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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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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80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09 08:00
조회
62
추천
1
글자
5쪽

그와의 불화11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무더위에 늘어진 하초처럼, L의 일상은 나사가 하나쯤 풀려 있었다. 세수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심지어는 고객을 만나는 동안에도 L은 자주 정신줄을 놓고,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스칸디나 반도 어디쯤... 땅끝 해남 어디쯤... 하초는 그런 L이 걱정되었다.

“이봐, 그러지 말고, 운동이나 좀 해봐.”

L은 대답이 없었다. L을 걱정한 건 비단 하초뿐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식탁 위에서 무슨 일 있냐고 걱정스럽게 물었고, 직장 동료들도 근심스레 L에게 안부를 물었고, 친구들도 과묵해진 L을 걱정해주었다. 새벽 세 시면 어김없이 술에 취해 전화를 해대는 여인도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몇 번씩 확인하곤 했다. 그때마다 L은 ‘응,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은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하곤 했다.

장마철 덜 마른 빨래처럼 늘어져 있는 L을 보면서 하초는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괜한 소리를 해서... 그냥 첫 번째 여인이 한밤중에 전화를 했을 때, 대충 인정하고 넘어갈 것을...

굳이 두 번째 아들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L이 저리 되지는 않았을 것을... 그리하여 어느날, L이 세 번째 여인을 찾아보겠다고 했을 때, 하초는 좀더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이봐, 이젠 그만두자고. 뭘 더 찾아보겠다는 거야?”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끝을 봐야지...”

“가려면 혼자 가. 난 여기 남겠어!”

하초는 발끈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씨, 무슨 도마뱀 꼬리도 아니고...”

L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세 번째 여인은 그가 신입의 때를 벗지 못하던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던 거래처의 경리 아가씨였다. 당시 일처리가 서툴렀던 L은, 한번 갈 일을 서너 번씩 드나들어야 했고, 때로는 상사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그녀를 만나러 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L을 맞아주곤 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씨 좋은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마워서 L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고, 밥을 함께 먹으며 반주로 시작한 자리는 곧장 술판으로 이어졌고, 다시 술에 취한 그들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잠자리로 이어졌다. 뭐, 여기까지는 수천명에 달하는 다른 여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L이 그녀를 남다르게 기억하는 이유는 정작 그 다음이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든든히 밥도 먹었고, 술도 기분 좋을 정도로 마셨다. 뭐, 약간의 실랑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무사히 객실로 들어섰다. L은 시동을 걸었다. 성능좋은 엔진은 우람한 일갈과 함께 힘차게 움직였고, 연료도 충분했다. 적당히 예열시킨 뒤에 기어를 바꾸고 출발하면 될 터. 그녀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에 L은 낙수소리를 들으면서 느긋이 엔진소리를 듣고 있었다. 곧이어 만끽할 드라이브의 짜릿함을 떠올리면서. 잠시 후 가운을 입은 그녀가 돌아왔다. L의 순서였다. L은 그녀를 향해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매번 있는 일이었지만, L은 거사 전의 들뜸이 좋았다. 몸 위로 떨어지는 샤워기의 물줄기도 상쾌했고, 엔진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이 힘차게 뛰었다.

“어라? 왜 불을 다 껐어?”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대충 털어낸 L이 들뜬 기분으로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방안은 암전된 듯 캄캄했다. L은 스위치를 찾으려 벽으로 손을 더듬었다.

“불 켜지 마세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녀 목소리였다. 욕실에서 새어나오던 불빛도 꺼졌다. 완벽한 어둠이었다. 당최 이 어둠 속에서 뭘 하자는 거지? L은 의아해하며 손을 앞으로 뻗어 침대까지 걸어갔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L을 잡아주었다. 아얏! L은 침대 모서리에 그만 정강이를 찌었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일을 치르나? 네 얼굴도 안 보여.”

L이 짜증스럽게 말하자, 그녀는 L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편히 누우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L은 영문을 모른 채로 그대로 드러누웠다. 손길이 지나간 길로 그녀의 입술이 따라갔다. 샅으로 그녀의 입김이 전해졌다. L은 낮게 신음했다. 이어 따뜻한 온기가 L의 하초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기묘한 엉킴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몇 번이고 몸을 일으키려는 L을 그녀가 저지했다. 그러는 사이 지릿한 쾌감은 서서히 고조되었고, 이어 자신의 순서가 되었다고 생각을 굳힌 L은 그녀를 돌려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가운을 벗겼다. L의 손은 곧장 그녀의 가슴을 훑고, 아래로 향했다. 그때였다.

“잠깐만요.”

다급해진 그녀의 손이 L의 손을 막았다. L은 화가 났다.

“아, 왜?”

“그냥 제가 해드리면 안될까요?”

L이 일어나 앉았다.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녀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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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3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 그와의 불화11 18.05.09 63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7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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