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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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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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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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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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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154. 돌발상황

DUMMY

학생들의 허덕이는 숨소리가 언덕 아래서부터 올라온다.

그들의 머리가 언덕 위로 드러났을 때, 그들의 눈엔 오두막 하나가 들어왔다.


가공된 나무로 이뤄진 오두막.


이내 다소 실망하는 표정들도 마주할 수 있었다.

막 올라오던 피요와 같은 조 학우들은, 제 앞에 이미 놓인 배낭들에 시선을 못 뗐다.

피요 역시 잠시나마 굳은 표정을 풀고 입을 열었다.


“다들 알잖아. 경쟁 아니란 거.”


그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있는 한편 여전히 실망감을 드러내는 녀석도 있다.

예를 들어 눌라.


“경쟁은 아니지만, 우리보다 일찍 배송을 마쳤다는 사실은 변함없잖아.”


피요에게 산이라고 불리던 남학생은 천천히 눌라의 뒤로 걸어가더니, 그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악!”


놀란 눌라가 홱 뒤돌아보더니 노려본다.


“뭐하는 짓이야.”


“그 불평에도 지쳐서.”


그러곤 아무렇지 않게 산은 오두막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야!”


그 뒤를 따라가는 눌라와 한숨을 푸욱 내쉬던 나머지 학생들도 산을 쫓았다.


먼저 오두막 앞에 서선, 잠시 배낭을 오두막 앞에 둬야 하는지 망설이던 산이 돌연 뭔가를 발견하고 멈칫한다.


‘방금 움직이지 않았나.’


그가 앞의 팀의 것이라 예상되는 배낭에 눈을 고정했다.

아무렴 배낭이 혼자 움직일 리가 없다 싶어 다시 외면하고 오두막 입구로 향한다.


그럼 뒤를 쫓던 눌라가 이번엔 산이 서 있던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곤 똑같은 자리를 한참 쳐다본다.


꿈틀했다.

틀림없었다.

배송품이 배낭 안에 그대로 있던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괜한 불안감에 속이 울렁인다.


줄곧 시선을 떼지 못하고 불편하게 있자면, 이내 자신이 보고 있던 배낭에서 묘한 빛이 드리운다.

흰색이라고도 생각된 빛이 배낭 입구로 점차 희미하게 새어 나오더니, 곧 배낭 전체가 붉어지기 시작한다.


“미친.”


눌라가 순간 거친 말을 내뱉더니 산을 향해 뛰었다.

이내 문손잡이를 붙잡으려던 산이 그를 발견하고 몸을 틀었다.


자신에게 뛰어드는 눌라를 차마 막아내진 못했다.

그대로 눌라가 산의 몸을 붙잡고 뛰자,


굉음과 함께 주변 일대가 폭풍에 휩쓸렸다.


들리지 않는다.

귀가 먹어버린 걸까 착각에 빠질 즈음 뿌연 세상도 시야에 담겼다.

순간적인 어지럼증에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머리를 붙잡고 눈을 다시 감는다.


타닥, 하고 무언가가 타오르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

어쩔 수 없이 눈을 떴을 땐 다른 의미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방금까지 오두막이 있던 자리가 맞나 싶을 만큼 아무것도 없다.

그 자리엔 커다랗게 생긴 크레이터와 알 수 없는 거대한 불길만 치솟고 있었다.


산이 주변을 살피면 이따금 보이는 타오르는 나무의 잔재.

그 덕에 오두막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는 걸 알아챘다.

조금 더 고개를 틀면 방금 자신에게 뛰어들던 눌라가 엎드려 있다.


정확하겐 쓰러져있었다.

그가 지닌 등의 경갑이 푸른 빛을 발하지 않는다.

잔뜩 그을려 제 역할을 잃어버린 것처럼.


“산아!”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한참 더듬다 그게 선생이란 걸 알아냈다.

크롬 선생이 펼친 장막의 뒤엔 나머지 학우들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이상 뭔가를 말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귀가 먹먹하고 눈앞이 흐릿하다.


세상이 핑 도는 와중에도 옆을 더듬어 눌라를 찾았다.

그의 몸을 흔들었다.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움직임조차 없다.

돌연 불안감이 몰려온다.


산은 머리를 한 번 저으며 정신을 용케 붙잡고는 엎드린 눌라의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리곤 그의 심장에 귀를 가져갔다.


제 심장 소리가 더 큰 탓에 들리지 않는다.

간신히 심호흡을 반복하며 안정을 취한 후 다시금 시도했다.


······뛴다.

그제야 산은 목 끝까지 묵혀뒀던 숨을 뱉어냈다.

조금씩 시야가 회복될 즈음 제 등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데 눈치챘다.

눌라를 그 장소에서 데리고 나가야겠다 싶을 정도로 뜨겁다.


어느 정도의 불길이었는지.

고개를 돌렸을 때, 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재차 놓칠 것 같던 초점을 바로잡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게 있다.

그것도 아니면 제 시야로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던 것뿐인지, 다시금 눈을 비비고 쳐다본다.

아니, 그건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자신이 단순하게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불길’ 따위로 인지했을 뿐이다.


거대한 새.

아니, 역시 단순한 불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새의 날갯짓을 하고 있지만 역시 불이었다.


의심하고 있을 즈음 그건 울었다.

거대한 굉음.

뭐라 표현하기 힘든 날카로운 울음.


역시 그건 생명체였던 걸까.

그 존재를 확신하기도 전에 그 앞에 있던 크롬은 여전히 자신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저 불의 울음 때문에 들리지 않던 게 들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속으로 되물으면 선생의 말은 더욱 뚜렷해진다.


“도망쳐!”


그리고 때마침 그 말을 파악했을 때 기구하게도 굉음을 내놓던 불새는, 그 안에서 몸 일부를 떼어놓듯 불구덩이를 쏘아낸다.

거대한 운석처럼 제 눈앞으로 다가온다.

차마 움직이지 않는다.

멍한 얼굴로 불덩이를 받아내려고 할 때,


우웅─

후우우욱!


에너지가 압축되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 거대한 푸른 불길이 자신과 눌라를 덮치고 있었다.

순간 타오른다는 생각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뜨겁지 않다.

깨닫고 보면 붉은 제복의 기사가 제 옆에 서 있다.


“괜찮아?”


해맑은 미소로 괜찮냐고 묻는 말에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애써 억누르며 고개만 끄덕였다.


푸른 불길이 방금의 불구덩이를 상쇄시켰다.

사내가 팔을 한 번 휘두르면, 푸른 불길도 걷혔다.


“저건······.”


산이 여전히 거세게 타오르는 그것에 눈길을 주며 물었다.


“···피니체.”


답하는 붉은 제복의 사내가 드물게 심각한 표정으로 불새를 향해 고개를 든다.


“그게 뭐죠?”


마찬가지로 크롬 선생에게도 같은 답을 듣던 학생들이 묻는다.

그럼 크롬 선생이 바로 앞에서 방어 술식을 지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불사의 존재야. 보통은 국가급 행사에서 안정된 방식으로 부르는데, 어떤 연유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몰라도 내 예상대로면 도망치는 게 답이야······.”


“불사라는 거면 상대할 방법도 없는 거 아녜요?!”


차마 답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해가 점차 지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는 없겠다만, 적어도 이 이상 거대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였다.


크롬은 제 뒤를 힐끔 바라봤다.

학생들의 불안한 눈동자들이 보인다.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부디 학생들만이라도 미리 대피시킬 수 있다면.


쿵!


그렇게 바랐을 때 하루가 위에서 나타났다.


“세 명씩 옮길 테니까 날 붙잡아.”


돌연 나타난 하루에 잠시 당황하던 학생들은, 크롬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고서야 그를 붙잡았다.


“만약, 상대할 방법이 있다면요?”


그럼 갑작스레 피요가 그렇게 내놓는 것이다.

크롬은 제 귀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진심이었다.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업화요. 선생님도 눌라의 배송품을 확인하셨잖아요.”


피요의 말에 크롬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눌라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루는 그런 둘의 망설임을 목전에 두고선 학생들의 피난을 미루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하루를 한 번 파악하곤 학생들은 서로의 의지를 묵시했다.


“저희도 괜찮아요.”


말없이 의견을 나누던 녀석들은 돌연 하루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붙잡고 있던 팔을 떨어뜨렸다.

잠시 당황하던 하루가 그들을 바라본다.


“무슨···”


“저희도 사실 아쉬웠거든요. 이번 사건을 저희가 해결할 수 있다면, 점수는 몰라도 스카우터분들의 인식에 영향이 있지 않겠어요?”


불안하면서도 다부진 눈동자.

눈빛에서부터 떨림이 보일 정도지만 감히 그것을 연약하다 치부할 수 없었다.


하루는 뭐라 내놓을 수 없을 만큼 어이가 없었지만, 어째선지 거절하지 못했다.


“자, 잠깐. 근데 감긴 업화를 푸는 건 배송품의 손상을 의미하는 거잖아.”


한 학생의 말에 잠시 나머지가 침묵한다.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요즘 학생들에겐 평범하단 건가.

하루는 그만 실소를 흘렸다.

반면 크롬은 그런 제자들에게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평가 여부를 따질 때야? 이미 너희가 감당할 일을 넘어서도 한참 넘어섰다고! 게다가 너희가 지금 남아서 뭘 하겠다고 그러는 거니. 역시 어른들에게 맡기고 얼른 대피해.”


흔치 않은 크롬의 윽박에 학생들은 움찔했다.

그것도 잠시 이번엔 피요가 화가 난 투로 그에게 쏘았다.


“어른들에게 맡겨서 이 모양이 된 거잖아요!”


이번엔 크롬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뒤로 뺐다.

피요는 기세를 몰아 세차게 한 번 더 그를 몰아붙인다.


“배송품은 스카우터들이 준비했다는 거 다 알아요. 그리고 폭발 전에 배낭에서 일어나던 빛을 봤어요. 누가 봐도 배송품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택배기사의 입지가 완벽히 실추되는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하루 역시 의심했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행했다기엔 명백히 도를 넘어섰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

단순한 사고라고 할 밖에.


하지만 그걸 인정해버린다면 이번 사건을 낳은 택배기사로선 더욱 난처했을 터다.

예를 들면, 아이 둘을 지키고 있던 저 붉은 제복의 표정처럼.


하루는 처음부터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겐 모든 스카우터들에게서.

그렇기에 더욱 이번 일은 붉은 제복의 기사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피니체가 알을 뚫고 나왔을 때의 그 절망이 서린 표정을 봐버리면, 누구라도 그렇게 여겼을 터다.


크롬은 피요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뒤이어 크롬의 시선도 하루와 같이 붉은 제복의 사내에게 향했는데,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렇네. 이번 일은 분명 우리의 잘못이야. 위험성을 고려하지 못한 스카우터나, 그걸 미리 파악하지 못한 선생들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가 처리할 필요가 있어. 뒤처리는 문제를 일으킨 자들의 몫이잖냐.”


피요와 학생들이 설득당하는 분위기였다.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의외성은 아이들이 지닌 전매특허인 모양이다.


“싫은데요!”


다짜고짜 그렇게 내뱉는 피요를 보며 하루와 크롬은 멈칫했다.

뒤통수를 얻어맞기라도 한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한 방법이거든요! 게다가 이쪽은 친구가 당했다고요!”


피요가 손가락을 치켜들고 가리키던 건 눌라가 있는 방향이었다.


‘평소엔 아는 척도 안 하는 주제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하루는 구태여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 상황에 그런 어리광이······!”


“아무튼, 싫다고요!”


곁에 있던 학생들도 역시 멋쩍게 실소할 정도의 반응이었지만, 피요는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 이후로 크롬이 어떤 말을 내놓건, 막무가내로 싫다는 말을 난발하는 피요에게 전부 막혔다.


크롬의 이마에 핏대가 솟은 순간 하루는 잠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아무래도 그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봤기에, 괜히 튀는 불똥을 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네가 하려는 게 뭔진 아는 거야? 그저 어리석은 짓이야! 너희가 죽으면 그건 단순히 개죽음이라고!”


우와.

속으로 그런 반응을 나지막이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하루라도 질색하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문 피요가 어떤 반응을 해도 정당방위다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내면에서 울컥대는 감정을 누르고 또 누른다.

주위에서 의외의 반응을 지켜보던 이들이 이윽고 내뱉는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를 맞이했다.


“그게 영웅의 조건이라면서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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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2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6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6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5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6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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