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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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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8,023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0.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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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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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30. 판코스미오

DUMMY

하루가 다리에 나타나기 조금 전.


거대목이 무성한 숲속을 헤매던 하루와 지아는 이윽고 숲에 뻥 뚫린 기묘한 공간에 다다랐다.


“공터?”


자연적으론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한참 서성여도 의도를 알 수 없다.


“인위적인 느낌인데.”


“그러게요. 근데 아무것도 없네요.”


부자연스럽게 보일 뿐 어딘가 확실한 느낌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웅성대는 소리와 공간의 일렁임을 마주했다.

둘의 눈꺼풀이 한 번 깜빡인다.

그럼 방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나무 위 집들이나 각종 건축물이 돌연 나타났다.

아니, 본래 그곳에 있던 느낌이다.

마치 자신들이 또 다른 공간으로 도약한 것처럼.


하루와 지아가 서로 등을 맞대며 고개만 치켜들고 방황했다.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웅성거림이 멎었다.


후웅─

쿵!


공중에서부터 거대한 공처럼 생긴 것이 하루의 앞으로 떨어졌다.


“누구시오.”


말한다.

스라임 이후로 처음이었을지도.


여전히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울 때, 몇 번 움찔움찔하더니 공 위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두 갈래의 커다란······


“토끼?”


하루가 한쪽 눈썹을 올리고 의심스럽게 보고 있자니, 아니나 다를까 그 덩치에서 너털웃음이 새어 나왔다.


“굳이 따지자면 그 말이 맞소. 난 판코스미오 고대촌의 촌장. 이방인이여, 대체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으나, 마을의 이들이 불안해하니 그대의 신분을 밝혀주시겠소.”


알아채지 못했으나 지금 보면 눈을 덮은 기다란 눈썹이나 수염이 나 있다.

털을 대체 얼마나 길렀으면 털 뭉치처럼 보일 정도인가.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하루는 그를 올려다 봤다.


“단순한 방랑자이니 안심해도 좋아. 수인들의 숲인지 모르고 들어왔는데, 이거 미안하게 됐네.”


머쓱하게 사정을 설명하니 어딘가 심각하게 숨을 내쉬면서 수염을 흩날리는 토끼였다.


“경계가 노출될 정도라니······.”


“장로님───!”


통 알 수 없는 말을 맥없이 내뱉는 토끼 장로에게 달려온 건, 쥐였다.


“이번엔 쥐!”


“멧밭쥐네.”


지아의 말에 덧붙여야 할지도 망설이던 하루가 툭 던지면서 올려다보던 고개를 이번엔 내렸다.


“무슨 일이냐 라소르.”


“피시코스 오빠가······!”


뭔가 굉장히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 표정인 하루나, 이미 그들에게 매료된 지아의 표정이 또 그렇게나 대조되어 보일 수 없다.


#


“그러고선 대뜸 날 구하러 왔단 말이야?!”


다시 현실로 돌아와선 피시코스는 하루의 등에다 대고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사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됨됨이가 그렇게 후해?”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억양과 맥락으로 방방 날뛰는 피시코스가 지아의 어깨에서 휙 내려왔다.


“그나저나 아까 그곳과는 확실히 다르네. 그야말로 기원전과 첨단시대의 차이야.”


“무시하지 마!”


귀를 후비면서 철저하게 피시코스의 말은 차단하고 있었다.

그런 하루의 앞에 다시금 장로가 굴러왔다.


“고맙네, 방랑자여! 우리의 몇 남지 않은 전사를 구해주었어!”


그럼 피시코스는 이미 포기한 듯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지아의 어깨에 올라있던 라소르가 그의 반응을 보며 시무룩해지자, 지아가 피시코스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봐! 기껏 구해줬더니 아까부터 뭐야? 여동생이 이렇게까지 걱정했는데,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안심시켜줄 수도 있잖아!”


피시코스는 다시금 한숨을 내쉼으로써 지아의 화를 의도적으로 끌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그의 말에는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 덕에 기존에 짰던 작전이 전부 허사가 되었잖아.”


“뭐?”


“무슨······”


“조금 있으면 그녀가 올 거야. 그때 얘기를 듣도록 해.”


그러더니 재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 제집으로 돌아갔다.


“뭐라는 거야 저 녀석.”


그렇게 신경질적인 투로 내뱉는 지아의 어깨에서 라소르는 아직 시무룩해 있다.

그 검은 눈망울을 보면 무심코 지아는 쓰다듬고 싶은 충동에 빠졌지만, 애써 참아냈다.


“너무 상심하지 마, 라소르. 어디까지나 너희 오빠의 잘못이니까!”


주변의 반응이 어떻건 하루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가 장로에게 다가갔다.


“이곳에서 머물게 해준다니 일단 구하긴 했지만, 괜찮다면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을까.”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괜찮소. 하지만 그 전에 식사를 들면서 얘기하는 건 어떻소. 이 숲에 방문자는 오랜만이라, 대접도 못 하고 부탁부터 하는 꼴이 되어버렸어.”


하루가 고개를 돌려 지아를 바라봤다.

필시 방금의 제안이 그녀의 웃음을 만들어냈으리라.

어쩔 수 없는 녀석이다.


어쨌든 마침 굶주리고 있던 터라 하루 역시 수긍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몸을 끌고 거대목으로 향하는 장로의 뒤를 따랐다.


딱, 따악!


곧 장로가 지팡이를 두 번 내리치면 거대목 기둥에 거대한 입구가 생성되었다.

주변에 있던 주민 몇이 먼저 내부로 들어선 이후 장로가 잇따라 들어갔다.

서로 눈치를 보던 하루와 지아도 안으로 향했다.

곧 생각보다 훨씬 넓고 높은 실내가 드러났다.


“식사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외친 건 먼저 위층으로 날아간 만복조라 칭하는 동물이었다.

서글픈 눈매에 통통한 복부를 가지고 있는 새인데, 매번 힘겹게 나는 터라 생김새나 그 행동으로 울보새라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만복조에게 떼로 몰려간 건 넷비.

집단으로 행동하는 벌이다.


하루가 새삼 각종 동물의 특징을 지닌 수인들이 주위를 드나들면, 정신없게 그들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반면 지아는 옆에 앉아 라소르와 대화하기 바쁜 모양이었다.


“허허, 수인국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을 것이오.”


“전부 수인인가.”


“간혹, 동물들이 섞여 있지만 그렇소. 정확하겐 평범한 수인들과는 다르지만.”


“다르다는 건?”


“필리아. 우린 서로를 그렇게 칭하고 있소. 오직 판코스미오에서만 존재할 것이니 드문 게 당연할 것이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 이 세계의 이름인가?”


“그렇소. 지금은······ 다른 이름을 지니게 됐지만.”


그렇게 답하면서 아련하게 깔리는 목소리에 벌써 하루는 눈치챘다.

틀림없이 자신의 의문과 연계되어 있으리라.


“그 도시에 있는 이들과 연관이 있는 건가.”


장로가 금방 고개를 들며 자신과 마주 보는 게, 정확히 짚어낸 듯싶었다.


“의문이라는 게······”


“피시코스라는 이를 구하다 그 도시를 발견했어. 물론 세계에 제각기 다른 세력들이 공존하는 건 드물지 않지만, 이 숲에 먼저 들렀다가 본 그 도시는 어딘가 이질적이었어. 물론 나도 안개 탓에 확신할 순 없지만, 도시의 범주가 숲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고.”


“······.”


장로는 침울해졌다.

그놈의 털에 묻혀 표정이 확실하진 않아도 분위기가 말해줬다.


“애초에 그쪽이 이것저것 언급하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허허, 나도 참 쓸데없이 말만 많아져서 그렇소. 나이를 먹다 보면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랄까······.”


“······아, 그래. 공감해.”


하루가 무심코 읊조리면 장로의 의문스러운 시선이 잇따라 온다.


“그보다 다람쥐 녀석이 그곳에서 택배기사들과 대치하던 사건하고 영 연관이 없진 않을 것 같은데.”


“······정확하게 봤소. 그 이야기를 위해선 먼저 판코스미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군. 판코스미오는 본래 필리아들이 살던 세계였소. 아직 이 고대촌이 온 대지를 뒤덮던 대삼림이었을 시절. 그리고 수호룡이 존재하던 시절.”


“수호룡? 그런 게 있던 건가.”


“다른 이들에겐 무신이라 불리던 분이었소. 대삼림이 전쟁 통에서도 손상 없을 수 있는 이유였고.”


용종의 결계라면 납득이 갔다.

그 용제의 결계도 술식에 강한 사대정령왕이나 천계의 치품들조차 감히 넘볼 수준이 아니었으니.

무신이라 일컬어진 용이라면야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했을 터다.


“하지만 지금 없다는 건, 수명이 다한 건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소. 그 옥체마저 남기지 않은 채.”


“뭐? 용종이 벌써 수명이 다한 건가? 설마 무신급의 존재라도 찾아온 건?”


드물게 하루의 당황한 기색이 느껴진다.

라소르와 이야기를 나누던 지아마저 대화를 멈출 정도로.

뒤이어 장로가 고개를 저으면 그 기색은 더욱 짙어졌다.


“얼마 전이라고 해도 종전 직후의 일이니, 여타 종족의 시간 개념과는 제법 다를 수 있소. 한 반령묘가 찾아왔었소. 어떻게 들어온 건지는 모르나, 모처럼의 이방인. 한동안 이곳에 묵어도 되겠냐는 그녀를 우리는 반갑게 맞았소. 그렇게 시간이 지났던가, 한동안 머물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녀는 이미 우리에게 녹아들어 있었지.”


슬슬 이야기의 결과가 보이는 듯하면 하루의 눈동자가 지극히 침착해져 있었다.

그럼 반대로 무심코 이야기에 빠져든 지아는 불안한 눈동자를 했다.


“그녀가 수호룡을 죽인 건가.”


“그렇소. 하지만 우리는 그로 인해 은혜를 입었소.”


“······무슨 말이지?”


갑자기 이야기의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면 하루는 다시금 의문조를 띠었다.


“수호룡이 타락했거든.”


“타락? 수호룡도 타락을 하나?”


“우리마저 처음 안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눈치채고 있었소. 세계를 뒤덮고 있던 결계의 약화는 다 그것이 원인이었다는 걸. 실제로 수호룡이 습격하려는 흔적이 대삼림 곳곳에 보였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 필리아를 살린 건 그녀였지.”


“······반령묘가 수호룡을 죽였다고?”


“그리고 그녀는 제안을 건넸소. 대기 중에 남은 수호룡의 힘이 고갈되어 결계가 사라진다면, 이 세계를 식민지화 시키려는 이들이 나타날 테고, 만일의 경우엔 이 숲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설마 대비책이 저 도시라는 건가.”


장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우리를 잘 알고 있었소. 이 숲이 사라진다는 걸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있었으니까. 문명의 진화가 아닌 원초적 형태의 보존. 그게 우리 필리아들의 특성이오. 누군가에게 덜 진화한 종족이라거나 되먹다 만 특성이라 불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종족 차별 발언이야. 제 토지를 유지하려는 종족들은 아직 많고, 그게 자신들을 깎아내릴 이유는 되지 않아.”


지아가 웬일로 위로하는 말투의 하루를 지그시 쳐다보면, 그 시선의 의미를 안 하루는 애써 피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소.”


실제로 그들은 어딘가 과하게 주눅 들어 있었다.

처음 고대촌에 발을 들였을 때도 곧장 포위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건, 도시를 의식한 탓도 있겠지만 분명 전자의 이유가 컸을 것이다.


무심코 그들을 마주하다 보면 언젠가의 요정왕을 떠올리고 말았다.

답지 않은 위로를 건넨 건, 아마 그 탓이었다.


계속되는 지아의 시선에 마침 제 언행을 후회하려던 찰나, 만복조와 넷비들이 절묘하게도 한가득 끌고 온 접시들을 상에 올려놓았다.

다행히 예상대로 지아는 그것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만복조나 넷비들도 그녀의 반응에 제법 뿌듯해진 표정이다.


“자자, 다음 대화는 식사하시면서 진행하시죠.”


작가의말

이번주도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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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7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3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2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8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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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2. 정보거래 21.11.16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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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138. 과거사 21.11.10 4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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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8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 #130. 판코스미오 21.10.29 46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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