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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渗

MITT : 2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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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삼(久渗)
작품등록일 :
2019.07.10 12:43
최근연재일 :
2019.09.27 08:05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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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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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0,696

작성
19.09.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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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20쪽

천적 - 2권 끝

DUMMY

노렸던 병살이 아니지만, 철민은 상대를 삼진으로 시원하게 잡은 것을 충분히 즐겼다.

이제 2사 만루. 어떻게 보면 주자 없이 2아웃보다 훨씬 쉬운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대타 없이 그대로 5번 타자. 충분히 쉽게 잡을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포수의 사인이 나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공을 던지는 찰나, 순간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로진!’


설욕 후의 승리감에 심취한 나머지, 로진을 가볍게 쥐어 미끄러움을 없애는 것을 그만 잊고 말았다.

덕분에 제대로 손끝에 걸리지 않은 공이 밋밋하게 가운데로 몰렸다. 그리고 애초에 타자는 초구를 힘껏 휘두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리도 쉬운 공이 오니 고마울 수밖에.


듣기 싫은 파열음이 귀를 때렸다. 보지 않아도 안다. 철민은 그냥 고개를 숙였다. 환호성과 함께 멀리 멀리 날아간 공은 전광판 아래로 떨어졌다.



- 홈런! 홈런입니다! 만루 홈런! 한철민! 아쉽게 여기서 0의 행진을 끝냅니다.


- 음. 너무 쉬운 공이었네요. 실투였던 것 같은데. 아마, 가장 위기 상황에서 무사히 탈출한 뒤에 마음이 좀 풀렸지 않나 싶은데요.


- 초구를 그냥 때려 버렸네요!


- 네. 원래 한철민 선수가 가지고 있는 속구라면, 초구라도 이렇게 쉽게 때려낼 수 없었을 텐데. 뭐, 모든 투수에게는 실투가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그게 하필 오늘이었고. 하지만 어쩌면 다행이네요.


-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 네. 아무래도 세이브 상황에서 이런 걸 맞았다면, 아, 정말 싫을 걸요? 뭐, 이번에는 한철민 선수에게 보약이 되겠죠. 좀 쓰기는 하겠지만.




“자네······. 이걸 예상했던 거야?”


감독의 물음에 이상군은 씁쓸하게 웃었다.


“뭐, 반쯤은요. 홈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떻게?”

“저 놈 성격이 옛날 저 처음 프로 올라왔을 때하고, 비슷하게 보여서. 이때쯤 한 번 실수가 나올 때가 됐다, 마, 이래 생각했지요.”

“자네가 상황을 만든 건 아니고? 첫 경기부터 말이야.”

“그런 면도 있겠지요.”

“이러다 망치는 거 아니야?”


감독의 당연한 걱정. 보통 점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싹쓸이 만루 홈런이다. 그러나 이상군은 의외로 냉정하고 침착했다.


“아닐 겁니다. 저놈 성격은.”

“음······.”

“다만, 인자 마무리 혼자 잘나서 설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겠지요. 마무리의 임무는 지 혼자 독고다이로 타자를 잡는 게 아이고, 점수를 지키는 임무라는 거를 알아야 합니다. 그라고······.”

“그리고 뭐.”

“지가 포수가 아니라 투수라는 거를 확실히 깨달아야지요.”

“이봐. 그게 무슨 말이야?”


이상군은 감독에게 철민에게 배합을 맡겼을 때, 그가 무슨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를 상기시켰다.


“아, 참 그랬지. 그런데 그게 왜?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잖아?”

“그게 어설프다 이 말입니다.”

“어설퍼?”

“예. 최영규를 보이소. 뭐 이전에 진경수도 그렇고. 채병언이도 그렇고. 가들이 어데 리드 할 때나 배합 할 때, 투수가 무조건 타자를 때려잡는 거만 생각했습니까? 줘도 될 점수가 있고, 지금 줘야 할 점수가 있고, 또 지금 내보내야 할 타자가 있고, 안타를 맞아서라도 뭔가를 봐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저놈은 아입니다. 한 수, 두 수 뒤를 생각하는 게 아이라 당장 지금만 생각합니다. 마, 저놈이 선발이었으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놈은 절대 선발로는 뛸 수가 없으니까요.”


감독은 이상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상군은 괜찮다고 했지만, 정말로 괜찮아질 지가 문제였다.

그러나 이상군은 장담했다. 적어도 다음 경기까지는 문제 없을 거라고 말했다.


“다음 경기?”

“예. 다음 경기는 괜찮아도, 그 다음은 그건 좀 지켜봐야 겠심더. 그 망할 놈의 다다음 경기가 경기니 만큼.”

“다다음? 그럼, 킹즈 이후에 호크스?”

“예. 그때를 대비해서.”

“음······. 자네 설마, 혹시 그때도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철민이가?”

“지금은요. 지금은 완성품이 아이다 아입니까.”

“누구한테? 그때 그 녀석? 철민이 친구라는?”

“그놈은 마······, 솔직히 말씀드리면 철민이 한테는 천적입니다.”

“천적?”

“예. 순간적으로 스윙 포인트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더. 그거는 제가 한국 야구 판에 있으면서 딱 한 명밖에 못 봤지요.”

“성민호?”

“예. 그라고······, 그쪽도 아직 완성품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크지요. 만약에 거서 잘 키아 주기라도 하믄······, 10번 중 4번은 처 맞을 낍니더. 4할 이상이믄 마······, 천적이라 할 수 있다 아입니까?”

“그렇지······.”

“그라고······.”

“천적이 또 있어?”

“천적은 아니지만, 한 두 수 위의 고수가 있지요. 머리싸움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인간.”

“그게······, 최영규?”


이상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까지 흐름 좋심더. 다음 경기, 그러니까 킹즈 잡으믄 진짜 3위까지, 아니면 2위까지 볼 수도 있지요. 근데 그 중간에 호크스한테 딱 잡히뿌믄, 잘못하믄 헛심만 쓰고 나가리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가을에는······.”

“가을에 야구 하는 것 정도로 만족 하실 낍니까?”

“음······, 자네 정말 우승까지 생각하는 거야? 사실, 힘들다는 거 알잖아. 지금 전력으로는.”

“토너먼트는 아무도 모르지요. 하지만 준플부터 뚫고 올라가기는 힘듭니다. 체력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을 거니까.”

“한국시리즈······.”


감독은 그 말을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방긋 올라갔다. 전반기만 해도 이번 시즌 끝나면 무조건 경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후반기에 이렇게 팀이 좋아질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물론 이번 3연전처럼, 첫 두 경기는 어떻게 운과 몇몇 사건이 작용해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번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1위 팀인 나이츠와의 격차를 다시 확인했다.


다만, 바로 그 점이 이상군이 말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20게임 정도를 한다면 위저즈는 잘해봤자 5게임 정도를 이길 수 있을 전력이다.

하지만 그 이기는 게임이 모두 토너먼트에서 일어나게 될 일이라면?

정말로 우승도 꿈이 아니다.

더구나 오늘 3연전과 뒤에 있을 남은 경기에서 서로는 서로에 대한 대비를 할 것이다.

거기에서 또 다른 공략 포인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상군의 말은 허황된 것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호크스를 왜 걱정하는 거야? 호크스도 올라올 것 같아서?”

“예. 예전에······, 그러니까 플레이오프 진출권 가지고 다툴 때도 그랬지요. 누가 호크스한테 덜미를 잡혀서 가을에 나가리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음, 뭐 난 그때 감독이 아니었지만. 뭐, 어쨌든 전체적인 전력은 확실히 우리가 앞섰지. 그런데 갑자기 이정기 그놈이 각성하고, 서태원도 좋아지고.”

“그러니까요. 그렇게 우승했다 아입니까. 호크스가요.”

“그래. 그럼 이번에도 그들이?”

“글쎄요. 지금 전력은 그때보다 훨씬 약한 거는 사실입니다. 다만, 상성이 안 좋습니다, 상성이.”

“우리하고 말인가?”

“예. 더구나 지금 확실한 마무리가 철민이 저놈 말고 있습니까?”

“없지.”

“그런데 그놈한테 강한 두 놈이 있으면, 우째 되겠습니까?”

“음······.”

“타순이 안 오는 걸 대비해서, 한 놈은 대타로 아껴둘 겁니다. 김두용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최영규가 전체 타율은 높은 편이 아니라도, 득점권 타율은 매번 상위권 찍는 거 아시지요?”

“그, 그렇지.”

“아무리 나이가 먹었고 부상이 있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의 한 방이 있는 놈입니다. 그러니까 미리 저놈에게 알려 줘야지요.”

“뭘?”

“도망갈 수 있을 때 도망가라. 때려잡는 건 다른 놈을 잡아도 된다.”

그 말에 감독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는 안 그랬잖아? 현역시절에.”


그러자 이상군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라다가 어깨 날리 먹고, 뭐, 못 갔지요.”

“메이저에?”

“뭐······, 그렇게 된 거지요.”





◆◆◆◆




늦은 야간. 일요일 경기가 끝난 후에도 사직 구장 안에 다섯 사람이 남았다.

투수 코치인 이정근, 타격 코치인 이용학. 그리고 현재 1군 엔트리의 포수 세 명. 즉 영규와 두용, 김영태가 그 사람들이었다.

특히 오늘은 영규가 출전했기에 두용과 영태는 굳이 마무리운동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영태는 역시나 몸을 풀었고, 두용은 심지어 롱토스로 몸을 다시 풀었다.


그 후에 최근 극도의 타격부진을 보이고 있는 김영태는 영규와 대화를 한 후에도 또한 이용학과 대화를 했다.

그리고 영규는 이어 두용과 대화를 했다. 두용은 뜬금없이 투수 글러브를 내민 영규를 보고 놀랐다.


“투수······요? 다시 투수를 해야 합니까?”


엄습하는 블래스에 대한 공포. 그러나 영규는 그것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일단 가 봐. 그리고 내가 잡을 게. 네가 던져야 할 것은 코치님께서 말해 주실 거야.”


두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운드 위에서 투수코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괜찮아. 괜찮아. 겁먹지 말고. 아, 그 대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봐.”


투수코치는 몇 가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투구판을 밟을 왼발의 방향 조정. 그리고 오른발을 디디는 코스의 조정.

그의 말에 따라 하다 보니 조금 이상한 자세가 되었다. 오른발의 끝이 보는 각도가 1루 쪽이 아니라 홈플레이트와 1루 사이, 즉 거의 45도 각도로 밟으라고 지시했고, 심지어 몸 역시 시작할 때부터 반쯤은 타자쪽으로 틀고 있는 폼. 그러다보니 영 어색한 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공을 던질 때마저도, 절대 몸을 다시 뒤쪽으로 비틀지말고 지금 있는 상태 그대로 움직여서 공을 던지라고 했다.


“어색해?”

“예? 아, 그, 그러니까······.”

“투수라고 생각하지 말고 포수라고 생각해봐. 여기서도.”

“예?”

“네가 공을 송구할 때 말이야.”

“아······.”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달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송구 연습을 시킬 거면 대체 왜 마운드 위로 올라가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운드 반대편에는, 다시 장비를 갖춘 영규가 앉았다.


“던져 봐!”


영규의 외침.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정말 투수를 다시 하게 되는 건가?

예전에 꿈꾸었던 일이다. 한국 최고의 포수에게 자신이 공을 던진다. 마운드 위에서.

그게 오늘 좀 이상한 풍경 속에서 어쨌든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팔각도. 무리하게 오버스로로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스리쿼터로 던지라는 말.

두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이 다리 자세에서는 오버보다는 스리쿼터가 편할 것 같았다.

다만 여전히 걱정되는 블래스. 또 막 튕겨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영규를 보고, 마음을 다잡고 공을 던졌다.

그런데 웬걸. 공의 제구가 정확히 이루어졌다.

두용은 벙찐 표정으로 그걸 쳐다보았다. 옆에 서있던 투수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공은 빠르네. 몸 좀 더 풀면 역시 150대 중후반은 나오겠네.”


이렇게 쉽게 고쳐진다고? 들쑥날쑥했던 그 엉망인 제구가? 두용은 대체 자신이 3년 간 뭘 위해 2군에서 그렇게 고생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10개를 더 던지고 나니 몸에서 열이 나고 확실히 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최고 구속으로 던져봐.”


투수코치의 말에 자신감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인 두용. 그는 영규의 미트를 향해 힘차게 공을 뿌렸다.

뻥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들어간 공. 두용은 그것에 기뻐하면서 ‘자, 어떻습니까.’ 하는 표정으로 투수코치를 바라보았지만, 어쩐지 그는 좀 심드렁해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두어 개를 더 던지고 나니, 지금까지 혼자 타격코치가 보는 앞에서 스윙 폼을 체크하던 영태가 들어왔다.


“오늘 네 상대다.”


투수코치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설마 자신을 또 이용하는 건가? 김영태의 타격을 체크하기 위해?

그런데 왜 하필 나지? 투수들도 많은데, 왜 하필?

두용은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곳에 온 이상 던져야 한다. 묻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제구가 된다. 그리고 속도도 돌아온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용’이 아니라 ‘시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두용은 김영태의 준비를 기다린 후에 폼을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빠른 포심.

초구는 그냥 보낸 김영태였다.

다른 변화구는 없다. 두용에게는 오직 빠른 포심 뿐이다.

이번에도 포심. 더 빨리 던진 것 같은 기분. 그런데. 그런데 김영태는 그의 공을 너무나도 쉽게 때려버렸다.

심지어 장외로 나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하게 할 만큼 큼지막한 홈런이었다.


역시나. 내 공은 가볍다. 빠르기는 하지만 가볍다. 더구나 움직임이 적다. 그런데 빠르기만 해도 무기가 되는 것 아니었나?

두용은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한 번 더 투구를 요구한다. 그래, 이번만큼은!

하지만 그의 기대는 단번에 무너졌다. 홈런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펜스를 맞추는 다이렉트 장타.


그리고 영규는 일어나서 영태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후에 영태는 영규에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뒤에 타격 코치에게도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마운드의 두용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한 후에 구장을 빠져 나갔다.


대체 이건 뭘 위한 자리지? 두용은 얼떨떨했다. 그런데 영규가 다가왔다.


“어때? 오랜만에 마운드에 서 본 소감은.”

“그, 그게······.”


두용은 잠깐 고민했지만, 역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 대체 오늘 제가 왜 여기서 공을 던진 겁니까? 혹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뭐, 반은 맞고, 반은 모르겠지만.”

“반이라니요?”

“영태의 타격 슬럼프 때문에 온 것도 맞고.”


찌푸려지는 두용의 얼굴.


“너 때문에 온 것도 맞고.”

“저 때문이라니요?”


영규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말했다.


“이제 알았지? 네 본 모습을.”

“본 모습······.”


두용은 무심코 왼손을 펴서 봤다. 작은 손. 그리고 어쨌든 많은 회전이 걸리지 않는 자신의 공. 그리고 거의 없다시피 한 테일링.

그런데 굳이 자신을 이곳까지 와서 그 비참한 현실을 한 번 더 깨닫게 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도 더 이상 투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두용이 외치자 영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두용이 펴고 있던 왼손을 접었다. 그러더니 손가락 하나를 펴 두용의 왼발을, 그리고 왼쪽 다리, 정확히는 그의 발목 부근을 가리켰다.


“예? 제 다리요?”

“네 발. 그리고 그쪽의 문제.”

“그쪽의 문제라니요?”

“음······. 그래. 네 공이 빠르기는 하지만 가벼운 것도 사실이야. 그리고 변화도 적지. 그래서 방금처럼 한 번 본 선수는 코스만 알면 쉽게 장타를 뽑아낼 수 있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발과 다리야. 특히 왼쪽 다리. 그리고 골반.”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 두용에게 영규는 두용이 가지고 있었던,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당연히 두용은 듣고 있을 수록 자신이 견뎠던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샤크스에서의 그 힘들었던 훈련과 교정들. 그리고 호크스 2군에서의 시간들. 그게 전부 쓸모가 없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 고교시절 때부터 만약 고쳤다면······. 적어도 제가 그걸 블래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란 말씀이십니까?”

“그럴지도. 하지만 말이야. 방금 이 자세로 공을 던질 수는 없어. 왜냐고? 그 자세에서 네가 투구를 할 때마다,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순간 네가 뭘 던질지 눈썰미 좋은 녀석들은 다 알 수 있으니까. 한마디로 타자에게 공을 숨기지 못한다는 말이야.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이 폼을 해서 제구를 잡을 수 있는데 괜히 투수 코치들이 말조차 꺼내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고 납득할 수 있었다.

실망하는 두용에게 영규는 다른 말을 했다.


“그건 어떻게 보면 다른 힘을 준 것이기도 하지.”

“다른 힘이요?”

“네 그 다리의 자세가 무엇과 더 비슷한지 생각해봐.”


그러면서 영규는 본인이 폼을 잡았다. 마운드 위에서의 타격 폼. 그리고 스윙을 마칠 때 땅을 다시 강하게 밟아 몸의 전진을 멈추게 하는 왼발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땅을 두드리며 강조했다.


“그게······.”


영규는 다시 웃으며 자세히 설명했다. 두용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저주스럽기만 하던 불안정한 축발이, 그리고 와인드 업 자세에서 다리를 높게 들면 매번 몸의 균형을 무너뜨렸던 고관절의 움직임이, 사실은 오른쪽 타석에 섰을 때는 훌륭한 브레이크가 된다는 말.


당연히 두용은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규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다리를 투수처럼 높이 들 때와 타자일 때의 레그킥 상황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물론 두용 주위에 있던 두 코치들도 영규를 거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 두용을 보고 영규는 이해보다 그냥 녀석이 한 번에 납득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바로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내가 네 영상을 민호에게 보여줬다.”

“민호? 호, 혹시 성민호 선배님 말씀이십니까?”

“어, 네 것하고 영태 것. 둘 다.”


두용은 침을 꿀꺽 삼켰다. 놀란 그의 얼굴을 보고 영규는 역시나, 하며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망할 녀석. 되게 빼더라고. 그런데 네 영상을 본 후에, 아주 길게 뭘 써주더라.”

“성민호 선배님께서 직접이요?”

“그래? 몰랐냐? 넌 민호와 완전히 같은 타입이야. 아니, 어쩌면······, 더 성장할 수도 있지.”

“저, 정말입니까?”

“내 생각이기도 하지만, 민호 녀석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민호 역시 단번에 알아보던데. 너의 약점.”

“제 약점이라면······.”

“떨어지는 공에 대한 대처. 민호도 프로 초창기에 그걸로 고생했지, 아마.”

“그럼 이제부터 그걸 고치기 위해······.”

“지금 당장은 안 돼. 다만 미리 알려주는 거야. 앞으로 네가 처음부터 해야 할 것들을. 알겠어?”


두용은 방금 전까지의 분노, 굴욕은 이미 다 잊었다. 두 선배에게 엄청난 칭찬을 들었다. 더구나 그 중 한 명은 한국 최고의 타자. 그와 같은 타입이라고 한다.

그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영규의 말.


“다음 3연전에는 나와 영태가 나갈 거지만, 그 다음 3연전은 네가 중요할 거야.”


다다음 3연전? 위저즈다. 두용의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쥐어져 있던 주먹에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1. 아이고. 이제야 두 선수의 대충의 포지션 변경과 사연이 끝났군요.

3권은 본격적으로 플레이오프와 한국 시리즈, 그리고 프리미어 12 초반까지 갈 것 같습니다.


2. 앞부분 오류 수정했습니다. 뭔 생각으로 그렇게 적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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