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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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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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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54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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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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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56. 책임감

DUMMY

남은 불씨의 진압과 더불어 부상자들의 운송 및 치료를 위해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다.

같은 장소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자가 몰려왔다.


학생들은 이제 슬슬 지쳤다는 듯한 몰골로 한 곳에 앉아있다.


“저건 뭐냐. 당사자의 상태는 일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붕대를 감고 있던 학생 하나가 노골적으로 기자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나머지 학생들은 이 이상 대꾸할 기력도 없이 침묵했다.


“그나저나 걔넨 괜찮겠지.”


시무룩한 아쿠아가 말하면 피요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그녀의 어깨만 슬쩍 토닥였다.


오두막 내부에 있던 학우와 교사들.

틀림없이 무사하진 못할 터였다.

들것에 급하게 실려 가던 그들을 기억한다.

들고 나가던 구조대원들의 목소리부터 그들의 목숨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스카우터들.

그들의 목소리가 격하게 오가는 것까지.


“괜찮을 거야.”


모두 목격했으면서도 그렇게 내뱉을 수밖에 없다.

위로하는 피요의 목소리도 한껏 가라앉아있어, 아쿠아는 그 이상 차마 뭐라 꺼내지 못했다.


“─이번 사태에 진상은 더 조사해봐야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들은 여전히 증폭기를 놓지 않고 영상기에 대고 한참을 떠든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오두막에 있던 학생들은 극소수였다는 모양이다.


대응이 어설펐어.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급조된 기획인 만큼 배송품의 보관도, 검사도 모든 게 어설펐다고.

이번 스카우터들의 협력으로 이뤄진 학생들의 긴급평가는, 곧 세간에서 그렇게 평가될 것이고 덤으로 택배기사단이 학교에 요구할 수 있는 적정선과 함께 그 영향력도 제법이나 개선될 것이었다.


일단 그때까지는 많은 마찰과 갈등이 오가면서 시간을 소모할 테지만.


뭐 어때.


하루는 여지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근처에서 교장의 연락에 뻘뻘대는 크롬을 확인했다.

이내 단말기를 끊고 한숨을 내쉬는 그가 학생들에게 푸념을 던지는 걸 보면서,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또 알 바냐고 생각 중이었죠.”


“무슨 말이야.”


지아가 옆에서 내놓는 말에 하루는 시치미를 뗐다.

점차 독심술의 내공이라도 올려가는 건가.


“부상자들에겐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서 그녀는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루 역시 그녀의 시선을 쫓았다.


붉은 제복.


“렉스씨, 본사에선 연락이 있었나요!”


기자들이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렉스라는 이름도 이번 사고 이후 처음 전해 들었다.


“피니체 택배기사단에서 물건을 가져왔다는 점에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결코 고의성은 없었으며─”


피니체의 알은 그 이름대로 피니체 택배기사단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용케 침착함을 유지하는 척하지만, 그로선 이만한 손해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따금 그가 피요가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게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자, 인터뷰는 됐습니다. 나머진 서에서 조사가 끝난 후에 하시죠.”


치안유지대는 기자들의 무리를 뚫고서 렉스를 연행해갔다.


“피요!”


애타게 찾는 목소리는 그녀의 부모였다.

학생들의 가족도 그들을 부둥켜안고 울어댔다.

크롬은 여지없이 또 허리만 숙여댔다.

이제와 다른 점이라면, 그의 제자들이 옆에서 최대한 커버해주고 있었다는 정도.


혼란스럽다.

이 장소는 피니체가 있던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혼란이 가득했다.


“교사 하나 트라우마 좀 없애보겠다고 한 일이···.”


하루가 멋쩍은 한숨을 내뱉는다.

이윽고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면, 치안유지대의 안장을 찬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하루씨?”


“누구······.”


“이번 교육의 기획을 제안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역시나 괜한 짓이었다.

하루의 한숨이 오늘 내내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기자나 구조대원, 교사부터 학부모, 학생까지.

인원들이 사라진 사건 현장은 적막이 밤을 가득 채운다.


이따금 현장 보존을 위해 남은 치안대의 수다가 들리는 걸 제외하곤 방금의 소란이 꿈인 듯하다.


“설마 이번 사태로 백묘에 연락이 갈 줄은 몰랐네요.”


경관이 단말기를 들고 있을 때를 떠올리니 지아는 아직도 식은땀이 절로 날 것만 같았다.

용케 실리어스에게 먼저 메시지가 닿았길 망정이지, 빼도 박도 못하고 용의자로 낙인찍힐 뻔했다.

덤으로 학생들과 크롬의 도움도 한몫했다.


지아가 푸념하며 안도하기가 무섭게 하루는 또 경악할만한 물건을 품에서 꺼냈다.


“아저···!”


무심코 목청을 높이려다 보안관들의 눈치를 슬쩍 살핀 후 하루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런 지아에게 그만 등을 철썩 얻어맞고 말았다.


“그건 또 뭔데요!”


하루의 한 손에 들린 건 불씨였다.

밀폐된 플라스크 안에서도 차마 꺼지지 않는 것만 봐선, 영락없는 피니체의 잔재였다.


“이야, 이것까지 들켰으면 변명의 여지도 없었겠다 싶어서.”


“당연한 얘기를······! 대체 언제 챙긴 거예요?”


“배송품 목록에 ‘지고의 플라스크’가 있는 것 같아서. 피니체가 사라지기 직전에 남은 깃털을 수집했지.”


“이게······ 깃털이에요?”


“음.”


고고하게 일렁이는 하나의 불꽃을 지아는 급하게 하루의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깃털도 깃털이지만, 플라스크가 없어진 걸 들키면 어쩌게요?!”


“그 폭풍에 사라진 게 몇인데, 이거 하나 크게 신경도 안 쓰겠지.”


참으로 덤덤한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인간이었다.

지아는 새삼스럽게 이마를 어루만졌다.

사라졌던 어지럼증이 다시 돋는 것만 같다.


“끝까지 숨겨두지 그러셨어요.”


“······네가 숨기고 있는 게 뭔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나만 숨기는 건 어떤가 싶어서.”


지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무슨······ 말이에요?”


하루는 피니체가 떠 있던 허공을 응시했다.

지금에 와선 그저 밤중의 찬 기운만 머물 뿐인 장소.

정말 그 불덩이가 있었나 의심스러울 만큼.


“정말 의심할 여지밖에 없는 순간이었지. 눈치 못 챌 것 같았어?”


하루가 반쯤 뜬 눈으로 응시하면 지아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이내 입을 다물곤 곤란한 눈빛으로 슬쩍 눈을 깔았다.


하루는 재차 오두막의 잔재를 뚫어지게 보면서 말을 이었다.


“업화가 폭염을 지운 게 아니야. 피니체에게서 울음을 끌어낸 건 업화였지만, 그로 인해 피니체는 자아를 완전히 잃고 있었어. 완전히 우리의 살길은 없었단 거야.”


그 순간 무언가가 피니체를 지운 건 틀림없다.

확실한 건 업화의 짓은 아니었다.

그게 더 놀라웠던 건 업화와 함께 통째로 지워졌다는 사실.

그 덕에 그곳에 있던 모두의 목숨이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의 얘기를 지아는 담담히 듣고 있다.

단지 그러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설명할 말이 없다.


“······아저씨.”


그런 지아의 눈빛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하루는 한숨을 거듭한다.


“확인했으니 됐어.”


이내 그렇게만 내놓고 뒤돌아 걸었다.

화제를 꺼낸 건 본인이었으면서, 답은 듣지도 않고 멀어져간다.

얼떨떨하게 있던 지아는 그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하루는 방금보다 확연히 거리낌 없다는 얼굴이었다.

반면 눈치 보기 바쁜 지아에게 하루는 언덕을 내려가면서 한 마디만 중얼거렸다.


“그게 뭔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어.”


지아는 잠시 면목 없이 고개를 숙였다.

시무룩한 눈빛을 바닥에 양껏 흘리던 지아의 머리에 손바닥을 슬쩍 얹었다.


그제야 고개를 슬쩍 들어 보이는 그녀였다.


“덕분에 살았다.”


그녀가 속에 묵히고 있던 생각들이 뭐였는지는 차마 헤아릴 수 없었지만, 그 말로 조금은 그녀의 표정이 풀린 듯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다시금 들러보면, 렉스와 웬 붉은 제복의 남성이 한 명 더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와, 단장이 직접 행차했어.”


곁에 있던 학생 중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야 비로소 그가 피니체의 단장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렉스의 머리를 함께 짓누르며 몇 번이고 허리를 숙였다.


“설마 부화의 알이 아니라 안식의 알을 가져갔을 줄은! 우리 기사단이 맡고 있는 독점 물품인 만큼 신중했어야 하는 게 당연했거늘, 간과하고 말았다!”


피니체가 알로 돌아갔을 때의 형태인가.

둘은 얼핏 같은 형태로 보이지만, 알에서 깨어났을 때의 미치는 여파 자체가 틀리다.

예를 들어 안식의 종류로선, 이번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장은 여전히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다.


“예, 뭐. 저희의 불찰이기도 하니까요.”


단장이란 자는 뒤이어 교실 내부에 있는 전교생들을 향해 크게 사과의 한 마디를 외치기 시작한다.


“이건 또 꽤 요란한 단장이네.”


아침부터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외침을 듣고 있자니 자연스레 관자놀이를 마사지하게 된다.


“그렇게 미안하면 저희 좀 채용해주는 건 어때요!”


창문을 열고 교실 안에서 밖으로 외치던 학생 하나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그런 녀석들의 말에 단장은 또,


“그건 안 된다!”


라면서 정색하는 얼굴로 답한다.

학생들이 웅성대니 렉스가 무안한 표정으로 농담이에요, 라는 식으로 전달해준다.


“그런가! 농담이었나!”


과연 저만한 단장 밑에서 이뤄진 실수라면서, 얼추 납득가는 게 더 슬프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


이 순간에 그들의 뒤에서 피요가 짤막한 효과음을 내뱉었다.

렉스가 뒤돌아 그녀와 마주한다.


묘한 긴장감.


뒤늦게 돌아본 단장은 그녀의 오렌지빛 머리칼을 확인했다.


“자네가 피요인가.”


피요는 답하지 않고 새침한 얼굴로 빤히 그들을 바라봤다.


“네게도 미안하게 됐다. 이번 사건도 그렇고, 지금까지 우리 단원이 집착을 보인 것도. 확실히 우리 기사단에 어울리는 인재였을지 모르는데 아쉽군.”


“단장! 집착이라니···!”


“이번 건으로 더 밉보이게 됐겠군. 그야 우리 기사단에 들어올 희박한 가능성마저 사라졌다고 봐야 하려나.”


반박하려던 렉스마저 입을 다물게 하는 말이었다.

점잖고도 강한 눈빛을 지닌 피니체의 단장에 전혀 밀리지 않는 눈빛으로 응시하던 피요는,


“딱히 이 건이 아니어도 들어갈 리는 없었겠지만요.”


대놓고 단장의 앞에서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 드센 기세와 표정.

단장은 실소하긴커녕 그녀의 매력을 얕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아! 백묘의 기사분들!”


어째선지 피니체 기사 둘의 어깨너머로 신나게 아는 척하는 그녀였다.

재차 돌아보면 하루와 지아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저 둘은······.”


“백묘의 기사입니다. 피요가 저희 기사단 제의를 거부한 이유도······.”


“그때 이후로 반드시 백묘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했어요! 조금 오글거리는 대사였지만, 저희 조는 그날 이후로 완전 백묘 지원하겠다고 난리였거든요.”


하루가 스스로 질색하면서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이미 피요에 머릿속엔 그날의 하루로 가득 찬 듯하다.

아무렴 백묘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때도 가능한 이미지인지 의심스러웠다만.


“아저씨, 무슨 말을 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정해진 일처럼 묻는 지아였다.


“몰라, 이미 머릿속에서 지웠어.”


피니체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끝까지 팔을 흔드는 피요나 지아의 집착성 짙은 시선을 피하며 하루는 학교 내부로 향했다.

드물게 하루를 당황케 하는 요소들로 가득 들어찬 아침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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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2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2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6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6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5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6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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