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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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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작성
21.10.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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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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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129. 문명의 톱니바퀴

DUMMY

안개 낀 다리 위.

난무하는 날붙이끼리의 마찰음과 묵직하고 가벼운 발소리.

이윽고 거대한 마찰음이 한 번.

먼저 뿌연 안개를 뚫고 미끄러지듯 밀려온 건 통통한 줄무늬 꼬리를 지닌 다람쥐였다.


작고 둥그런 귀에 난 붉은 상처 하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숨을 헐떡였다.


저만치서 그와 대치하고 있던 투박한 바위의 몸을 지닌 하프 골렘 하나가 뛰어온다.


“쯧, 도망치는 다리 하나는 빠른 녀석이네.”


골렘이 혀를 차면 그 뒤로 수 명의 타종족들이 다가와 나란히 섰다.

하나같이 택배기사의 제복을 착용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그 작은 다람쥐를 포획하려는 듯 천천히 다가왔다.


그럼 다람쥐 하나는 그 작은 손에 들린 은빛의 창끝을 그들에게 향했다.


다시 한번 긴장감이 형성된다.


“이 은혜도 모르는 놈.”

“그만 포기하고 투항하지?”


‘잘도 지껄이는군.’


자신에게 향하는 무차별적인 말들을 들으면 다람쥐는 커다란 두 눈을 부라렸다.


이윽고 택배기사들의 사이에서 누군가가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흰 제복의 택배기사.

속눈썹마저 흰, 온몸이 백색인 여성.

그녀가 입을 열면 뿌옇게 연기가 내뿜어진다.

마치 이 대기 중에 있는 모든 차가운 안개가 그곳에서부터 탄생한 듯 흩뿌려진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칠지 알고는 있나요.”


그녀의 말에 다람쥐는 한층 차분해진 듯 창을 조심스레 내렸다.


골렘이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면에 제 주먹을 내리치면, 지면과 일순간 동화된 팔뚝에서부터 바위가 솟아오른다.


“잠깐······!”


돌발행동에 백의 그녀가 외쳤지만, 통하지 않고 나란히 서 있던 또 다른 택배기사들의 공세까지 이어졌다.


그 작은 생명체를 잡기 위한 수많은 술식이 허공에 새겨지자, 다람쥐는 재차 거대한 눈을 날카롭게 바꾸며 각력을 실었다.

뒤로 도약하기 직전이었던 오른 다리를 골렘의 바위가 붙잡아 굳혔다.


‘젠장, 늦었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당황하며 잇따라 오는 공세에 차마 대항하지 못하겠다 싶을 때,


쐐액──

쿠우웅!


돌연 하늘에서부터 안개를 뚫고 온 무언가의 추락이, 그 모든 공세를 무력화시켰다.

그로부터 퍼지던 후폭풍에 주변의 안개가 일순간 걷혔다.


그 찰나, 그곳에 있던 모두는 보았다.

칠흑의 갑주.

대전쟁에 얕게라도 몸을 담고 있던 이라면 알고 있을 미치광이들의 무장형태.


기억 속의 그것들과 미세하게 다른 부분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택배기사들의 요동치던 눈동자들이 반사적으로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곤 무의식적으로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다소 심각한 표정이었던 백의 그녀가 생각을 멈추고 재빠르게 입에서 한기를 내뿜었다.


후우우욱────


그 소리와 함께 근거리의 인원마저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뿌옇게 드리운다.


“저, 저기! 실버양? 너무 지나친 것 같은데!”


또 다른 택배기사들이 명백하게 당황한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을 때, 갑주의 주인의 발소리가 울리면 기사들은 일제히 경직되었다.


“다들 긴장해!”


그들과 달리 가만히 선 백의 여인은 정색한 얼굴로 그저 정체불명의 그가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철그럭

철그럭

터엉─


몇 번의 발소리 뒤에 도약과 함께 인기척이 멀어져간다.

그럼 택배기사들은 놓친 것에 분해하면서도 안심한 듯 연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지난 후 안개가 서서히 사라져가면, 그들은 서로를 확인하며 다시 한번 안도했다.


그중 하나가 백의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실버양도 실수를 할 때가 다 있네.”


“······.”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녀는 그저 방금까지 도주자가 있던 방향을 쳐다볼 뿐이다.


“이거, 추적도 못 하겠네.”

“됐어. 추적은 무슨, 실버양도 분명 위험한 상황을 우려해서 짙은 안개를 만든 거야.”

“그 다람쥐 언제까지 활개 치게 놔둬야 하는 거야?”

“아라씨가 부탁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택배기사들은 한껏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한 가지의 의문점만은 철저하게 꺼내지 않고서.

그럼 누군가 모두가 묵인하고 있던 요소를 입에 담는다.


“······나만 아까 잘못 본 거야? 아니지?”


애써 무시하고 있던 건, 틀림없이 그들의 머릿속에 같은 구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피칠갑된 미치광이들이 지나간 거리에 늘 남게 되는 광경이라던가.

모두는 그걸 입에 담은 기사 하나를 원망스럽게 노려봤다.


“왜, 왜···?”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의 여인만이 혼자 뒤돌아 다리를 따라 걸었다.

그럼 각자 멋쩍은 반응을 취하다 그녀의 뒤를 따랐다.


#


안개 지역에서 벗어난 듯 화창한 햇볕이 나뭇잎 사이를 뚫고 한껏 내리쬔다.

그리고 또 그사이를 갑주의 주인은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다람쥐는 동그랗고 작은 귀를 움켜쥐고 있다.

도약이 이뤄질 때마다 한가득 맞는 바람을 작은 몸뚱이로 감당하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봐! 이제 내려줘!”


그제야 다람쥐를 옆구리에 끼고 있던 갑주의 주인은 거대한 나뭇가지 하나에 착지했다.


“푸하! 바람 때문에 질식할 뻔했네! 당신, 대체 뭔데 끼어든 거야?”


오히려 구해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꾸짖음을 듣고 있자니 그도 묘한 기분이었던 걸까.

여전히 갑주로 막힌 안면은 말이 없었다.


슬슬 다람쥐가 작은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호소하려 할 때, 차마 사람으로선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귀를 쫑긋거렸다.


“─씨! 아저씨!”


점차 소녀의 목소리가 다가온다.


“하루.”


달려오는 소녀를 쳐다보다가 문득 들린 말에 다시 고개를 올려봤다.

그럼 방금까지 온몸에 둘렀던 갑주는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지고, 흰 와이셔츠에 검은 자켓을 걸친 남성이 나타났다.

게다가 이 냄새.

인간이다.


“뭐?”


그렇게 의문조를 띤 거대한 눈망울이 다소 당황한 기색이었다.


“오빠!”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시금 시선을 돌리면, 비슷한 몸체의 멧밭쥐가 소녀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안겼다.


“피시코스 오빠, 다친 데는 없어?”


피시코스라 칭해진 다람쥐는 제 몸을 살피는 멧밭쥐를 멍하니 보다가, 돌연 다시 정신 차린 듯 멧밭쥐를 붙잡았다.


“잠깐 라소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긴! 오빠가 괜히 이상한 쪽지를 남겨놓고 가니까, 내가 이분들에게 부탁한 거라고!”


피시코스는 방금까지 자신을 들쳐메고 온 그를 올려다 봤다.


“이야, 설마 멧밭쥐하고 다람쥐가 남매라니. 쥐는 쥐니까 가능한······건가?”


라소르의 옆에서 괜히 어색하게 웃는 소녀를 보면, 그 당황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분은 지아님. 그리고 이분은 하루님.”


“하루라는 게 이름이었어?”


하루는 무시하고 천천히 걸었다.

뭐가 뭔지 아직도 모를 피시코스의 코가 몇 번씩 움찔했다.


“자, 가자.”


지아가 쭈그려 앉아 손바닥을 내밀면, 너무도 자연스레 오르는 제 여동생을 보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그러는 사이 지아는 피시코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빤히 지켜보는 그에게 얼른 타라는 듯 손가락을 흔드는 재촉에 말려, 자신도 모르는 새 어깨에 오르고 말았다.


‘젠장, 이게 아닌데.’


속으로 연신 중얼거리며 익숙한 내음이 풍기는 깊숙한 숲속을 향했다.


#


높게 솟은 탑.

그리고 그 중앙의 거대한 광장에선 폭소가 연이어지고 있었다.


“저기, 아라씨. 그렇게까지 웃으면 저희로선 조금 무안하달까······”


베이지 베레모를 쓴 갈색 머리칼, 청안과 황안으로 된 오드아이.

아라라고 불린 그녀가 한창 배를 붙잡고 웃다가 눈에 맺힌 눈물을 거뒀다.


“미안. 하지만 광전사의 갑주라니······. 아, 다시 떠올리니까 또 웃어버릴 것 같아.”


그녀를 찾아온 택배기사들은 정작 무엇이 그렇게나 웃긴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지만.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백의 여인,


“······실리어스 실버.”


실리어스의 말은 제법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지만, 쉽게 믿음이 안 가는 내 심정도 이해해주길 바라.”


아라가 그렇게 말해도, 방금까지의 반응에 택배기사들은 여간 불만이 아닌 듯했다.

그럼 아라가 볼을 긁적이더니, 곧 엄지로 제 목을 긋는 척했다.


“그들의 목이 댕강 잘리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봤어. 그 황야에서 생존자가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 게 당연하잖아?”


그렇게까지 말하고서야 택배기사들은 식겁했다.

그들의 주위를 지나는 행인들마저 힐끔거렸다.


“멸종이라니······”


“애당초 개체수가 별로 없기도 했지만, 그런 문제는 아니고······. 일단 그 얘기는 제쳐두고, 여러분이 봤다는 그 갑주가 피시코스씨를 데려갔다는 말이지?”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뒤늦게 꺼낸다는 말이,


“너무 신경 쓰지 말자구.”


그런 소리였다.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는 건 예상한 바였다.

모두는 서로 시선을 나누며 어깨만 으쓱였다.


“전부터 물었지만, 이유가 뭡니까.”


“그야, 그들은 이 세계를 제공해준 거라니까. 무엇보다 개인의 억압은 이 대무역도시에 어울리지 않잖아?”


그녀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들이 밟고 선 탑, 그리고 그 주변으로 감히 헤아릴 수 없는 택배기사단의 건물들이 밀집된 곳.

또한, 역대로 가장 많은 포탈이 연결된 도시라고 해도 좋을,

그 범위는 그녀의 말마따나 대무역도시라고 해도 무방해 보였다.


“다람쥐 씨의 영업방해는 엄연한 잘못이지만요.”


실리어스는 그저 차가운 말투로 툭 내뱉었다.

그럼 아라는 여전한 미소로 냉혈한 표정을 마주 봤다.

그리곤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벼운 콧숨을 내놓았다.


“그렇게 말해도, 결국 놓친 건 여러분들이고? 굳이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난 여러분들의 행동도 억압할 생각은 없어.”


정말이지 처세가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버린다.

방금의 말로 자연스레 그 책임이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덤으로 알 수 없는 의심마저 뒷전이 된다.

실리어스는 획 몸을 돌려 그녀를 등졌다.


“그렇네요. 정체불명의 갑주씨가 그 마을을 돕는다면, 조만간 다시 볼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앞으로 방해가 있다면 둘 모두를 잡으면 될 일이겠죠.”


여태 그 다람쥐 하나 포획하지 못해 이 사단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자리에서 떠나갔다.

한껏 다운된 분위기 속에서 택배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문득 한 택배기사가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라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정말이에요?”


“뭐가?”


“광전사들의 멸종. 그 자리에 있던 게 확실한가요.”


“그럼. 물론 내가 여러분을 의심한 것처럼, 당신이 내 말을 의심하는 것도 자유야.”


“그런 말이······. 대체 어떤 세력입니까. 용제의 감시를 뚫고 흑룡을 멸한, 미치광이들의 목을 베어낼 수 있는 자들이.”


유라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평소와 같이 또 그런 식이다.

매번 그녀의 반응을 마주하다 보면, 마치 사고가 사라진 바보로 남는 느낌이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지금은 종전의 시대. 아픔밖에 없던 날의 기억 따위, 도움 될 거 하나 없잖아?”


수긍할 수밖에 없다.

택배기사는 역시나 만족할 만한 답은 얻지 못했지만, 그 이상 할 말도 남지 않았다.


그 기사마저 떠난 광장에서 아라는 홀로 서선 끝없는 탑의 꼭대기를 바라봤다.

투명한 소재로 된 벽이나 지면은 아래층이고 위층이고, 모든 이들이 바삐 움직이는 광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어딘가 파란의 전조가 느껴지는 감각.

방금까지 그들에겐 자유라는 단어를 실컷 언급했지만,

만일 감각의 원인이 이 돌아가는 문명의 톱니바퀴를 멈추는 불순물이 된다면, 털어낼 의지로 가득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세계라는 거대한 장치를 수리하는 행위일 뿐.

누구도 자신을 나무랄 순 없었다.


“상대가 설령 최종병기라도.”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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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158. 사자의 협곡 21.12.08 47 2 12쪽
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2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2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2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0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6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6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5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6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4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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