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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일반소설

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69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01 12:18
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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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5쪽

그와의 불화3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염라대왕은 약속을 지켰다. L은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내는 동안, 희안할 정도로 밥을 굶지 않았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나서, 고등학교는 등교한 지 이틀 만에 집어치웠다. 가출을 했고, 성인들의 악습인 술과 담배에 절어서 청춘을 허비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밥을 굶지는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동네 건달이 친한 척을 하며 밥을 사주기도 했고, 또 어쩌다가 교복을 입고 길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손을 내밀면, 군말없이 제법 목돈을 내놓기도 했다. 또 고만고만한 동네 친구들이 벌인 술판에 끼어 술과 고기를 먹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성난 아버지의 몽둥이찜질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착한 어머니는 두들겨 맞은 아들을 위해 갈비찜을 해주셨다. L은 씩씩거리면서도 배불리 먹었다.

가출의 기간은 점점 길어졌고, 급기야 아예 딴 살림을 차리기도 했다. L의 첫 여인은 경기도 남양주 인근에 박스공장에 다니던 여공이었다. 막연히 노는 일이 물렸던 L은 기술이라도 배워볼 요량으로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공장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회식을 하다가 단둘이 남게 된 L이 그녀에게 물었다.

“너 공장장 이거냐?”

L은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도대체 누가 그딴 소릴 해!”

술 취한 그녀가 화를 냈다. 그러자 L이 술기운을 빌어 용기를 냈다.

“그럼, 나랑 함 하자!”

“이런 미친 새끼!”

염라대왕의 두 번째 약속이었다. L은 그날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경험으로 터득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까지 술이 덜깬 표정이 되어 연신 L의 목에 매달려 경탄을 금치 못했고, 놀라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모든 동작을 입력해놓은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유자재로 몸이 움직여졌다.

그날부터 L은 그녀의 자취방에서 함께 지냈다. L은 며칠 만에 공장장이랑 싸우고 공장을 그만두고 말았지만, 그녀는 매일 자취방에서 뒹구는 L에게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제공했고, 일 년쯤 뒤에 귀가를 결정한 L이 짐을 챙길 때에도 울며불며 매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겨우 그녀를 떼어놓고 집으로 왔을 때, 아버지는 으레 몽둥이찜질을 해댔지만, L은 외려 예전 같지 않은 아버지의 완력에 서글픔을 느꼈다고 했다.

“이젠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왔습니다.”

L은 공부를 했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까지 들어갔다. 물론 그 사이에도 검정고시 학원 원생들과 여강사, 그리고 심지어는 식당 아주머니와도 사랑을 쉬지 않았다. 물론 그녀들이 제공하는 따뜻한 밥상도.


어느덧 청년이 된 L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에 자신감이 넘쳤다. 물론 학교 생활도 무난했지만, 성생활에 있어서는 무난함 이상이었다. 작은 키에 그닥 잘 생기지 못한 외모였지만, 언제나 여자들이 줄을 섰고, 미팅을 가서도, 선배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동창들이랑 술집에 가서도 절대로 혼자 집에 돌아오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땐, 섹스가 마치 산불처럼 공짜였어(무라카미 하루키).”

L은 그 시절을 그렇게 회고했다. 그 시절의 우리들로 말하자면, 마음에 드는 이성에 대해 쭈뼛쭈뼛 기회만 넘보다가 불덩이만 가슴에 품고 돌아오던 시절이었을 게다. 황홀한 방사는커녕, 총각 딱지도 떼지 못하던 그때, 선각자의 무용담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어쨌든 그런 L이 굳이 한 여인을 만나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고, 또 고백을 하고 결혼을 결심할 이유가 없었다. 여자는 항상 주위에 넘쳐났고, 아랫도리의 힘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구쳤다. 언제나 아침밥을 든든하게 얻어먹었고, 잠자리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L의 행복한 나날은 계속되었으며, 나날이 영감처럼 새로운 기술들이 떠오를 때면, 늘 새로운 여인에게 시험해보곤 했다. 시험은 성공적이었고, 나날이 기술이 축적되어 갔다. 그리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고 난 뒤에도 L은 쉬임 없이 자신의 재능을 연마하였고,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었고, 또 월급을 모아갔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총각 어두에 ‘노’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지만 L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한 여자에게 평생을 바칠 수 있어? 라며 결혼하는 친구들을 조롱하였고, 의례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만난 새로운 여인을 데리고 손을 흔들며 퇴장하곤 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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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39 1 7쪽
25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0 1 5쪽
2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9 18.05.24 45 1 4쪽
23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8 18.05.23 53 1 5쪽
2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2 1 4쪽
21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7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0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3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1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8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2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1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2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5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7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6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6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7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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