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50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1.26 06:00
조회
40
추천
2
글자
12쪽

#150. 학생

DUMMY

정적이 감돈다.

다른 교실에선 슬슬 학생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공간의 적막이 한없이 짙게 느껴질 정도로 피요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열린 입에선 이미 제대로 된 언어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버벅이는, 말보단 음에 가까운 무언가만 계속된다.


“그건 또 어떻게······.”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용케 진정하고 있는 척하지만, 이미 이전에 전부 들통나 있었다.


“아까 교무실에서 볼 기회가 있어서.”


“설마 크롬선생님의 지인이시라던가···”


“지금 와서 신경 쓸 게 있나. 그냥 네가 고집한 게 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이미지상 좋을 텐데.”


그제야 피요는 아차 싶었다.

제 눈앞에 있는 둘의 신분에 대해 상기시켰는지도 모른다.

물론 하루와 지아가 그걸 신경 쓸 리 없었다는 건 죽어도 알지 못했겠지만.


반면 어째선지 지아도 의문스럽게 하루를 쳐다본다.


“그걸 언제 봤어요? 전 지금 처음 들었는데.”


“넌 아까 보다가 말았잖아.”


“아, 그랬죠.”


다시 떠올려도 검은 문자들만 기억날 뿐이다.

아직도 어지러운 기운이 실려있는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다.


“그 선생한테 이런 인맥이 있을 리가 없잖아.”


갑작스레 끼어든 건 저만치 떨어져 있던 남학생이었다.

그는 피요의 옆에 서선 하루를 지그시 본다.

아니, 노려본다는 표현이 더 맞는 분위기다.

단순히 그의 눈매가 그렇게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기엔, 말투가 공격적이다.


‘역시 친구였나.’


피요는 그런 친구에게 불만인 투로 툭 쏘아 말한다.


“혹시 모르지! 그래도 영웅인데.”


“정확하겐 그 피만 그런 거고.”


그렇게 공격적이어야 할 이유가 뭔지 도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하루는 오히려 그의 반응에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웃었다.

표정을 발견한 남학생이 흠칫해 뒤로 한 발짝 물러선다.


“내가 정말 그 지인이라면 어쩌려고. 네 친구야 아직 이렇다 할 말도 안 했지만, 방금 너 때문에 타격이 있을 수도 있겠는걸.”


“그, 그래서 정말 지인인 거예요?”


“아니.”


뭔가 분하다는 식의 효과음을 흘리던 그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진다.

더 골리고 싶은 반응을 잘도 꺼내는 놈이다.


하지만 하루는 거두절미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크롬 선생에 대한 반감이 심하지?”


“왜라니······.”


방금의 건으로 쓸데없는 경계심을 키워놓은 건지 모르겠다.

남학생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분 소개로 온 것 같은데 소문도 모르는 거예요?”


하루는 급격히 흥미가 사라진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내 얕은 한숨을 기일게 내빼는 탓에 연달아 남학생의 당혹감을 자아낸다.


이미 알고 있는 일뿐인가.


“졸업식에 대한 거라면.”


“뭐야. 이미 알고 있었네.”


“졸업생이 그렇게 한 이유는?”


“네?”


“이상하다고 생각도 안 해본 거냐?”


더더욱 실망감이 실린 목소리로 말하면 아무리 건방진 남학생이라도 위축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어쩐 일로 지아가 옆에서 팔짱만 낀 채 방관하고 있다.


지아가 콧김을 한 번 짧게 내뺀다.

입을 굳게 다물고 남학생을 보는 눈동자에서 그 의중을 얼추 알 것도 같았다.

덕분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루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더 박차를 가했다.


“본래 그렇다고 듣진 못했는데. 급변한 이유라도 있을 거 아냐. 설마 이유 없이 졸업생들을 옹호하는 건 아닐 테지.”


“그건······.”


“말 못 할 이유라도 있나? 학생들의 유대 뭐 그런 거?”


잠자코 듣고 있자니 참지 못했는지 피요가 머뭇거리고 있는 남학생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윽고 피요가 하루를 날카롭게 올려다본다.


“졸업생들에게 들었어요. 크롬 선생님의 이야기라던가. 당연히 안 좋은 얘기에요. 그래서 말하기 꺼리는 거고요. 기사님들에게 나쁜 이미지가 심어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씀드릴 수는 있지만요.”


아무렴 예상은 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답은 간단했다.


“당연히 괜찮지.”


스카우터의 권한도 없는데, 이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는다고 해도 악영향은 애당초 없다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녀석들에게 자신의 답은 안심감을 줄 것이었다.


서로 시선을 나누던 피요와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인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선생이 졸업반에 이전과 다른 압박감을 심어줬다.’ 대충 그런 얘기에요. 몇몇은 체벌까지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한쪽 눈썹이 절로 올라가면서 의문을 품는다.

그토록 단순한 얘기인 건가.

의심하려 해도 피요의 쓸데없이 정색한 얼굴을 마주하면 의미가 없었다.


“거짓일 가능성은.”


“저희야 모르죠. 크롬 선생님한테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졸업생들이 급변한 얘기까지 들으셨으면 반대로 그분의 인성에 대한 의심도 들지 않나요?”


그럴 리가.

하루는 확신하고 있었다.

덤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크롬을 처음 마주한 장소.

광활한 녹색 대지, 단순히 그런 단어로 칭할 수 없는 요정들의 땅.


요정왕에게 인정받은 이의 본성을 감히 의심할 리가 없다.

애시당초 자신에겐 의심할 여지가 하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졸업생들하고 잘 어울렸나 봐?”


“전체적으로 그렇죠. 딱히 밉보일 만한 선배들도 아녔고, 사실 잘 어울렸다기보단 멋대로 존경심을 품는 애들도 있었을 정도죠.”


“그렇게나 행실이 바랐다고?”


“그것보단 학구열이 엄청났거든요. 본래 가문에서 자라던 분위기 때문도 있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면 웬만큼 비뚤어지지 않고서야 누구라도 존경하지 않을까요.”


그녀가 말하는 중에도 하루는 제안에서 알아서 해석했다.

이렇게까지 학생들의 신임을 얻고, 유대를 쌓는 게 가능했다면.

지금의 졸업생들은 어지간히도 교활한 녀석들이다, 라는 결말.


“얼마나 연기를 잘한 거야.”


하루가 나지막이 흘리는 소리에 나머지 셋이 의문스럽게 쳐다본다.

그럼 하루는 손만 절레 내저었다.


“그냥 혼잣말이야. 그래도 그렇지 선생이 졸업반에게 압박감이나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정도 흔하지 않잖아. 더군다나 너희도 크롬의 수업 정도는 받았을 텐데. 혹시 자기보다 타인을 믿는 편인가.”


정곡만 딱딱 집어대니 구태여 돌려줄 말도 없겠지만, 두 녀석은 반항적인 표정만은 포기할 수 없는 듯하다.

하루가 어깨만 으쓱이곤 힐끔 눈동자를 굴리더니 손가락으로 둘에게 뭔가를 가리켰다.


“시간.”


아주 짧게 내뱉은 단어와 함께 종소리가 재차 울린다.

남학생은 혀를 차더니 뒤돌았다.


“가자.”


피요에게 말하곤 홀로 복도를 걸어간다.

그럼 피요는 금방 그를 따라나서지 않고 잠시 하루를 쳐다보더니 가벼운 한숨과 함께 다시 표정을 풀었다.


“줏대 없는 녀석, 이라고 인식이 박혔으려나요?”


누구와도 허물없이 지내는 외향적 성향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걱정이 앞서는 게 당연했다.

하루가 말이 없으면 내심 포기한 듯 어깨만 으쓱이던 피요가 천천히 뒷걸음질 친다.


“외부활동이 있을 때 한 번 보러오세요. 꼭 만회하고 싶으니까요.”


그럼에도 눈은 마주치면서 끝까지 마지막 말을 마무리 짓는다.

이내 뒤돌아선 제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그래도 괜찮은 아이 같은데요.”


그녀를 끝까지 응시하던 지아가 말하면 하루는 실소했다.


“말투는 꼭 한참 먹을 만큼 먹은 것 같네.”


“뭐요.”


입을 삐죽 내밀곤 그제야 스카우터 역할에서 벗어난 듯 행동한다.

그런 그녀를 빤히 지켜보다 고개를 슬쩍 들어 한 방향에 시선을 고정했다.

곧 종이 울리고 학생들이 들어가니 계단 쪽 모퉁이에서 누군가 슬금슬금 걸어 나온다.


붉은 제복.

저도 모르게 태랑기사단을 떠올리고 말았지만,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색감을 지녔다는 게 다르다.

자연스레 그의 어깨에 시선이 갔다.


레이 버드(Ray bird).

어디선가는 희망의 새라고 불리기도 하는, 사실상 새보단 굴절된 빛이 그러한 형태를 이룬 괴현상.


“스카우터?”


지아의 물음에 제복과 비슷하게 타오를 듯한 머리 색의 사내는 반갑게 웃었다.

동시에 곤란한 듯 미간에 옅은 주름을 만들고 있다.


“혹시··· 스카웃, 해버렸나?”


“네?”


의미심장한 말투에 지아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어조로 흘린다.

그럼 사내는 다시 한번 엄지를 세워 뒤쪽을 가리킨다.


“방금의 여학생 말이지.”


“아.”


그제야 피요를 떠올리곤 지아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저 묻고 싶은 게 있던 것뿐이에요.”


그 말과 동시에 사내는 속에 감췄던 숨을 푸욱 내뿜었다.

그러더니 제 가슴을 부여잡고는 그 느끼한 면상으로 씩 웃는다.


“이야, 완전히 간 졸였다고. 사실 입학생 시절부터 점 찍어둔 친구여서.”


그렇게 상쾌한 웃음을 빤히 바라보니 어째선지 하루는 불편한 듯 반쯤 뜬 눈으로 노려봤다.

잘생긴 면상하고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그렇게 불안하면 먼저 잡아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 혹시 기사단이 그만큼 인지도가 없어서 이미 거절당한 건가?”


불량한 어조에 지아가 고개를 획 돌아보면, 아니나 다를까 하루의 눈썹이나 입꼬리도 다소 불량스럽게 웃고 있다.

다시금 지아가 사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놀랍게도 그는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여전히 상쾌했다.


“하하, 백묘에 비하면 그런 위치인 게 현실이지. 그래도 나름 인지도는 올렸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분발하라는 의미인 걸까. 나도 모르게 자만하고 있었어.”


마치 그 면상에 이불을 걸어놓는 순간 뽀송하게 말라 햇살의 향을 간직할 것만 같다.

사내가 그렇게 말할 때쯤 근처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여학생들이 창문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제 앞의 이 면상이 목적인 듯하다.


“저기, 수업 안 하니?”


하루가 무슨 말을 내뱉기 이전에 지아가 먼저 물으니,


“아직 선생님이 안 오셔서요.”


따위의 핑계로 받아친다.


“역시 스카웃 해버릴 걸 그랬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던지면 지아는 하루의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무슨 말이에요. 그럴 권한도 없는 주제에.”


그녀가 속삭이면서 일침을 가한다.


마냥 환하게 웃는 사내의 뒤에서 또 다른 발소리들이 울린다.

하루는 지그시 눈을 감고 발을 뗐다.


“어디 가세요?”


“장난은 그만하고 슬슬 일해야지.”


“예? 그래서 학생들을 보려던 게······”


“종 울렸잖아. 수업시간까지 불편하게 할 생각이야?”


그런 말로 계단으로 올라오는 수많은 스카우터들을 간접적으로 까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물론 속으론 교내수업 따위 봐서 어디에 쓰겠냐고 내뱉고 있었지만, 차마 이곳에서 입에 담진 못했다.


하루가 슬슬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지아가 제 앞의 사내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서둘러 쫓았다.

사내는 사라져가는 둘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그 둘과 교대하듯 다른 스카우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기사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한동안 그들의 잔상만이 이유도 모르게 시야에 담겼다.


“저게 백묘인가.”


누구에게 던졌는지도 모를 말에 그에게 다가오던 기사들은 괜히 얼만 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요?”


계단을 쫓아 내려가던 지아의 질문에 막 1층 복도를 밟던 하루가 멈춰 선다.

한동안 답이 없으면 주위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새어 나온다.

그는 다시 몸을 틀어 천천히 걷다가 크롬의 교무실 앞에서 멈춰 섰다.


“슬슬 쓸데없이 정만 많은 선생을 일으켜 세워야지.”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9 #158. 사자의 협곡 21.12.08 48 2 12쪽
158 #157. 협곡 21.12.07 40 2 12쪽
157 #156. 책임감 21.12.06 42 2 12쪽
156 #155. 영웅 21.12.03 41 2 12쪽
155 #154. 돌발상황 21.12.02 42 2 13쪽
154 #153. 작당 21.12.01 42 2 12쪽
153 #152. 기획 21.11.30 45 2 13쪽
152 #151. 좋아 21.11.29 42 2 12쪽
» #150. 학생 21.11.26 41 2 12쪽
150 #149. 학교 21.11.25 46 2 12쪽
149 #148. 시험지 21.11.24 41 2 12쪽
148 #147. 터무니없는 무게 21.11.23 44 2 12쪽
147 #146. 귀찮은 일 21.11.22 43 2 12쪽
146 #145. 페어리 포레스트 21.11.19 43 2 12쪽
145 #144. 퇴사 21.11.18 44 2 12쪽
144 #143. 서운하지 않아 21.11.17 47 2 12쪽
143 #142. 정보거래 21.11.16 43 2 12쪽
142 #141. 수호룡 21.11.15 46 2 12쪽
141 #140. 티타임 21.11.12 46 2 12쪽
140 #139. 메리 맨 21.11.11 43 2 12쪽
139 #138. 과거사 21.11.10 45 2 13쪽
138 #137. 수색 21.11.09 46 2 12쪽
137 #136. 습격, 의심 21.11.08 46 2 12쪽
136 #135. 수습기사 21.11.05 46 2 12쪽
135 #134. 운송 교육 21.11.04 43 2 12쪽
134 #133. 면접 21.11.03 44 2 13쪽
133 #132. 과거 [Myth] 21.11.02 44 2 12쪽
132 #131. 텐타클 21.11.01 45 2 12쪽
131 #130. 판코스미오 21.10.29 45 2 12쪽
130 #129. 문명의 톱니바퀴 21.10.28 49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