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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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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91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4.27 17:31
조회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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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6쪽

그와의 불화1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그는 1900년 3월 평양 시장통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나무꾼이었고, 위로는 세 명의 형님과 두 명의 누이가 있었다. 그 밖에도 2명의 형제가 더 있었으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산으로 올라가 독버섯을 따먹다가 어린나이에 황천길을 떠났단다. 아비는 산에서 나무를 잘라서 시장으로 나갔지만, 번번이 마수걸이도 못하고는 주막에서 술값 대신 나뭇짐을 던져주고는 술에 절어 들어오곤 했다.

하여 형제들은 진종일 손톱을 물어뜯거나 배고픔에 지쳐 잠들기 일쑤였고, 술 취한 아비는 늦도록 삯바느질로 보리죽이라도 벌어보려는 어미를 덮쳤다. 그는 그렇게 태어나게 되었다.


그가 다섯 살 시절, 형들은 산으로 올라가 나물이나 약재를 캐어 살림을 도왔고, 큰 누이는 식모를, 어미를 닮아 얼굴이 반반했던 둘째 누이는 유명한 기생집에 팔려나갔다. 제법 큰 돈을 만진 아비는 술에 거나하게 취해 들어와서는 배고픈 다섯 살 그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저 눔도 딸내미였으면 좋았을 것을...”


결국 그는 술 취한 아비에 의해 양물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엄청난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생집에 팔려 나갔다. 그의 나이 겨우 여덟 살이었다.

처음엔 아비가 미웠고, 자신의 처지가 슬퍼서 눈가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러나 곧 자신이 더 이상 배를 곪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가엾고 어린 그를 어여삐 여기는 기생들의 품 안에서 종종 고된 일과의 시름을 잊을 수도 있었다.

그의 나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술에 취한 아비가 길바닥에서 동사했다는 사실과 둘째 형이 벼랑에서 낙상하여 영영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잠시 자신에게 가족이 있었음을 생각하였지만,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기생집의 불목하니 생활에 충실하게 적응하였고, 대모로부터 제법 일을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있었다. 한일합방이니 독립운동 따위는 그가 알 바 아니었으며, 취객들이 남긴 고기점들과 맘씨 좋은 식모가 따로 챙겨주는 맛난 간식들로 볼살도 제법 올라 그런대로 사람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열일곱에는 제법 근사한 청년이 되었고, 친구도 생겼다. 그녀는 열네 살에 기생집으로 팔려와서 혹독한 교육을 받고, 열여섯 나이에 처음 머리를 올린 ‘영월’이란 아이였다. 물론 그 시절 신분의 차이는 엄격했지만, 그녀는 그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그도 그녀를 좋아했다. 가끔 몰래 그를 불러서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기구한 자기의 집안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조용히 노래가락을 들려줄 때면, 그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처음으로 아비를 원망했고,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본인의 아랫도리의 화인을 내려다보고는 혼자 소용없이 분노하기도 했다. 그녀가 취객들과 잠자리를 들 때면, 늘 잠을 이루지 못해서 뒤척였고, 다음 날 아침에는 새벽부터 장작을 패곤 하였다.


1919년 3월 4일. 영월이는 그를 데리고 시장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얼마 전에 인력거를 잡아주고, 사례로 받은 빳빳한 5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근사한 머리빗을 영월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날 따라 시장통에서 사람들이 북적댔다.

“왠 사람들이 이리 많이 모였을까?”

“그러게요? 얼른 가게만 들리고 돌아가시죠, 아가씨.”

영월이와 그는 온갖 장신구를 늘어놓은 난전 앞에 당도했다. 그때였다. ‘대한 독립 만세!’ 누군가의 선창이 시작되었고, 벼락같은 함성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일제히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들의 시선은 당연히 그쪽으로 쏠렸다.

“무슨 일이지?”

영월이는 사람들이 우우, 몰려가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관했다.

“아가씨, 일단 피하시죠.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그러나 영월이는 외려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궁금하잖아. 우리 같이 구경 가자.”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를 이끌고 인파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손에 태극기를 꺼내들고, 행진하는 인파들을 목도하게 되었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함성은 시장통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가씨, 빨리 돌아가시죠. 위험합니다.”

그는 넋을 놓은 듯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손을 붙들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여든 사람들을 뚫고 나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곧이어 총소리가 사위를 갈랐다. 그의 발이 멈춰섰다. 앞서 나아가던 군중들의 일부가 고꾸라졌다. 군중들의 외침과 총소리가 뒤섞였다. 그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린 영월이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총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영월이가 넘어졌다. 그는 영월이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그때, 등짝을 파고 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가뜩이나 큰 영월이의 눈이 더 커졌다. 어서 뛰어....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 발의 총알이 또 다시 그의 엉덩이께를 파고들었다. 영월이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어서 가... 그는 영월이를 감싸안았다. 하나, 둘, 셋.... 무수한 총알들이 그의 등 위로 떨어졌고, 그는 영월이를 그러안은 채로 까무룩히 정신을 내려놓았다. 때는 1919년 3월 4일, 그의 열아홉 번째 생일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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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와의 불화8 18.05.06 68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6 1 5쪽
»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4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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