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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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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86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22 06:00
조회
43
추천
2
글자
12쪽

#146. 귀찮은 일

DUMMY

“슬슬 무슨 일인지나 들어보자고.”


다과를 즐기는 데 한창이었던 모두가 하루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어쩐지 자신 외에 입에 뭔가를 하나씩 담고 있는 모습에 불편해지는 눈썹이다.

심지어 첫 대면부터 질질 짜던 선생놈도 그곳에 포함되어 있다.


이 녀석들, 틀림없이 본론을 잊은 게 분명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랬죠.”


선생이란 작자는 돌연 시무룩해진다.


“일단 제 소개 먼저 하겠습니다. 저는 크롬 레인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곳, 페어리 포레스트의 연맹국 아피아롯에 있는 기사학교에서 선생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 이후 마주 보고 있던 하루가 제 이름을 말해줄까 잠시 기다렸지만 그럴 기미는 없어 보인다.

그저 팔짱을 끼곤 다리를 꼰 채 듣고 있다는 듯 재촉하는 표정을 보고 크롬은 무안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가도 문득 제 안에서 어떤 기억을 떠올리곤 울컥했다.

다시금 벅차오르는 감정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하루의 일그러진 미간이 절대 용서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애써 슬픔을 삼켜냈다.


“학생들에게 듣고 말았습니다.”


“뭘.”


하루가 물으면 순식간에 건방진 얼굴로 변모한 크롬이 껄렁하게 서더니 주머니에 손을 쿡 쑤셔 넣었다.


“풋! 영웅 출신이라고 해서 선생 대접해준 거지. 좋은 성적도 딴 판에 그 상판을 일일이 시간 내서 보겠어? 웃기네.”


특유의 얄미운 말투와 함께 비웃음이 섞인 게 듣기만 해도 이마에 핏대가 선다.


그렇게 거하게 내뱉고는 울먹이던 크롬은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지아가 퍼뜩 눈치채곤 슬며시 다가가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하루마저 방금 그의 모습을 보곤 어색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방금 게 재현이라면 그야 PTSD가 올 법도 했다.


“설마 방금 건······”


“제가 가르치던 졸업생들이 이번에 한 말입니다.”


혹시나 해서 물었거늘 그의 심장만 더 후비는 짓이었다.


그가 불쌍해 보인 것도 잠시.

역시 하루는 그럼에도 그의 눈물에 차가웠다.


“대체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학생들이 그딴 반응을 보이는 거야. 명색의 영웅이라면서.”


게다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기사의 본분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나 다름없다.

그런 놈들이 졸업이라니.

세상이 썩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런 놈들이 나옴으로써 기사 중에서도 간혹 인성 뒤틀린 녀석들이 보이는 건지 의심스럽다.


“하, 하지만······”


코를 훌쩍일 때마다 하루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너, 영웅 맞아?”


끊임없는 공세를 가하는 하루가 마지막 일격을 날리면 그가 결국 넉다운 되고 만다.


“아저씨!”


지아의 윽박이 있고서야 하루는 고개를 획 돌렸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미 졸업한 애들 일일이 찾아서 제재라도 가해주길 바라는 거야? 그거야말로 영웅의 몰락 아니냐.”


“그, 그건 아니지만······.”


확실하게 얘기를 못 꺼낸 채 우물쭈물하는 그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루가 금방이라도 크롬을 날릴 기세로 쳐다보면, 아쿠리스가 오히려 그의 앞을 막았다.


“그러게! 좀 확실하게 말해보라니까!”


구태여 호통치는 것으로 하루가 나서는 것을 막아냈다.


“졸업생들이 그렇게 나온 데에는 제게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 그거라면 지금도 잘 알 것 같긴 한데.”


하루가 무심코 디스를 하면 크롬이 재기할 새 없이 다시 충격받은 채 고개를 푹 숙인다.


“제발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기죽이지 마시라구요.”


지아도 지친 듯 반응하면 아쿠리스가 이번에도 대신 하루에게 답했다.


“원래 이런 녀석은 아니었어. 이번 일이 상당히 충격이었나 봐.”


“그야 충격일 것 같긴 하지만. 그럼 여태 다른 기수들은 잘 가르치다, 이번 졸업생만 태도를 싹 바꿨다고?”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인 본인이 모른다면야 정말 답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하루는 얼추 예상은 해보려는 듯 잠자코 턱을 쓰다듬었다.

이윽고 긴 탄식을 내놓더니 고개를 절레 젓는다.


역시 알 턱이 없다.

하루 외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그냥 털어버리면 되잖아. 이전까진 안 그랬던 거니까, 그냥 이번 졸업생들이 또라이였다고 생각하라고.”


“또라······ 크흠. 그것보다······ 지금 학생들을 가르칠 자신이 없어서······”


아.


하루는 속으로 그만 짧은 반응을 내뱉었다.

어딘가 익숙한 전개에 좋지 않은 반응.

하루가 벌떡 일어섰다.

이윽고 그의 입을 당장 봉해버리기 위해 걸어갔지만, 기어코 입을 열었다.


“제 문제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가고 있습니다.”


하루가 그의 앞에서 우뚝 섰다.

차라리 처음에 날려버리는 게 좋았을지 모르겠다.


하루는 그대로 굳은 채 서 있다가 뒤돌았다.

아쿠리스를 쳐다보면 그놈의 표면 장막은 여유롭게 일렁이고 있다.


하루가 한쪽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린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이 녀석을 도와 더 이상 여기서 질질 짜지 못하게 하라는 거지.’


그 도움이란 게 어떤 형식으로 나올지 알 순 없어도 한 가진 확실했다.

무척이나 귀찮을 거란 점.


하루가 이마를 손으로 짚고 방금 앉아있던 그루터기에 털썩 주저앉았다.

갈 곳 잃은 눈길로 필리아들을 바라본다.

그들이 그 눈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본다.

은혜 모르는 자식들이라고 순간 속으로 욕했지만, 결국 모든 원망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래, 나 좋자고 한 짓이었지.’


어찌 되었건 지금은 다른 때보다 확실히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이 또한 아라와의 거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단서는 없지만.


아라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그만한 규모의 무역 도시다.

텐타클에서 못 했다면, 아직 붉은 달이 단서를 못 잡고 있을 가능성으로 봐도 될 터였다.


하루는 심호흡을 마친 후 고개를 들어 크롬을 바라봤다.

크롬 역시 그런 하루와 마주 봤다.


순간 하루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마그네슘 부족?”


크롬은 순간 던진 말과 함께 자신도 던져질 위기감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하루는 그런 그를 여전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멸망의 문제는 둘째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바로는 죽음의 협곡은 멀지 않았다.

아니, 사실 핑계는 됐고, 역시 귀찮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럼 빨리 처리하자고.”


하루가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할 건데요?”


지아가 묻자 하루는 가만히 또 크롬만 노려봤다.


“기사학교라고 했던가. 당사자가 문제가 아니란 것만 증명하면 그 트라우마도 벗겨지지 않겠어?”


“조사라도 하시게요?”


“그래. 일은 빠른 게 좋지.”


지아도 슬며시 일어나 하루에게로 다가간다.

하지만 정작 크롬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하루는 그를 재촉했다.


“그, 그게.”


그래도 계속 그런 식으로 머뭇거리기만 하던 그가 곤란하단 식으로 말한다.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뭐?”


“그, 부외자 금지인지라······.”


기어이 하루의 이마에 핏대가 솟는다.

참다못해 소매를 걷으며 다가서는 하루를 지아가 앞에서 막아냈다.


“뭔가 방법이 있겠죠!”


잔뜩 겁에 질려있던 크롬이 마침 뭔가를 떠올리곤 제 주먹을 손바닥에 내리쳤다.


“외부 인사를 초빙하는 일은 종종 있긴 합니다만. 견학이나 스카우트 건으로······”


“스카우트? 어디 다른 가문이 스카우트라도 하는 건가. 요즘엔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쓰기도 하나?”


하루의 의문에 요정들이나 크롬이 빤히 쳐다본다.

그들의 시선에 하루는 뭔가 잘못 얘기를 꺼낸 건지 되뇌고 있었다.


“하루님. 뭔가 착각이라도 하신 건······.”


아쿠리스의 말에 하루는 영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


“기사가 흔히 아시는 기사가 아닙니다.”


“······음?”


“택배기사를 육성하는 학교라는 겁니다.”


하루가 그대로 굳어 움직이질 않는다.

아무렴 바뀌어도 너무 바뀐 시대에 자신이 따라가질 못하는 건가.


아쿠리스의 비웃음이 인생의 회의감을 느끼게끔 하는데 한몫했다.

심지어 지아가 제 어깨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됐어! 이래 봬도 택배기사 경력자라고!”


자신도 모르게 울분을 토하면 옆에서 크롬은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정말입니까?!”


크롬의 반응에 또 금세 후회를 낳는다.

슬슬 후회를 낳는 게 자신의 숙명이라고 이해하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쩔 건데.”


괜히 공격적인 투로 던졌다.


“혹시 지금도···?”


“얼마 전까진 했지만···.”


“풋. 고작 수습 기간 하루하고 나왔지만요.”


그게 자신도 포함이라는 건 모르는지 지아는 그저 비웃기 바쁘다.


크롬은 반가워하기도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


“아쉽네요. 스카우트 목적으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할 텐데요.”


“완전히 우리를 해결사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니지?”


하루가 잔뜩 그림자 진 얼굴에 언짢은 웃음을 띠고 있다.

크롬이 손을 내젓는 사이 이번엔 또 지아가 효과음을 내뱉는다.

이윽고 가져온 짐들을 뒤적거리더니 속에서 뭔가를 휙 꺼내 들었다.


흰 제복.

하루가 눈을 껌뻑인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게 맞나 싶다.

이내 반쯤 뜬 눈으로 지아를 빤히 응시하니 지아가 멋쩍게 웃었다.


“들고 와버렸어요.”


“실리어스는 아무 말도 없던 거냐.”


“그러게요. 얼핏 선물이라고 들은 것 같기도······”


“회사 제복을 멋대로─”


“그건!”


하루의 말을 끊고 끼어든 건 크롬이었다.

이내 반짝이는 눈으로 지아가 든 제복을 향해 걸어간다.

뭔가에 홀린 듯한 그의 손짓이 제복 주위에서 연신 허우적거린다.


“배, 백묘 택배!”


이윽고 어깨 부위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하곤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름 명문이라는 건가.”


“그럼요! 취업률도 얼마나 빡센데요!”


하루와 지아는 순간 인력난에 허우적대던 폴리티스모스 지부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냈다.


“어쨌든 이걸로 위장 가능할까요.”


“백묘에 들키면 상당히 위험할 것 같긴 하지만······ 대충 부탁하면 넘어가 주지 않을까.”


이럴 땐 또 상당히 나사 빠진 생각이었다.

혹은 단순히 생각하기를 그만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지아한테 묻어가면 나는 대충 얼버무리는 것도 될 것 같은데.”


지아와 크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는 만족하고 있는 크롬을 뒤로하고 잠시 아쿠리스에게로 다가갔다.


슬쩍 아쿠리스 너머에서 자신들을 마중하기라도 하듯 나란히 서 있던 필리아들을 바라봤다.


“그럼 부탁한다.”


그럼 대뜸 답지 않은 말을 꺼내는 바람에 아쿠리스의 장막이 튀어 올랐다가 잔잔해진다.


“물론이죠.”


“그리고 하나 더. 이번 일하곤 전혀 연관 없지만······.”


이번엔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짓기에 아쿠리스는 괜히 목울대를 꿀렁였다.

잔뜩 긴장감을 끌어내는 분위기.

그만큼 하루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정말이지 적절한 의제였다.


“멸망에 대해서 들은 거라도 있어?”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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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2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6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3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7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 #146. 귀찮은 일 21.11.22 44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5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4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7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6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7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7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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