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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망나니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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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4.02.28 12:34
최근연재일 :
2024.03.27 12:20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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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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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1,580

작성
24.03.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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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순백나무 숲의 괴담 (4)

DUMMY

사람이 전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세상 그 어떤 초인이라 한들 체력이 무한할 순 없는 법이고, 아무리 단련한다고 한들 전력으로 움직일수록 체력이 가파르게 소모되는 법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불굴의 가호. 혹은 광란의 가호라 불리는 성좌 오를란도의 가호는 전사에게 있어서 획기적인 능력이었다.


목숨이 다하거나. 정신이 끊어지거나. 아니면 신체가 한계에 달하거나.


피치 못할 상황으로 전투 불능에 이르는 게 아닌 이상 불굴의 가호는 전사가 전력을 다할 수 있게 해주기 마련이었으니.


이 가호를 내려받은 자는 페이스 조절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마음껏 미쳐 날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란의 가호를 내려받은 소드마스터.


다인이 공터를 질주하기 시작하자 웬디고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전장이 고요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자작가의 기사들이 저지하고 있던 웬디고의 목이 떨어졌다.


쏜살같은 속도로 숲과 공터를 오가던 웬디고의 뒤를 쫓아 칼을 꽂아 넣었다.


빈틈을 찾아 달려들려던 웬디고의 머리를 왼손에 착용한 건틀릿으로 후려쳐서 머리를 터트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성검에서 나온 별빛이 뒤따랐고, 미쳐 날뛰는 다인의 모습을 살펴보던 모든 이들의 머릿속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소드마스터.


역사와 함께 사라졌어야 했을


누군가는 전율하였고. 누군가는 침을 꿀꺽 삼켰으며. 누군가는 멍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시선을 향해, 다인은 검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총원 공격!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 괴물들을 모조리 처치하라!”


정중했던 평소와는 사뭇 다른 말투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기사와 병사들의 눈빛엔 이채가 돌았다.


이길 수 있다. 인간의 천적인 웬디고보다 더한 괴물이 지금 우리 쪽에 있다. 우리가 저들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저들이 우리를 두려워해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고. 그들의 심장엔 불이 지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자신의 심장 소리를 자각한 순간, 전황은 순식간에 공세로 전환되었다.


도망치던 웬디고의 등에 총탄이 꽂혔다.


저지해야 할 웬디고의 숫자가 줄어드니. 기사들에게 저지당하고 있던 웬디고들도 금세 정리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요. 문명의 역사는 야만과의 사투였으니.


이 순간 자작가의 병력들은 문명이 쌓아 올린 힘에 불을 지피며 괴물이 몰고 온 악의를 몰아내었다.


‘여긴 이쯤 하면 된 것 같고. 선발대는?’


다인은 북쪽으로 향한 다섯 개의 조를 떠올렸다.


본대에서 집결 신호를 보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 조당 열 명씩 나뉘어서 떠났으니 웬디고의 습격에는 취약할 터였다.


“허락해 주신다면 선발대 쪽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는 코라지오 자작을 향해 말했다.


“도망친 웬디고와 만나게 되면 그쪽도 위험할 테니까요.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이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코라지오 자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 지휘는 맡겨주시죠. 무운을 빕니다!”


다인은 곧바로 묵례한 뒤 북서쪽을 향해 달려갔다. 상황이 시급한 만큼, 한시라도 빨리 선발대의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15분가량 달려갔을 무렵.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인은 얼굴 없는 벌목꾼 무리에게 포위당한 선발대 한 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진형을 갖춰라! 재장전에 집착할 필요 없이 총대로 놈들을 후려쳐라!”

“부상자를 엄호해! 총 한 자루 없는 괴물 따위! 기사님의 상대가 되진 못한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에는 벌목꾼의 시체가 수십 구나 널브러져 있었지만, 쓰러진 시체보다 많은 숫자의 벌목꾼이 추가로 달려들기 시작하자 쪽수에서 밀리기 시작한 탓이었다.


이대로 백병전으로 흘러가면 피해가 커질 게 분명해진 상황.


그 틈을 뚫고 희번덕거리는 섬광이 순백나무 사이를 오가며 핏물을 흩뿌렸다.


이를 본 선발대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으나, 그 섬광의 주인이 아군이라는 것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섬광이 번쩍거리고 나면 벌목꾼의 목이 떨어져서였기 때문이다.


“다인 경!”


한창 섬광이 벌목꾼을 처리하고 있을 무렵. 1조의 조장인 기사가 다인의 이름을 불렀다.


검술명가에 속한 기사이자 오러 유저였던 덕에, 그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는 전투 각성제를 투약했는지 충혈된 눈으로 다인에게 외쳤다.


“저희는 이제 괜찮습니다! 이대로 포위를 뚫고 본대로 합류하겠습니다!”


한순간에 벌목꾼을 십여 명 처리한 직후. 다인은 잠시 멈춰선 뒤 기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소드엑스퍼트일지라도. 약물의 힘을 빌리면 소드마스터의 공격마저 두세 번은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반사신경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작가 기사의 기량과 현대 약리학의 저력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웬디고를 조심하세요. 숫자를 줄여두긴 했지만,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기사가 대답을 마친 직후.


다인은 눈에 남은 흔적을 쫓아 나머지 조의 상태를 확인하러 떠났다.


2조는 본대로 합류하는 길에 웬디고 하나의 기습을 당해 보병 한 명이 사망하였으나, 곧바로 대응 사격을 실시한 덕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3조는 웬디고 셋과 벌목꾼 수십 명에게 포위당한 탓에 전멸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셋이 죽고 두 명이 부상당한 상황에서 아름드리나무 하나를 등진 채 분전하고 있었고, 자작가의 기사가 사력을 다해 웬디고들의 공격을 받아낸 덕에 전멸만은 피할 수 없었다.


다인은 그들을 도와 웬디고와 벌목꾼을 정리한 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몰골이 된 자작가의 기사를 부축하여 본대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그가 본대에 합류한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5조가 부상자들과 함께 본대로 복귀하는 모습이 다인의 눈에 들어왔다. 세 명이 중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망자는 없어 보였다.


이제 남은 것은 4조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순간.


4조가 출발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던 다인은 병사 한 명이 본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드루이드! 드루이드를 발견했습니다!”


병사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끔찍한 무언가를 보았다는 듯이. 그는 반쯤 정신 나간 듯한 목소리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하였다.


숲에. 저 허여멀건 숲 너머에 드루이드가 있다.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나무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고, 병사들은 울다가 웃길 반복하며 광란에 휩싸였다.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건 자작가의 기사 해럴드 경뿐.


그는 병사 하나의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리게 한 뒤 본대로 달려가서 상황을 전하라 하였다.


그리고 그 병사는 지금.


당시의 참상을 이야기하더니 이내 넋을 잃었다.


끔찍한 무언가가 뇌리를 휘젓던 경험이 생생히 떠오르더니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춤을 추던 요정들의 웃음소리. 웃는 얼굴로 눈물 흘리던 병사들. 그들이 나무의 노래와 함께 자해하던 광경. 오러 유저인 해럴드 경이 전투 각성제를 투약한 뒤 요정과 나무들을 상대로 분투하던 모습.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겨울 한복판에서 마주한 봄의 제전. 이는 ‘문화 충격’이라 부르는 수준을 넘어서는 재난이었다.


다인은 기절한 병사와, 본대로 합류하는 다른 조 병사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모인 시선을 자각하며 4조가 향했던 방향을 바라봤다.


“도발하고 있는 거네요.”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게 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켈티카와의 악연. 이는 돌이켜보면 공교로운 감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은밀하게 숨어있던 단체가 최근 수개월 만에 덜미를 잡히더니,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터인 드루이드마저 함정을 파놓고 루퍼스 백작가와 맞서려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순백나무 숲에서 들었던 노인의 목소리. 다인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을 ‘임금’이라 불렀던 것을 떠올렸다.


[도검성의 총애를 받으시는 분. 우리의 임금 되실 분. 부디 웬디고를 조심하십시오. 당신은 무사할지라도, 당신을 따라온 종복들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요.]


다인은 드루이드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를 곱씹었고. 저들이 추대하려는 왕이 자신이라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소드마스터 혼자서는 도시를 상대할 수 없지만. 소드마스터의 뒤를 받쳐주는 세력이 있다면 나라를 세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설령 멸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름이라 한들. 소드마스터란 칭호는 한때 만인이 우러러보던 별과 같은 자리에 걸려있던 이름이었다.


“정말로 혼자 가실 겁니까?”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뒷수습이 시작되었을 무렵.


코라지오 자작은 경외가 섞인 목소리로 다인에게 말했다. 한때 검의 길을 걷던 자로서, 소드마스터라는 경지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인은 이번 작전의 지휘관을 향해 예의를 갖췄다.


“번번이 단독행동을 요청하게 돼서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네요.”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코라지오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두 번 다신 소드마스터를 보지 못할 줄 알았으니까요. 언제 성취를 이루셨는진 몰라도. 도검성의 가호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한 사람의 검사로서 코라지오 자작이 경의를 표했고, 다인은 이에 묵례로 답한 뒤 4조가 향했던 방향을 향해 달려나갔다.


눈 덮인 대지를 박차며 달리자 우거진 숲의 풍경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4조가 향했던 방향에 가까워지자 전령이 말했던 봄의 제전이 그윽하게 피어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달짝지근한 꽃향기. 허연 눈 사이에서 피어난 붉은색과 분홍색의 꽃밭. 손바닥만 한 요정들은 반딧불이라도 되는 듯이 허공에서 춤을 추고. 싱그러운 초록의 덩굴은 겨울을 거절하듯 순백나무 사이를 휘감으며 봄을 주장하였다.


[겨울은 생명을 이길 수 없고. 봄은 이곳에 있으니. 이 땅이 곧 여명이요, 요람이다.]


초목의 노래는 언뜻 듣기엔 그럴싸했지만, 이를 듣던 다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숲을 지나오다 보면 저들이 양분 삼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였다.


얼굴 잃은 벌목꾼. 사람의 총칼에 맞아 죽은 웬디고. 그리고 도시를 떠나 출정에 나선 기사와 병사들.


시체를 보고 질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던 숲은 이제 이들을 포식하여 새 생명을 피워냈다.


시체를 밑거름 삼아 생명을 피워내는 흐름은 일견 순리와 같았으나. 다인은 그 밑바닥에 깔린 위선에 치를 떨며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생명을 향한 불경.


삶의 끝엔 죽음이 있으니, 이를 앞당겼을 뿐이라는 태도.


순식간에 숲을 무덤가로 만들어버린 드루이드의 위선에는 치가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윽고 꽃이 흐드러진 장소에 도착했을 무렵. 다인은 다채로운 분홍과 진홍의 중심부에 꽂힌 칼 한 자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요정의 반딧불을 닮은 금색의 보검.


그는 기이한 기운이 일렁이는 검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드디어 오셨군요, 나의 왕이시여.”


다인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봤다. 로브를 쓴 노인이 떡갈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다인은 그를 향해 검을 겨눴다.


“정체를 밝혀라. 네 배후를 말하면 고통은 줄여주마.”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상대의 기량은 글라시아 이상. 게다가 적지 않은 숫자의 아군이 죽거나 다쳤다. 피를 보지 않곤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 이름은 mərðɪn.”


노인은 발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옛 설국의 말로는 메를리누스. 브리타니아에서는 멀린. 최근에는 켈티카 백작이란 이름을 빌려 쓰고 있지요. 부디 편할 대로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나의 왕이시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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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백나무 숲의 괴담 (4) +2 24.03.25 289 16 12쪽
26 순백나무 숲의 괴담 (3) +3 24.03.24 325 18 12쪽
25 순백나무 숲의 괴담 (2) +2 24.03.23 387 14 12쪽
24 순백나무 숲의 괴담 (1) +4 24.03.22 436 17 13쪽
23 혼탁한 일상 (2) +3 24.03.21 470 16 13쪽
22 혼탁한 일상 (1) +6 24.03.20 497 20 13쪽
21 광란 (3) +3 24.03.19 504 20 14쪽
20 광란 (2) +3 24.03.18 498 14 14쪽
19 광란 (1) +3 24.03.17 489 14 13쪽
18 칼부림 (3) +3 24.03.16 488 17 13쪽
17 칼부림 (2) +2 24.03.15 511 16 13쪽
16 칼부림 (1) +3 24.03.14 537 15 13쪽
15 집도 (6) +4 24.03.13 528 13 13쪽
14 집도 (5) +2 24.03.12 531 14 14쪽
13 집도 (4) +2 24.03.11 577 12 13쪽
12 집도 (3) +2 24.03.10 663 15 13쪽
11 집도 (2) +2 24.03.09 786 18 13쪽
10 집도 (1) 24.03.08 907 16 13쪽
9 잘린 머리의 무게 (6) +4 24.03.07 927 20 14쪽
8 잘린 머리의 무게 (5) +3 24.03.06 937 24 14쪽
7 잘린 머리의 무게 (4) +1 24.03.05 957 23 14쪽
6 잘린 머리의 무게 (3) +1 24.03.04 1,017 29 14쪽
5 잘린 머리의 무게 (2) +1 24.03.03 1,150 21 12쪽
4 잘린 머리의 무게 (1) +1 24.03.02 1,461 2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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