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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망나니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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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4.02.28 12:34
최근연재일 :
2024.03.27 12:20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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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
글자수 :
17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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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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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순백나무 숲의 괴담 (2)

DUMMY

조명탄이 하늘에 떠오르자 주변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공터의 크기는 어림잡아 지름 2km 정도.


그 중심에는 루퍼스 시의 토벌대가 자리 잡고 있었고, 순백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공터 주변을 원형으로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밝아진 불빛 아래에서.


루퍼스 시의 토벌대는 서로의 표정이 창백해진 것을 보았다.


숲이 사람을 포위했다는 이 기형적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그들은 지금 강제로 숲속에 조난당한 셈이었다. 필시 끔찍한 술수가 준비되어있으리라 믿을만한 상황이었다.


“다들 주목!”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뒤집어 보려는 듯.


코라지오 자작은 부드러운 태도 따윈 집어치운 뒤 토벌대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각 조의 조장은 인원 파악을 실시한다! 인원수에 변동이 있는지! 이상 징후가 있는 인원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그 역시 군인이었기에 알고 있었다.


기이한 상황일수록 몸에 익은 버릇을 되새기는 편이 좋다고. 그렇게 하면 정신이 평소와 같이 돌아오고, 몸에 익은 방식으로 싸울 수 있다고.


궁여지책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점호 소리가 들리고, 인원에 변동이 없다는 게 확인되자 대원들의 표정이 하나둘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해서였다.


다행히 실종자가 생겼다든가. 인원수가 출발할 때보다 늘어났다든가 하는 괴담은 발생하지 않았다.


“가주님.”


자작가의 선임 기사가 코라지오 자작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함정인 것 같습니다. 후퇴하시는 건 어떨지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숲을 움직인 것이든. 맨땅에서 갑작스럽게 자라나게 한 것이든. 이 숲이 불청객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거란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후퇴는 아직이다.”


코라지오 자작은 혼란스러워하는 마법사를 향해 지시했다.


“엘비스 선생. 적들의 숫자와 분포를 보고해주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엘비스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전 사용한 마법이 기록된 스크롤을 읽기 시작했다.


“인간형으로 추정되는 적이 약 오백. 거리를 둔 채로 산개해있습니다. 그리고 순백나무... 저 식물형 개체의 숫자는 일만 이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들이 숲으로 우릴 둘러싼 방법도 알 수 있나?”


“드루이드...”


엘비스 옆에 있던 3급 마법사. 라우라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사책에서 본 수법이랑 똑같아요. 식물을 조종해서 사람을 숲에 가두고, 산제물로 바치거나 노예로 부리는 방식 말이에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린다.


이론과 논리를 통해 사용하는 방식이 보편적인 마법 체계인 이론마술이고. 사람의 정신을 물질화하여 다른 곳에 이식하려 한다면 강령술. 천체와 성좌의 힘을 분석하려 한다면 점성술. 도구나 사물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강화술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그리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이론마술을 제외한 다른 분파들은 도태되거나 주류 마술에 편입되기 마련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예외에 속한 부류가 바로 자연마술이라 불리는 마법이었다.


마법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이해하고. 동물과 자연과 교감해 영적인 성취를 이루고. 문명을 배격하여 한없이 야성에 가까운 힘을 손에 거머쥐는 것.


이런 방식을 추구하는 자들이 바로 드루이드였고, 그렇기에 이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은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비이성적이었다.


산제물을 바쳐 인신 공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초라 불리는 마약을 피워 황홀경에 이르거나. 동물의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냥한 짐승의 뇌를 파먹은 뒤 머리 가죽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다니는 식이었다.


그들은 문명으로부터 배척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단아였다.


“드루이드라고?”


코라지오 자작은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며 이를 갈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물러설 수 없다네. 놈들에게 시간을 줬다간 더 피해가 커질 게 아닌가?”


방향이 다소 뒤틀리긴 했지만, 드루이드 역시 마법사였다.


그리고 마법사에게 시간은 곧 전투력이었으니. 이번에 놓치게 되면 다음에는 더 큰 피해를 감수하고 토벌전을 치러야 했다.


아예 루퍼스 시를 배신하고 켈티카 쪽에 붙을 게 아닌 이상. 코라지오 자작으로서는 선택지가 없는 셈이었다.


“마법사 선생들은 공격 마법을 준비해주게. 가능하면 화력이 강한 쪽으로.”


“알겠습니다 자작님.”


“나머지는 대열을 지키며 사주경계를 실시한다! 마법사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은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라!”


보수적인 감이 있긴 했지만, 정석에 가까운 전법이었다.


개활지라면 모를까. 숲속에서의 전투는 난전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고, 이쪽은 숲속에서의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적지 않은 숫자의 사상자가 나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주요 전력인 기사들을 따로 빼서 유격전을 치렀다가 본대가 습격당하면 이겨도 이긴 게 아닌 꼴이 될 테니, 지금으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포격 마법이 준비되고 있을 무렵.


다인은 순백나무 숲으로부터 수상쩍은 느낌을 받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법을 쓰게 둔다니. 무슨 속셈이지?’


전쟁의 기본은 포격전이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의 기세를 꺾어버린 뒤 보병으로 상대를 진압하는 게 기본이자 전부였다.


그렇기에 상대의 발을 묶어둘 방법이 있음에도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인은 불길함을 느꼈고, 그런 불길함 속에서 마법은 발동되었다.


허공으로 쏘아 올려진 적색 마탄이 수십 갈래로 갈라지며 대지를 향해 떨어졌다.


쉰 명은 너끈히 살해할 수 있는 살상 마법이 숲속에 숨어있던 적군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들이 살해당한 순간.


숲은 끔찍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죽...었...어...!]

[살인! 살인! 살이...인! 살인이야...!]

[피야...! 피라고!!!! 저들이... 저들이 우릴 죽일 거야...!]


까마귀 소리를 닮은.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였다.


수십 명의 사람의 목소리를 한솥에 넣어 섞어 넣은 것만 같은 기괴함이 느껴졌고, 한데 녹아든 목소리는 구역질 나올 정도의 끔찍함으로 아군의 사기를 꺾어버렸다.


누군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누군가는 다리를 덜덜 떨었으며. 누군가는 이빨을 딱딱거렸다.


그나마 정신을 혹독히 단련해온 기사들 쪽은 나았지만, 마법사들 쪽은 상황이 심각했다.


“자작님!”


선임 마법사 엘비스는 코라지오 자작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는 거의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저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고요! 제가! 제가 그런 게! 아니! 그게 아니라!”


“조용!”


패닉에 빠진 마법사들을 향해 코라지오 자작이 일갈했다.


“적들은 수십 명이 죽었을 터! 우리 쪽의 피해는 전무하다! 아무도 죽지 않았단 말이다!”


체면을 차리는 것마저 잊은 채. 코라지오 자작은 곧바로 기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그 역시 저 기괴한 목소리에 기가 질린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몸에 익은 지휘법이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지금부터 본대의 병력을 절반으로 나눈다! 절반은 선임 기사를 따라 숲으로 진입해 적들을 섬멸하고! 나머지 절반은 본대에 남아 후방에서 지원한다! 실시!”


“명을 받들겠습니다.”


자작의 말에 선임 기사는 검을 뽑아 들었다. 주군의 목소리가 흔들린 것은 눈치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가신으로서 용기를 발휘해야 했다.


“1조부터 5조까진 숲으로 진입한다! 각 조의 조장은 각자 맡은 방향을 향해 출발하도록 하라!”


선임 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검으로 방향을 하나씩 가리켰다.


북서쪽부터 북동쪽까지. 부채꼴 모양으로 수색 범위를 점차 넓힘으로써 적들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이 출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인은 남쪽을 가리키며 코라지오 자작에게 말했다.


“따로 시키실 일이 없으시면, 저는 퇴로를 확보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잠시 침묵이 일었다. 코라지오 자작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인 경은 우리가 패배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뜻밖의 대답에 다인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가 이런 판단을 내린 데에는 근거가 있었다.


“저쪽에서 갑자기 숲이 나타난 게 신경 쓰기이고 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도 해야 하니까요. 허락해주신다면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긴 했지만, 지금 당장 위협이 될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본대의 발이 묶였음에도 포격이 날아오지 않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군대를 상대하기엔 화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살상 마법이 특기가 아니거나.


어느 쪽이든 포격을 당할 걱정이 없다면 이쪽의 상황도 그리 나쁘진 않은 편이었다.


빠른 속도와 방어력을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적들은 코라지오 자작가의 기사들이 저지할 것이고, 저지하지 못한 적들은 총화기로 무장한 보병대의 화력에 벌집이 될 것이다.


게다가 검술명가라는 이름이 있는 만큼, 코라지오 자작가의 기사들 솜씨가 여느 소드엑스퍼트보다 떨어질 리도 없었다.


그 정도로 수준이 낮은 자들에게 코라지오 자작이 자신의 목숨을 맡길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포격전이 아닌 보병 간의 대결 구도로 흘러간다면 이쪽도 쉽게 몰살당할 전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기현상의 주인공인 드루이드. 이 숲 어딘가에 숨어있을 녀석의 목을 치려면 몸을 움직여두는 편이 나았다.


다만 이러한 생각은 다인의 시점이었을 뿐.


코라지오 자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설마 이것도 루퍼스 백작의 함정이었나? 여기서 사고로 위장해서 우릴 몰살시키려고?’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었으나, 코라지오 자작의 생각은 가파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창 반역자들이 들끓는 시점에서 반역자 가문을 자연스레 처리할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으로 유인한 뒤 몰살시키면 그만일 뿐.


그리하면 루퍼스 백작의 입장에선 골칫거리 하나를 더는 셈이었고, 반역을 꿈꾸던 자들에게 은근하게 공포를 심어줄 수도 있었다.


게다가 가주를 잃은 코라지오 자작가는 혼란에 빠질 테니 가문을 집어삼키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


“코라지오 자작님.”


무서운 질주로 달려나가던 의심은 다인의 목소리에 가로막혔다.


“정신 차리세요. 저흰 같은 편입니다.”


다인은 딱하다는 눈빛으로 코라지오 자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바라보며, 코라지오 자작은 자신의 한심함을 자책했다.


“미안합니다, 다인 경. 추태를 보였네요.”


코라지오 자작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뒤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쪽은 다인 경께 부탁드리죠. 부디 무운이 함께하시길.”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의심했을 수도 있었다. 부대의 결속력이 약하고, 사기가 낮아진 상태라면 퇴로를 확보하자마자 먼저 도망칠 수도 있어서였다.


하지만 상대는 다인 루퍼스.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함정을 준비할 필요도 없이,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코라지오 자작의 목을 칠 수 있는 괴인이었다.


코라지오 자작은 그의 악명을 믿기로 하였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인은 대답을 마친 뒤 경비대를 향해 말했다.


“그러면 저희는 지금부터 남쪽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선두에 설 테니 조심해서 따라와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보안관보 올리버의 대답을 시작으로, 15인의 경비대는 남쪽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본대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들은 출구를 향해 이어지는 오솔길에서 얼굴없는 나무꾼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눈도, 코도, 입도 없이. 마네킹을 방불케 하는 몰골의 사람들이 나무 뒤에 숨어 경비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순간. 경비대는 누가 명령할 틈도 없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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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순백나무 숲의 괴담 (3) +3 24.03.24 325 18 12쪽
» 순백나무 숲의 괴담 (2) +2 24.03.23 388 14 12쪽
24 순백나무 숲의 괴담 (1) +4 24.03.22 437 17 13쪽
23 혼탁한 일상 (2) +3 24.03.21 470 16 13쪽
22 혼탁한 일상 (1) +6 24.03.20 497 20 13쪽
21 광란 (3) +3 24.03.19 504 20 14쪽
20 광란 (2) +3 24.03.18 498 14 14쪽
19 광란 (1) +3 24.03.17 489 14 13쪽
18 칼부림 (3) +3 24.03.16 488 17 13쪽
17 칼부림 (2) +2 24.03.15 511 16 13쪽
16 칼부림 (1) +3 24.03.14 537 15 13쪽
15 집도 (6) +4 24.03.13 528 13 13쪽
14 집도 (5) +2 24.03.12 531 14 14쪽
13 집도 (4) +2 24.03.11 578 12 13쪽
12 집도 (3) +2 24.03.10 663 15 13쪽
11 집도 (2) +2 24.03.09 786 18 13쪽
10 집도 (1) 24.03.08 907 16 13쪽
9 잘린 머리의 무게 (6) +4 24.03.07 927 20 14쪽
8 잘린 머리의 무게 (5) +3 24.03.06 937 24 14쪽
7 잘린 머리의 무게 (4) +1 24.03.05 957 23 14쪽
6 잘린 머리의 무게 (3) +1 24.03.04 1,018 29 14쪽
5 잘린 머리의 무게 (2) +1 24.03.03 1,150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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