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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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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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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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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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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52. 기획

DUMMY

해볼게요!


라고 말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하루는 이미 사색이 되어있던 크롬을 지그시 응시한다.


앞에 서 있는 수많은 학생과의 거리가 눈에 보일 정도다.


“운동장이 엄청 넓네요.”


지아는 그런 분위기는 신경 쓰지 않고서 운동장에 모인 인파에 놀라워했다.


학생과 교사, 스카우터가 한자리에 모여있다.


크롬의 사색이 된 얼굴 따위 학생들의 눈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특별히 스카우터분들께서 제의한 외부활동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다져온 능력을 마음껏 드러낼 뿐 아니라, 부디 이 경험을 발판삼아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교장이 증폭기를 내려놓는다.

뒤이어 강단에서 내려온 교사 하나가 학생들 앞에 섰다.

놀랍게도 잡담은 없다.

지시를 기다리는 것부터 고양감에 찬 눈동자까지.

무엇하나 일개 학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대전쟁을 겪지 않는 세대였던가.”


나란히 서 있던 스카우터 중 하나가 내뱉는다.

그 한마디에 동화되어 모두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용케 이런 걸 생각해냈네.”


그 와중에 하루에게 말을 건네온 건 이전에 마주친 붉은 제복의 미남이었다.

하루가 힐끔 쳐다보면 그는 여전한 미소를 지니고 있다.


“모든 학생의 기량을 한눈에 파악할 기회. 더군다나 교사와 함께라면, 교육목적으로 단번에 채용될 기획이라는 것까지 생각한 거야?”


그의 말대로 제의한 건 하루였다.

물론 그가 예상하는 목적과는 전혀 다른 목적이었다.


하루는 다시금 크롬에게로 눈을 돌렸다.

선생의 모습을 확인하곤 자연스레 얕은 숨을 길게 내뺀다.


그 속을 알 리 없는 붉은 택배기사는 옆에서 입을 열었다.


“이전까지 스카우터를 보내지 않았던 백묘로선 탁월한 기획이네. 역시 허튼 명성은 아니란 건가.”


제 말은 듣지도 않는 하루 옆에서 용케 떠들고 있었다.

지아는 그런 그가 안쓰러워서라도 말 상대가 되어주고 싶었지만 차마 뭐라 꺼낼 말이 없었다.

백묘의 기사면서 그에 대한 질문을 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짓이다.

동시에 머잖아 백묘에 자신들이 왔다 갔다는 소식이 들어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저씨─”


혹시 하루라면 그 이유에 대해 알지 않을까 말을 걸어보려던 찰나, 하루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크롬에게로 향했다.


“오전에 한 말, 잊은 건 아니겠지.”


생각에 잠겨있던 크롬이 퍼뜩 정신 차리곤 고개를 들었다.

하루의 얼굴을 마주하니 그래도 굳은 다짐을 보이려는 듯했다.

여전히 미덥잖은 상판이었지만.


“잊진 않은 것 같네.”


“무, 물론입니다.”


“이해는 해. 쉽게 사라지면 애당초 트라우마라고 부르지도 않았겠지.”


그런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게 될 기억인지도 공감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알 수는 있었다.


“나도 한동안 사과는 쳐다도 안 봤으니까.”


중얼거리는 말에 크롬이 의문스럽게 쳐다보면 하루는 다시금 뒤돌았다.


“그냥, 까마득한 옛이야기야.”


학생들의 얼굴이 보인다.

크롬에게 그 얼굴들이 어떻게 보일지 의문이지만, 다시금 크롬을 쳐다봤을 땐 구태여 갖지 않아도 될 의문이라고 여겼다.

떨림을 간직한 선생의 주먹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외부활동이라곤 해도 완벽하게 실전형식으로 이뤄질 예정이야. 단순한 견학이라고 생각하면 아픈 경험이 될 거야.”


학생들의 무리 앞에서 줄곧 설명하던 교사는 단말기를 품에 넣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설명이 더 필요한 사람은 지금 물어보도록.”


한 학생이 손을 든다.

그럼 교수가 말없이 학생을 바라보는 식으로 발언권을 건넸다.


“실전의 배송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하셨는데, 배송품은 랜덤으로 정해지는 건가요?”


“당연하다. 랜덤으로 지급 후 배송품이 무엇인지는 각자 지닌 단말기로 전달할 테니, 다들 제대로 확인해두도록.”


그 학생을 시작으로 몇 가지의 질문이 더 이어진다.

질문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방금까지 조용했던 운동장은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으엑, 랜덤인가.”

“사고대처능력이나 판단능력도 제대로 본다는 거겠지.”

“생각보다 본격적이네.”


간혹 스카우터들은 자신에게 힐끔힐끔 향하는 시선들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거나 손을 흔드는 등 그에 따른 반응도 또 제각각이다.


하루는 학생들이 스카우터를 보는 묘한 긴장감을 눈에 담고 있었다.


“벌써 교사는 뒷전이란 건가.”


썩 탐탁잖게 여기는 투로 내뱉으면 옆에서 크롬은 또 시답잖게 웃는다.


“스카우터가 앞에 있으면 어쩔 수 없겠죠. 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여러분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마냥 바보같이 웃기만 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루는 담담하게 크롬을 바라봤다.


“······선택받는 미래에서 선택하는 미래로 만들 수 있는 건 당신들이잖아.”


예외의 한 마디였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곤 고개를 돌리는 크롬을 피해 지아에게로 향했다.

지아는 그런 하루를 시선으로 끝까지 쫓는 크롬을 멀리서 발견했다.


“무슨 얘기했어요?”


하루는 콧숨을 짤막하게 빼내면서 양손을 주머니에 쿡 쑤셨다.


“또 쓸데없는 말을 하길래 격려해주고 왔어.”


지아의 눈에 한가득 의심이 서린다.


“격려··· 맞죠?”


슬슬 학생들과 교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먼저 강당으로 올라오면, 교사들이 미리 준비해둔 번호표를 건넨다.

배송품의 배정은 모두 그렇게 제비뽑기로 진행되었다.


순전히 운이었다.

물론 그들의 쌓아온 지식이 그런 요소에 어느 정도 반영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제비를 뽑지 못한 학생은 있나.”


“······.”


교사는 손든 학생을 찾아 두루 살피고는 제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모두 뽑았다면 앞으로 5분 후에 출발하는 것으로 하겠다.”


띠링

띠링


교사의 말과 함께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포켓에서 무섭게 효과음이 울려댄다.


“배송지와 배송품, 지정된 조의 구성원을 현 시간부로 모두에게 전송했다. 개인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기에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돌발상황에 정말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을 경우, 동행하는 교사에게 꼭 도움을 받도록.”


아니나 다를까 결과가 벌써 학생들의 표정으로 얼추 드러나는 듯하다.

환한 미소라던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등.

일찍이 스카우터들은 그들의 반응으로부터 점수를 머릿속에 새겨넣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학생이 또 손을 번쩍 든다.


“지도교사의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는 부분이 있을까요.”


“지도교사는 어디까지나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할 뿐이다. 실전형식이라고 말했지?”


“중요하게 여길 문항 같은 건 없나요?”


“정확하게 어느 부분에 점수를 매기겠다는 건 말해주지 않겠다. 너희는 그저 너희의 지식을 최대한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도달하면 돼.”


다시금 교사가 제 손목시계를 확인하면 어느덧 출발 1분 전.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단말기를 다시금 확인하며 긴장 섞인 숨을 골라댔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이동수단도 없이······.”


반면 어느 학생은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푸념을 흘리기도 한다.


“자, 시간이다. 그럼 다들─”


“저, 선생님. 이미 다들 없는데요.”


또 다른 선생의 말에 시계에서 눈을 떼면, 운동장에 남아있는 모래 먼지만 뻘쭘하게 교사를 맞이하고 있다.

내심 불안한 마음을 털어버린 듯 교사는 입가의 주름을 잔뜩 늘리며 웃는다.


스카우터들은 하나같이 개별 행동으로 학생들을 지켜봤다.

하루는 말없이 일정 구간까지 다른 스카우터들의 뒤를 쫓았다.


지아가 하루를 힐끔 쳐다본다.

무언가 궁리하는 표정이라는 것쯤은 이쯤 되면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스카우터들 역시 조별로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이 기획에 대해 막 다루기 시작했을 때, 스카우터들에게도 역시 꺼냈던 제안이었다.

하루는 그때 자신에게 왔던 답을 떠올리고 있었다.


─우리가? 뭐 때문에?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던 녀석.

정확하게 몇이나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스카우터의 행동을 제약할만한 요소가 없어.


금세 물러나지 않았지만 역시 그들에게서 나온 답은 같았다.


필요 없다.


하아


순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깊은 한숨에 오히려 하루 자신이 놀라고 있었다.


“크롬 선생님 때문에요?”


옆에서 지켜보던 지아가 얼추 예상했다고 던진 답에 하루는 그저 고개만 저었다.

그리고 무심코 스카우터들의 뒷모습을 쫓으면, 지아는 곧장 눈치챘다.


“굳이 스카우터의 행동까지 저희가 왈가왈부할 건 없지 않아요? 학교 측에서도 자유롭게 행동하라 했고.”


“교내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야.”


“설마 문제라도 일으키려고 하겠어요?”


지아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웃었지만, 하루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엔 역시 의심만 그득했다.


“누가 그런 걸 걱정해서 한 제안이겠어. 그들의 욕심이 화를 부를까 봐 그러지.”


이제 와선 하루 역시 불확실한지 묘하게 확신에 차지 못한 투로 털어놨다.

지아는 묘하게 알 듯 말 듯 한 그의 말을 곱씹었다.


이윽고 택배기사들이 멈춰선 곳은 학생들이 반드시 지나칠 구간.

하루는 역시 크롬의 조를 예의주시했다.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기사들은 자신들이 점찍어둔 아이들에게 향했으리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크롬은 둘째치고 하루는 묘하게 옆에서 거슬리는 느낌에 눈동자를 굴렸다.

순간 흠칫했다.

붉은 제복의 녀석이다.

하필 걸려도 이 녀석이라니.

혼자 실컷 불편한 기운을 내뿜고 있을 때 멀리서 크롬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들어간 조에 익숙한 얼굴은 그 여학생이다.

분명 이름이─


“피요. 이름 정도는 기억하시라구요.”


지아의 갑작스러운 답에 하루가 멀뚱히 그녀만 쳐다본다.


“이제 독심술까지 터득한 거냐.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도 문젠데.”


“뭐래요. 누가 봐도 그런 표정이었구만.”


둘의 대화에 옆에 있던 붉은 제복이 웃는다.

그럼 하루는 괜히 입을 다물었다.


이들의 시답잖은 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피요와 그 일행이 되는 학생들은 그저 진지하게 단말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하아.


누군가 내쉬는 한숨이 몇 번 반복되었는지 모르겠다.

피요가 곁눈질로 노려보면 한숨의 주인인 학생은 뜨끔해선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도 괜히 발끈해선,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


역으로 화를 낸다.

이윽고 그가 내밀고 있던 단말기에 적힌 건 ‘감긴 업화’.

한때 지옥 성전으로부터 파생된 물질로, 다행인 건 그 커스를 봉인할 매개체가 있었다는 점.

사실상 그 수단으로 인해 생긴 ‘감긴’이라는 수식어지만, 그가 줄곧 불안해하는 것 또한 그에 관한 부분 때문이었다.


“풀리지만 않으면 되잖아.”


뒤에서 듣다가 참다못한 피요와 늘 붙어있던 남학생이 툭 내뱉는다.

그럼 불평하던 학생도 아까처럼 지고 있지만은 않았다.


“남 일인 것 같냐? 업화가 풀리는 순간 너희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는데?”


금방이라도 싸움이 붙을 것 같던 둘의 옆에서, 다른 학생들도 연신 한숨만 내쉬거나 아예 무시한 채 단말기를 통해 지도를 확인한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크롬의 입이 아까부터 움찔움찔했지만, 기어코는 열리지 않았다.


하루는 멀리서 동상이몽이라는 단어를 멋대로 녀석들의 조 이름으로 붙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무난하게 길을 걷던 일행들 앞에, 문득 폭발음이 터지면 다 같이 고개를 돌린다.

이후 학생들의 반응은 여지없이 스카우터들의 눈에 담긴다.


“매드 스파이디!”


학생 중 먼저 폭발의 정체를 빠르게 파악하던 학생.

그 주위에서 대처할 만한 도구를 꺼내는 학생과, 단숨에 식을 펼쳐 엄호 태세를 갖추는 학생.

그리고 무엇보다 일찍이 조의 행동을 조율하는 피요.


어떤 스카우터는 말없이 제 단말기에 끄적일 뿐이고, 또 어떤 이는 감탄한다.


그런 무리에 전혀 섞이지 않는 인물이 하나.

마찬가지로 맞은편에서 상황을 파악하던 하루만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벌써 누가 질 나쁜 장난을 쳤을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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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 #152. 기획 21.11.30 46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3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7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7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6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7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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