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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가 마물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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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작품등록일 :
2022.05.11 19:50
최근연재일 :
2022.09.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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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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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5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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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29. 달빛 아래에서

DUMMY

연문찬은 자신의 귀를 철수의 입과 코 주변에 가까이 가져갔다. 얼음장 같은 냉기만이 느껴졌을 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행여 자신이 못들은 것이 아닐까 더욱 바짝 귀를 기울인다. 기울이다 못해 철수의 입과 코에 붙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철수의 숨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연문찬은 애써 고개를 들어 나머지 사람에게 철수의 상태를 알린다. 나오지 않는 말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것으로 충분히 문찬의 뜻은 전해졌다. 일행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몽룡과 현남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숙였고, 향단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똑바로 확인한 것 맞아?!”


고함과 함께 연화가 파여진 땅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문찬을 밀치고는 이번에는 자신이 철수의 얼굴에 귀를 가져다 댄다.


“야! 이놈아! 살아 있잖아! 장난해?”


“예?”


연문찬은 순간 어안이 벙벙하다. 철수가 살아있다니 다행한 일이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이번에는 몽룡이 나섰다.


“?! 으음... 일단, 빨리 병원으로 옮기시죠.”


“거봐! 문찬이 너 똑바로 안 해?”



***



몽룡의 귀에도 철수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연화가 착각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연화가 철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단 철수를 병원으로 옮기고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 보았다.


“겨우 숨만 붙어있군요.”


그런데 뜻밖에도 의사가 철수의 생존을 알려왔다. 병실에 가보니 정말로 철수가 숨을 쉬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가슴이 일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다만, 혼수상태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뇌손상이 의심됩니다.”



***



연화는 철수를 퇴원시켜 엘더 도원형의 대구부 거처로 옮겼다. 병원에서도 딱히 철수에게 더 치료해줄 것이 없었다.


연화가 나서 철수 곁을 지키기로 하였다. 연화는 별이와 돌이를 겨우 달래 문찬과 함께 쇠머리읍으로 보냈다. 몽룡 일행 역시 철수의 일이 안타까웠지만 달리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 달라는 부탁만을 남기고는 돌아갔다. 그렇게 철수와 연화 단 둘만이 남게 되었다. 그 사이 박 씨가 잠시 다녀갔을 뿐이다. 좀 더 정확히는 매일 자책하는 박 씨를 연화가 보다 못해 갈대소리마을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 이럴 거면 마을로 돌아가세요. 상황이 이래서 엘더께서 집을 빌려주셨지만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습니다. 돌아가셔서 정리 좀 하고 계세요.


참고로 대구부는 갈대소리마을에서 온 피난민을 며칠간만 받아 들였을 뿐 결국 성내에서 퇴거시켰다. 올 갈데없는 갈대소리마을주민들은 원래 마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대구부에서는 제공해준 천막에서 당분간 생활을 이어나가야만했다.


다행이라면 마물이 농지를 건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생활환경이 악화되었지만, 제 때 피난을 가 사상자도 없었기에 마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읍내 건축물의 피해가 컸지만 애초에 읍은 농업의 거점 역할을 하는 것이 주였기에 대부분 일반주택이었고 별 다르게 거창한 시설물은 없었다. 그나마 주요 건물이라면 읍사무소와 학교 그리고 주둔중대의 병영 정도였다.


그리고 갈대소리마을은 이제 공식적으로 대구부의 속읍이 되었다. 대구부는 새로운 읍장을 임명하여 마을 재건을 맡겼다. 기존 읍장은 엘더 도원형의 가신이기에 쇠머리읍으로 떠났다.


한편 별빛바라기성은 갈대소리읍과 달리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성내외의 시설도 거의 다 파괴되어 이제 성으로서 기능을 사실상 잃어버렸다. 결정적으로 성의 거의 모든 엘더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그리고 이유가 어찌되었든 태수 강석주는 마물을 두고 도망쳤다. 별빛바라기성 본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성의 속읍들도 그 구심점을 잃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 거대마물이 최초 출현한 곳이었다. 거대마물은 일반적인 마물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부활하고는 했지만, 이제 본성에서 거주하려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마도 별빛바라기성은 이제 사라지고 그 나머지 속읍들도 대구부의 속읍이 될 것이다.


“어서 오세요.”


별빛바라기성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연화는 민정과 황 감독에게 철수의 소식을 전했다. 철수가 다시 일어 날 것이라 믿었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알려야 했다.


“흐으흐윽.”


민정과 황 감독은 울음을 참으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



벌써 꽤나 지난 일이었다.


별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당시 연화는 박 씨에게 잠시 별이와 돌이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옷가지 비롯하여 이것저것 챙기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했더니 빠진 물건이 많았다.


- 아, 미안. 그러게 애초에 나에게 시키지 말고 네가 다녀오지 그래? 그리고 간 김에 바람 좀 쐬고 와.


계속 병원에 있던 딸이 신경 쓰여 아무래도 일부러 그런 것 같았지만, 연화는 못 이긴 척 박 씨의 말에 따랐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지쳐 있었다.


- 응?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저 멀리 철수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방향을 보니 마을 인근의 한 야산이었다. 딱히 산에 간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연화는 위화감을 느꼈다. 별이가 입원하고 있어도 바쁘다고 오지 않는 사람이 다른 곳도 아니고 마을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박 씨가 돌이와 함께 병원에 찾아왔다.


- 얘, 연화야! 너 황필호감독 알어?

- 아니요. 누군데요?

- 정말 몰라? 그 영화 ‘이 세계가 마물을 떠넘겼다.’의 감독 말이야.

- 영화도 모르겠는데요.

- 아니, 그 유명한 영화도 모른다고?!

- 예.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 오늘 그 황 감독을 우연히 봤거든.

- 그래요? 그 분 여기 본성에 사시나보네요?

- 응. 그렇다고 들었어. 근데 막상 본 것은 마을 근처에서 봤어.

- 그래요? 어디서 보셨는데요?

- 거기 왜 예전에 난리 났을 때 잠시 피난 생활했던 그 야산 근처에서 봤어.


이 대화도 연화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철수가 마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였다. 연화는 왠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 오빠, 혹시 여자 생겼어?

- 응? 무슨... 아니야.

- 그럼, 굳이 이 마을을 갑자기 왜 떠나겠다는 거야? 별이랑 돌이도 두고말이지.

- 그건... 뭐,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 그러니까 그 개인적인 사정이 뭐냐고?

- 뭘 그리 물어...

- 이거 봐, 역시나 여자가 생겼어.

- 아니라니까!

- 그 아가씨 맞지?

- 무슨 아가씨?

- 최근에 종종 마을로 찾아 온 아가씨말이야.

- 난 또 누구 말한다고, 걔하고는 아무 사이 아니거든.

- 정말 아무 사이 아니야?

- 그래.


연화는 민정을 보고 오해한 것이었다.


그간 민정은 철수와 왕래를 하지 않았으나, 정근수가 탄핵된 지도 이미 꽤 지났기에 최근 들어 가끔씩 철수를 만나러 오고는 했다. 그걸 또 하필이면 연화가 본 것이다.


철수가 마을을 떠나고 며칠이 지났다.


연화는 별빛바라기성에 볼 일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민정을 발견하였다.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민정의 뒤를 밟았다.


- 내가 왜 이러지 미쳤나봐. 얘, 연화야! 정신차려! 여기서 멈춰! 설마 질투하는 거야?!


잠시 자신을 나무라는가했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민정은 어떤 노인을 만나고 있었다. 민정은 노인을 ‘황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그 순간, 연화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그 동안 왠지 모르게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입원한 별이를 자신에게 맡겨두고 도대체 무얼 하는지 보이지 않던 철수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최영학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교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때 아주 잠시 혹시 철수가 관련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생각이 지금 다시 살아났다.


- 아니야, 아니겠지. 내가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비약이 심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망상이었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의심은 없어지지가 않았다. 결국 연화는 민정과 황 감독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하였다.



***



철수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눈앞에 붉은 빛 한 쌍이 나타났다. 붉은 빛은 점차 철수에게로 다가왔다. 좀 더 있으니 붉은 빛 주변의 어둠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붉은 빛의 정체는 어떤 마물의 눈이었다.


어딘가 낯인 익은 모습의 마물은 철수를 보더니 씩 웃더니 별안간 철수를 덮쳐왔다.


‘으으악!’


철수는 속절없이 쓰러졌다. 마물은 철수의 몸통을 눌러 제압하더니 자신의 큰 입으로 철수의 발을 삼켰다. 크게 놀란 철수는 마물에게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발목이 들어가고 무릎이 들어가고 이제 허벅지까지 마물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마물은 철수의 몸을 먹고 있었다.


‘아, 안 돼.’


무슨 생각이었을까? 철수는 마물의 몸을 자신의 입으로 물었다. 마물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자신이 먼저 마물을 잡아먹을 생각이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인간의 작고 약한 입으로 어찌 마물을 삼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마물의 몸이 철수에게 먹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철수의 몸 역시 계속하여 마물에게 먹혀가고 있었다. 이윽고 철수와 마물은 서로를 오롯이 잡아먹었다. 이제 철수와 마물의 몸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공간은 어둠속에 빠졌다.


“커헉.”


막혀 있던 숨구멍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철수는 마왕 불가살이 사라진 날로부터 49일이 되는 날 길고도 짧은 꿈에서 깨어났다.



***



철수와 연화는 갈대소리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철수가 개척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박 씨도 합류하였다. 한편으로는 쇠머리읍에도 철수의 소식을 전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대구부에서 몽룡이 찾아왔다.


“이제 꽤 좋아졌어.”


철수가 그리 대답했지만 몽룡에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미이라같던 그 모습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철수는 수척하였다.


“그렇군요.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몽룡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환자가 괜찮다는데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몽룡은 그 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대구부로 돌아갔다.


“바람이 찬데 이 늦은 밤에 왜 나와 있어?”


연화가 다가오더니 철수에게 담요를 덮어 주었다.


“달이 밝아서 말이지.”


그리 말하며 철수는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그 팔찌는 뭐야?”


“글쎄 뭘까? 스승님의 유품? 아니면 친구의 증표?”


“또또 뭔가 있는 척 똥폼잡는 소리한다.”


“크크. 그래. 나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살아난 철수는 곧 이변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몸에서 법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비술도 사용할 수 없었다. 충격이었다.


그러나 더 충격 받은 일은 따로 있었다. 월령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일전에 월령이 잠시 잠들었다가 달빛을 받고 다시 깨어났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달빛을 쬐어도 월령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오랜 친구를 잃은 듯 상실감이 찾아왔다.


“그래도 다행이네. 그 털이범이 팔찌를 안 건드려서.”


몽룡 어머니의 유품을 훔쳤던 그 남자 얘기였다.


“그러게. 싸구려라고 생각했나보지 뭐.”


철수는 팔찌를 새삼스레 다시 쳐다보았다.


‘여느 때라면 발끈하고 나에게 따졌을 텐데,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구나...’


쿨럭쿨럭.


“에이 참,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가요.”


연화가 철수를 부축하여 방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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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49. 아사(餓死) 22.09.01 17 0 13쪽
49 048. 치안불안 22.07.27 31 1 12쪽
48 047. 민생불안 22.07.26 35 1 12쪽
47 046. 황 감독 22.07.23 36 1 12쪽
46 045. 태수대리 22.07.19 40 2 13쪽
45 044. 이별 22.07.14 36 1 12쪽
44 043. 술은 적당히 22.07.13 35 1 12쪽
43 042. 집행 22.07.11 41 1 12쪽
42 041. 누가 요괴인가? 22.07.07 35 1 12쪽
41 040. 성씨 둔갑사건 22.07.05 32 1 12쪽
40 039. 말뚝에 묶여 있는 망나니 22.07.01 35 1 11쪽
39 038. 금선탈각 22.06.30 38 1 11쪽
38 037. 번운복우 22.06.29 43 1 13쪽
37 036. 파업과 항명 22.06.27 41 1 12쪽
36 035. 충(忠) 22.06.25 38 1 13쪽
35 034. 상속 22.06.23 39 1 12쪽
34 033. 가디언 22.06.22 43 2 12쪽
33 032. 월령 22.06.21 44 2 12쪽
32 031. 식철(食鐵) 22.06.17 43 1 12쪽
31 030. 이름 짓지 못한 마을 22.06.16 52 2 12쪽
» 029. 달빛 아래에서 22.06.15 49 2 12쪽
29 028. 마왕 불가살 22.06.14 52 4 12쪽
28 027. 최후의 수단 22.06.11 57 4 12쪽
27 026. 폭주하는 마왕 22.06.10 61 3 12쪽
26 025. 가는 날이 장날 +1 22.06.08 66 4 12쪽
25 024. 토지매입 22.06.07 59 2 13쪽
24 023. 흙도깨비 22.06.03 64 2 13쪽
23 022. 야반도주 22.06.02 63 4 12쪽
22 021. 연인 22.06.01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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