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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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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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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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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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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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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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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138. 과거사

DUMMY

“이거, 쿠로모 택배 제복 아니에요?”


지아가 바닥에서 발견한 누군가를 가리킨다.

확실히 그들의 제복이다.

하루는 먼저 그 기사에게 다가가 맥박과 호흡을 확인했다.

무심코 지아는 하루의 얼굴을 먼저 살피고 있었다.


“그냥 잠든 거야.”


그제야 지아가 숨을 몰아 내쉬었다.


지아가 바닥에 앉아 잠시 진정하고 있을 때 하루는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미행을 감지하고 거점으로 이동하기 전에 잠재운 거겠지. 다른 쪽도 비슷할 가능성이 있겠는걸.”


“근처에 거점이 있을까요?”


“글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지아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오늘 내에 찾을 순 있을까요.”


하루는 금방 답하지 않고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이윽고 그가 다시 나무를 올라타 꼭대기에서 주변을 돌아본다.


‘이럴 때 색적을 이용하지 못하는 건 서럽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몇 군데를 중심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다 내려왔다.


“뭐한 거예요?”


“이번엔 이쪽에서 선수 좀 쳐볼까.”


“뭔가 알아낸 거예요?”


“오히려 사방에 입구를 뿔뿔이 놓은 덕에, 각각의 입구에서부터 교차하는 거리를 토대로 그들의 거점은 얼추 예상은 할 수 있어.”


“정말요?”


“물론 녀석들이 그것마저 예상했다면 장소 특정은 어렵겠지만.”


좋다가 말았다는 게 뻔히 보이는 표정이다.

그래도 방금보단 지아는 확연히 밝아져 있다.

아무래도 티끌만 한 희망이라도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럼 이 기사는 어떻게 할까요.”


하루는 잠시 제 아래에 있던 그를 봤다.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그게 썩 좋은 처우는 아니라고 지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


덜컹!


지하 입구를 또 열고 나온 이는 빌리였다.

빌리는 잠시 허리춤에 양손을 올려놓곤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최근에 유독 적막의 때를 자주 맞이하는 듯하다.


빌리는 한참 제자리에서 어디를 향하면 좋을지 망설였다.

그때 문득 한 방향만 빤히 쳐다보던 그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 자신이 향하는 곳이 이미 누군가 지나간 길이라고 깨달았다.

헤쳐져 있는 덤불이나 짓이겨진 잔디가 그걸 증명했다.


이윽고 그가 멈춰 섰을 땐, 달리기 시작한 원인이 그곳에 있었다.


“살려줘요! 여기! 여기!”


빌리를 발견한 누군가가 급하게 외치면 빌리는 고개를 들었다.


나뭇가지에 묶여있는 또 다른 택배기사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빌리는 재빨리 그를 그곳에서 내렸다.


“쿠로모 택배?”


“당신은 백묘의 택배기사군요.”


“어떻게 된 거예요?”


“젠장할 괴한들의 짓일 겁니다. 추적 중에 당했지 뭡니까. 녀석들 설마 나뭇가지에 묶어놓고 갈 줄이야. 당신이 아니었다면 언제까지 묶여있어야 했을지······.”


기사의 푸념에 빌리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를 봤다.

몸만 흔들면 부러질 수 있을 정도의 두께다.


“생각보단 친절한 괴한들인 걸까요.”


“뭐요?”


“생명에 지장도 없고, 부상도 없고. 야생동물의 습격을 우려해서 올려놓은 건······”


“그거 진심으로 하시는 말인가요?”


차마 그 건에 대해선 반박할 여지가 없다.

빌리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을 때와 같이 갈 곳도 얼추 정해져 있는 듯하다.

빌리가 흔적을 쫓으려 할 때쯤,


퍼엉──


거대한 폭발음이 일었다.


당황하던 둘이 동시에 시선을 멈춘 곳에서 서서히 연기가 피어오른다.


“단말기는 있으시죠.”


빌리의 질문에 그가 제복의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있을 동료들에게 지원 요청을 해주세요.”


일방적으로 그런 말과 함께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아갔다.


“잠시만, 이봐요!”


그의 부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연기의 근원지로 뛴다.

얼마나 됐을까.

거의 도달했을 즈음 2차 폭발이 일어나 빌리는 뜀박질을 멈췄다.


다행히 폭발의 여파가 숲까지 퍼지진 않은 듯했다.

그 사실과 동시에 제 앞에 있는 근원지가 괴한들의 거점이리라 확신했다.


이윽고 빌리가 그곳에 도달했을 때엔, 이미 거점이라 부를 수 없는 잔재들과 연기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곧 눈동자에 익숙한 실루엣들이 들어왔다.


“딘씨, 지아!”


그의 부름에 하루와 지아가 뒤를 돌았다.


“빌리? 왜 여기까지.”


“그건 나중에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들의 거점······이죠?”


방금까지의 확신이 무색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그건 저 녀석들에게 묻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답과 함께 하루의 시선이 향한 곳엔 어떤 무리가 나란히 서서 지켜보고 있다.

하루가 지그시 노려보면 하랑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용케 무사했나.”


그의 목소리가 낯익은 듯 지아와 빌리가 반응했다.

그럼 하루 역시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무사했나.

그런 말을 들으니 무심코 코웃음이 쳐졌다.

하루의 옆에서 지아와 빌리는 그의 반응을 당황스럽게 받아들였다.


“뭐가 우습지.”


둘의 의문을 하랑이 대신 물었다.


“아니, 설마 예상이 이런 식으로 엇나가나 싶어서. 거점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만 염두에 뒀는데 설마 거점을 우리의 묫자리로 선택할 줄 몰랐지.”


하루는 희미한 미소를 품었다.

뭐가 그리 우스웠는지 옆에 있는 이들이 알 턱은 없지만, 하루의 속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재미나 흥미 그런 종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요즘 같은 시대에도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의외성에서 온 감탄이었다.


또한, 자신이 확실히 종전의 시대에서 안주하고 있었다는 실감.

지금 이 상황을 당연하게 머릿속에 그리지 못한 현실이 바로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그뿐이었다.


“미안하지만 서순이 잘못됐네.”


그럼 하루의 판단을 부정하려는 듯 하랑은 그렇게 꺼냈다.


“뭐?”


“너희가 이곳에 도달한 건 봤다. 하지만 그건 폭발 타이밍을 작동시킨 후였지, 전이 아니었단 말이야.”


“우릴 노리고 한 일이 아니란 건가.”


“단순히 증거인멸을 바라고 한 일이다. 실제로 너희가 이곳까지 도달한 건 그 덕이었을 테니까.”


그의 말대로라면 이미 도난당한 물품들은 이곳에 없다는 얘기다.

지금 살펴보면 거점과 숲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덕에 숲으로 화재의 확산을 우려할 여지도 없다.


‘그의 말에 거짓은 없나.’


하루의 눈이 다시금 냉정하게 가라앉는다.

아니, 어쩌면 방금까지 느낀 모든 감정이 단숨에 죽은 것뿐일지 모른다.

이것도 실망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딱히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다.


그들이 뒤돌아 떠나려 하면 빌리는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하는 일들이 정의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빌리는 문득 알 수 없는 말을 내놓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멀찌감치 있는 하랑이 뒤를 돌았다.


“제가 여기 온 건 당신들이 한 착각 때문입니다!”


“착각?”


양측 모두 빌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긴 매한가지였다.


“당신들이 훔친 물건, 전부 도로 돌아왔다는 연락이 지부에 왔습니다. 아마 백묘 지부뿐만은 아닐 테죠.”


“돌아오다뇨?”


옆에 있던 지아가 물었다.


“배송품. 정확하겐 배송품이 되기 전의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말이야.”


지아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표정이지만 하루는 그제야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배송품으로서 기증되는 물품.

하루의 기억을 예로 들면 용의 심장 같은 게 그러했다.

기증이 없다면 재고가 없다시피 할 만큼 희귀한 존재들.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당신들의 의도가 어떤 건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랑은 결국 피식 비웃었다.

빌리는 그 말로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행위가 착각에서 비롯된 점이라는 걸 알려주려는 듯하다.

듣고 있으니 참으려 해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들은 원해서 너희에게 기증한 것이다, 택배기사단이나 기타 업체에 강탈당하고 빼앗긴 게 아니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건가?”


하랑의 비웃음 섞인 말이 기어코 빌리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하루는 그런 빌리를 쳐다봤다.


그는 너무 올곧다.

그렇기에 그들을 단순히 착각에 빠진 악으로밖에 보지 못했다.


“너야말로 착각에 빠진 것 같네. 메리 맨이 그런 사실도 몰랐을 것 같나?”


메리 맨이란 단어에 하루는 다시금 하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로빈 훗의 유쾌한 동료들.

그들이 그 이야길 알리 무방했지만, 필시 의미는 그대로였으리라.


“저들에게 당신의 말은 들어가지 않아.”


하루가 마치 확신하듯 말하면 빌리는 제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당신은 방금 제 말을 알아들으셨잖아요?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겁니까?”


하루는 하랑의 올라간 입꼬리를 직시하면서 답했다.


“메리 맨, 혹은 그 외의 무언가. 스스로를 대변인이라 주장하는 세력의 의지가 그렇다는 말이다.”


하루의 눈동자가 여전히 메리 맨에게 머물러 있다.

세력을 담은 눈동자는 곧 과거의 비슷한 세력들을 수차례 떠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빌리는 방금까지 닫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서든 제 앞의 그들을 설득하려 목청을 높인다.


“당신도 소중한 무언가를 강탈당한 적이 있는 거 아닙니까! 저도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어요! 누군가를 위해 직접 소중한 걸 건네는 이들도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거듭하면 할수록 하루의 말을 증명해주는 꼴인 것 같아 괜히 비참함이 잇따른다.


“강탈이라 인정하는 범주는 어디까지지? 직접 쳐들어가서 훔치면? 거부하는 의사는 무시한 채 강제로 거래를 성사시키면?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그 범주라고 판단했다.”


“······당신들에게 물건을 돌려받은 이들도 그랬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부디 한 생명을 살린다고 생각하시고 조력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방문한 너희는 그런 식의 이야기를 꺼내지. 그로부터 며칠간의 시간을 간직한 이들의 생각은 뭐일 것 같아?”


“선택을 위해 주어지는 시간일 뿐입니다.”


“그거야말로 어디까지나 너희의 주장 아닌가. 그들의 사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너희는 경쟁이라는 구도 때문에 누구보다 빠르게 그들을 방문하지. 정작 그때 필요한 시간 따윈 주지 않은 채 말이야.”


하랑의 목소리가 점차 악에 받친다.

비웃음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

이미 그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화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선택이라는 빌미로 현저히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건네. 알겠나? 너희가 그들에게 내놓은 건 기부에 대한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생명을 다시 포기해야 할지 말지의 고통일 뿐이야.”


빌리는 처음의 기세를 잃고 오히려 하랑이 형성하는 분위기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옆에서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하루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빌리의 어깨를 슬며시 부여잡는다.

빌리 역시 그 이상의 반박할 기미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넌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는데.”


하루가 말에 싱거운 억양이 묻어나온다.

하랑은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물론 내 경우엔 너희가 흔히 아는 강탈이었다. 네게 자세한 사항을 얘기할 의리 따윈 없지만, 간단히 시신 훼손에 대한 건이라고만 말해두지.”


하루는 곧 괜히 물었나 싶을 정도로 빌리의 동요를 목격했다.

지아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 수는 없다는 판단에 다다랐다.


하루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면서 입을 열었다.


“여태 남아서 얘기 나눠준 건 고마운데,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라서.”


“이미 도난품은 이곳에 없다. 게다가 우린 어떤 것도 말하려 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우릴 잡고 싶나?”


아무렴 그 말에 별 기대는 없었겠지만, 이번엔 하루가 비웃었다.

천천히 그의 몸 주위로 어두운 오라가 감싼다.

아직 지속 중인 화재 때문에 핀 아지랑이가 더해, 조금 더 일그러지고 기괴하게 다가온다.

하루의 모습을 확인한 메리 맨은 흠칫했다.

발부터 다리, 허리로 서서히 올라타는 거뭇한 오라가 뚜렷한 형태를 만들어간다.


“너흰 뭔가를 기대하고 범인을 잡나? 나하곤 확실히 다르네.”


타오르는 모양새의 오라가 머리까지 감싸 차갑게 식은 듯 굳는다.

그 끝에 드러난 투박한 철갑 사이로 흐르는 그의 음성이 더욱 이질적이다.


“그냥 거기 있으니까 잡는 거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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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2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6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6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 #138. 과거사 21.11.10 46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6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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