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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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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4.02.2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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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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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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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잘린 머리의 무게 (2)

DUMMY

설국에는 [바보들의 힘자랑]이란 이름의 동화가 있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내들끼리 모여서 최강이란 무엇인지 논한다는 내용인데, 이 동화책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힘은 무엇인가.


광장에 모인 사내중 한 명이 사람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고, 그러자 칼을 찬 사내가 무력이야말로 제일가는 힘이라 답했다.


자고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 무예를 한계까지 갈고닦아 달인의 경지에 이른 자라면 마왕이라 불리는 마법사들마저 능히 제압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대답에 수긍했지만, 이를 부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광장을 지나가던 마법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무력은 지혜를 이길 수 없노라고.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는 도구를 만들고 다루는 재주와 미래를 설계하는 지략 덕분인데. 아무리 상대의 무력이 강하더라도 준비를 철저히 한 마법사를 상대로는 손을 쓸 도리가 없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칼잡이가 마법사를 향해 칼을 뽑으려 하였고, 이를 지켜보던 사제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등불을 지폈다.


명망 높은 사제의 등장에 칼잡이와 마법사는 잠시 다툼을 멈췄다.


그리고 소란이 가라앉은 이후, 사제는 엄숙한 목소리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설교를 시작했다.


하늘에는 성좌가 있고, 사람이 성좌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신의 은총 덕분인데, 인간들끼리 최강을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이 광장에 퍼져 나갔다.


따라서 사제는 가장 강한 힘이란 신앙이라 하였고, 신실한 사내들은 감히 이를 부정하지 못했다. 성명교회의 신앙을 부정했다가 불신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그렇게 사내들 사이의 논쟁이 끝나가려던 무렵.


광장에서 사내들의 촌극을 지켜보던 소녀가 앞으로 나와 사내들을 바보라고 불렀다.


무력이든, 지혜든, 신앙이든.


하나 같이 정답과는 거리가 먼 것들인데 이런 식으로 얘기를 끝내는 게 말이 되냐는 이유였다.


험상궂은 칼잡이는 소녀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소녀의 팔은 가늘고 여려서 칼을 뽑아들 것도 없이 능히 제압할 수 있어서였다.


박학다식한 마법사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학이나 학원에 다니긴커녕 글자나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싶은 나이의 소녀가 무슨 자신감으로 어른들 대화에 끼어든 것인가 싶어서였다.


다만 늙은 사제는 소녀의 얼굴을 지긋이 보더니, 이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허허 웃었다.


“왕녀님 말씀이 옳습니다. 자고로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란 권력이지요. 임금님의 허락이 없다면 교회를 세울 땅을 구할 수도 없을 테고, 학자들은 연구비를 받을 수 없을 것이며, 칼잡이들은 작위도 봉급도 없이 떠돌아다녀야 할 테니까요.”


[바보들의 힘자랑]은 사제의 양보로 끝난다.


설령 교회가 왕가를 상대로 반역을 일으킨다 한들 이것 또한 권력을 쥐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문명이 발달하고, 인류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권력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은 나날이 커져갔다.


말 한마디로 뭇 백성을 무릎 꿇리게 할 수 있고, 수천수만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으며, 최강이라 불리는 강자들을 선봉으로 내세울 수 있는 힘이라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볼 수밖에 없는 힘이었고, 이는 세계 각지의 왕국이 무너진 지금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고귀한 혈통도 없고. 무예를 익히지도 못했으며. 마법은커녕 신앙심마저 손에 거머쥐지 못한 자들.


그런 자들이 귀족이 다스리는 대도시에서 권력의 정점에 오를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왕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100년도 전에 끝났지요.”


공화주의자의 비밀 집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면을 쓴 자가 강단 위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이번 집회의 호스트인 ‘하얀 산양’이었다.


“제국이라 자칭하던 나라들은 식민지를 포기했고, 시대를 풍미했던 왕국들은 내전으로 몰락했습니다. 개중에는 멸망해버린 설국의 영토라도 쟁취하기 위해 대륙 북부로 군대를 끌고 왔다가 얼어 죽은 작자들도 있었죠. 어리석은 임금을 섬기던 백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하얀 산양 가면을 쓴 남자의 목소리에 열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연회장에 모인 52명의 회원들 역시 잔을 들어 올리거나 손을 흔들어 주어 호스트의 열정에 호응했다.


“그러니 저는! 이번 집회의 호스트로서 당당하게 외치고 싶습니다! 왕정은 실패했노라고! 그러니 왕이 임명한 영주의 지위 역시 무의미하며, 토지에 대한 소유권 역시 무가치하다고! 루퍼스 백작의 독재에는 명분마저 없는 셈입니다!”


하얀 산양이 열변을 토해내자 연회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52명의 청년들은 호스트인 하얀 산양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고, 하얀 산양은 그들의 환호성에 맞춰 오른손을 들어 올려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든 순간.


신호를 확인한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고요함이 연회장을 휩쓸고, 적막 속에서 기대감 어린 시선이 강단을 향해 집중되었을 때.


하얀 산양은 차분한 목소리로 청중을 향해 말했다.


“리베라 클럽의 회원 여러분.”


짐짓 부탁이라도 하듯 정중하게. 침통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조용했던 연회장을 울렸다.


“우리 루퍼스 시를 위하여. 모든 시민을 위하여. 더 나아가 모든 인민의 자유를 위하여. 루퍼스 백작의 독재는 반드시 끝나야만 합니다. 언젠가 다가올 공화 혁명을 기다리며, 개막 인사는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하얀 산양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리고 우레와 같은 박수에 귀를 기울이며, 하얀 산양은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히죽 웃었다.


‘슬슬 무르익는구나. 이대로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여느 사교회가 그렇듯. 리베라 클럽 역시 초기에는 문예 창작물 따위를 돌려 읽던 동호회에 가까웠다.


다만 ‘조금 자극적인 내용’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공화정과 관련된 서적을 읽거나 쓰게 되었고, 이에 매력을 느낀 청년층이 모이다 보니 이제는 진지하게 공화 혁명을 논해도 될 정도로 조직의 덩치가 커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오늘 모인 회원 52명.


이들 중엔 가면으로 신분을 숨긴 실력자들 또한 섞여 있었다.


붉은색 여우 가면은 루퍼스 시에서 저명한 해결사인 알렉스 해저드였고, 보라색 공작 가면은 백전불패를 자랑하는 탐험가 미라주 마이어였으며, 노란색 사자 가면은 검술명가 코라지오의 차남 로베르토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비대 소속 간부를 세 명이나 회원으로 포섭한 것이 고무적이었다.


저 세 명 중 한 명이라도 영주의 암살이나 납치를 돕는다면 일인 독재 체제인 루퍼스 백작가의 통치는 무너질 것이고, 이때의 혼란을 이용해 공화 혁명을 주도한다면 루퍼스 시의 시장 자리는 시민의 것이 될 터였다.


‘그러고 나면 나도 시 의원 자리 정도는 차지할 수 있겠지.’


인사를 끝낸 하얀 산양은 강단에서 내려왔다. 다음 차례의 연설자에게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아니었으면 여기도 그저 그런 샌님 집단으로 남아있었을 테니까. 리베라 클럽을 여기까지 키운 게 누구 덕인데, 스폰서 놈들이라고 모른 채 할 수 있을 리 없지.’


명분만으론 조직을 키울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누군가는 안전하게 집회를 열 장소를 섭외해야 하고, 유력인사와 교류하여 투자금을 확보해야 하며, 무력을 담당할 실력자를 집회로 끌어들여 한배를 타게 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난 8년간 청춘을 불태워 클럽을 키워낸 창립 멤버 중 하나로서, ‘하얀 산양’은 흐뭇한 표정으로 강단 위에 오른 연설자들을 지켜봤다.


그는 자신이 뿌려둔 씨앗이 머지않아 싹을 틔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루퍼스 백작을 향한 이 수많은 의혹을 보십시오! 가장 수위가 약한 것이 뇌물 수수 혐의이고, 심하게는 암살과 납치를 사주한 혐의까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연 누가 루퍼스 백작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루퍼스 백작이 지금보다 더한 폭정을 저지를 땐 과연 어떻게 그녀를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를레앙의 공화 혁명을 기억합시다! 민중의 힘으로 왕을 끌어내린 역사가 있는데 영주를 끌어내리지 못할 건 또 뭡니까! 이럴 때야말로 우리 모두 단결하여 단두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연설자들이 강단에 오를 때마다 열렬한 환호성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어떤 이는 원론적인 명분을 제시해 독재의 폐해를 경고했고, 어떤 이는 루퍼스 백작에 관한 범죄 의혹을 고발하였으며, 어떤 이는 아예 공화 혁명을 실천하기 위한 계획을 연설하기 시작했다.


인민을 위하여. 권력의 재분배를 위하여. 그리고 자유롭고 공정한 루퍼스 시를 위하여!


연설장의 분위기는 광란을 향해 나아갔고, 그 어느 때보다도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한 연설자가 강단 위로 올라섰다.


그는 검은 이리 가면을 쓴 남자였고, ‘하얀 산양’은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번 집회의 호스트로서 그는 저 3년 차 회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친애하는 리베라 클럽의 회원 여러분.”


검은 이리 가면을 쓴 남자가 연설을 시작했다. 그가 강단 위로 오르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기에 회원들 사이에선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쏠렸고, 검은 이리 가면의 사내는 그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의 정체를 아시는 분도 계실 거고. 그렇지 않으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신문에 누설하지 않은 여러분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서 신의를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저 역시 언론으로부터 시달렸을 테니까요.”


이리 가면 사내의 말에 하얀 산양은 미소를 지었다. 출판계와 언론 계열에 인맥을 두고 있는 몸으로서, 저 사내의 정체가 신문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힘을 써둔 보람이 있다고 느껴져서였다.


그의 정체를 아는 것은 클럽의 고위층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오늘. 저는 가면을 벗고 용기를 내려 합니다. 그러는 것이 여러분이 보인 신의에 보답하는 길이고. 여러분이 보인 열정과 마주하는 길이니까요.”


검은 이리의 말에 술렁임이 일었다. 리베라 클럽의 비밀 집회는 자칫하면 반역죄로 잡혀갈 수도 있는 위험한 자리였고, 그런 자리에서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목숨을 걸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리 가면의 사내가 가면을 벗은 순간.


그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과 혼란이 흘러나왔다.


다인 루퍼스.


루퍼스 백작가의 기사이자 처형인. 그리고 경비조장.


그가 어째서 이런 자리에 나타난 것인지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하얀 산양 가면을 쓴 사내는 환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드디어, 드디어 때가 왔구나!’


술렁임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가는 사이.


‘하얀 산양’은 다인 루퍼스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으리라 믿었다.


기사니 경비조장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월급쟁이 공무원 신세.


더럽고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영주가 던져주는 ‘간식거리’와 명예라는 이름의 허울뿐이었으니.


그는 저 칼잡이가 마침내 사냥개 신세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이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를 꿈꾸기 마련이고,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원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하얀 산양은 가슴 벅찬 심정으로 다인 루퍼스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수많은 기대와 불안이 부풀어 오른 순간.


다인 루퍼스는 연회장의 경호원에게 미리 맡겨둔 ‘마술 상자’ 하나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이 상자에는 솔리타 루퍼스 백작님의 머리가 들어 있습니다.”


다인 루퍼스의 말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경악과 함께 사람들의 눈이 커졌고, 하얀 산양 역시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존귀한 분의 수급이지요. 지금부터 이걸 저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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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집도 (5) +2 24.03.12 531 14 14쪽
13 집도 (4) +2 24.03.11 577 12 13쪽
12 집도 (3) +2 24.03.10 663 15 13쪽
11 집도 (2) +2 24.03.09 786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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