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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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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70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21 16:37
조회
47
추천
1
글자
6쪽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그녀와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로부터 연락을 받고, J는 퇴근 후에 운동화를 들고, 고기집을 찾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 한 켠에 서서 잰 손놀림으로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왔어? 오늘도 혼자네.”

그녀는 밝은 목소리였다.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 순간 J는 그녀를 꼭 그러안고 싶었지만, 대신 운동화를 건넸다. 애들 꺼 사러 갔다가 하나 사 봤어.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바꿔도 돼. 요 근처 백화점에서....

“예쁘네... 맘에 안 들긴,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야. 어쩜 내 발 사이즈도 딱 맞췄니? 그렇지 않아도 운동화 하나 사려고 했는데... 내가 돈 줄게. 얼마야?”

운동화를 꺼내 본 그녀가 활짝, 웃었다. J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세일이라 얼마 안 해.”

“그래도...”

“대신 나중에 술 한잔 사.”

그녀가 J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래, 좋아. 새 운동화를 들고 사라졌던 그녀는 소주와 양념에 버무린 고기를 들고 나타났다. 고기는 불판에 놓여졌다. 옆 테이블의 단체 손님들은 큰 소리로 ‘건배’를 외치고는 일제히 잔을 부딪쳤다.

“나 없는 동안에 다녀갔었다며?”

그녀가 고기를 자르며 표정없이 물었다. 응... J는 실끗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며칠 휴가 다녀왔어. 그이랑...”

“잘 쉬고 왔어?”

“응. 너무 좋았어. 단둘이 여행 다녀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거든.”

“그랬구나...”

“너도 시간 나면 와이프랑 가까운 데라도 다녀와. 좋아할 거야, 네 와이프도.”

“그럴까?”

그녀는 그을음을 재단한 익은 고기 한 점을 J의 앞 접시에 놓아주었다. J는 혼자 소주 잔을 비우고, 고기를 집어 먹었다. 아줌마!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네, 그녀가 옆 테이블로 건너갔다. J는 빈 잔을 채워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뜨거운 불판 위에 고기점들이 속삭였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이 술을 혼자 다 마신 거야? 으이구!”

옆 테이블 단체 손님들이 왁자지껄, 빠져나가고 난 뒤에 그녀가 돌아왔다.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들과 검댕이 된 고기점들이 난감한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나 J는 전혀 취해지 않았다. 그게 J를 더 힘들게 했다.

“속 괜찮아? 나가서 커피라도 한잔 할까?”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 J가 대답했다.

“금방 옷 갈아입고 나올게.”

J가 계산을 치르고 음식점을 나서자,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녀가 냉큼 J의 팔짱을 꼈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팔꿈치에 맞닿은 그녀의 가슴께에 J는 예의 긴장했다.

“커피 사줄까?”

“아니, 집에 가야지.”

“운동화 잘 신을게. 고마워.”

그녀가 쇼핑백을 들어 흔들었다. 팔짱을 낀 팔도 덩달아 흔들렸다. J는 더 긴장했다.

그들은 한 정거장 남짓을 걸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녀가 J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아니, 일은 무슨....”

“오늘 니 표정이 넘 어두워서... 혹시 고민 같은 거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들어줄게. 우린 친구잖아.”

친구.... 그녀가 팔짱 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래. 친구”

J는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이내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의 집 앞, 아니 그녀를 돌려보내야 하는 단지의 초입이 가까워져 있었다.

“벌써 다 왔네! 이제 들어가.”

그녀가 팔짱을 풀었다.

“그래, 나 갈게.”

“조심히 들어가... 그리고 맘 상하는 일 있었으면, 빨리 잊어. 한숨 푹 자면, 다 잘 되어 있을 거야.”

“그래, 그래.”

J가 돌아서서 걸었다. 걸으면서도 등 뒤에 쏟아지는 그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소화시키지 못한 무언가가 자꾸만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모퉁이를 돌아 그녀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서, J는 회칠된 벽을 잡고 토악질을 해대고 말았다.


“그냥 모른 척해. 네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잖아.”

K가 말했다. J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여워하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빨리 잊어. 그게 속 편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자꾸 마음이 쓰이네. 걱정도 되고.”

J가 창밖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총각인 L이 목청을 돋웠다.

“야, 쟤네들 나온다!”

일순, 우리는 반사적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모텔 입구를 나서고 있었다. 밤 바람에 그녀의 감색 플레어스커트가 위태롭게 나풀거렸다.

“야, 좋을 때다.”

“근데, 쟤네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야, 시간이 중요하냐? 중요한 건 말이지, 여자를 얼마나 만족시켰느냐 하는 거지. 저 여자 표정 봐라. 아직도 꿈꾸는 표정이잖아. 니들이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시덥잖게 시간만 길면, 여자들은 아프기만 한 거야. 섹스는 타이밍, 몰라?”

L이 열변을 토했다.

“총각이 유부남들을 교육시키네?”

“내가 어디 그냥 총각이냐? 니네들이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을 다 합쳐도 나한테는 안될 거다.”

L의 너스레에 J가 웃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J는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예의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모텔에서 나왔던 남녀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주 상권에서 벗어난 여관 골목 어귀는 취객으로 북적일 시간임에도 지나치게 한적했다. 하긴 그래서 우리들은 이곳을 좋아했다. 언제나 자리가 있었고, 또 주위의 눈치를 안 보고 떠들어도 괜찮았다.

“사랑이라는 거... 그거 아니겠지?”

J가 들릴락말락 중얼거렸다. 다른 친구들은 J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눈치였다. 이 자식... 나는 물었다.

“거기에... 또 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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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39 1 7쪽
25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0 1 5쪽
2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9 18.05.24 45 1 4쪽
23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8 18.05.23 53 1 5쪽
2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2 1 4쪽
»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8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0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3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1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8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2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1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2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5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7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6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6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7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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