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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가 마물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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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작품등록일 :
2022.05.11 19:50
최근연재일 :
2022.09.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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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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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44. 이별

DUMMY

“으아악!”


묘미진의 비명소리가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웠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크헉!”


묘미진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철수를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월령 네 도움이 정말 컸다. 일등공신이야.’


‘에헤, 별말씀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현자님과 함께 한 세월이 있는데요.’


월령이라고 뭐든 다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철수는 월령에게 들어 조요경이라는 보패의 특징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조요경의 올바른 사용법도 월령이 알려준 것이었다. 좀 전에 철수가 괜히 시간을 끌며 조요경을 조물 딱 거린 것도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끝났군.”


드디어 묘미진은 온전히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크. 웃기는군, 끝나긴 뭐가 끝나?”


“이미 정체가 밝혀졌는데도 끝까지 이러기야? 이제 그만 인정하지?”


“네 놈을 죽여 없애면 그만이야!”


“멍청하기는!”


“뭣이! 죽어라!”


묘미진이 먼저 움직여 철수를 덮쳐왔다. 묘미진은 자신이 있었다. 엘더 이의안과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고 하나 사실 상 자신이 이긴 것이었다. 그런데 그 보다도 못한 자유기사 따위가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퍼억!


‘어, 어라?’


일격이었다. 철수의 카운터펀치에 묘미진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소란스러웠던 장내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여사님,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미리 준비한 줄과 그물로 묘미진을 포박한 철수 앞으로 성 여사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성 여사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말씀하신 것이 정말이였군요.”


“저와 약속하신 것을 지킬시꺼라 생각합니다.”



***



“아니, 누구 마음대로 이혼이야?”


성홍인은 채세희가 아닌 성 여사에게 따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끝난 일이야. 너도 이미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았느냐?”


“도대체 엄마까지 왜 그래? 그건 그 요괴가 술수를 부려 내가 제 정신이 아니어서 그랬다니까?”


“핑계대지 말아! 그리 물고 빨고 해놓고 이제 와서... 한심한 놈!”


“정말이라니까!”


성홍인은 나름 억울하였다. 묘미진이 꽤나 아름다운 미모여서 처음에 사실 혹했으나 무술이 뛰어난 자유기사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는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완력을 써서라도 지아비의 말을 듣게 해야 한다. 그런데 묘미진은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서기준으로부터 구해줬음에도 은근히 거리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아무 소용없었다. 예쁜 건 예쁜 것이었다. 어느 새 성홍인은 묘미진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동안 정신을 잃은 상태로 지냈다는 말이냐?”


“그, 그건...”


“거봐라!”


“... 에이 씨!”


성홍인은 씩씩거리며 이번에는 채세희에게로 갔다.


“이미 이혼했는데 행패부리지 말고 그만 돌아가세요.”


“흥! 이혼은 했을지도 몰라도 내 새끼는 보러 올 수 있는 것 아니야?”


“누가 당신 자식이라는 거죠?”


애초에 채세희를 불륜에다 혼외자식을 낳은 부정한 여자로 몰아 먼저 이혼을 요구한 것은 성홍인이었다.


“그건 내가 오해한 것이라고 했잖아.”


“오해한 것 아닙니다. 당신 자식이 아니에요.”


“에헤이, 이거 왜 그래? 삐친 것은 알겠는데 속이려고 들면 안 되지.”


성홍인은 서류 한 장을 채세희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유전자검사결과서야. 거기 봐 내 새끼 맞잖아.”


성홍인은 비싼 돈을 들여 유전자검사를 받아보았다. 여뀌꽃성에서는 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어 광주부까지 직접 갔다.


“이 따위 종이 쪼가리가 뭐 어쨌는데요?”


채세희는 성홍인의 눈앞에서 결과서를 찢어버렸다.


“이 미친년이!”


또 다시 성홍인은 채세희에게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



“에이, 씨발!”


성홍인은 자신의 팔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성홍인의 팔에는 시꺼먼 피멍과 함께 이에 물린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가만히 맞고만 있던 채세희가 갑자기 물어버린 것이다.


‘그 눈깔하고는!’


겨우 채세희에게 벗어난 성홍인은 화가 치밀어 채세희를 다시 때리려고 하였으나 소란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하릴없이 물려나고 말았다.


“두고 봐, 이년아! 내가 이대로 끝낼 줄 알아?”


투욱!


골목길을 빠져나오던 성홍인이 한 행인과 부딪혔다.


“아이씨, 뭐야? 오늘 일진 더럽네.”


“... 성홍인 씨 되시죠?”


“어? 뭐야 당신?”


“맞습니까?”


“허참! 그래 맞다! 새끼야! 넌 또 뭐야?”


“뭐, 사실 그냥 물어봤습니다. 당신이 성홍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죠.”


“뭐래, 이 새끼가?”


“조용한데서 잠시 저 좀 보시죠.”


이 날 이후로 성홍인이 채세희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일은 없었다.



***



성 여사가 채세희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보내왔다.


눈물이 흘렀다.


이제 채세희에게는 빚도 없었고, 생계를 꾸려나갈 충분한 재산도 있었고, 사랑스런 아이도 옆에 두고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흐르는 눈물은 결코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비참하게 죽어간 서기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엄마 울어?”


옆에서 조용히 스케치북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던 아이가 다가와 채세희를 꼭 안아준다.


“아니야, 엄마 안 울어.”


“그래? 난 울고 싶은데... 아빠 보고 싶어.”


아이가 말한 아빠가 성홍인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성홍인과 서기준을 처음부터 구분하였다. 성홍인이 다시 나타난 날 겉모습이 같음에도 서기준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 뒤로도 아이는 결코 성홍인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아빠는 핏줄로 이어진 성홍인이 아니라 엄마와 자신에게 다정했던 서기준이었다.


“엄마가 미안해.”


아이도 이미 다시는 서기준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로 알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기준이 처형당한 모습을 아이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으며 서기준의 본 모습을 본적도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일의 전말을 알게 될 것이다. 채세희는 그 모든 것이 너무 미안하였다.


“그래도 울지 않을 거야. 아빠도 이제 엄마는 내가 지켜야 한댔어.”


“그래? 아빠가 언제 그랬대?”


“어젯밤에.”


“응? 그래? 그랬구나.”


아마도 아이가 꿈에서 본 것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채세희는 생각하였다.


“엄마, 봐봐. 잘 그렸지? 내가 아빠 그린거야.”


아이는 채세희에게 좀 전 부터 그리던 그림을 보여줬다.


“그래? 어? 이건 뭐야?”


“헤헤, 아빠 목에 점이 있더라고. 웃기지?”


“뭐?”


서기준의 목에 점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난 채세희였다.



***



김 씨는 울고 있었다.


‘제발, 제발...’


김 씨는 서기준을 살리기 위해 계속 돌을 헛 던지고 있었다. 던지는 기세만 그럴듯했지 매번 서기준을 지나쳐 엉뚱한 곳에 돌이 떨어졌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김 씨의 바람과는 달리 나머지 사람들이 던진 돌은 그렇지가 않았다. 결국 서기준은 피떡이 되었고 끝내는 누가 던진 것인지 모를 화염병에 불타고 말았다.


“으아악!”


잠에서 깨어난 김 씨의 몸이 땀에 푹 젖어있었다. 김 씨는 요즘 들어 계속 악몽을 꾸었다. 매번 같은 내용이었다.


김 씨는 새삼 말뚝을 묶인 서기준을 찾아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 일이 생각났다.


- 부탁 한 가지 들어주게.

- 말씀만 하십시오.

- 내일부터 내게 돌을 던지게. 봐주지 말고 내 얼굴 쪽으로 세게 던져.

- 예?


말뚝을 지키고 있던 관리들은 김 씨가 서기준의 염장을 지르러 왔다고 생각하였지만, 사실 겉으로 앙숙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 씨는 서기준의 조력자였다.


- 이봐! 이거 왜 그래? 정신차려봐!

- 어째 숨을 안 쉬는 것 같은데?

- 설마 죽은 것은 아니지요? 저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 에이 씨발!


김 씨가 던진 돌에 수차례 얻어맞은 서기준은 어는 순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상을 눈치 챈 관리들이 부랴부랴 서기준을 말뚝에서 끌어내렸다. 형 집행이 있기 전에 죽어버리면 난감한 일이었다. 김 씨가 얼마나 야무지게 돌을 던졌는지 서기준의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퍼억!


갑자기 눈을 번쩍 뜬 서기준이 관리들에게 연달아 주먹질을 하였다. 누워있는 체로 한 주먹질이었지만 꽤나 힘이 실려 있었다. 갑작스럽게 기습을 받은 관리들은 자신의 코를 잡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 틈에 서기준은 어느 새 벌떡 일어나 저만치 도망가고 있었다.


“그렇게 도망갈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서기준은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이내 다시 붙잡혀 말뚝에 다시 메이는 신세가 되었다.


김 씨는 서기준을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요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였다. 기껏 잠에 들더라도 얼마 자지 못하고 악몽으로 깨기 일쑤였다. 김 씨는 다시 잠을 청하려다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 보니 새벽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응?’


마루 위에 웬 보따리가 있었다. 김 씨가 풀어보니 얼마간의 돈과 익숙한 필체로 적힌 짧은 쪽지가 나왔다.



***



“이거 받으세요. 이번에는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지시라고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여뀌꽃성을 떠나려는 철수에게 학도가 마패를 건넸다.


“이걸 왜 제게?”


“조요경에 비하면 약소하죠.”


철수는 조요경을 학도에게 주었다. 묘미진을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철수는 끝내 묘미진을 죽이고 않고 학도에게 맡겼고, 학도 역시 태수의 동의를 얻어 묘미진을 살려두었다. 사실 태수는 은근히 묘미진을 죽이길 원하는 눈치였으나 학도는 모른 척 하였다.


명분은 학도에게 있었다. 이의안이 묘미진에게 당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묘미진을 죽이지 않고 가둬둘 수만 있다면 그 편이 훨씬 낫다는 학도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마물은 그 흉폭한 성격 탓에 죽이지 않고 포획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아무리 약한 마물이라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덤벼들었다. 그러나 묘미진은 달랐다. 애초에 사람으로 둔갑할만큼 이성이 있는 존재였다. 그에 비해 전투력은 마물치고는 약한 편이었다. 이의안이 당하기는 하였으나 그건 이의안이 원체 약한 탓도 있었다.


당장 묘미진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그리되면 일정 기간이 지나 부활한 묘미진이 또 다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것이다. 그리고 다른 여느 마물과는 달리 이성을 가진 놈이기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도망갈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둔갑술이 특기인 만큼 피해를 입혀도 눈치 채기가 어려웠다. 눈에 드러나는 흉폭한 마물보다 묘미진 같은 마물이 어쩌면 더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다행이 묘미진은 죽을 때의 고통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여뀌꽃성은 신진철로 된 옥사를 만들어 그 안에 묘미진을 가두기로 하였다.


“그리고 말이죠. 이 기사님 말씀처럼 이제 저희는 한 배를 탄 공범이지 않습니까?”


“거참, 제가 뱉은 말을 그대로 돌려주시는군요.”


“이 마패는 그 증거라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고맙게 잘 쓰지요.”


“몽룡형님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은 하지 말고 너나 잘해.”


“하하, 그럴게요. 걱정 마세요. 부집사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더는 부집사가 아니었지만 무심코 입에 붙은 대로 강현남에게 인사하는 학도였다.


“제가 뭘요... 도련님, 아니, 가주님 강녕하십시오.”


“! 고맙습니다.”


몽룡을 지지하던 강현남이 자신을 가주라고 불러주니 학도는 기분이 묘했다.


“아! 그리고 민정 씨!”


“예?”


학도가 이번에는 민정의 양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간 고생 참 많았습니다. 여뀌꽃성에서 좋은 기억이 그다지 없겠지만 다음에 다시 방문하실 때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좋은 곳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예...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민정이 꾸벅 학도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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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가 마물을 떠넘겼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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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49. 아사(餓死) 22.09.01 16 0 13쪽
49 048. 치안불안 22.07.27 31 1 12쪽
48 047. 민생불안 22.07.26 35 1 12쪽
47 046. 황 감독 22.07.23 36 1 12쪽
46 045. 태수대리 22.07.19 40 2 13쪽
» 044. 이별 22.07.14 36 1 12쪽
44 043. 술은 적당히 22.07.13 35 1 12쪽
43 042. 집행 22.07.11 41 1 12쪽
42 041. 누가 요괴인가? 22.07.07 35 1 12쪽
41 040. 성씨 둔갑사건 22.07.05 31 1 12쪽
40 039. 말뚝에 묶여 있는 망나니 22.07.01 34 1 11쪽
39 038. 금선탈각 22.06.30 38 1 11쪽
38 037. 번운복우 22.06.29 43 1 13쪽
37 036. 파업과 항명 22.06.27 41 1 12쪽
36 035. 충(忠) 22.06.25 38 1 13쪽
35 034. 상속 22.06.23 38 1 12쪽
34 033. 가디언 22.06.22 42 2 12쪽
33 032. 월령 22.06.21 44 2 12쪽
32 031. 식철(食鐵) 22.06.17 43 1 12쪽
31 030. 이름 짓지 못한 마을 22.06.16 52 2 12쪽
30 029. 달빛 아래에서 22.06.15 48 2 12쪽
29 028. 마왕 불가살 22.06.14 52 4 12쪽
28 027. 최후의 수단 22.06.11 57 4 12쪽
27 026. 폭주하는 마왕 22.06.10 61 3 12쪽
26 025. 가는 날이 장날 +1 22.06.08 66 4 12쪽
25 024. 토지매입 22.06.07 59 2 13쪽
24 023. 흙도깨비 22.06.03 64 2 13쪽
23 022. 야반도주 22.06.02 63 4 12쪽
22 021. 연인 22.06.01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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