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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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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61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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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51. 좋아

DUMMY

“아, 그전에.”


문득 교무실 문을 붙잡던 하루가 손을 뗀다.


“먼저 들어가.”


의문스러운 표정만 짓는 지아에게 말해도 그녀가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기왕이면 완벽하게 파악하고 가는 게 좋잖아.”


“무슨 말인지 저는 아직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학생 명단을 먼저 좀 찾아보려고.”


“그건 왜요?”


“아······ 정보수집?”


답하기 이전에 흘리던 음이나 의문형인 말꼬리에서 이미 불안함이 잇따른다.


“정보수집을 가장한 협박은 아니겠죠?”


“대체 날 어떻게 보는 거야. 그럴 필요도 없고, 굳이 둘이 이동할 만한 일은 아니잖아. 게다가 크롬의 상태도 상당히 신경 쓰이고.”


“그건 그렇죠.”


하루는 지아의 동의를 얻어낸 후에야 재차 복도를 따라 유유히 사라져간다.

기어코 혼자만 크롬이 있는 교무실 문을 연다.


줄었다곤 해도 여전한 서류의 양에 한 번 멈칫했다.

그런 자신을 보는 크롬이 이전보다 훨씬 심한 몰골이다.

저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정녕 무엇에 의한 것인지.

무심코 서류 때문만이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맥스웰 씨는요?”


문을 닫고 성큼성큼 서류 더미를 지나 그의 앞까지 도달했다.

그런 지아를 보던 크롬은 그저 면목 없다는 표정이다.


“아, 저 대신 수업에 갔는데 못 본 모양이군요.”


“보통은 반대 아녜요?”


“아, 아마 그 친구는 제가 아직 수업에 들어가기 부적합하다고 생각한 거겠죠.”


그가 눈을 피한다.

곧 방금까지 전혀 보고 있지도 않던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다.

잠시 침묵이 유지되자 크롬은 다시 서류에서 눈을 떼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직 자신을 묵묵히 보던 지아가 있다.

그제야 크롬이 한숨을 동반한 말을 이어간다.


“사실 제가 부탁했습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요. 수업은 해야 하는데 아이들 앞에서 말문이 막히면 안 되잖아요.”


뭔가 괜히 찔리는 듯 크롬은 알아서 자백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해도, 자연스레 안타까움과 못 미더운 심정이 섞여 눈동자에 드러나고 만다.


지아는 다시금 서류 더미를 지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루씨는요?”


“잠깐 볼일이 있다고 해서요.”


“뭔가 알아보신 건가요?”


“······글쎄요.”


크롬의 질문엔 필연적으로 피요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녀와 있던 일을 떠들어봤자 크롬의 트라우마를 더 자극하는 일밖에 되지 않을 터였다.

지금 당장은 그가 시무룩할지언정, 얼버무리는 게 차선책이었다.

그렇게 판단하고 잠자코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문이 열렸다.


“아저씨.”


하루 역시 그 앞에서 서류 더미에 질색하며 들어온다.


“크롬.”


그러더니 갑자기 낮은 음으로 선생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게를 잡는다.

크롬이 급 긴장해선 허리를 우뚝 세웠다.


“그 녀석들은 역시 네 학생이 아니야.”


오히려 지아가 경악했다.

실컷 얼버무리면서까지 그가 낙심하는 걸 막아냈다고 하는데, 이 작자는 오자마자 불씨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이 아저씨가 뭐 하자는 거예요!”


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버럭하니 하루라도 흠칫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라는 거지.”


하루가 덧붙여 말하면 지아가 잠시 급발진하다가도 진정했다.


“뭘 듣고 오셨길래요.”


“크롬, 졸업생들은 애초에 네게 스승이라는 생각 따위 전혀 하고 있지 않을지 몰라.”


“이 아저씨가 정말······”


“녀석들은 네가 낙심하길 바라고 그런 말을 퍼부은 거야.”


지아와 크롬은 동시에 눈썹을 움찔거렸다.

크롬은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끝내 벙긋거리던 입에서 내뱉지 못했다.

그 목구멍이 무엇으로 막혀있는지 알 수 없다.


하루는 단순히 사실에 근거한 일을 생각하고 낼 뿐이었다.

그게 그의 속에 묵혀있던 무언가를 끄집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한 학생에게서 들은 바로는, 이번 졸업생들은 학구열이 엄청났다지?”


크롬이 고개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지금 명단을 살펴보고 온 길이야. 취업처만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그들의 집안까지 알게 되었어. 이번 졸업기수, 유독 귀족들이 몰려있던데.”


그들의 학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마 그들의 대립 구도에서 형성된 경쟁심 따위가 아니었을까, 지금 와서는 그렇게 생각된다.

하지만 계기가 어떻건 크롬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해준다면, 그만큼 그들에게 어울려줄 뿐이다.

그게 학생에 대한 교사의 본분이었으니까.


“그건 학구열 따위가 아니야.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다. 이 세대에 와서 아직도 그들에게 그런 악질적인 부분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어.”


“그게······ 크흠, 그게 무슨 말이죠.”


크롬은 애써 메이는 목을 가다듬으면서 물었다.


“아까 다른 스카우터들에게 얼핏 들었지만, 이번에 졸업반으로 올라온 아이들의 실력. 학점이나 기대치 모두 졸업생들보다 훨씬 높던데. 정확하겐 그 아이들의 재능을 견제한 거야.”


그 말끝에 크롬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들의 기묘한 신경전은 일반인의 상식으론 설명할 수 없다.

미친놈들.

간혹 용병들 사이에서 그들을 칭하는 단어였을 정도로, 그들의 우월함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었다.

지금에야 택배기사가 기사라는 기존 구도에 파고들어 상당히 달라져 있다고, 멋대로 생각했지만 근본은 바뀌지 않는 법이라며 하루 또한 방금까지 낙심하던 찰나였다.


그럼에도 크롬에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왜 제게 그런 말을······.”


“그래서 말한 거야. 녀석들은 당신을 선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방금 그들 중 한 명에게 확인받고 온 길이야.”


하루는 이곳에 오기 전 명단을 뒤져 한 업체에 한 통화를 기억해냈다.


─[네, 바꿨습니다.]


─[6기 졸업생 파루나, 맞나?]


─[······누구시죠?]


─[이번 3학년들을 견제해서 크롬에게 그런 말을 한 건가?]


─[다짜고짜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바빠서 끊겠습니다.]


─[지금 끊는다면 너희의 무용담을 내가 어떻게 전파할지 몰라. 유감스럽게도 내 발은 상당히 넓어. 시치미는 떼지 마. 너와 같은 기수의 학생에게 이미 어느 정도 확인받은 얘기니까.]


당연하게도 기사단에 제 인맥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고, 이번이 첫 번째 전화였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네요. 그럼 뭘 더 들으려는 거죠?]


─[왜 크롬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된 건지.]


─[······하아···. 들었으면 알 거 아녜요. 견제에요. 견제 정도가 아니죠. 크롬 선생을 얼마나 아는지 몰라도, 그 선생이 가르치는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크롬 선생의 수업만 거르게 할 수 있다면, 이번 졸업기수가 위협될만한 존재는 아닐 테니까.]


─[미쳤군.]


─[미쳐요? 오히려 제 다음 기수로 바로 들어오는 녀석이 저보다 훨씬 유능한 모습을 보여줄 텐데, 견제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녜요?]


그녀가 꺼낸 이야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경지인지 몰라도, 이 영역까지 도달했다면 나머진 본인에게 확인받을 수 있었다.


하루는 그녀와의 통화 내용을 전달해주면서 크롬의 얼굴을 살폈다.

미간에 실린 힘을 덜 생각이 없는 듯하다.

아주 깊이 파여 방금까지의 낙담이 아련함으로 뒤바뀌기 직전이었다.


먼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이번에도 하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 혹시 자기 과목 외에도 간섭하고 있던 거야?”


이윽고 크롬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조차도 슬프게 가라앉는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듣고 배운 걸 전해주고 싶었어요.”


“설마 영웅들에게서 전해 받은······”


크롬이 고개를 끄덕이면 하루는 조그맣게 실소했다.

지아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듯 둘을 번갈아 보며 방황했다.


“그게 뭔가 영향력이 있는 거예요? 영웅들이 택배기사인 것도 아니잖아요.”


“크롬이 머리에서 한 번 거르지 않고 전했을 것 같아? 어떤 내용인지 몰라도 내가 아는 영웅들의 노하우라고 생각하면 영향력이 비대할 수밖에. 그 방대한 자료를 또, 학생들 개개인에게 적절한 내용으로 전달했다면.”


지아는 크롬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크롬이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머리칼을 더 헤집어놓는다.


선생으로 보고 있지 않다.

그 말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게 와닿았는지 모른다.

반대로 말하자면 단순한 수단이었을 뿐.


“그놈들은 제정신이 아니야.”


하루는 무척이나 담담하게 내놓았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처럼.


“그러니까 너도 이제 버려. 그런 기억 언제까지고 간직하니까 평생 트라우마가 되는 거야.”


“마음대로 지울 수 없기에 트라우마라고도 하죠.”


그렇게 반박하는 그를 콱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참아낸다.

사실상 이 작자가 페어리 포레스트에서 나온 순간 자신이 그를 도울 의리 따윈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왜.

처음 지아와 교실을 들여다본 순간부터 자리 잡은 의문이 다시금 떠오른다.


하루는 답도 없는 작자는 두고, 멍하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뛰는 모습을 시야에 담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뛴다.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추정하던 중에 우연히도, 그 시체 언덕을 떠올린다.

빗소리만 추적하게 들리는 마치 살아있는 이들은 없던 것 같은 장소.


너무도 확연히 대조된다.

지금 눈동자에 담긴 광경에서 자신이 아직 남아있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하루의 반쯤 뜬 눈이 더욱 학생들의 모습을 착실히 새기고 있다.


문득 지아와 하루의 침묵에 크롬도 면목이 없었는지 입을 열었다.


“전 그들을 아직도 제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의 제자들에게까지 피해 끼치고 싶진 않아요.”


“그럼 움직여야죠.”


지아는 답답한 듯 내놓았지만, 그는 고개만 절레 젓는다.


“모르겠어요. 방금 하루씨의 답으로 어느 정도 이해했을 참인데, 여전히 강단에 선다고 생각하면 목구멍이 막힙니다.”


그들의 눈빛을 마주할 때의 감각.

턱 막히는 숨.

점차 사라지는 원근감.


떠올리던 크롬이 제 넥타이를 슬쩍 풀었다.


하루는 애써 고백하는 크롬의 말은 듣는 건지, 여전히 시선을 앞에다 두고 있다.


“신기해.”


그리고 갑작스레 운을 뗀다.

지아와 크롬은 그런 하루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쳐다본다.


“청춘은 신기해. 말없이 지켜볼 뿐인데, 좋아.”


그제야 지아와 크롬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들의 표정, 땀.

많은 설명이 굳이 필요는 없었다.

이미 둘은 하루의 말에 감화된 듯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뒤늦게 눈을 감으며 피식 숨을 내뱉으면 지아와 크롬이 다시금 하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이 저 녀석들에겐 불편하고 부담이겠지만.”


여태까지 제대로 된 미소를 지어 보인 적 없던 크롬마저 실소를 뱉는다.

순간 여태 자신에게 했던 제자들의 불평이 지나쳐간다.

그런데도 자꾸만 나오는 웃음의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는데, 나쁘지 않다.


“도와줄게.”


하루의 마지막 말에 크롬의 미간이 다시 움찔했다.

그 입은 여전히 웃고 있다.


“좋아하긴 이른 거 아닌가. 당신이 그럴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도와줄 생각 따윈 없어.”


크롬은 한동안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던 중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문에 지아와 하루가 흠칫 놀랐다.


창문을 벌컥 연다.


뭉쳐있던 서류들이 돌연, 들이닥치는 바람들에 불규칙적으로 흩날린다.

둘에게 크롬의 행동들이 돌발적이기 그지없었지만, 그의 모습을 담는 둘의 눈들이 한없이 맑다.


“해보겠습니다. 저도, 그냥 좋으니까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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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 #151. 좋아 21.11.29 43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6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6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6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7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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