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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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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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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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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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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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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41. 수호룡

DUMMY

“난 또 반령묘라는 작자가 악의 조직에 가담하고 있다거나, 그런 줄로만 알았지.”


하루는 무덤덤하게 용의 앞에서 서성이며 그렇게 말했다.


“네가 수호룡이지?”


수호룡은 흠칫 놀라 뒷걸음쳤다.

그 거구가 움직이니 동굴이 요동친다.

방금까지 보인 기세는 어디 가고 용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반면 하루는 제 앞에 있는 녀석이 수호룡일 거라곤 믿고 싶지 않았다.

거구에 겁이 많은 것 하며 은둔형 외톨이라니.

본래 그런 건지,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어디 가서도 무안함에 꺼내지 못할 얘기였다.


“대체 누구신데 그 사실을···”


하다 하다 이젠 이 수호룡은 하루를 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무신인지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게 중요한가. 네 존재를 아는 사람이 나왔다는 게 중요하지.”


어떻게 된 게 이렇게 말하는 순간까지 이놈의 수호룡이란 놈은 일절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이게 바로 몰락이라는 걸까.

하루는 주변을 다시 살폈다.

몰락보단 오히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수호룡이 물었다.

그럼 하루는 뚜껑이 사라진 마차를 가리켰다.


“마정석에 정신 팔려선 마정석 무더기에서 기어 나오던 것도 모르던데.”


그럼 상체를 바닥에 숙이고 손으로 제 눈을 가리던 수호룡은 수치사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껏 낙심하는 모습을 직관하곤 무심코 질색할 뻔했다.

과연, 덩칫값을 못 한다는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그것도 전부 선입견이라고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말에 수호룡이 답했다.

그렇게 말하니 받아칠 말이 없다.

하루는 뒷머리를 매만지다가 수호룡의 손가락을 토닥였다.

어째선지 녀석은 그것에 감동한 눈치다.


“이런 저를 위로해주시다니.”


“그래서 필리아는 왜 배신한 건데.”


“배신이라뇨! 이건 일종의 음······ 그래, 그 시위인가 하는 그겁니다!”


그것도 말이라고 했던 걸까.

하루가 주먹을 쥐고 한 대 쥐어박으려던 걸 간신히 참아냈다.


“게다가 노고도 몰라주는 곳에서 매일 피부를 썩혀가면서까지 있긴 싫잖아요. 종전이고? 제 능력은 무쓸모고? 역할도 그쯤 하면 된 것 같고? 그녀는 그런 제 마음을 헤아려준 거라구요.”


새침하게 말하는 것하곤.

수호룡은 괜히 옆에 굴러다니던 마정석 하나를 깔짝댔다.


“평생 여기서 썩을 생각이었던 거야?”


“원래는 아니었죠. 대삼림을 유지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 녀석들도 이해하지 않겠어요. 최근엔 여기 남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 중이지만요.”


결계가 지워져 가던 게 인위적으로 보였을 수밖에 없다.

이 녀석은 훗날엔 결계를 완전히 없애고 그들을 숲에서 빼낼 생각이었다.

어떻게 죽은 것처럼 자취를 감췄는지 몰라도, 필리아들은 이 둘의 연기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는 얘기다.


“아라라는 자의 다른 말은 없었나.”


“글쎄요. 판코스미오를 거대한 문명 도시로 만드는 게 비원이라는 것밖엔······”


단순히 그것뿐인가.

보통 그만하면 성공한 삶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테니, 어찌 보면 비원이라 해도 무방했다.

어딘가 거슬리긴 하지만 괜히 이 수호룡의 시답잖은 이유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니 부정하고 싶은 걸지 모른다.


“그런데 필리아는 원초를 유지하는 게 본능이라면서. 억지로 그들의 사상을 부정하는 건 안 좋은 결과만 낫는 꼴 아니야?”


하루는 여전히 마정석만 건드리고 있는 수호룡을 지켜봤다.

답이 없다.

긍정인가.


하루는 이내 곁에 나란히 앉아 마정석을 응시했다.

역시 이렇게 된 이상 필리아와 도시의 마찰을 막을 방법이 없다.

아마 필리아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모두 피시코스와 같은 강압적인 수단을 택하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하루는 이윽고 손에 작은 파편을 쥐더니 파편으로 제 앞에 놓인 마정석을 조심스레 갉았다.

그의 행동에 수호룡은 내심 뭐 하는 짓이냐며 딴지를 놓고 싶었지만, 꾹 닫힌 입을 여는 게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잠자코 보고 있었다.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지켜보고 있던 수호룡의 눈동자가 점차 커진다.

어느샌가 몰입하고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루가 깎던 마정석은 뭉툭해지기도,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곧 어떤 형체가 드러나나 싶더니, 얼추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수호룡은 그 거대한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이, 이건···”


그제야 하루가 수호룡의 시선을 눈치채고 손을 멈췄다.


“아, 멋대로 미안. 아까 조각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무의식적으로 그만.”


“이건 한정판 광전사 컬렉션, 흑갑의 미치광이들!”


“······뭐야 그건?”


갑자기 흥분해선 눈을 반짝이는 수호룡을 보며 하루는 이번엔 확실히 질색하고 있다.


“몰라요? 하도 많은 공포감을 조성한다고, 클레임이 걸려서 광전사 컬렉션에서 빠진 한정판이라구요! 매니아들만 절망에 빠졌었죠······.”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스킨 오라의 이미지 훈련이 습관화된 탓이었다.

이전에 메리 맨과의 전투 중 해제된 스킨 오라를 견고하게 다질 수 있을까 싶어서 이미지한 것이었는데, 그게 뭔 컬렉션과 비슷할지 알게 뭔가.


수호룡은 천천히 조각된 마정석을 응시했다.

이윽고 거대한 콧구멍으로 날숨이 푸욱 뿜어져 나온다.

하루는 그런 녀석을 지그시 쳐다봤다.


“흑색종을 멸한 녀석들인데, 용종으로서 느끼는 것도 없는 거냐.”


“그게 뭐요. 용종이면 다 같은 용인가요? 제가 거기 있던 것도 아니고, 전쟁 중에 벌어진 일을 누가 탓하겠어요. 저한텐 그저 컬렉션에 불과하다구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녀석도 있는 법인가.

골때리는 걸 넘어서 제 상식 밖에 있는 듯한 수호룡이다.

이젠 마치 먼 기억 속에 흔한 광적 매니아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원하면 줄게.”


“저, 정말요?!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제발 그건 참아줘.”


“제 이름은 검프입니다.”


“······하루.”


분위기에 휩쓸려 통성명 따위를 하고 있자니 한없는 회의감에 빠졌다.

대체 뭐 때문에 자신은 이렇게 열심히 허영 속 악의 조직 따위를 찾았는가.

내심 그곳에 또 붉은 달이니 멸망이니 관계라도 되어있다고 생각했던가.


하루는 머리를 싸매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눈높이를 맞추면서 묻는 검푸를 그만 노려봤다.

녀석이 고개를 빼면서 움찔했다.

그럼 하루는 다시금 심호흡으로 가다듬으며 안정을 찾았다.


“됐다. 네 잘못만은 아닌 것 같고.”


하루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화해할 생각은 있는 거지?”


“예?”


그나마 필리아들의 방어적인 성향을 믿고서 꺼낸 얘기였다.

그런데 이놈의 수호신 역할을 하던 녀석은 바로 긍정하지 않는다.


하루의 질문에 검프가 동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식은땀을 흘리더니 목울대를 꿀렁이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린다.

하루의 안에서 몇 번이나 용종의 위상이 실추되었는지 모른다.


“그,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뭐?”


“생각해보면 그렇잖아요. 그 녀석들도 이제 슬슬 시대를 알아야 한다구요. 언제까지 구닥다리 사상만 품고 숲속에 틀어박혀 살 순 없잖아요. 이 세계는 벌써 태반이 문명에 물들었다고 하는데······.”


“그들도 너한테만큼은 듣고 싶지 않을 거야. 하지만 뭐··· 일리는 있네.”


검프를 나무랄 생각으로 있다가 문득 그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죠? 역시 형님! 생각이 깊으십니다. 그럼 바로 나머지 결계도 해제해버릴까요?”


“뭐라는 거야. 이 세계의 태반이 문명화되었다는 거에 공감한 거야. 굳이 누군가의 삶의 방식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아까도 말했잖아.”


필리아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점차 지워져 가는 결계와 숲속에서 언제까지 버티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차라리 필리아의 탓도 없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포기해버릴까 생각하지만, 아예 도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차후에 그들의 동의를 구한다면.


하지만 곧장 하루의 미간에 새겨진 의문이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뭐가 아직 문제예요?”


“음······ 아라.”


“뭘 알아요?”


문득 하루가 눈을 크게 뜨고 아, 따위의 짤막한 감탄사를 내놓았다.


“쓸데없는 말장난할 때가 아니야.”


“에?”


“아라 이외에 알아봐야 할 인물이 더 있었어.”


“누구요?”


“······그녀의 조력자.”


#

언젠가 세계수가 판코스미오의 전역을 덮고 있던 때, 그곳의 가장 높은 가지를 밟고 선 반령묘 하나.


─아름답지?


그녀는 세계의 전역을 그곳에서 내려다 봤다.


마찬가지로 옆에 서선 모자를 푹 눌러쓰곤 줄곧 맵의 제작을 하던 그는 답이 없었다.

재미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맵의 작성이 끝난다면 한동안 이 숲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녀는 제 품 속에서 펜던트를 꺼내 열었다.

속에 있던 어느 여성과 어린아이의 사진이 드러났다.


─엄마가 말한 그대로야.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마침 옆에서 손을 놀리던 그의 펜 소리가 멎었다.


─맵입니다. 차후에 준비가 되면 이쪽으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좋네. 겸사겸사 여유롭게 세계탐방이나 하지 뭐.


─이곳의 주민은 경계심 강한 종족입니다.


─내가 당신보다 잘 알고 있을걸.


다시금 그녀는 펜던트를 한 번 응시한 후 품속에 넣었다.


이윽고 고갤 들어 세계를 내려다본다.

끝없이 펼쳐진 푸르기 그지없는 숲을.

언젠가 제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었던 요소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현재, 그 눈동자에 담긴 세계의 형상은 터무니없이 바뀌어 있다.

딛고 섰던 가지는 이미 중앙 탑의 한 부분으로 남아 문명의 발판으로 변모해 있다.


“그래도 세계는 남아있어.”


아라의 오드아이는 각각 과거와 현재를 비추고 있는 듯 이질적인 색감을 발한다.


한참 그 눈으로 광경을 만끽하던 그녀가 뒤를 돌았을 땐, 하루가 그곳에 서서 빤히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야, 백묘의 새로운 기사인가 보네.”


그녀는 딱히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모든 택배기사를 전부 알고 있진 않을 텐데.”


“오래 지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얼굴은 눈에 띄는 법이거든.”


하루가 천천히 걸어와 그녀의 옆에 섰다.

아라는 그런 그의 옆모습을 빤히 직시했다.


“뭔가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갑자기?”


“아까 그쪽이 그렇게 보여서.”


그의 말에 무심코 아라는 실소를 냈다.

어떤 사정도 알고 있지 않은 주제에 그는 무언가 꿰뚫어 보기라도 한듯하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하루의 시선을 쫓았다.


“꼬시는 거야?”


“농담도.”


“하하, 그냥 가끔 과거와 현재의 격차가 얼마나 나는지 찾아볼 뿐이야.”


“찾아볼 필요까지 있나. 세계의 바뀌어버린 이름처럼 그때의 광경도 찾아보기 힘들 텐데.”


그렇게 말하면 아라는 재차 하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기분 탓이 아니라 그는 정말 뭐라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무심코 아까 보다도 소름 돋는 미소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아라가 물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봐?”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선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고층의 거센 바람이 둘을 감싼다.

줄곧 같은 장소에 서 있다고 하는데, 피부에 닿는 바람의 거친 단면이 시시때때로 뒤바뀌고 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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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2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2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2 2 12쪽
151 #150. 학생 21.11.26 40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6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6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5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6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4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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