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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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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94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25 08:40
조회
40
추천
1
글자
5쪽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본디 산불이란 게 그러하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원인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누군가의 담뱃불, 자연발화, 혹은 원인불명.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인은 없고, 결과만 있다. 무수한 산짐승들이 죽어나가고, 수백년동안 조금씩 자라나던 나무들은 잿더미로 변해 버린다. 원인을 모르므로 책임을 지울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냥 그러려니 하기에는 파장이 너무 크다.

그녀의 입을 통해서 넘어온 숨결은 촛불을 끌 수도, 또 불씨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전적으로 그녀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마음 속에 촛불이나 불씨를 품은 J를 전적으로 탓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행히도 J는 후자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긴 입맞춤이 끝나고 난 뒤에 J는 곧장 그녀의 앞섬을 풀어헤치고, 자신의 팔꿈치를 긴장시키던 가슴을 탐했다.

“잠깐만... 옷 좀...”

그녀가 J를 밀쳐내고는 웃옷을 벗었다. J도 덩달아 웃옷을 벗었다. 그리고 긴 입맞춤을 했다.

“불 끌까?”

그녀가 묻자, J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고 싶어, 너.”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그녀를 감싸고 있던 허물들이 벗겨져 나갔다. J는 자꾸만 감기는 두 눈을 부러 흡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안고, 그녀를 맛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가만히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단속적인 진저리의 끝에서 J의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았다. J의 불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고, 그녀 역시 그 불덩이와 한 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열락의 끝에서 두 사람은 부둥켜안은 채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흡사 산사를 깨우는 종소리처럼 강한 떨림이 아스라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두 사람은 한참동안 부둥켜안은 서로의 손을 풀지 않았다. 그녀의 뺨에 겹쳐진 J의 볼에 무언가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J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J는 그녀를 휘감은 손을 풀지 않은 채 다시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불씨는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녀의 창문은 불이 꺼졌다. 스위치를 내린 J가 그녀 곁으로 돌아와서 누웠다.

“이젠 가도 돼... 난 괜찮아.”

J는 말없이 손을 뻗어 젖어있는 그녀의 귀밑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녀의 볼은 아직 뜨거웠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옛날, 대학 다닐 때 너 나 좋아했었지?”

“알고 있었어?”

“그럼, 어떻게 모를 수 있니? 강의 시간에는 그렇게 똑 부러지게 말도 잘 하던 네가, 어쩌다가 나와 말 한마디 섞을 때면 말 더듬고, 눈인사라도 할라치면 얼굴부터 빨개지고...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그러더라, 나 좋아하는 것 같다고.”

“내가 그랬나?”

“응. 그때 너를.... 참 귀엽다고 생각했어.”

그녀가 웃었다. J도 따라 웃었다. 매트리스는 조금만 몸을 뒤체도 다소 과장되게 울렸다. 울림은 잠시 후에 잦아들었다.

“그때, 너랑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글쎄... J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사십년을 넘도록 그녀도, J도 무수한 물음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배제한 물음표, 깜박 지나친 물음표, 열차를 놓친 물음표, 한발 늦은 물음표... 그 고기집에 가지 않았다면?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를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라진 그녀를 다시 찾으려던 노력을 포기했었다면? J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미궁에 빠진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J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어둠은 아까보다 좀더 짙어져 있었다. 곧 동이 터올 것이었다.

“나중에 다 얘기해줄게... 그냥 오늘만 이럴게. 오늘만...”

J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머릿결이 간간히 턱 밑을 간지럽혔고, 그녀의 들숨과 날숨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슴께로 전해졌다.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농밀하던 어둠은 서서히 부유하는 빛의 입자들에 뒤섞여 점점 옅어져갔다. J는 잠들지 못한 채 그 빛의 역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 위에 잠들어 있는 그녀가 깰까봐, 숨을 죽여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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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40 1 7쪽
»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1 1 5쪽
2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9 18.05.24 46 1 4쪽
23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8 18.05.23 54 1 5쪽
2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3 1 4쪽
21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8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1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4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2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9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5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6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3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3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7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8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9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6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5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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