 눈빛.


기개가 넘치는 조반니의 당당한 눈빛에 나도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의외로 연기는 제법 하는 모양이다.


‘아니. 생각해 보니 조반니가 치료제로 번 돈의 일부를 기부하긴 했었네?’


제국에 헌신하겠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걸까.


아리송한 기분으로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황제는 만족스러운 듯이 입꼬리를 시원스레 당기며 웃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영애?”


갑자기 여기로 튀는 질문에 나는 흐린 눈빛을 했다.


나를 떠보는 듯하다.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건지······.’


혹시 내가 물러서 주길 바라고 한 질문이라면 정중히 사양이다.


그렇다고 정직하게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사로운 일로 충신을 몰아내는 행태로 비칠 수도 있는바.


나는 의기양양한 조반니를 보고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물론. 중한 인재라면 제국의 대귀족으로써 자비를 베풂이 옳겠지요.”


일단 밑밥을 깔았다.


그러자 황제의 한 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래서 친히 자비를 베풀겠다는 말이냐?”

“하지만 마틴 자작은 얽혀있는 다른 뿌리까지 해하게 만드는 썩은 뿌리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도려내야 합니다.”


황제는 속내를 읽기 어려운 미소를 지었다.


“썩은 뿌리라······. 어찌 그리 단언을 하는 것이지?”

“마틴 자작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까지 상습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그가 대꾸했다.


“그동안 화두로 올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평민이기 때문이겠지.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일인가.”


고작 이정도의 단서를 가지고 순식간에 추측하다니 역시 황제는 황제였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조반니 교수가 그동안 학생들의 성과를 갈취해왔다는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이것을 봐주시길 청합니다.”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를 들었다.


황제가 손끝을 까딱이자 행렬의 앞에 서 있던 메이드가 서류를 챙겨 황제 앞에 공손히 대령했다.


팔락거리며 종이를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황제가 피식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조반니는 초조한 눈빛으로 황제를 보더니 불쑥 끼어들었다.


“영애께서 기분이 상하셔서 모함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나는 가만히 상황을 살폈다.


황제는 서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도 당돌하기에 무언가 진귀한 패라도 감추고 있는 줄 알았더니 허패로구나.”


나는 멈칫하여 몸을 굳혔다.


고개를 든 황제가 조반니를 응시한다.


“그렇지 않나. 마틴 자작?”

“예? 예.”


얼떨떨하게 대답하는 그를 보며 황제가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자작 주제에 무엇이라도 된 거처럼 제멋대로 끼어드는 것이 참으로 방자하구나.”


아까 전 재판장이 발언하기 전에 멋대로 조반니가 끼어든 부분을 지적하는 듯싶다.


황제의 반응에 식겁한 조반니는 곧바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마를 바닥에 바짝 붙인다.


“송구합니다. 폐하!!”


크게 외친 조반니가 이마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황제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조반니는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 황제의 눈치를 살피려다가 깜짝 놀라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문득 황제의 시선이 내게로 꽂힌다.


“아무리 하찮은 일일지라도 의미가 없는 일은 없다. 그렇지 않으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지라 어리둥절하게 황제를 응시했다.


로스칼리온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연금술의 재능이 없다고 한들. 이만한 성과를 쥐어짜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굳이 마틴 자작을 칠 필요가 있나? 티타니아.”


나는 멈칫하고야 말았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나 역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사위를 던졌다.


“사람은 성과가 없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조반니 교수 밑에 있던 평민 학생들의 대부분이 연금술을 그만뒀습니다.”


황제는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많은 실적을 올리지 않았는가?”


나 역시도 금방 답변을 내어놓는다.


“그렇다면 폐하께선 그 학생들이 그만두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아십니까.”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금보다 더 나았으리라는 보장이 있겠느냐.”


나는 황제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당당하게 대꾸했다.


“예. 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일단 뿌리를 뽑아보고자 하는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황제가 흡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고작 감정에 휘둘려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구나.”


분명히 처음에는 조반니가 인재인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끝맺음을 맺는다.


어쩐지 나는 황제에게 말린 기분이 들었다.


그는 마치 내가 일부러 설계한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굴었다.


“어떤 처벌을 바라고 있느냐?”

“폐하께서 말씀하셨죠. 아무리 하찮은 일일지라도 의미가 없는 일은 없다고.”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 황제가 눈을 빛내며 까딱였다.


“저는 조반니 마틴을 광산 노예로 보내길 희망합니다. 마침 광산에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하였으니 그를 이룰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요.”


황제는 무척 즐거운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제법 기껍게 들린 듯하다.


“그렇구나. 아무리 하찮은 일일지라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니.”

“또한. 조반니가 훔쳐 갔던 연구들을 학생들에게 돌려줄 것을 희망합니다.”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듯 조반니가 허리를 퍼뜩 들어 올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폐하! 소신은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착각하는 듯합니다. 학생 수준의 연구를 갈취를 해봤자 제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정을 몰랐다면 나조차도 믿지 못했으리라.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

“저번에 연구를 본 적이 있었는데 확실히······”


방청객들이 설득당해 소곤거리자 조반니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황제는 소란이 귀찮은 듯 눈썹을 까닥거리며 제지했다.


“그만.”


순식간에 소란이 가라앉는다.


“조반니 마틴 자작은 티타니아 르웰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음을 자백했다. 그의 합당한 벌로 노예로 강등한다. 마광석 광산 노예로 평생 제국에 헌신하도록 하라. 또한, 그동안 마틴 자작이 발표한 연구는 제국에 귀속하도록 한다.”


황제가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과 함께 재판의 막이 내린다.


결국 마지막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황제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귓가에 대고 속닥거렸다.


“짐이 수고를 해줬으니 이만한 보상은 받아가도 되지 않겠나. 상당히 연구가 흥미로웠거든. 그리고 너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거다.”


확실히 그건 그랬다.


연구를 당사자에게 돌려줘봤자 내게는 어떤 이득도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힘이 없을수록 이용하는 게 더 쉬울 테니.’


하지만 눈을 찡긋거리며 지나치는 황제를 보자니 혈압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반니는 넋을 놓고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직 조반니는 마광석 광산의 악명을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다.


‘알았더라면 지금쯤 발광을 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게.


마광석은 제련하기 전에 뿜어내는 기운이 상당히 몸에 해롭다.


마치 지구의 방사선 피폭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두통과 복통이 나타나고 그다음에는 메스꺼움과 피로가 나타난다. 거기다가 장기간 노출되면 불임증 및 탈모 등의 증상을 유발했다.


수명이 짧아지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재판장에서 대기하던 두 명의 기사가 조반니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고 일으켰다.


조반니는 똑바로 서지도 못한 채 발을 질질 끌었다.


‘아참. 잊어버릴 뻔했네.’


나는 걸음을 옮겼다.


불편한 듯 버둥거리는 조반니의 앞에 가서 발걸음을 멈추자 기사들도 조반니를 끌고 가는 것을 중단하며 바로 섰다.


그제야 조반니의 발이 제대로 바닥에 닿는다.


“내 이름을 알게 된 소감이 어때?”


대꾸할 힘이 없는 듯 조반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나는 조반니의 턱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깜빡할 뻔했지. 뭐야.”


조반니의 눈동자는 불안을 담은 채 흔들렸고 나는 그의 뺨을 올려붙였다.


짜악―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조반니의 통통한 볼살이 충격으로 떨렸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나는 손을 탈탈 털며 웃었다.


“이건 돌려줘야겠지?”


뺨을 맞아본 것은 처음이었는지, 충격받은 표정의 조반니가 뒤늦게 신음을 냈다.


“으윽! 어, 어떻게 나를, 내 뺨을······!”


횡설수설하는 조반니의 앞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어쩐지 수상하다고 생각했네. 자네가 아카데미를 다닐 적을 뻔히 아는데 갑자기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리가 없지.”


조반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베, 베네딕트······!”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조반니가 화풀이하면서 언급했던 정원의 향기 교수였다.


금발을 8대 2로 넘긴 베네딕트는 불쾌한 듯 이마를 찡그리며 어깨를 털었다.


“노예 주제에 감히 내 이름을 부르다니 불쾌하군.”


말문이 턱 막힌 조반니의 얼굴은 상당히 볼만했다.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는데 빠르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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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22.10.11 40 1 11쪽
33 33화 22.10.10 45 1 12쪽
32 32화 22.10.09 5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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