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걸룡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가 마물을 떠넘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걸룡
작품등록일 :
2022.05.11 19:50
최근연재일 :
2022.09.01 22:45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5,322
추천수 :
245
글자수 :
264,345

작성
22.06.27 23:00
조회
40
추천
1
글자
12쪽

036. 파업과 항명

DUMMY

“이제야 좀 제대로 된 결론을 가지고 왔군.”


도중형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파면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조주민은 마지막으로 도중형에게 확인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이걸로도 조금 부족하지 않겠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가주의 권위를 보여주려면 파면으로 부족하지 않겠냐는 거지.”


“파면 이상의 징계는 없습니다. 달리 더 처벌할 것이 없습니다.”


“방법을 찾으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


“혹시 재판을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조주민이 도중형에게 그리 물었지만, 설마하니 성의 사법부를 통해 연문찬을 형사처분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였다. 조주민이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가문 안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 도중형에게도 여러모로 나았다. 도중형이 재판부에 슬쩍 의중을 흘리기만 해도 재판부가 눈치껏 처리 할 터이지만, 재판결과와 상관없이 도중형에게도 부담이 적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이야 일의 경위를 아는 사람이 가신단과 집안일꾼 몇몇, 그리고 이철수 정도로 한정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입단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문찬과 각별한 사이인 철수가 외부인이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연문찬에 대한 처벌이 파면으로 끝난다면 철수 역시 조금 분한 점이 있더라도 이 일을 더 크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문찬을 정식 재판에 회부하게 되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아무래도 이 사건의 내막에 대해 알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 최대한 입단속을 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도중형에 대하여 나쁜 소문이 외부로 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배은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도중형의 폭거에 무기력했지만, 그래도 선대의 부인이라는 이름은 있었다. 행여 배은소가 대구부에 탄원을 내면 골치 아프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로 가신단의 불만이 많았다.


“청장은 내가 그리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그 외에 달리 방도가 없기에 여쭤봤습니다.”


“걱정하지 마. 나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그렇다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공식적인 처벌은 파면이 끝이겠지만, 엘더가문에서 관행적으로 하는 비공식적인 처벌이 있지 않는가?”


도중형의 반문에 조주민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다 알면서 이거 왜 이래?”


도중형은 조주민을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태형(여기서는 태형, 장형 등의 세세한 구분 없이 사람의 육체를 직접적으로 때리는 방식의 형벌을 아울러 의미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조주민은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그래. 파면이라고 해봤자 별 것 있나? 마물이라는 주적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영웅을 감히 해하려고 한 죄인을 그 정도로 끝낼 수는 없지. 그래서 태형이라는 ‘관행’이 있는 것이고.”


도중형의 궤변에 조주민은 기가 찼다. 연문찬의 행동이 정녕 영웅살해라는 하극상이라고 한다면 정식재판을 통해 처벌하면 될 이었다.


“관행이라고 말씀하시나 실제로 태형이 이뤄지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고, 다른 가문은 행여 그럴지 몰라도 우리 쪽에서는 단 한 번도 없던 일입니다.”


“그건 이제껏 감히 가신이 가주에게 하극상을 저지른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 내가 아무리 갑자기 가주가 되었다고 하나 이리 능멸 당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그리 말하는 도중형의 눈알이 번들거렸다.


“...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조주민의 질문에 도중형은 왼손을 활짝 펼쳐 내밀었다.


‘태형 50대라... 제대로 망신을 주려고 작정했군.’


조주민은 도중형을 말려야하나 잠시 고민되었다. 실제로 태형이 이루어진다면 연문찬에게는 상당히 치욕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곤장 500대”


‘뭐?... 이런 미친 놈! 정녕 문찬이를 죽일 셈이구나.’


조주민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싶었다.


“가주님, 너무 과합니다. 거두어주십시오.”


조주민은 깜짝 놀랐지만 애써 은근한 말투로 도중형을 말려보았다.


“청장은 날 실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이미 결심했으니 그리 알게.”


“가신들의 반발이 클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흥! 청장은 이상한 말을 하는군. 그러고 싶으면 그러라고 해! 혹시 청장도 불만이 있는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걱정되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게. 오히려 이참에 잘된 일이야.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했지. 나도 옥석을 가려야 되지 않겠나?”


‘가신들의 태도를 살펴보시겠다?’


“솔직히 청장 자네 말고는 딱히 마음에 드는 인간들이 없어. 다들 눈치도 없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 이제 가주가 되었으니 누가 나와 함께 갈 수 있는지 알아야 되지 않겠나? 안 그래?”



***



“쯧, 여전히 그러고들 있어?”


도중형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조주민에게 혀를 차며 물었다.


“네.”


“다들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


“...”


조주민은 속에서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새로운 가신채용은 어떻게 되가나?”


가신채용의 경우 엄밀히 따지자면 조주민이 할 일이 아니었다. 행정청장인 조주민은 그러지 않아도 할일이 많았다. 그 사실을 도중형도 잘 알지만 도중형은 조주민에게 가신채용을 맡겼다. 아니, 맡길 수밖에 없었다. 요즘 도중형과 가신들 사이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가신들은 연문찬의 일로 일종의 파업에 들어갔다. 조주민을 비롯한 소수의 일부 가신들만 동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 뭐요? 곤장 500대요!

- 청장께서는 괜히 우릴 놀림 셈이구려.

- 그래도 그렇지 농담이 너무 심합니다.

- 맞아요. 평소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 아니지요? 청장께서 농담을 하시는 것이지요?


조주민이 가신들에게 연문찬에 대한 처우에 대한 도중형의 뜻을 전달하자 가신들은 조주민에게 이상한 소릴 하지 말라고 따졌다. 그러나 가신들도 조주민이 이런 일로 허튼 농담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한편으로는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너무 말이 안 되는 처사였기에 혹시나 해서 확인 차 물었던 것이다. 조주민이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가로젓자 그제야 가신들은 긴 탄식을 내 뱉었다. 한편에서는 도중형을 욕하는 가신도 있었고 직접 따지러 가겠다는 가신도 있었다.


가신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도중형은 집단항명을 하는 것이라며 노발대발하였다. 하지만 가신들 입장에서도 가주에게 지고 들어가고 싶어도 수용하는 것에 어느 정도가 있었다. 아무리 엘더라도 이번 일은 가신들의 자존심을 너무 크게 건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주의 폭주를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 자신들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는 그런 두려움이 가신들에게 있었다. 여하튼 가신들이 그리 나오자 도중형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이리하여 연문찬의 구금이 졸지에 길어지고 있었다.


“몇몇 지원자가 있었지만 채용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여기 쇠머리성이 인구도 적고 대구부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탓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엘더가문에서 일하는 집안 일꾼들을 가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적어도 부집사 정도는 되어야 겨우 가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이상의 소양이 있어야하였다.


그래서일까? 가신들은 사직의사도 은근히 내비쳤다. 도중형이 새로운 가신을 뽑겠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자가 굳이 이곳 쇠머리성까지 와서 가신이 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 역시 쇠머리성보다는 대구부에서 지내는 것이 좋았다. 도원형이 쇠머리성의 태수가 되었기에 따라온 것뿐이었다.


가신들의 파업이 길어지자 도중형은 조금씩 초조해 갔다. 그렇다고 이제와 물러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저 괘씸한 가신들을 어떻게는 휘어잡고 싶었다.


“가주님, 제가 가신들과 자리 한 번 마련해 볼까요?”


“...”


“... 어찌할까요?”


“일단... 그대로 둬. 생각이 들면 내 청장에게 얘기하지.”


“알겠습니다.”


조주민 역시 도중형에게 더는 얘기하지 않고 일단 물러났다. 여전히 도중형은 고집을 부리고 있었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유화적인 반응이었다. 도중형의 얼굴에도 갈등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문찬! 미안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



“뭐? 가디언께서 홀로 출격하셨다고?”


“네.”


뜻밖의 일이 발생하였다. 아니, 원치 않은 일이었다. 도망쳤던 원숭이 마물이 다시 나타났다는 보고가 조주민에게 들어왔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뜻밖인 것은 도중형이 홀로 마물을 상대하겠다고 이미 성 밖으로 나섰다는 것이었다. 지금 쇠머리성의 특전대대장 및 그 예하 병력들은 성벽 위에서 도중형과 원숭이 마물의 대치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대기 중이었다.


참고로 도중형은 정식으로 쇠머리성의 태수가 되었다. 그리고 대구부는 도중형을 가디언 영웅으로 인정하였다. 초인등급이 귀골에 불과하고 도원형과 달리 실적이 없는 도중형이었지만 어쨌든 -비록 쇠머리성이 다른 성보다 그 규모가 작긴 하여도- 한 성의 태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기적인 인간이 무슨 생각으로?’


도중형이 각성하고 나서 자신의 형수인 배은소을 욕보이려고 한 일이 있기 전에는 도중형에 대한 가신들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조주민은 진작 도중형이 글러먹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였다.


‘아! 설마 혼자서 도망치려고?’


자신이 아는 도중형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정신을 차린 조주민은 행정청장으로써 할 일에 들어갔다.


“대대장에게 전화를 연결하게.”


조주민은 자신의 비서에게 명령을 하였다. 우선 한시라도 빨리 대대장과 주민대피를 의논해야한다. 그 때였다. 조주민의 집무실에 설치된 유선전화가 먼저 울렸다.


- 청장님께 대대장님으로부터의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빨리 연결하게!”


- 청장님! 저 대대장입니다.


“네, 대대장님!”


그 뒤 조주민과 대대장의 통화가 한 동안 이어졌다.


“정말 태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저도 황당해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셔도 일단 저희가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할 일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네. 동감입니다.


“그럼 수시로 연락하며 평소 훈련한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꽝!


통화를 마친 조주민은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놨다. 조주민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원숭이 마물에게 겁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태수 도중형에 대한 분노였다.


‘씨발, 자신이 다 알아서 할 테니 괜히 주민들 대피시킨다고 요란 떨 것 없다고?’


“이 무슨!”


터무니없고 쓸데없고 무책임한 소리였다. 그 노련하고 실력 좋은 도원형도 상대하지 못한 마물이었다. 그런데 이제 초인으로 각성하진 얼마 되지 않은 도중형이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경험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숭이 마물은 귀골초인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 도중형이 마물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하며 시간을 끌어도 주민대피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을지 몰랐다.


조주민은 문득 갈대소리읍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별빛바라기성의 태수였던 강석주와 현 쇠머리성의 태수인 도중형은 얼굴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강석주와 도중형 이 두 사람의 얼굴이 조주민의 머릿속에서 자꾸 겹쳐보였다.


‘정말로 혼자서 도망칠 생각인가?’


그렇다면 더욱 도중형의 말을 따를 수 없었다. 여하튼 조주민은 주민대피의 지휘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잠시 뒤 조주민은 더욱 믿기지 않은 연락을 받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가 마물을 떠넘겼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주기 변경 공지 22.06.03 42 0 -
50 049. 아사(餓死) 22.09.01 16 0 13쪽
49 048. 치안불안 22.07.27 31 1 12쪽
48 047. 민생불안 22.07.26 35 1 12쪽
47 046. 황 감독 22.07.23 36 1 12쪽
46 045. 태수대리 22.07.19 40 2 13쪽
45 044. 이별 22.07.14 35 1 12쪽
44 043. 술은 적당히 22.07.13 34 1 12쪽
43 042. 집행 22.07.11 41 1 12쪽
42 041. 누가 요괴인가? 22.07.07 35 1 12쪽
41 040. 성씨 둔갑사건 22.07.05 31 1 12쪽
40 039. 말뚝에 묶여 있는 망나니 22.07.01 34 1 11쪽
39 038. 금선탈각 22.06.30 38 1 11쪽
38 037. 번운복우 22.06.29 43 1 13쪽
» 036. 파업과 항명 22.06.27 41 1 12쪽
36 035. 충(忠) 22.06.25 37 1 13쪽
35 034. 상속 22.06.23 38 1 12쪽
34 033. 가디언 22.06.22 42 2 12쪽
33 032. 월령 22.06.21 44 2 12쪽
32 031. 식철(食鐵) 22.06.17 43 1 12쪽
31 030. 이름 짓지 못한 마을 22.06.16 52 2 12쪽
30 029. 달빛 아래에서 22.06.15 48 2 12쪽
29 028. 마왕 불가살 22.06.14 52 4 12쪽
28 027. 최후의 수단 22.06.11 57 4 12쪽
27 026. 폭주하는 마왕 22.06.10 61 3 12쪽
26 025. 가는 날이 장날 +1 22.06.08 66 4 12쪽
25 024. 토지매입 22.06.07 59 2 13쪽
24 023. 흙도깨비 22.06.03 64 2 13쪽
23 022. 야반도주 22.06.02 63 4 12쪽
22 021. 연인 22.06.01 69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