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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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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81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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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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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42. 정보거래

DUMMY

그녀가 쳐다보고 있다.

반령묘의 오드아이에 자신이 훤히 보인다.

그 속에 있는 하루는 마치 색감을 머금은 서로 다른 두 개체처럼 이질적이다.


하루는 한동안 그녀의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널 도와 텐타클을 세우고 폴리티스모스를 만든 세력을 알고 싶어.”


아라는 흥미롭다는 듯 비음을 흘린다.


“세력?”


“이만한 걸 너 혼자 세웠다고 생각하는 이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은데.”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그런 부분을 궁금해하는 이가 없던 건, 그들에게 있어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기에 더욱 아라는 제 앞에 선 이 남자의 목적이 궁금했다.


하지만 입을 열진 않는다.

단순히 장사꾼의 본질이었다.


“내가 그걸 말해준다면?”


“뭐?”


“당연히 원하는 게 있으면 그만큼 혹하는 제시를 해야지. 여태 공짜로만 살았어?”


“돈이 궁해 보이진 않는데.”


“정보의 값이 얼마나 될진 그쪽이 판단하고.”


“제시도 먼저 상품을 본 후에 하는 거 아닌가.”


일리는 있다.

정보란 게 그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에 따라 값은 천차만별이나, 지금 제게 쥐어진 패가 그에게 있어 중요한지 어떤지도 알 수 없었다.

막상 까보니 그가 원하는 정보가 아니었다는 결과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아라가 잠시 입을 다물고 다시 그의 눈을 마주쳤다.


둘 사이 묘한 공기가 오간다.


그러더니 아라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윽고 고개만 절레 젓는 것이다.


“그쪽이 먼저 까는 건 어때. 난 역시 당신이 정보만 듣고 도망가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거든.”


“그 반대일 경우도 있겠지.”


여전한 신경전.

하지만 승자는 지닌 수가 더 많은 이였다.


“최종병기라면 내겐 충분한 위협이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


아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내뱉은 답에 하루는 그만 표정 관리를 못 했다.

뒤늦게야 요동치던 눈을 가려도 늦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는 다시 손을 내리고 그녀와 마주 봤다.


“어떻게 안 거야.”


“네가 붙잡은 녀석들. 메리 맨이라고 했나? 다소 거래가 있었지.”


흑갑을 발견했다고 이실직고한 건가.

그 녀석들에게 비밀을 유지할 의리는 없다고 여겼지만, 쓸데없이 입을 놀린 모양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최종병기라는 결론에 닿는 거야.”


“난 그들의 멸종을 목격했거든. 누군가 흑갑을 지니고 나타났다면, 멸종시킨 장본인밖에 없지 않겠어?”


하루는 이번에도 침묵으로서 그녀의 말에 수긍해버린 반응을 내비쳤다.

흑갑이 진품도 아니지만, 그녀는 이전에 이미 제 표정을 보고 진상파악을 끝냈으리라.

방심할 수 없는 여자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갔을 뿐이라고 하는데 벌써 피로가 몰려오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문질렀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아. 네가 원하는 걸 주는 건 어떤데.”


하루의 말에 아라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나.”


“필리아와의 갈등의 종지부. 굳이 따지면 피시코스라는 녀석 때문이겠지만.”


그제야 아라는 어딘가 막힌 부분이 뚫려 편안하게 눈썹을 가라앉혔다.

그가 자신을 찾아 그만한 의문을 던질 수 있던 이유도 얼추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그 방법은 뭘까?”


전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필시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그가 해줄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은 자신이 세웠던 계획과 비슷하거나 같은 방도를 건네올 거라고만 예측했다.


“필리아들을 폴리티스모스에서 데리고 나가주지.”


아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럼 하루는 그에 더해 말을 이어갔다.


“역시 네가 짠 계획은 너무 장기계획이야. 게다가 리스크가 크잖아. 결계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도 그들이 순순히 받아들이리란 생각이라면 오산이지. 네게 준 은혜란 건 대삼림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가 유통기한이잖아.”


아무래도 필리아들이 거기까지 하리란 생각은 아니었지만, 만에 하나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수호룡의 존재까지 알고 있던 거야?”


“아무렴 필리아들의 말만 듣고 네게 이런 제안을 할 순 없겠지. 방금 만나고 오던 길이야.”


아라는 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금 침착했다.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말이지만 근거가 없었다.


“대체 그들을 어떻게─”


확인을 받기도 전에 하루는 말을 끊고 곧바로 확답을 냈다.


“페어리 포레스트.”


그렇게 입을 열던 그를 보면 더욱 근거가 사라진다.

아라의 얼굴이 더 가라앉아 있다.

덤으로 실소까지 낸다.


“그곳으로 데려가겠다고? 내가 그 방법을 생각 못 해봤을까? 그곳에 대한 정보는 내게도 있어. 하지만 요정왕에겐 거절에 대한 의사만 받았을 뿐이야.”


어쩐지 그렇게 말하면 하루는 그녀의 실소를 알 수 없는 미소로 받아냈다.


“내 정체만 알았지, 그 이상은 모르는 모양이네.”


그가 지닌 관계에 대한 뜻이었을까.

알 리 만무했다.

최종병기란 존재가 어디서 뭘 어떻게 생활한다는 말이 전장에 떠돌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순전히 그에 대한 정보란 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무력에 관한 것뿐이었다.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야 전혀 무의미한 정보다.


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라는 목울대를 꿀렁였다.

택배기사들이 매일 같이 필리아 문제의 보고를 하러 올 때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여도 그 축적된 스트레스를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을 닦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네 모친은 이곳 출신이었나?”


바로 그 이유가 하루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아라는 무심코 자신이 뭐라도 말했던 건가 떠올렸지만 없는 사실이다.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음··· 미안하지만 아까 사진을 살짝 엿봤거든.”


“엿보는 게 취미인 거야?”


갑자기 반격해 온 그녀는 짓궂게 웃었다.


“대충 네가 이곳에 온 이유나 행동을 살피고 한 예상이야.”


틀렸다는 가정은 필요 없었다.

아라는 곧바로 그게 사실이라는 답을 주었으니까.


“맞아. 내가 세계보존을 결정한 것도, 그들을 모질게 대하지 못한 것도 그래서야.”


아라는 다시금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럼 저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게 되었다.


“적어도 판코스미오에 대한 얘기를 다룰 때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셨으니까.”


지금 아라의 얼굴을 보면 얼추 친모의 표정이란 것을 예상 할 수 있었다.

하루는 그녀를 힐긋 보다가 곧 다시 세계를 내려다 봤다.


보존.

필시 필리아의 본능이라고 했던가.

하프지만 혈연인 만큼 어쩌면 그녀에게도 남아있는 요소일지 모른다.

태초라는 모습을 전혀 남기지 않는 어지간히 이질적인 형태라도 그 효과는 확실했다.

누구보다 이 세계의 보존만큼은 확실히 성립할 터였다.


아라는 아까부터 말이 없던 하루를 가만히 쳐다봤다.

정보 값을 내놓고선 재촉하지 않는 건 그 나름의 배려였을까.

너무 간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고 여기면 그만 실소가 새고 만다.


“그나저나 그들한테 의뢰를 받은 거 아냐? 그냥 그렇게 데리고 나가도 되는 거야?”


그럼 하루가 세계를 보는 눈빛이 아까보다 조금 달라진 것도 같다.


“의뢰가 아니라, 부탁.”


생각보다 냉철한 사람인 건가, 싶으면 곧바로 그 의견을 바꿨다.

아무렴 여태 그가 내놓은 답만 확인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기에.


“좋아. 그 값대로만 해준다면야. 이제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줄게.”


드디어.

참 피로감 넘치는 대화였다고 생각하던 하루가 그녀와 마주 보면, 입을 열려다가도 아라는 잠시 머뭇거렸다.


“흠······. 미리 말해두겠는데 내가 말하는 건 전부 진실이니까. 믿건 말건 그쪽 자유지만.”


갑작스레 꺼낸 얘기의 의미를 모르겠다.

미리 염두 한 말 덕에 괜히 불안함을 지니게 된다.


“날 도운 이들은 붉은 달이라고 불리는 택배기사단이야.”


하루는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바람대로 들은 것 같아 만족하기라도 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나온 정보엔 드물게 사색이 되었다.


“조력의 대가로 정보를 받고 있거든. 역시 믿을지 모르겠지만, 멸망의 단서에 대해서.”


하루는 입을 다물었다.

열 수 없었다.

뭐라고 그녀에게 반응하고 대꾸해야 좋을지, 모색하지도 않고 뇌가 움직임을 멈춘 것처럼 텅 비었다.


아라는 그런 그를 보며 역시나 믿지 않는 건 아닌가, 연신 되뇌고 있었다.

잠시 붉히던 얼굴로 하루를 잠시 더 자세히 마주하니 아무래도 제 생각과는 다른 쪽의 반응이었다.


그는 오히려 이해하고 있었다.

너무 이해해서 심각해진 듯 얼굴에 그림자를 새겨넣고 있다.


“멸망의 단서라는 건?”


마침내 하루가 확연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어, 사실 나도 처음 들었을 땐 뭐가 뭔지 몰랐는데······ 아무래도 붉은 달은 멸망이라는 물건을 찾는 모양이야.”


“물건?”


하루는 자연스레 멸망이라는 명칭을 지녔던 투기장의 보상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명칭뿐인 물건은 아니겠지만 멸망을 하나의 형체로 보고 있다는 건 의외였다.


하루가 다시금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면 아라도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 있었다.


“솔직히 난 아직도 믿지 못하겠지만. 멸망이 형체를 지녔다니, 애초에 여태 조사해도 단서 하나 없고.”


내심 꺼내면서도 그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인지도 조마조마했다.

유의미한 정보여야 했다.


이윽고 하루의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가 아라의 안심을 가져왔다.


“도움은 됐다. 그럼 방금까지 제시한 값을 조만간 지불하지.”


그녀가 가진 정보나 사실이 그것뿐이라면, 이 이상의 대화는 오히려 그녀에게 정보를 주는 꼴이다.

하루는 더 이상 용무는 없다는 듯 뒤돌았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아라는 멍하니 바라봤다.

갑작스레 나타나 생각지도 않던 선물을 내놓고는, 솔직히 자신으로선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정보를 갖고 간다.


아라는 잠시 멍하니 멀어져가는 하루를 보다가 문득 떠올린 듯 급하게 외친다.


“혹시라도 내가 꺼냈다는 건 붉은 달에겐 함구해달라고!”


하루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 한쪽만 들고 흔들었다.


꼭대기 층에 남은 아라만 혼자 그가 사라진 잔상을 쫓아 한동안 서 있다.

그러더니 그만 스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쫄았다.”


사실 그라는 존재가 이 세계에 와있다는 건 일찍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감히 상대할 생각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오만하다고 칭해주고 싶었다.


막상 마주한 이후엔 끊임없이 어색한 실소만 새어 나온다.

연달아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지금에서야 마치 *그랜드 고브 같이 왔다가 홀연히 사라진 그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산타 같은 존재


과거에 자신이 목격한 이는 이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한 실소도 잠시 아라는 지금과 쉽사리 겹쳐지지 않는 하루의 첫인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박살 난 흑갑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황야.

미치광이들의 피로 온몸을 적시던 몸.


회상하고 있자니 다시금 소름이 돋는 듯 양팔을 감싸고 부르르 떨었다.


“아무렴 세월을 이기는 자 없다는 건가.”


그렇게 내놓는 그녀의 양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간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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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158. 사자의 협곡 21.12.08 48 2 12쪽
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2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6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3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7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5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 #142. 정보거래 21.11.16 44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7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6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7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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