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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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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87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26 10:00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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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그건 연민과 동정 아니야?”

K가 말했다.

“그래, 그건 사랑 아니야.”

나도 K의 견해에 동조했다. 그러나 L은 생각이 달랐다.

“야, 연민이나 동정으로 하룻밤에 두 번씩이나 하냐? 그리고 이 자식 표정 봐라... 아주 홀렸네, 그 여자한테. 니들이 그러니까 꼰대 소릴 듣는 거야. 감정이란 게 그렇게 딱 구분이 되냐? 뭐, 처음엔 연민으로 시작했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연민은 그리움으로 변하고, 보고 싶다는 욕구로 변하고, 또 그게 안고 싶은 욕망으로 변하고 그러는 거야.”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다. 오~ 우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L은 열렬한 반응에 잠시 거만한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말했다.

“감정이란 말이지, 시냇물처럼 졸졸 흐른단 말이지. 처음엔 손바닥으로도 막을 수 있지만, 나중엔 온몸으로도 틀어막을 수 없다는 거지... 이미 늦었어. 약도 없이 나이 마흔 다섯에 밤새도록 했다는 건, 단언컨대 사랑의 힘이야.... 초능력!”

J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과음이 원인이거나, 아님 친구들 사이의 낯 뜨거운 잡담들이 원인이거나. 뒤늦게 자리한 W와 D는 영문을 모른 채, 연신 ‘무슨 일인데?’ 물으며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보다는 J의 뒷 얘기가 더 궁금했다.

“야, 그래서 그 뒤로 어떻게 됐어?”

“뭘 어떻게 됐겠어? 저 자식 표정 보면 모르냐? 처음이 힘들지, 그 다음엔 일상이 되는 거야... 어쨌든 부럽다, 짜샤!”

그때였다. 매달리고 싶은 팔뚝을 가진 W가 맥주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뭔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불륜 아니야? 에이~ 그런 거 하지마.”

“그래... 불륜...”

J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L이 J의 등짝을 툭, 쳤다.

“야, 뭐 걸리지만 않으면 돼. 뭘 걱정해. 그리고 사실 여기서 나 말고, 다른 여자한테 연심 한번 품어보지 않은 새끼들 있으면 나오라고 그래. 인간은 어차피 다 죄인이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안 그런 놈 있냐?”

“쟤가 오늘 뭐 잘못 먹었냐?”

D가 L을 가리키며 물었다.

“왜?”

“이상하게 맞는 말만 해서. 오늘 이상하게 똑똑해 보이는데?”

“원래 똑똑했어, 짜샤!”

L은 또 다시 거만해졌다. 우리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와의 관계를 뭐, 미화할 생각은 없어.”

웃음기가 가신 뒤에 J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야... 불륜이고 치정인데... 멈출 수가 없네.”

순간, J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그의 심경만큼이나 복잡해 보였다.

“쉽지는 않겠지... 칼처럼 잘라내기가....”


“이젠... 집으로 찾아오지마... 다시는 이런 일 없을거야...”

새벽녘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은 J가 막 나가려는데, 여즉 이불 속에서 잠든 줄 알았던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알았어.“

“어서 가.”

J는 현관을 나섰다. 자연광 아래로 드러난 골목은 밤의 그것보다 더 추레했다. 세워진 자전거는 온통 녹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밤새 누군가가 내어놓은 쓰레기봉투에는 이른 새벽부터 파리가 꼬여 있었다. J는 천천히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다리는 풀리고, 정신은 몽롱했다. 아직 손끝에는 그녀의 살을 만지던 감촉이 잔뜩 뭍어 있었고, 코 밑에는 그녀의 체취가 맡아졌다. 백 미터 남짓의 골목은 J에게 영원처럼 느껴졌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해지는 초여름의 햇살은 흡사 자신을 조롱하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일상에 복귀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회의 시간에는 팀원들의 의견을 놓치기 일쑤였고, 펜을 들었을 때에는 손 끝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점심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밥을 남겼고, 그녀에게 가 닿았던 입술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선병질적으로 시계를 올려다보곤 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J는 곧장 그녀에게로 갔다. 그녀가 또 다시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집으로 찾아오지마... 다시는 이런 일...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내내 마음에 거슬렸다. 서둘러 당도한 그녀의 집 앞에서 벨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J는 촉수 낮은 가로등 불빛 아래 섰다. 구두코 앞에 담배꽁초가 쌓여 갔다. J는 두 눈을 흡뜨고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멀리서 그녀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제서야 J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가 J를 알아보았다.

“왔어?”

그녀가 말했다. 이번엔 J가 그녀를 그러안았다. 그녀는 J의 가슴팍을 밀어내려다 이내 그대로 J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들은 어제처럼 불 꺼진 창문으로 향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 그녀의 창문에 불이 켜졌고, 그 불은 새벽녘까지 꺼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고, j는 그래서 더 미안해졌다고 한다. 세상은 그들을 두고 불륜이라고 칭할 것이며, 또한 추잡한 치정사건으로 치부할 것이다. 우리들은 그 세상으로부터 숭고하고 위대한, 희생적이고 존엄한 사랑을 강요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여 금욕을 몸에 익히고,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된 쾌락만을 권장 받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은 알게 된다. 넘지 못한 선에 대한 후회와 금지된 것들에 대한 욕망을. 그리고 사랑이란 결국 금기의 위반이며, 본성에의 회귀라는 것을.

하여 우리들 중 아무도 J를 단죄하는 이는 없었다. 단지 좀 걱정될 뿐이었다. “저 산은 위험하니까, 오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더군다나 이렇게 궂은 날씨엔 말이야.“ 해줄 말이 있다면 그것 뿐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J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L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자식, 갔어.”

“뭐, 급한 일이 생겼는지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급히 나가던데?”

매달리고 싶은 팔뚝을 지닌 W는 j가 어디로 급히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j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아마도 알고 있으리라. 그녀의 창문에 불을 켜기 위해 사라졌음을.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르지.”

얼마 전에 묶었다던 K가 말했다. 우리들은 의미없이 잔을 부딪쳤다.

“세상의 모든 인정받지 못한 사랑을 위하여!”

내가 외쳤다. 일제히 위하여! 화답해주었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쩌르르, 울렸다. 꺼억, 유일한 총각인 L이 시원하게 트림을 하고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떡치기 좋은 밤이네.”

우리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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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1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4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2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9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3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3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7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8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6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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