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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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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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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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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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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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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47. 터무니없는 무게

DUMMY

아쿠리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의 주위에 머무는 장막이 이따금 튀거나 부드럽게 일렁인다.


지켜보던 하루가 그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진 몰라도 쓸데없는 의심이야.”


“저희 감정을 읽는 법을 아시는 거 보면 제가 아는 하루님이 맞는 모양이네요. 하도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니까 그만.”


“그래 네가 봐도 바보같이 보이는구나.”


하루가 혀를 찼다.

그럼 아쿠리스는 팔짱을 끼고 있다가도 어깨를 으쓱였다.


“들은 건 없네요. 혹, 세계의 멸망 같은 걸 우려하시는 거라면 그런 조짐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려···라기보단······. 모르겠다. 일단 네가 느끼지 않는 걸 보면 하프버프에는 확실히 없다는 거겠지.”


또 하루의 말은 아쿠리스에게 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아쿠리스는 고심하는 그를 멍하니 지켜보다가도 하루를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슬쩍 시선을 옮겼다.


여자.

종족을 구별할 수가 없다.

얼핏 뱀의 눈 같기도, 용의 눈 같기도 한 기묘한 눈동자와 아름다운 금발을 지녔다.


외견보단 하루의 동행자라는 게 더 놀라운 사실이었는데, 아무렴 그가 택배기사였다는 소리보다 더 놀랄 것까진 없었다.

아쿠리스는 괜히 콧바람을 얕고 길게 내뺐다.


“저 여자는 누굽니까.”


아쿠리스가 그렇게 물으면 하루는 그가 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글쎄.”


그 답에 거짓은 없다.

지아는 자신을 빤히 지켜보는 둘을 마주 보며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재차 아쿠리스를 힐긋 쳐다본다.


“뭔가 느껴지는 거라도 있어?”


“예?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없으면 됐어. 나도 모르게 주운 거고. 아, 참. 필리아들한테 나는 딘이라는 이름이니까, 대충 그렇게 알아.”


그런 발언을 툭 내놓고 뒤돌아가면 아쿠리스는 예전과 같은 당황스러움을 오랜만에 느끼고 있었다.


그때 이래였다.

마나의 소질이 일절 없는 청년.

인계인이면서도 태생이 그렇다고 하니 어지간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맹한 표정의 하루와 차기 여왕의 폭소를 떠올리니 무심코 실소가 나온다.


아쿠리스는 크롬을 따라 걷는 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느껴지는 거라··· 없긴 하네.’


아쿠리스는 제 머리만 긁적였다.


‘알아서 하시려나.’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쯤 아쿠리스도 뒤돌아 숲속으로 들어갔다.

부디 돌아왔을 때, 하루가 자신을 소멸시키려 할 만큼 귀찮은 사건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


숲은 얼핏 걷던 길을 또 걷고 또 걷는 모양새였다.

틈만 나면 이 길이 맞냐고 물어오는 말에 하루는 고개만 몇 번씩 끄덕였다.


하루는 제 앞에 있는 크롬의 뒷모습을 지그시 응시했다.


친구라는 아쿠리스의 말은 거짓이 없다.

가장 앞에서 길을 걷는 게 그 방증이었다.


‘자칫 헤매기 딱 좋은 곳인데.’


그는 아무 망설임 없이 선두를 자처했다.

첫인상과는 제법 다르게.

물론 지아가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니기에 그녀의 다소 불안한 눈동자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녀는 저 멀리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확인하고서야 활짝 얼굴을 폈다.


“입구다!”


지아가 선두에 있던 크롬을 제치고 먼저 입구 밖으로 나갔다.


“아쿠리스 덕에 빨리 나왔네요.”


“오, 가호에 대한 것까지 알고 있는 건가.”


하루는 감탄사를 슬며시 흘린다.

그럼 크롬은 멋쩍게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곤 곧 둘의 눈에도 탁 트인 정경이 들어온다.

길게 포장된 외길도 보인다.


한동안 그 길이를 얼추 가늠하고 있자니 한쪽에서 지아가 하루를 부른다.

하루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지아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어느 마차 옆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아!”


그렇게 먼저 반응을 내보인 건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남성이었다.


“크롬 선생님!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크롬 역시 그와 면식이 있는지 어색한 웃음만 흘린다.

크롬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가던 하루는 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야 그가 먼저 보고 반응한 건 크롬의 불게 물든 눈시울이었으니.


조용히 찌푸려지던 사내의 눈썹은, 아마 위로하리라고 여기던 하루의 예상을 단박에 깨버렸다.


“또 우셨습니까? 요정왕께서 또 얼마나 난처하셨을지 눈으로 안 봐도 선하네요.”


하루가 무안하게 크롬에게로 고개를 돌리면 크롬은 익숙하게 고개를 떨궜다.


“대체 어떤 취급을 받고 사는 거냐.”


하루가 멋쩍게 물으면 크롬은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마차에 올랐다.

뒤늦게 크롬을 따라 올라타던 하루와 지아를 발견한 사내가, 크롬에게 묻고 들은 답에,


“예에?! 백묘의 스카우터요?”


듣는 사람으로서도 난처한 감탄사를 내지르더니 지아가 입고 있던 제복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리 지아라도 부담스러운 시선에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셋은 한동안 말없이 도로의 좌우로 난 풍경만 쳐다봤다.


“저 자는?”


돌연 묻는 말에 크롬은 하루의 시선을 확인하더니 조종석 쪽을 본다.


“아, 보조교사입니다. 말은 그래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사이나 다름없죠.”


“보조교사라······. 저 친구도 당신 때문에 상당히 곤혹스러웠겠어.”


크롬은 또 특유의 어색한 웃음을 내뱉는다.

그런 모습마저 나락까지 떨어진 자신감을 훤히 드러내는 듯하다.


그럼 옆에서 괜히 지아가 크롬의 등을 툭 쳤다.


“자신감을 좀 가지세요. 영웅이라면서요.”


“음······.”


지아에게 그렇게까지 듣고도 차마 긍정적인 답도 내뱉지 못한다.

지아는 팔짱을 끼고 이미 처질 대로 처진 어깨를 바라본다.

그러다 그가 꺼낸 졸업생들의 얘기를 떠올리곤 오히려 혼자 분해했다.


“세상에 그런 녀석들도 있긴 하네요.”


“새삼스레 뭘.”


하루는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먼 산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내뱉는다.

그런 하루의 태도가 너무 가벼워서, 오히려 더욱 당연한 얘기처럼 다가온다.


“오히려 녀석들 딴에는 뭔가 노리고 한 행위일지 모르지.”


“뭘 노려요?”


“복수라던가? 여태 교육 때 받은 스트레스의 발산 같은.”


“그걸 굳이 노린다고 하나요. 그래도 졸업식에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괴롭힌 것도 아니고, 아무리 수업이 싫었다고 해도 그렇지.”


“아하하······ 제 수업이 싫었다는 전제인가요.”


듣고 있던 크롬이 한 마디 끼어들면 둘은 괜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선만 피했다.

그러다 하루는 힐끔 그에게로 다시 눈동자를 돌린다.


“그나저나 영웅이면, 무슨 업적을 남긴 거야?”


하루의 질문에 크롬이 머쓱하게 어깨만 으쓱인다.


“아뇨. 그냥 혈통이 그래서 그런 거죠. 전 영웅들의 세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종족도 딱히 한정되어 있지 않아요.”


“뭐야. 태생이 영웅들의 혈통이라서? 설마 그 혈통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업적이란 건가.”


“부끄럽습니다만······. 그래서 저희 세계에선 태어난 아이들은 곧바로 영웅이라 불리며, 성인식에는 칭호를 하사받습니다.”


어딘가 그렇게 말하는 크롬은 더 시무룩해 보인다.

그 이상 침울해진 상태가 있나 의심할 정도로.


“성인식 같은 번거로운 일도 하는 건가.”


“그 외견에 전혀 안 맞는 바나디스 같은 칭호지만요.”


하루의 말에 조종석에 있던 사내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다.


“맥스웰!”


그럼 홍조를 띤 크롬에게서 그 보조교사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듣던 지아만 갑작스럽게 발끈한 그에게 의문을 품었다.

반면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 하루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건드린다.


하루가 지아를 보면 지아는 눈짓을 준다.


“뭐.”


통 알 수 없다는 식으로 하루가 툭 내놓는다.

지아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이, 참. 그 칭호가 어때서 저렇냐구요.”


기어코 크롬의 앞에서 묻는 바람에 크롬은 앞에서 방황하는 눈동자만 연신 굴려댄다.

조종석에서 킥킥대는 웃음이 들려온다.


그런 둘의 반응에도 하루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나도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어딘가 여성적인 억양이 느껴지는데 그거하고 연관이 있는 거겠지.”


하루도 확신하지 못하는 말투에 지아가 크롬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크롬의 큰 한숨으로 곧바로 확신했다.


크롬이 이마에 손바닥을 짚으며 차마 둘을 마주 보진 못한 채 말을 이었다.


“하루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성인식을 거행하시는 분께서 착오가 있으셔서······.”


“얼마나 신경을 안 썼으면 그런 착오를 하는 거야.”


크롬이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럼 킥킥대던 맥스웰이 비웃음을 멈추고 대신 답했다.


“크롬 선생님 어렸을 때 외견 때문에 오해받은 거래요.”


조종석 쪽을 바라보던 하루와 지아가 그대로 고개를 돌려 크롬을 빤히 응시한다.

크롬이 한층 더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확실히 눈썹에 난 작은 흉터를 제외하면 얼핏 그런 형이다.

지금에야 저 자잘한 근육들도 어렸을 적엔 어떤 형태였을지 모를 일이고.


지아만 여전한 위로를 던졌다.


“뭐, 어때요. 저도 그 칭호가 여성에게 주어지는 거라는 건 지금 처음 알았고······. 웬만해선 모르는 일 아녜요?”


“그냥··· 자격지심 같은 거죠.”


“그래도 원래는 그렇지 않은 분이셨어요. 지금에야 이런저런 일이 겹쳐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것뿐이에요.”


맥스웰은 종종 그런 말들을 본인 앞에서 대놓고 말했다.

누가 친우 아니랄까 봐 틈틈이 어필이라도 하는 걸까.


지아는 또 한동안 크롬을 위로하다가도 언젠가부터 잠자코 있는 하루를 확인한다.

때때로 그랬던 것처럼 허공만 응시한다.

아니, 크롬을 응시하는 걸까.


“왜요?”


물으면 하루도 무심코 답한다.


“그 세계는 터무니없는 무게를 심어주는구나 싶어서.”


아무렇지 않게 흘리던 말에 마차 내부는 한동안 덜컹거리는 소리만이 차지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눈 거라곤 과거사의 단편뿐이었는데, 어느새 마차는 어느 입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양쪽으로 끝없는 성벽이 딱 봐도 대도시의 틀을 잡고 있었다.


“여기가 아피아롯.”


마차 밖으로 머리를 빼낸 지아가 머리를 휘날리며 눈을 반짝이고 있다.


“새삼스레 이런 곳에 반응하는 거냐.”


“어느 관광지는 매번 새로운 법이라구요.”


여지없이 초치는 하루에게 지아는 익숙하게 받아쳤다.

이제 관광 기분이란 부분은 구태여 부정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물론 하루도 그 점에 관해선 더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도 않았지만.


“명색의 학생들 스카웃 목적인 직책으로 되어있으니까, 그에 맞게는 행동해달라고.”


하루가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린다.

그런 얼굴에 불만인 듯 지아가 입을 쭉 내뺀다.


“뭘 모르시네요. 너무 딱딱해도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힘들다구요!”


어째선지 그 반박에는 옆에서 고개가 땅까지 떨어질 듯한 크롬만이 타격을 입은 듯하다.


“교우관계라도 다지실 생각이신가 봐요? 스카우터, 버스데이.”


잠시 제 성에 낯선 반응을 보이던 지아가 하루를 노려본다.


“치, 친해지지 않으면 진실 된 내면까지 알 수 없는 법이니까요.”


덜컹

푸르륵!


둘의 시답잖은 말싸움이 계속되기 전에 마차가 멈춰섬과 동시에 말이 숨을 내뱉는다.


“자자, 싸움은 그만하시고 다 왔습니다.”


맥스웰이 뒷좌석으로 몸을 틀면서 알렸다.


방금까지 시끄럽던 둘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마차가 세워진 건물을 올려다본다.

높게 솟은 고층 건물.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석영 재질.

그리고 꼭대기와 입구에 각각 새겨진 문양은, 크롬의 케이프에서 발견한 것과 같았다.


“어서 오세요. 기사양성학교 아스모에.”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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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2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7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3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2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8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5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4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7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8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7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7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7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8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9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7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6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5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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