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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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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75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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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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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44. 퇴사

DUMMY

“퇴사?!”


아침부터 버럭 지르던 건 스타였다.

멍한 실리어스나 그 주위에 있던 직원들은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주위의 이들도 의문이긴 마찬가지였다.

실리어스는 그들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그러기 위한 수습 기간이잖아요. 교육을 겸한 적성 판단.”


“뭐, 그건 그렇지만요. 전 들은 것도 없는데······”


시무룩한 소리를 하는 건 다름 아닌 팀장인 체르비였다.


그렇지 않아도 실리어스는 그녀가 이전에도 툴툴댔던 걸 기억했다.


“이런 사소한 보고는 귀찮을 뿐이니까요. 체르비가 그런 데 수고할 필요 없게 한 거예요.”


나름의 위로랍시고 한 말에도 그녀는 부풀린 볼의 붓기를 뺄 생각이 없던 모양이다.

당분간은 그녀가 좋아하는 블론드 밀크티를 주기적으로 갖다 바쳐야겠다고 정했다.


곁에서 엿듣던 빌리가 끼어들었다.


“그럼 어디 다른 일자리라도 구할 생각인 걸까요. 폴리티스모스같은 대무역 월드에선 해봤자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이제 이곳엔 없을 거예요.”


“아.”


실리어스의 답에 백묘의 직원들이 하나 같이 같은 반응을 내비쳤다.

그야 그렇게 말하면 이해할 수밖에.


그리고 누군가의 한숨을 계기로 사내는 금세 떠들썩해졌다.


“오자마자 소란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나간 줄 알았잖아.”

“하하, 누가 아니래. 내심 신입 둘이 그런 일 겪어서 마음이 좋진 않았는데.”

“그건 그것대로 폴리티스모스에 안 좋은 인식이 박힌 거 아냐?”


누군가는 서운해하거나 안심하고 또 누군가는 우려한다.


정말 바람같이 왔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었다.

게다가 이 세계에 누구나가 골치로 여겼던 문제를 갖고.


“이제 다들 업무 준비해야죠.”


실리어스가 조곤조곤 놓으니 군말 없이 직원들은 움직였다.


“아, 지부장님. 오늘 면접 있는 거 안 잊으셨죠?”


매니저가 그렇게 말하면 실리어스는 지부장실로 향하려던 몸을 그대로 돌려 면접실로 향했다.

그런 모습이 이따금 매니저의 실소를 자아낸다.


끼익


아직 아무도 도착하진 않았다.

평소와 다르게 그녀가 일찍 도착한 것뿐일지 모른다.


실리어스는 멍하니 개방된 외부 시험장만 쳐다보다 면접대상자가 앉을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이런 풍경이구나.”


기나긴 테이블에 놓인 의자 몇 개.

늘 있던 방향에서 반대가 된 것뿐이라는데 확연히 다르다.

빈 좌석을 마주하고 있어봤자 가슴이 두근거린다던가 그런 현상은 없겠지만.


“고맙단 말도 못 했네.”


덜컹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 문득 열린 문과 함께 실리어스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났다.


“······뭐 하세요, 지부장님?”


의자 앞에 있는 그녀를 보던 매니저도 당황스럽게 쳐다보면 그녀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다.


“다들 왔나요?”


“아, 맞다. 그게 아니라 본부에서 통신입니다.”


“웬일로 본부에서? 누가?”


“단장님입니다.”


“유리님······?”


#


우웅─


연신 울려대는 기계음 속에서 하루는 주변에 널리고 널린 필리아들을 둘러봤다.

하나 같이 귀마개를 하고 있다.


인간에겐 마정석이 토대인 엔진음이야 겨우 신경 써야 잡히는 잡음 정도였거늘, 이들에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야 문명에 불만이 있을 법도 하다.


“그래도 아라씨 덕에 이 많은 인원을 용케 이주시키겠네요.”


지아가 드높은 풍경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럼 하루는 아라가 비행선을 준비할 때까지 검프의 마정석 조각에 어울리다 온 걸 떠올리곤 미간에 주름을 새겨넣었다.


─용제님과도 아는 사이란 말이에요?! 형님, 용제님의 인간폼도 혹시 아는 겁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한정판 중에 한정판이라구요!


아직도 녀석의 매니악한 요구들이 귀에 딱지가 되어 앉는 듯하다.

역시 그 콧잔등에 크레이터가 만들어질 정도로 쥐어박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하루가 한숨을 푸욱 내쉬면 그 옆에서 자신과 겹쳐 내는 한숨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면 촌장이 한숨을 거듭하며 거대한 몸집을 들썩인다.


하루가 빤히 지켜보자니 시선이 따가웠는지, 촌장이 눈치채곤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뭔데.”


하루가 입을 벙긋거리면 촌장은 몇 번 못 알아듣다가, 기어코 신경질적인 말투가 내서야 끼고 있던 귀마개를 벗었다.


“아, 미안하오.”


“그래서 뭐가 그렇게 걱정인데.”


“그, 그게··· 역시 요정왕을 직접 뵌다고 생각하니···. 하물며 그분의 영역에 허가 없이 진입하는 건······.”


“글쎄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


“디, 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소.”


그래도 정령종의 큰 축에 속한다는 건가.

확실히 선대 왕이었던 그 할망구라면 불안해할 만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에서야 그럴 이유도 없을 터였다.

물론 그들이 그것까지 알아주리라 바라진 않는다.


오히려 지아는 그들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어지간히 불안하겠어요.”


“정신 사나우니까 그렇지.”


아무렴 이 수많은 인파가 한 번에 불안함을 보이면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그렇게 툭 내놓고는 하루는 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아가 빤히 바라본다.


“이번엔 너냐. 뭔데.”


“그냥, 출발하기 전에 아라씨와 하던 대화가 궁금해서요.”


지아에 맞춰져 있던 하루의 초점이 그 앞의 허공으로 다시금 조정된다.

그럼 자연스레 그녀의 오드아이가 그려진다.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이번에도 정보?


─그냥 질문.


─뭔데?


─멸망의 단서를 발견하면 알려줄 생각인가?


─음······ 그래도 거래니까.


─그들의 말대로면 모든 세계가 멸망할 텐데도?


─아하하, 솔직히 잘 모르겠네. 멸망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는 녀석은 없잖아? 만약 멸망이 코앞이라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그렇게 어색하게 짓는 미소까지 떠오른다.


하루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여전히 엇나간 초점은 지아가 하루의 미간에 검지를 슬며시 가져다 댈 때 다시 돌아왔다.


“제 말 들어요?”


저도 모르게 미간을 핀 채로 멍해졌다.

지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근데, 왜 아라는 아라씨고, 실리어스는 언니야?”


하루는 애초에 답할 생각은 없었는지 질문에 질문으로 받아쳤다.

그럼 또 지아는 곧이곧대로 생각하다 말했다.


“그래 보여서요.”


“아.”


하루는 지아의 말에 다시금 아라를 떠올리곤 그녀가 상처 입을 만한 반응을 내비쳤다.

다행히 그녀는 지금 이곳에 없다.


둘이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가고 있자니 곧 창밖에 워프 통로가 아닌 광활한 녹색 대지가 드러났다.


아주 정확한 좌표지정에 하루는 모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


푸른 형광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작은 요정이 팔짱을 끼고 있다.

덤으로 작은 왕관을 머리 위에 쓴, 그의 주위로 몰려든 수많은 요정 중 아까부터 들리던 눈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요정들의 시선이 하나 같이 머물러 있던 곳엔 짧은 금발의 한 남성이 엎드려있다.

끅끅대던 소리는 거기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언제까지 울고 있을 건데.”


“끅, 하지만······ 끄윽···”


푸른 요정의 말은 이윽고 대성통곡을 낳는다.

흐느낌도 모자라 더한 반응을 끌어내고 말았다.

푸른 요정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제 이마를 쳤다.


멀대 같은 남성이 이렇게나 같잖은 울음을 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하필이면 제 앞에 그런 예가 있다는 게 짜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그만 질질 짜!”


윽박질러도 아이 같은 울음은 더 커지기만 해 요정은 움찔했다.


답도 없다 싶을 즈음 멀리서 어느 요정 하나의 외침 소리가 들린다.


“아쿠리스님, 침입···!”


푸른 요정은 제 이름을 부르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각해진 표정으로 먼 숲속을 응시하고만 있다.


#


“여기 맞아요?”


“맞소. 벌써 그분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소.”


지아는 하루에게 물었지만, 정작 한 번 와본 적 없다던 촌장이 확신하고 있었다.


지아는 그만큼 요정왕이란 자의 기운이 짙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판코스미오 이상으로 아름다운 대지가 있다고 인식할 뿐이다.


끝이 없다는 게 이런 걸까.

판코스미오에서도 직접 대삼림을 본 적은 없지만, 지금 이 숲을 목격함으로써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넓다.”


주위에 있던 필리아들의 웅성거림.

벌써 들뜨기 시작한 게 보인다.


그러나 촌장은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불안함만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부터 거대한 기운이 다가온다.

촌장이 우뚝 서면, 하루 역시 같은 기운을 감지하고 제자리에 멈췄다.


정면에서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온다.

아니, 위였다.


하루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그럼 그들을 전부 덮고도 남을 만한 거대한 그림자가 위에서부터 그들을 덮쳤다.


쿠웅─!

구구구구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그들을 직접 덮치지 않았지만, 앞에 떨어짐으로써 몰려온 후폭풍만으로 충분한 위협감을 심어주었다.


기긱

기기기기···


몸뚱이도 머리도 각져선 거대 로봇 따위를 연상케 하는 고대 골렘이 붉은 눈들을 번쩍이며 이쪽을 보고 있다.

그 속에서 잔잔한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아, 아저씨······. 이것도 구면이에요?”


지아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하루 역시 금방 입을 열지 못하고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골렘을 올려다본다.

이내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아마.”


잠자코 내려보는 게 장담할 순 없어도 검열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외견이라면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그때도 이렇게까지 거구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머릿속에선 분명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제 눈앞에 있는걸 직관하고 있으면 무의식중에 기억의 오류를 가정하게 된다.


혹시 몰라 하루는 손을 내밀었다.


기리릭─


“아저씨?”


하루가 손을 내밀면 골렘은 묘한 음을 흘리더니 거대한 팔을 움직였다.

하루를 제외한 모두가 움찔한다.


조심스레 팔을 뻗던 골렘이 손가락을 움츠려 검지만 내뺐다.

곧 거대한 검지가 하루의 손바닥에 닿는다.

차마 검지 하나마저 손바닥으로 감싸지지도 않는다.


하루는 목울대를 꿀렁이며 잠자코 골렘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루륵.”


이번엔 뭔가 이전 기계음과 다르게 의사를 전하려던 것 같은 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다들 차이점을 눈치챘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움직임을 멈췄다.


“하하!”


그럼 옆에서 여태 듣지 못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지아도 낯설게 고개를 돌리면 하루가 있었다.


여느 사내아이처럼 활짝 웃고 있다.

처음이었다.

찰나에 그가 맞는지 의심마저 들었다.

지아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으면 돌연 그는 골렘에게 외쳤다.


“역시 너구나! 브이!”


“브···이?”


부스럭─


위에 있는 골렘 이외에 또 다른 기척에 그만 모두 몸을 움츠렸다.

곧 풀 속에서 허리에 고리를 두른 작은 요정 하나가 튀어나왔다.

일일이 놀라는 반응을 마주하던 요정이 무안해하던 때, 요정의 눈동자에 골렘과 교감하고 있던 하루가 들어왔다.

작은 요정이 아주 반갑게 날아가 그의 볼에 뛰어든다.


여러모로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 연이어진 곳에서 지아와 필리아들만 마치 동떨어진 존재들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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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3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3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6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3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7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 #144. 퇴사 21.11.18 45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7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6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7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5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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