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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가 마물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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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작품등록일 :
2022.05.11 19:50
최근연재일 :
2022.09.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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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글자수 :
264,345

작성
22.07.1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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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42. 집행

DUMMY

“아니, 저 놈이 미쳤나?”


“내버려둬. 어디 제 정신이겠어? 저러다말겠지. 피곤하게 일일이 신경쓰지 마.”


철수가 돌아가고 한참이 지난 뒤 서기준은 갑자기 낄낄 웃었다. 말뚝을 지키고 있던 관리들은 그런 그를 그저 실성한 것으로 치부하였다.


‘목숨을 내놓으라고? 얼마든지!’


철수가 제시한 거래의 대가는 목숨이었다. 서기준은 기꺼이 철수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다. 이제 와서 목숨 따위가 무엇이 아깝겠는가?


- 아! 그런데, 둔갑술을 어찌 부릴 수 있는 것입니까?


서기준의 확답을 듣고 돌아가려던 철수는 문득 그런 질문을 하였다.


-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 다만?

- 얘기가 조금 길어질 수 있는데 상관없겠습니까?


서기준은 자신이 마을을 떠난 후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한 여자를 만난 것부터 얘기하였다.



***



‘사람 모습을 한 마물이었을 줄이야.’


여자는 꽤나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 탓이었을까? 아니면 외진 곳에서 발목을 다쳐 절뚝거리던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랬을까? 서기준은 경계심 없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마을까지 자신을 등에 업어달라고 서기준에게 부탁하였다.


- 죄송합니다. 힘드시죠?

- 아, 아닙니다.

- 제가 보기보다 무겁죠?

- 별 말씀을...


그리 대답하였지만 사실은 꽤나 힘들었다. 나름 체력에 자신 있었고, 여자의 호리호리한 모습에 쉽게 생각했던 것을 자책하였다. 그러다 서기준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다.


- 이제 정신이 좀 드시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자는 간데없고 한 중년의 사내가 눈앞에 있었다. 서기준은 어찌된 영문인줄 몰라 어리둥절하던 찰나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여자로 둔갑한 마물에게 당해 그동안 이지(理智)를 잃고 조종당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서기준은 자신이 여자에게 홀려 정신을 잃은 것이 이미 오래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 도원형이라고하오.


천만다행으로 여우마물을 쫓던 엘더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


발견되는 것이 더 늦어졌다면 아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마물은 서기준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른 사냥감과는 달리 그를 완전히 해치지 않고 종복으로 삼았으나, 마물에게 있어 서기준은 비상식량 혹은 부식에 지나지 않았다. 마물은 한 번씩 서기준이 죽지 않을 정도로 피를 빨고는 하였다. 그 기간이 계속되었다면 결국은 서기준은 말라 죽었을 것이다.


한편 여우마물을 쫓던 사람이 도원형 엘더라는 것도 서기준에게 행운이었다. 발견 당시 마물의 마성에 서기준의 정신은 이미 오염된 상태였다. 만약 다른 엘더였더라면 서기준을 마인으로 보아 처리하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도원형의 법력은 파사의 특성을 지녔기에 서기준을 헤치지 않고 구제할 수 있었다.


도원형에게 구출된 뒤 서기준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언제가 부터 몸속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불쾌한 느낌이었으나 처음에는 그것 말고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이질감이 몸속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속이 뒤집히는 격통 속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온몸이 찢어지는 듯 한 고통이 몰려왔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으니 서서히 고통이 사라져갔다.


- 아마도 그 때 이후로 둔갑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 후 서기준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홀로 산속에 숨어 지내기 시작하였다. 고향으로 돌아 왔지만 아무도 그가 온 줄 몰랐다. 그러다가 개울가에 쓰려져 있던 성홍인을 발견한 것이었다.



***



이의안의 유언을 들어 알고 있는 철수는 서기준이 언급한 그 여우마물이 묘미진과 동일인물(?)이라고 거의 확신하였다.


‘저쪽 세상에서 ‘포도먹보여우’라고 불리는 마물이 있죠. 매혹술과 둔갑술에 능통한 녀석입니다.’


월령은 짐작되는 마물의 정체를 철수에게 알려줬다.


‘마물치고는 꽤나 귀여운 이름이군.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거야?’


‘그 녀석이 포도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예. 왜요?’


‘‘둔갑여우’라든지 그런 이름이 아니라?’


‘풋하하! ‘둔갑여우’래.’


‘왜? 왜?’


‘주인님, 너무 일차원적인 작명 센스 아니에요?’


‘어엉? ‘포도먹보여우’는 다른가 보지?’


‘쯔쯧, 모르시는 말씀! 마물이 특정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간혹 마물의 약점이 되기도 하죠.’


‘포도를 좋아하는 것이 약점이 되니?’


‘다 이용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주인님도 일전에 독독이의 독주머니를 이용하셨잖아요?’


‘으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이제야 알아주시는 겁니까?”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뭐랄까... 너무 낭만적이야.’


‘에이~ 지기 싫어 고집은.’


‘어허, 무슨 소리! 난 말이지...’


철수와 월령이 또 다시 시답잖은 걸로 아옹다옹하기 시작하였으나 다행히도 마침 몽룡과 학도가 철수를 찾아왔다.


“이걸 사용하시지요. 일반차량보다는 훨씬 빠르고 편하게 다녀오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철수는 몽룡과 학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기로 하였다. 철수는 생각해둔 바가 있어 서기준의 형 집행이 있기 전에 별빛바라기에서 허민정을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이건?”


학도가 내민 물건에는 말 4마리가 양각되어 있었다.


“흔히 ‘마패’라고 부르는 보패입니다. 빌려드리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마패는 ‘4두마’라고 불리는 차량형 보패를 가동시키는 원판 모양의 열쇠였다. 4두마가 자동차라면 마패는 자동차 키였다. 참고로 4두마라고 해서 정말로 말의 형태를 하고 있는 아니었다. 스타일이 조금 다르긴 하나 어디까지나 차량의 형태였다.


“제가 정말 빌려가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요. 기사님이 띄어먹고 도망가면 몽룡 형님에게 그 값을 받아내면 되니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학도 나름의 농담이었다.


“허참! 왜 날 걸고 넘어져?”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마패를 빌린 철수는 그날 저녁 바로 여뀌꽃성을 떠났다.



***



철수는 여뀌꽃성을 떠나기 전 서기준에 대한 형 집행 예정일을 재차 확인하였다. 처음 주민들에게 공고한 예정일에서 꽤나 뒤로 미루어져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기준을 이용하여 부수입을 얻으려는 태수의 속셈이 있었다. 태수는 말뚝에 묶인 서기준에게 돌팔매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형 집행일 이전에도 마을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여기 있습니다.”


관리에게 돈을 건넨 김 씨는 팔을 붕붕 돌리며 땅에 그어진 금 밖으로 물러갔다.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 돌을 던져야만했다. 돌팔매질에 행여 서기준이 형 집행일 전에 죽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야야, 저기 봐.”


“응? 또 김 씨네?”


노름판에서 김 씨와 어울리던 최 씨와 정 씨가 공터 옆을 마침 지나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도대체 김 씨는 서기준 저 친구랑 무슨 원수가 졌기에 저러는 거야?”


김 씨는 요즘 들어 거의 매일같이 서기준에게 돌팔매질을 하였다.


“그러게 말이야.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서기준이 김 씨에게 더 원한이 있을 터인데...”


김 씨는 평소 노름판에서 서기준의 돈을 곧잘 따가던 사람 중 하나였다. 돈을 잃고 씩씩거리는 서기준에게 깐족거리다가 싸움이 난 적도 몇 번 있었다.


“김 씨 저렇게까지 안 봤는데... 성미가 고약하구만. 쯧쯧.”


퍽!


때마침 김 씨가 던진 돌이 서기준의 얼굴에 맞았다. 덕분에 서기준의 볼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꽤나 먼 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김 씨가 던진 돌에는 제법 힘이 실려 있었다.


“윽! 가세, 가!”


“그래, 그러자. 보기 영 그렇군.”


“그런데 자네는 그 날 어쩔 생각이야?”


“어쩔 수 없지. 참가할 수밖에... 달리 핑계될 만한 것도 없고... 괜히 참석하지 않았다가 엉뚱하게 불똥이 튈지도 몰라.”


“아무래도 그렇겠지?”


성에서는 서기준에 대한 투석형에 대하여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날 서기준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성의 관리가 아닌 주민들의 몫이었다.



***



드디어 서기준의 형 집행일이 되었다. 그 사이 철수는 진작 여뀌꽃성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 한 명씩 와서 원하는 만큼 돌을 구입하세요.”


말뚝 근처에는 한 무더기의 돌이 싸여있었는데 하나같이 노란 색 물감으로 칠해져 있었다.


“자, 어서요! 이러다 오늘 밤 세겠네!”


공터에 주민들이 모이긴 모였는데, 쭈뼛거리고 있는 모습에 속이 답답해진 관리가 슬슬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평소 말뚝을 지키고 있던 하급관리가 아닌 성의 행정청에서 나온 자였다. 여하튼 그제야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한 명씩 나와 돈을 지불하고 일정한 개수의 돌을 품에 받아 나왔다. 어느새 공터에 모인 주민들 모두 돌을 구입하였다. 그럼에도 노란 색 돌이 제법 남아있었다.


“돌이 남아 있으면 형 집행을 시작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마인입니다. 마인을 처단하는데 무얼 그리 망설이십니까?”


관리에 말에 사람들은 난처하였다.


“제가 나머지 모두 구입해도 되겠습니까?”


“오! 훌륭하십니다. 덕분에 이제야 시작할 수 있겠군요.”


관리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요 며칠간 뻔질나게 들락거린 김 씨였다. 물론 이 관리는 그러한 사정을 전혀 몰랐고 김 씨도 오늘 처음 보았지만 일단은 김 씨를 추켜세운 뒤 말을 이어갔다.


“자, 여러분, 미리 공지를 드렸다시피, 노란 색 돌 이외에는 던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저 죄인이 죽든 살든 준비된 돌을 모두 던지면 그것으로 형 집행이 완료됩니다.”


태수는 무슨 생각인지 사형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서기준이 돌팔매질을 이겨 내고 살아남으면 더는 서기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니 막무가내로 던지다 돈 주고 사신 돌 아깝게 낭비하지 마시고 전심전력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시작!”


장난스런 말투였지만 여하튼 관리의 신호가 떨어지자 하나 둘 돌이 날아가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봄날의 갑작스런 우박처럼 한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서기준에게 쏟아졌다.


‘과연 태수님 말씀처럼 되는군.”


태수는 정말로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기준이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런 그렇고 저 사람은 영 신통치 않군. 의욕만 앞서서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어. 릴렉스~ 릴렉스~, 에잉! 텃네, 텃어! 쯧, 저러려면 뭐 하러 돌을 더 산거야?’


김 씨는 서기준을 전혀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악에 박쳐 던지고 있었으나 요란한 것에 비해 실속은 없었다. 김 씨가 돌을 낭비하고 있었지만 서기준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다. 이미 서기준은 피떡이 되어 숨이 넘어가기 직적이었다.


‘아니, 이미 죽었나?’


퍼엉! 화와악!


“으악! 뭐야?!”


서기준의 발밑에서 별안간 불길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불길은 나무말뚝을 감싸더니 이내 서기준 마저 집어 삼켜버렸다.


“으아악!”


일순 장내는 혼란에 빠졌다.


“뭐야! 어떤 미친놈이야! 씨발! 빨리 불 꺼!”


관리가 보기에 아무래도 누군가가 서기준에게 화염병을 던진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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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49. 아사(餓死) 22.09.01 17 0 13쪽
49 048. 치안불안 22.07.27 32 1 12쪽
48 047. 민생불안 22.07.26 35 1 12쪽
47 046. 황 감독 22.07.23 36 1 12쪽
46 045. 태수대리 22.07.19 40 2 13쪽
45 044. 이별 22.07.14 36 1 12쪽
44 043. 술은 적당히 22.07.13 35 1 12쪽
» 042. 집행 22.07.11 42 1 12쪽
42 041. 누가 요괴인가? 22.07.07 36 1 12쪽
41 040. 성씨 둔갑사건 22.07.05 32 1 12쪽
40 039. 말뚝에 묶여 있는 망나니 22.07.01 35 1 11쪽
39 038. 금선탈각 22.06.30 38 1 11쪽
38 037. 번운복우 22.06.29 44 1 13쪽
37 036. 파업과 항명 22.06.27 41 1 12쪽
36 035. 충(忠) 22.06.25 38 1 13쪽
35 034. 상속 22.06.23 39 1 12쪽
34 033. 가디언 22.06.22 43 2 12쪽
33 032. 월령 22.06.21 44 2 12쪽
32 031. 식철(食鐵) 22.06.17 43 1 12쪽
31 030. 이름 짓지 못한 마을 22.06.16 52 2 12쪽
30 029. 달빛 아래에서 22.06.15 49 2 12쪽
29 028. 마왕 불가살 22.06.14 52 4 12쪽
28 027. 최후의 수단 22.06.11 57 4 12쪽
27 026. 폭주하는 마왕 22.06.10 61 3 12쪽
26 025. 가는 날이 장날 +1 22.06.08 66 4 12쪽
25 024. 토지매입 22.06.07 59 2 13쪽
24 023. 흙도깨비 22.06.03 64 2 13쪽
23 022. 야반도주 22.06.02 63 4 12쪽
22 021. 연인 22.06.01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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