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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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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75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11 08:10
조회
52
추천
1
글자
6쪽

그와의 불화 13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손을 써볼 겨를도 없었어요. 정말이지 멀쩡했거든요. 근데 정기검진에서 뭔가가 보인다고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거기에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항암치료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그녀의 여동생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푹 꺾고 어깨를 들썩였다. L은 난감해졌다. 중환자실에 있다는 그녀는 면회조차 되지 않았다.

“근데, 울 언니하고는 어떻게 되세요?”

“전에 잘 아는... 친구예요.”

“아... 예.”

그녀의 여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 L도 잘 알거니와, 단언코 친구라고 말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저 이천 명이 넘는 성적 대상 중에 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래서 좀 마음에 걸렸던 대상일 뿐이었다. 해서 L은 뒤늦은 사과라도 해보려고 찾아왔지만, 그녀는 이미 의식을 잃은 채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했다. 젠장.

“언니는 친구도 별로 없었어요. 저만 시집 보내고 나면 머리 자르고 절에 들어갈 거라고 했었는데... 친구가 찾아왔다고 하면, 분명 좋아했을 거예요. 어쨌든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여동생은 그녀를 많이 닮아 있었다. 늘 그녀의 입가에 맴돌던 미소만 빼고는 십여 년 전의 그녀와 거의 판박이였다. L은 과일바구니와 명함을 그녀의 여동생에게 건네주고는 참담한 심경으로 돌아섰다.


“너무 늦어버렸어...”

병원을 나오면서 L이 혼잣말을 했다.

“그러게...”

하초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근데, 아까부터 왜 이렇게 왼쪽 엉덩이가 아프지?”

L이 손을 뒤로 꺾어 엉덩이를 매만졌다. 아마도 그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줄곧 왼쪽 엉덩이가 벌에 쏘인 듯 따끔거리고 쓰라렸다.

“그래?”

“응, 아까부터 계속 아팠어. 주사기로 찌른 듯이 얼얼하고...”

“음...”

L은 영문을 알 수 없었고, 하초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집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 얼얼하던 엉덩이 통증은 이내 잦아들었다.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 둘, 아니 한몸인 그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세 시, 예의 전화벨이 울렸다. L은 잠결에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낚아챘다.

“또 술 마셨냐? 마시려면 곱게 마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데, 수화기 건너편에서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 그때 수화기 너머 낯선 목소리가 입을 열었다.

“아까... 낮에 찾아오신 분이시죠?”

그녀의 여동생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연고도 없는 여인네의 빈소를 삼일 내내 지켰단 말이냐?”

K가 물었다.

“응.”

L이 대답했다. L은 많이 초췌해 보였다.

“야, 대단하다. 하여튼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매달리고 싶은 팔뚝이 L의 어깨에 얹혔다. 의리?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혹시 그 여동생이라는 아이 예쁘냐?”

내가 물었다. L이 초췌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이뻤다, 새꺄!”

그럼, 좀 이해가 되네... 나는 중얼거렸다. 친구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럼, 이천한 번째 여인이 되는 거냐?”

목소리가 허스키한 D가 물었다.

“맥주나 마셔, 새꺄!”

일제히 건배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거창한 트림 뒤에 L이 말을 이었다.

“사흘 내내 조문객이라고는 채 스무 명도 안되더라. 마땅히 상주도 없이 혼자 거기 앉아 있는데, 그냥 돌아갈 수가 있어야지.”

“야, 그럼 연락이라도 좀 하지. 우리들이 거기 가서, 망자 외롭지 않게 술판이라도 벌어줄 것을.”

“야, 웃고 떠들만한 장례식이 아니었어. 겨우 서른여섯이야, 그 여자. 참 착한 여자였는데...”

L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쩌면 인척도 하나도 없는지, 원. 내내 혼자더라. 생각해보니, 마땅히 연락할 데가 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고.”

“쯧쯧, 하나 밖에 없는 언니가 죽었으니, 얼마나 애통할꼬.”

“그러게. 사흘 내내 울더라. 삼우제 때도 같이 다녀왔는데, 거기서도 주저앉아서 통곡을 하고... 겨우 달래서 집에 바래다줬어.”

L의 모습이 쓸쓸해보였다. 여즉 그녀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근데 말야, 나 요즘 갑자기 엉덩이가 칼로 후벼 파는 듯이 아프네. 왜 그런 거냐?”

L이 갑자기 K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야, 내가 의사냐? 왜 그걸 나한테 물어?”

K가 반박했다.

“지금도 아파? 장례식장에서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 거 아냐?”

내가 물었다.

“그런가?”

L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고생했어. 이젠 빨리 잊어버려야지.”

“그래야지.”

우리들은 또 다시 건배를 했다. 그리고는 화제가 바뀌었다. 얼마 전에 반에서 회장이 되었다는 D의 딸이 자랑거리가 되었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경기가 회자되었다. 곧이어 정치에 대한 비판이 뒤를 이을 것이고, 그 뒤로는 근래 들어 코빼기도 뵈질 않는 J에 대해 궁금해할 것이었다. 두서도 없었고, 목적도 없었다. 수다... 그저 모여서 서로가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정도의 술자리였다. 아무려나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후일 것이다. 목적과 명분에 따라 움직이던, 해서 뻣뻣이 긴장된 자리가 아니라 한껏 늘어진 채 일상을 두서없이 늘어놓고, 서슴없이 잔을 비우는 자리... 그런 게 좋아질 때가 된 것이었다. 우리들은.

“야, 아무래도 나 지금 가봐야 될 것 같아.”

슬몃 자리를 비우고 전화통화를 하고 온 L이 갑자기 작별을 고했다.

“왜?”

“그 여자가 무섭대... 어쨌든 나 간다. 담에 보자.”

L이 말릴 틈도 없이 술집을 빠져나갔다. 맥 빠지는 일이었지만 뭐,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거 같아?”

L이 급히 사라지고 난 뒤, K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뭘?”

“저 자식, 방금 나갈 때 이상한 거 못 느꼈어?”

“글세...”

“난 저 자식이 그 여동생을 좋아한다에 백만원 건다!”

K는 확신했다.

“야, 그럼 뭐해! 고자라잖아.”

D가 껴들었다. 우리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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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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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와의 불화8 18.05.06 67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6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7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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