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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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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798

작성
21.1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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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40. 티타임

DUMMY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버선발로 마중 나올 거란 기대는 안 했다만, 아직 중앙 홀에 있던 실리어스를 확인한 하루의 눈동자가 커진다.

이내 주변에서 고생했다는 말을 진절머리나게 들은 후 지부장실에 호출되었다.


한쪽 소파에 앉은 지아와 하루에게 실리어스는 조용히 차를 내왔다.


“둘만 너무 자주 부르는 걸까요.”


그녀가 찻잔에 차를 따르면서 그렇게 말한다.

둘은 잠시 그녀가 쓸어넘기는 옆머리를 넋 놓고 보다가 답할 때를 놓쳤다.

그들의 침묵을 단순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그녀는 한 마디를 더 놓았다.


“체르비가 팀장보다 지부장을 더 자주 보는 팀원은 처음이라고 해서요.”


뒤늦게 지아가 미소를 보인다.


“뭔가 그분이라면 귀여운 닦달일 것 같네요.”


지아의 말에 실리어스가 소파에 앉으면서 드문 미소를 짓는다.

둘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 하루가 불편한 기색으로 차만 홀짝 들이켰다.


“정보가 있냐 묻고 싶은 거라면 얻었어.”


그러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맥을 끊고 말았다.


“고생했으니 차라도 한잔 어떤가 해서 부른 거지만요.”


패배다.

실리어스는 방금과는 또 다른 형식의 미소를 품었다.

짓궂은 여자다.


하루가 답을 뜸 들이고 있으면 농담은 제쳐두고 실리어스는 찻잔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제야 하루는 얕은 한숨을 동반한 얘기를 덧붙였다.


“메리 맨의 수장이 빌리에게 귀띔을 준 모양이야. 아마 이후에 알게 되겠지만, 그들이 기증자들에게 돌려보낸 배송품 외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배송품이 있을 거야. 마나석 수십 톤.”


“수십······. 출처를 알 수 없다니 그 용도가 좋지 않은 쪽으로밖에 안 떠오르네요.”


하루도 그 얘기를 막 들었을 때 나쁜 과거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회상을 떠올리자니 끝이 없어 금세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렸다.


“혹시 지도 있나.”


실리어스는 이유를 묻지 않고 하루만 한 번 쳐다보더니 책상으로 걸어가 지도 한 장을 꺼내왔다.

건네받은 하루가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다.

이내 손가락으로 일정 범위 내에서 알 수 없는 선만 천천히 그리더니 한 곳에서 멈췄다.


“지역명은 알 수가 없어서. 대충 찾아보니까 여긴 것 같네. 녀석이 마나석을 처음 가로챘던 곳.”


그럼 어째선지 실리어스의 닫혀있던 입술이 미세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용케 포착했지만 먼저 언급하진 않았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면 실리어스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수색 회의 당시 의문스럽던 장소가 근처였어요. 아라가 본인이 직접 수색한다고 놔두라고 했었는데······”


“그대로 두진 않았겠지.”


예상대로 실리어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없었어요.”


과연.

그래서 지은 표정이었던 건가.


“거대한 산이 하나 있을 뿐 아무것도······”


“산?”


하루는 잠시 의문을 꺼낸 후 입을 다물었다.

찻잔을 들고 한잔 홀짝 들이킨다.

그러더니 다시 찻잔을 내려두고 소파에 기대어 한숨만 내쉬었다.


지아나 실리어스가 그를 보며 뭔가 깊은 고민을 하는 건가 싶겠지만,

속으론 또 색적이 필요한 상황에 짜증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당분간은 우리 둘의 배송을 그 방면으로 몰아넣는 건 어때.”


“그 주변에 배송이 그렇게 많을까 싶지만요.”


“만들어내던가. 따지자면 우린 그 일 때문에 들어온 거지 정말 배송하고 싶어서 들어온 게 아니라고.”


“하하, 저는 반반이었지만요.”


한 마디 끼어들더니 하루의 시선을 피해 잔을 들이키는 지아였다.


“그건 그렇네요. 일단 알겠습니다.”


실리어스는 수긍하곤 다시 차를 즐기는 데 열중이었다.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니 실리어스가 즐기다 말고 자신과 마주 본다.

그럼 저도 모르게 지켜보고 있었단 걸 자각하고 하루는 고개를 돌렸다.


셋의 차를 호로록 마시는 소리만이 공존한다.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자니 그만 주저앉으려던 눈꺼풀을 붙잡았다.


‘위험했다.’


자신에게 내놓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리면 지아는 이미 그 무게에 몸을 맡긴 모양이다.

그녀의 발목을 내려다보면 아직 술식이 근처에 맴돌고 있다.

아마 통증 완화 같은 종류.

처음보다 붓기도 없다시피 할 정도다.

완전히 주저앉은 지아의 눈꺼풀만 봐선 누적된 피로를 뺄 방법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쪽은 괜찮은 건가요.”


하루의 시선을 신경 쓴 실리어스가 말을 건넸다.

그럼 제 팔을 슬쩍 들어 몇 번 움직여보더니 뭔가 만족한 듯한 얼굴이다.


“이정도야 예전엔 매일 겪은 일이었고.”


“······가끔 보면 전혀 인간이 아닌 것 같단 말이죠.”


“인간을 너무 얕보지 마. 그래 보여도 이상한 근성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종족이니까.”


“이상한 근성은 또 뭔가요.”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라고 해도 그녀의 비웃음을 살 것만 같다.

이럴 땐 그만 입을 다물었다.

다시 묵묵히 차만 홀짝인다.


실리어스는 통 알 수 없다는 미소만 낼 뿐이다.


#


머리를 긁적이던 한 택배기사.

고개를 들면 방금까지 한참 내려온 절벽만 보인다.

게다가 제 앞엔 동굴 하나만 떡하니 놓여있다.

몇 번씩 배송지를 확인해도 단말기는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씨, 뭐야. 정말 여기에 두고 가면 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투정을 내뱉어도 당장 답을 내놓을 자도 없다.


한숨을 푹 내쉬면 그에 맞춰 동굴 안에선 서늘한 바람이 새어 나왔다.

괜히 소름이 돋는 탓에 양팔을 부여잡는다.

한기가 자꾸 지레 겁을 먹게 했다.


뭐 이딴 곳으로 배송지를 둔 건가 싶어 혀만 한 번 찼다.


“쯧, 아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이거 나중에 괜히 책임 덮어씌우는 거 아니지?”


택배기사는 멀어지는 순간까지도 툴툴거렸다.

점차 그의 푸념이 사라져간다.


배송품만 떡하니 남겨진 공간.


얼마나 지났을까.

깊은 숨결과 동시에 거대한 꼬리가 동굴로부터 나오더니, 배송품을 마차 채로 감싸 안으로 갖고 들어간다.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찬 동굴, 그보다 더 깊은 곳.

사방에 박힌 마정석이 조명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선 바깥에서보다 훨씬 짙게 들려오는 숨소리가 가득 찼다.


스읍─

하아──


한 번의 호흡이 있을 때마다 공간이 진동한다.

하지만 그 호흡엔 무척이나 안도하고 있는 듯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아, 그나저나 언제까지 외부인이 내부까지 들락거리게 할 거야.”


이윽고 그런 불평이 툭 던져진다.

아무도 받아치는 이는 없다.


그저 혼잣말이 메아리처럼 그 주인에게 돌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메아리가 도달한 곳엔 거대한 눈동자와 함께 방금까지 동굴 밖에 있던 마차가 떡 하니 놓여있다.


마차의 천장을 거대한 손가락이 톡 떼어놓는다.

곧 마차에 실린 마정석이 한가득 들어오면, 바라보던 눈시울이 씰룩이더니 초승달처럼 웃는다.

날카로운 동공이 마정석을 바라볼 땐 한없이 동글동글해진다.


손가락은 너무도 익숙하게 마정석을 집어 사방 틈 곳곳에 박아 넣었다.

하나씩 박아 넣을 때마다 어딘가 평화로운 호흡이 반복된다.


“뭐, 대삼림보다 빛도 적고 마정석을 심을 공간도 작지만, 이런 안락함이 나쁘진 않지.”


혼잣말을 지속하며 마정석 수집하기만 벌써 몇 년이 되었는지.

어느새 동굴은 더욱 깊어졌고, 그 암흑은 마정석의 빛으로 가득 메워졌다.

마치 이사 후 적당한 인테리어로 집을 꾸려가는 느낌이라 나름 만족스럽기도 했다.

적어도 종전 후 찌들어있던 사명감이 회의감으로 변모하고, 매일 피로에 주저앉던 피부를 생각하면 적어도 지금이 백만 배는 낫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괘씸하게 제 변화를 외부인이 먼저 눈치채게 둔 녀석들은 어떤 심정일지 몰라도, 그 정도 징벌은 있어도 된다고 굳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마정석을 심어 놓고선 콧잔등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적였다.

날숨이 뻐억 내뿜어진다.


“슬슬 평범한 건 질리니까 조각이라도 해볼까.”


직접 조각하기엔 그쪽 방면으론 영 재능은 없다.

그렇다고 조각된 마정석을 구해달라 한다면 그녀의 한숨을 자아낼 것 같지만, 그 정도 보상심리가 조금 있어서 어떤가.

자신의 조력이 있어 비로소 그녀의 비원이 이뤄진 것이다.


스스로 납득간 눈망울이 뿌듯하게 반짝이면 거대한 입꼬리마저 올라갔다.

잇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되먹지도 않는 마정석 조각을 시도해보려던 찰나.


달그락


마정석 파편이 치이는 소리를 이 귀가 착각할 리 없었다.

하지만 동굴 내부로 들어오는 기척은 감지하지 못했다.

동그랗게 퍼져있던 동공이 다시금 날카롭게 드리웠다.

천천히 소리의 정체를 더듬어갈 때,


“설마 마나석의 목적이 이런 식으로 쓰이고 있을 줄이야.”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적막한 동굴을 채웠다.

한동안 자신과 그녀 외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허용치 않던 곳이었거늘.

지금 제 눈앞에서 마정석 덩어리를 유심히 살피는 남성의 뒷모습이 있다.


“감히 누가 내 영역에 발을 디뎠는가.”


내심 웅장하게 내놨다고 내놓은 말에 그가 뒤를 돌아본다.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물든 흑안이다.


“그렇게 목소리 깔아봤자 나한텐 히키코모리 용종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전혀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에 오히려 흠칫했다.

그보단 그가 내놓는 단어란 게 어딘가 묘하게 거슬려도 반박할 수가 없다.


“히키······ 뭐?”


#


“일어났어요?”


“어?”


지아가 눈을 뜨면 어째선지 코앞에 실리어스의 얼굴이 나왔다.


소파는 둘째치고 제 머리를 받치고 있는 건 틀림없이 그녀의 허벅지였다.

어느새 잠든 모양이었다.

뭔가 베개보다도 안정적인 느낌에 함부로 머리를 들 수가 없다.


“아저씨는요?”


기어이 고민하던 선택지를 버리고 말을 이어갔다.


“연장근무를 원하길래 추가 수당을 줄만 한 일을 드렸죠.”


“그렇게까지 돈이 모자라진 않을 텐데요.”


돈 자루가 있어도 열기를 두려워하는 그의 손 떨림을 잊진 못한다.

하물며 자신에겐 씀씀이가 더 없는 남자다.

무심코 면접 당시 그가 내놓았던 말에 실소했다.


“부상이 있는 건 똑같을 텐데······.”


“그는 아무래도 이런 것들에 익숙해 있는 것 같더군요. 인간과는 아무래도 접점이 많이 없다 보니 정상인진 모르겠지만.”


실리어스의 말이 귀에 들어왔는지와는 별개로 지아는 잠자코 있었다.


지아가 일그러진 미간으로 떠올리던 건 먼발치에서 메리 맨을 상대하고 있던 하루였다.

차마 뭔가를 할 순 없었다.

그 찰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직격당하고 기억을 잃은 블레임을 떠올리고 말았었다.

쓰러지기 직전 잠깐의 목격이라고 하는데 그의 초점 잃은 눈이 선명하게 각인된 것이다.

그러자 손발이 떨려 왔다.


다시금 회상으로 인해 떨리는 손 위로 실리어스가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포갰다.


차갑다.

그래서 더 안심되었다.


지아가 조심스레 미소를 짓는다.


“언니는 따뜻하네요.”


“그래요? 차가울 텐데······.”


“아뇨, 따뜻해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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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3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7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 #140. 티타임 21.11.12 47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6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7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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