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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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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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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26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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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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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45. 페어리 포레스트

DUMMY

─자 여기 등록해라.


회색빛의 머리칼.

은빛 눈동자.

지팡이로 짚고 다니는 게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영락없는 할망구였다.


하루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골렘의 손바닥을 맞잡았다.

제 덩치만 한 골렘이 묘한 소리를 내더니 맞잡은 손바닥에서 빛이 일었다.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싱긋 웃었다.


─이제 안전하게 우리 집에 들락거릴 수 있게 된 거다.


요정의 형상을 하지도 않은 그녀는 또 ‘우리’라고 칭한다.

세상에서 가장 드문 요정이었을 것이다.

몸집도, 생김새도 무엇보다 요정이 아닌 자신과 더 근접해 있는 듯한데.


하지만 그 모습이 싫진 않았다.

웃을 때마다 지던 주름도, 자신을 손자놈이라 멋대로 칭하는 호칭도.

그저 따스하기 그지없어서.

하루는 햇살에 데워진 제 뒷머리만 연신 매만졌다.


#


하루가 왔던 길로 돌아가던 골렘의 뒤를 지켜봤다.

걸을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요란스러워 주변에 있던 이들은 좀처럼 침착하지 못했다.


“설마 브이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커져 있을 줄이야. 골렘도 성장기란 게 있었나.”


“골렘에 이름까지 붙여준 거예요?”


“그땐 곧잘 마주하는데 그냥 너, 라고 부르기도 뭐해서. 내 고향에서 친근한 이름을 좀 붙여줬지.”


“고향이면, 인계요? 아니면─”


“후자.”


지아는 필리아들과 달리 이미 요정왕에 대한 압박이나 긴장을 잊은 모양이었다.


골렘을 조우한 직후부터였을까.

통 알 수 없는 둘만의 대화를 듣던 이들이 아까보다 더 조용해졌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들의 후각을 자극하는 내음에 필리아 모두는 매료된 듯한 표정을 띠었다.


이 향긋함과 찬란한 이슬의 양.

그들은 일제히 확신하고 있었다.

이 대지에 깃든 에너지는 풍부하다.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확신이 들자 피시코스는 풍만한 볼을 한껏 늘어뜨렸다.


“너도 그런 표정을 짓는구나.”


지아가 힐끔 뒤돌아보며 건넨 말에 피시코스는 다시 퍼뜩 정신 차렸다.

구태여 새침하게 콧바람을 내뿜는다.


아무렴 보금자리에 대한 만족감은 필리아의 본능을 지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요!”


그때 문득 안내하던 요정이 외치면 방금까지의 반응은 없던 것처럼 긴장감이 감돈다.


요정이 먼저 안쪽으로 획 날아간다.

필리아는 그 뒤를 따르는 하루의 뒤로 한층 더 느릿느릿 걸었다.


드넓은 광장.

그 옛날 유토피아라 불리던 땅이 있다면 이와 비슷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울창한 숲은 어디 가고 드넓은 초원과 함께 갖가지 자연의 구조물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한참 주변을 구경하던 필리아들이 앞에서 멈춰 선 하루의 움직임에 맞춰 우뚝 섰다.

조그마한 몸짓으로 하루의 등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뺀다.


그의 앞엔 수많은 요정, 정령과 더불어 머리 위에 왕관을 쓴 한 푸른 요정이 허공에 떠 있다.


누구라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딱히 그 외견 때문이 아닌, 숲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느꼈던 기운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이 숲의 왕이라고.


“오랜만이네, 꼬맹이.”


하루가 돌연 그렇게 내놓는 바람에 뒤에 있던 이들은 하나 같이 입을 떡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미친놈이야!’


필리아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외치면서도 아쿠리스의 눈치를 봤다.

어딘가 심기가 불편한 모습이다.

솔직히 표정이 어떤지 자세하게 알아낼 순 없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그가 두르고 있던 푸른빛의 파장이 일렁이는 것 정도로 그의 기분은 알 수 있었다.


그럼 또 하루는 괜히 한 마디를 더 놓았다.


“어디 불편해?”


‘너 때문이 아닐까?’


차마 입으로 내지 못하고 속으로 답하던 필리아들에 맞춰 아쿠리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저도 위치란 게 있으니 그 호칭은 어떻게 안 되는 겁니까.”


호통치기는커녕 그는 정중히 높임말을 써가며 부탁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놀라던 그들은 하루에 대한 의문보다 아쿠리스의 인성에 감탄하고 있었다.


저게 바로 왕의 인성!


필리아들이 연신 속으로 멋대로 장단을 맞추든 말든, 하루는 신경 쓰지 않고 그와 편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뭐야, 그런 것 때문에 불편한 거였어?”


“그건 아니고 사실은······”


아쿠리스가 다시금 제 이마를 어루만지며 흘깃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하루는 어디선가 들리는 훌쩍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뭐야, 저 녀석은.”


자신 외의 요정이나 정령도 아닌 누군가가 이 숲에 있는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필시 이 녀석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고 단숨에 알아챘다.


“침입자?”


“아닙니다.”


“그럼?”


“그······ 이래 봬도 동맹국의 선생이란 자인지라······”


“동맹국?”


낯선 단어.

아니 굳이 따지자면 숲의 주인이 언급했기에 비로소 어색해진 단어였다.


“페어리 포레스트가 동맹?”


“정확하겐 하프버프 월드에 있는 연맹국 중 하나죠. 그들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세력을 연맹으로 묶어놨어요.”


하루의 눈썹이 움찔했다.

이윽고 선생이라는 작자를 바라보는 눈빛에 다소 적의가 어린다.

그러다가도 엎드려 훌쩍이던 그가 고개를 들면 있던 적의도 다 사라졌다.


“선생이란 건 또 뭔데.”


“그는 연맹국 오피아롯의 기사학교 선생입니다.”


“기사······.”


다시 한번 내려다보고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면, 선생이란 작자는 어딘가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이윽고 선생이 주변을 둘러보면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들이 대거 자신에게 향해있다.

다시금 촉촉해지는 그의 눈망울이 아쿠리스의 한숨을 자아낸다.


“이래 봬도 영웅 출신입니다.”


“뭐야. 히키코모리화된 수호룡 따위하고 같은 맥락인 건가.”


“그건 또 뭡니까?”


“아, 그런 게 있어.”


하루의 답에 아쿠리스는 알 수 없다는 반응으로 다시금 그들의 앞에 섰다.


“그나저나 정말 굉장히 오랜만 아닙니까. 게다가 인계에서 이곳까지 오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무슨 일이십니까?”


“나도 설명하자면 길고, 지금 당장은 이 녀석들 때문에.”


뒤로 가리키는 하루의 엄지를 따라 아쿠리스가 시선을 움직였다.

수많은 동물.

역시 수인인가 일순간 착각했지만, 그 기운을 탐색해 정령에 더 가까운 존재들이란 걸 알아냈다.


“필리아?”


그리곤 곧바로 근처에서 그런 존재가 있을 법한 세계를 떠올리곤 그들의 종족을 맞춰낸다.

하루가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요정왕이란 이름값은 하네.”


헛기침을 놓는 아쿠리스의 표면 장막이 푸른색에서 부드럽게 분홍빛을 은은하게 띠었다.

옆에서 지아가 그걸 보곤 흥미로운 듯 조용히 감탄사를 흘리고 있다.


“그나저나 이들이 어쨌다는 겁니까.”


“우르르 몰려온 걸 보면 모르겠어?”


“······저희와 같은 겁니까.”


아쿠리스가 의미심장하게 말하면 하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팔짱을 끼더니 뭔가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필리아들의 털 속에 숨은 식은땀이 흘러댔다.


“뭘 그렇게 고민해. 어차피 숲은 넓잖아. 이미 국가급이 아니라고. 이 정도 들여도 아무 문제 없지 않아?”


하루의 재촉에 내심 필리아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아쿠리스와 눈이 마주치면 굳은 석상처럼 멈췄다.


정작 아쿠리스는 그들이 어떤 반응이건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중요한 건 그들을 들이는 목적으로 하루에게서 뭘 뜯어낼 수 있는가.

고로 오히려 그가 고민하는 시간에 초조함을 느끼던 건 하루였다.


“좋습니다.”


그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그렇게 내놓을 때 필리아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만개했다.

물론 그 순간 음흉한 미소를 발견했던 하루에겐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침착하지 못하고 연신 발을 까딱대는 게 그 방증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제 골칫거리 좀 치워주시죠.”


아쿠리스가 고갯짓을 하면 하루는 그걸 따라 방금의 울보 선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루가 뚜벅뚜벅 걸어 선생의 앞에 선다.

돌연 멱살을 잡고 세우더니,


“그래서 그 아피아롯이란 게 어느 방향인데?”


같은 흉흉한 소리를 내뱉는다.


아쿠리스가 당황하면서 그의 멱살 잡은 주먹을 떼놓으려 했다.

그럼 겨우 하루가 다시 선생을 내려놓았다.


“누가 날리라고 했습니까!”


“뭐야, 치워달라며.”


“그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원래 이렇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었던가.

아쿠리스가 다소 풀 죽어 있으면 지아가 다가와 작은 등을 두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이쯤 되면 왕이란 인식이 그녀에게 없는 게 분명했다.


“어쨌든 이래 봬도 그는 숲의 친구란 말입니다.”


“뭐야, 그렇게까지?”


의외라는 듯 다시 쳐다보면 선생은 이미 얼이 나가 있다.


“그걸 제쳐두고서도 연맹국의 인간을 날려버려서 어쩔 생각인 겁니까.”


“그럼 어떻게 하라고.”


하루가 슬슬 불평인 투로 던지기 시작한다.

전혀 부탁하러 온 사람의 태도론 보이지 않았으나 아쿠리스는 오히려 그 질문에 당황하고 있었다.


아쿠리스가 흘깃 내려본다.

선생과 눈이 마주치면 표면의 장막이 미묘하게 불규칙적으로 일렁인다.

그게 어색한 미소라는 걸 알고 있던 선생은 재차 통곡했다.


“너무해 아쿠리스──!”


난감한 남자다.


어떻게 된 건지 하루가 다시금 아쿠리스를 마주 본다.


“하하, 사실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못 들은지라.”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차가워지는 듯하다.


“어쨌든 수락하시는 거죠?!”


하루가 움찔하면서 뒤를 돌아보면 수백 짐승의 눈초리가 자신에게 쏠려있다.

물러날 기미도 없어 보인다.

하루가 혀를 차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수긍의 의미란 걸 잘 알고 있던 아쿠리스의 표면이 확연하게 규칙적으로 일렁인다.


“일단 모두의 보금자리도 정해야 하니, 그때까지 여기서 얘기를 들으시죠.”


“뭐야, 그런 것도 정해야 하는 거야? 그냥 대충 아무 나무나 자리 잡고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저희를 어떻게 보고 계신 겁니까.”


“뭐라니 그냥······”


차마 동물농장이라는 말을 꺼내진 못했다.

필리아들은 잠자코 있는 게 괜히 더 서운한 느낌이었지만, 그에 대한 감사를 잊진 않았다.


“드디어 내 말을 들어주는 거야······?”


존재감이 잊혀질 때쯤 꼭 파고드는 선생의 흐느낌에 주변인의 한숨이 겹쳐진다.


“그럼 다과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쿠리스가 선생을 마저 무시하고 요정들과 함께 이동했다.

필리아들은 아쿠리스의 손짓에 눈치를 보면서도 자리를 떴다.


남은 건 하루와 지아뿐.


괜히 어색함이 감도는 공간에서 선생이 뭔가를 떠올리곤 다시금 훌쩍인다.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주먹을 지아가 용케 말렸다.


하루는 진정하곤 구석 나무 벤치에 주저앉았다.

선생이란 작자를 애써 위로하는 지아가 새삼 오지랖 넓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혹시 내가 하는 짓들도 비슷한 건가.”


자각과 더불어 깊은 회의감이 제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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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2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2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2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0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6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5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6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5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6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2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4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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